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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1892-1983) 이야기 [1] 악인이 지배할 때에도 성도는 진리를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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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2월호>
아직도 네덜란드의 하를렘에는 "나," 코리 텐 붐과 가족들이 살았던 3층집이 나지막이 자리하고 있다. 1층에는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물려받아 운영하시던 『텐 붐 시계방』이 있다. 하를렘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포였지만 장삿속이 없으신 아버지는 큰돈을 벌지는 못하셨다. 그럼에도 가게에는 시계보다 더 "긴급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찾아온 사람들에게 케이크를 구워 내시던 어머니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무언가를 만드셨다. 그런 부모님 밑에서 아름다운 벳시 언니와 용감한 빌렘 오빠, 정직한 놀리 언니 그리고 막내인 내가 태어났다. 매일 아침 8시 30분이면 우리는 벽 한 쪽에 "예수님은 승리자시다!"라고 적힌 거실에 둘러앉아 아버지께서 읽어 주시는 성경 말씀을 들었다. 이 시간은 시계포의 직원들인 크리스토펠스, 한스, 토스도 피할 수 없었다. 저녁 9시 45분에는 기도 모임을 가졌는데 빌렘 오빠와 놀리 언니가 결혼하기 전까지 우리는 매일 함께 기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평화로운 시계방이 긴장과 공포가 매일같이 엄습하는 "비밀 조직의 본부"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무시무시한 일이 닥치고 있다는 것을 처음 감지한 것은 빌렘 오빠였다.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온 오빠는 독일에서 반유대주의를 비판하는 논문을 써서 철학 박사 학위를 땄는데, 그 논문에서 "끔찍한 악이 독일 땅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씨앗이 뿌려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오빠는 개혁주의 교회의 목사가 된 이후에도 『이스라엘을 위한 모임』이라는 단체에 가담하여, 독일에서 유대인을 향한 고의적이고 대규모적인 박해의 움직임이 있음을 주목하고 있었다. "전쟁은 중립국인 네덜란드의 비극이기도 하며, 이기든 지든 우리의 삶을 완전히 달라지게 할 것"이라는 오빠의 주장과는 달리, 사람들은 "네덜란드가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며 안심하는 눈치였다. 하루는 네덜란드 수상의 대국민 연설을 듣기 위해 가족들이 라디오 앞에 모였다. 곧이어 "네덜란드는 전쟁이 없을 것이며 중립은 존중받을 것이다."라는 수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때 아버지는 라디오를 탁 꺼버리며 말씀하셨다. "희망이 없는데 희망을 주는 것은 잘못이야. 원하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지. 독일은 침공할 테고, 우리나라는 무너질 거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네덜란드 국민들이 정말 안쓰럽구나. 우린 패망할 테지만 하나님은 패망하지 않으신다!" 어떤 상황에서든 좋은 면만 보시는 아버지가 전쟁을 예견하신지 5시간 만에 우리는 포격 소리를 들었다. 언니와 나는 함께 무릎 꿇고 국가의 안위와 전쟁의 사상자들을 위해 몇 시간 동안 기도했다. 언니는 마귀에게 사로잡힌 독일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창밖으로 요동치는 불빛을 얼떨떨하게 바라보다가 이렇게 기도했다. "오 주님, 제 기도가 아니라 언니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저는 도저히 저 사람들을 위해선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배경은 반 블록 떨어진 광장이었고, 낡은 짐마차가 가로질러 오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 안에는 아버지, 나, 벳시 언니 그리고 모르는 얼굴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 가게의 단골손님인 피크위크 씨, 빌렘 오빠, 놀리 언니의 아들 피터도 타고 있었다. 마차는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를 멀리 데려갔다. 과연 우리를 어디로 데려간 것일까! 그 말을 들은 언니는 공포에 떨고 있는 나에게 커피를 주며 말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닥칠 불행을 미리 보여 주신 거라면 안심이야. 그 일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말이잖아."
네덜란드가 점령된 이후 마을 곳곳에 독일군이 주둔했고, 시민들은 사진 및 지문이 담긴 신분증 그리고 배급 카드를 발급받았는데, 배급 카드로 교환할 수 있는 물건이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에 발표되었다. 신문은 온통 독일 정권을 선전하는 문구들로 도배된 터라, 라디오가 아니고서는 네덜란드의 뉴스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독일 당국은 라디오를 모두 수거했지만 조카인 피터는 라디오 하나를 우리 집 계단 판자 아래에 감춰 놓았다. 이후 나치즘은 전염병처럼 네덜란드를 잠식했다. 많은 사람들이 식량을 더 많이 얻기 위해 독일 정권을 찬성하는 "전국사회주의자연맹"에 가입했고, 상점마다 "유대인 사절"이라는 푯말이 붙었다. 마을에는 노란 별을 단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그 가운데 얼마는 갑자기 실종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런 광경을 보시며 "독일인들이 정말 가엽구나. 하나님의 눈동자를 건드리고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유대인 형제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목도하며 고민이 늘어 갔다. 악이 권세를 잡았을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한 유대인 형제는 마지막 순간에 이런 말을 남기고 끌려갔다. "저들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든, 전 그곳을 활용할 겁니다. 그곳이 바로 내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장소가 될 겁니다." 그의 믿음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하루는 한 의사가 유대인 산모와 아기를 데리고 시계방에 찾아왔다. 적당한 거처가 없어서 골몰하고 있을 때 마침 평소 친하게 지내던 목사님이 가게를 방문했다. 나는 목사님을 은밀히 불러 아기를 보여 주며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절대 안 돼요! 유대인 아기 때문에 우리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요!"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때 문가에 서 계시던 아버지는 아기를 안으며 말씀하셨다. "이 아기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하셨죠? 우리 가족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저는 그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랬다! 악이 선을 집어삼키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그러나 믿음은 그 무기력과 두려움을 뚫고 "행동"하도록 만든다. 이윽고 나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주님의 백성들을 위해 저를 드립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든 말입니다."
우리 가족은 시계포에 도움을 청하러 오는 유대인들을 위해 행동을 개시했다. 요양원을 운영하며 유대인들을 적당한 거처로 보내고 있었던 오빠는 배급 카드를 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배급 카드는 매월 교환해야 했고 철저하게 관리되어서 위조하기도 어려웠다. 전에 전기 검침원이었다가 지금은 식량 배급소에서 일하고 있는 프레드 씨가 이 일을 도와주었다. 그는 강도 사건으로 위장하여 배급 카드 100장을 구해 줬고, 매월 검침원 복장으로 와서 전기 계량기 앞에 있는 계단 판자 아래에 교환된 배급 카드를 두고 갔다. 우리는 주방 창문가에 간판을 매달아 가게에 들어와도 좋다는 신호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빌렘 오빠의 아들 키크는 지하 운동 모임으로 나를 데려갔는데 그곳에는 우리 가게 단골인 피크위크 씨가 있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스미트"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한 "스미트"는 유럽에서 유명한 건축가라고 했는데 피크위크는 그에게 우리 집에 밀실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다. 우리 집을 살펴본 "스미트"는 곧 3층 꼭대기에 있는 내 방에다 벽돌로 가벽을 세웠다. 꼭대기일수록 도망갈 시간을 벌 수 있으며 벽돌로 세운 벽은 두드려도 빈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몰딩의 깨진 부분이나 물 얼룩까지 완벽하게 재현해서 나조차도 내 방에 밀실이 생긴 것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 "지하 운동"은 확장되어 갔다. 피크위크는 우리 집에 전화를 달아서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조직망의 소식통이 되도록 했다. 우리는 도청을 대비하여 시계와 관련된 용어로 우리의 메시지를 암호화했다. 예컨대 "여성용 시계를 수리할 게 있는데 태엽을 구할 수가 없네요.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아시나요?"라고 하면 "유대인 여성이 있습니다. 은신처가 필요합니다."라는 뜻이었다. 또한 그는 우리 집 곳곳에 "버저"를 만들기도 했는데 창문을 통해 게슈타포를 발견했을 때 경보 장치로 활용할 목적이었다. 이렇게 마련된 "피난처"에서 수십 명의 유대인들이 하루에서 일주일간 머물다가 다른 은신처로 피신했는데, 어디에서도 받아 주지 않는 7명의 유대인들은 우리 집에 항상 머무는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게슈타포의 급습을 대비하여, 버저가 울리면 유대인들이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3층 밀실로 숨어 들어가는 훈련을 계속했고, 70초 안에 모든 것을 다 숨기는 법을 터득했다. 조카 키크는 한밤중에 내 방에 잠입해 나에게 게슈타포처럼 소리쳤다. "유대인 9명을
유대인들을 위해 마련된 은신처
어디에 숨겼지?" 처음에는 "지금은 6명뿐인데요..."라고 답했다가 키크에게 혼쭐이 났지만 반복 훈련을 통해 잠결에도 진실을 실토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이 되었다. 우리가 살았던 그 시절에는 "악의 위협"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 땅의 법이 하나님의 법과 상충될 때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했기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던 것이다. BB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