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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힘을 얻으며” 전파한 십자가의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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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8월호>
도심의 길거리, 재래시장, 지방의 소도시들에서는 구령을 해 봤지만 산골 오지에서 복음을 전하기는, 그것도 가가호호 방문 형태로 전하기는 처음이라 약간 긴장이 되었다. 도시의 인도에서 빠르게 복음을 전하는 보통의 상황이 아니고, 일일이 집을 방문하여 시골 노인들을 상대해야 했기에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했다.첫째 날, 우리 8명의 정예 요원들은 2개 조로 나뉘었고, 강원도 정선군의 사북역에서 출발하여 지방 도로를 달리면서 면리 단위의 마을들을 돌기 시작했다. 내가 서정식 형제와 제일 먼저 문을 두드린 마을 회관에는 어르신들 열댓 분이 있었는데, 그중 반 이상은 노름을 하는 중이었고, 한 어르신이 현관에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말문을 어떻게 열어야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순간, 서 형제가 그 답을 “보여” 주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의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는 유익한 기회를 주심에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곳에서 3명의 혼을 주님께 이겨옴으로써 기분 좋게 출발을 했건만, 산골의 땡볕에서 걷는 시간이 길어지자 예상보다 빨리 몸이 지쳐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집에 사람이 없어서 번번이 전도지만 두고 나왔고, 사람이 있더라도 복음을 거부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밭에서 일하시던 할아버지를 구령했는데, 그 구령의 기쁨에 수천 보의 걸음으로 피곤하게 된 몸이 활력을 얻어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발바닥까지 서서히 아파 오고 매섭게 짖어 대는 “개”에게 연이어서 문전박대를 당하던 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혼들을 만나게 해 주셔서 하늘의 응원으로 힘을 얻게 하셨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산골 구석구석에 값없이 구원받을 죄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울 뿐이었다. 특히 강원도 산골짜기의 공기처럼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노인들을 대하노라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자비와 은혜가 더 귀하게 느껴졌다. 옷은 땀에 흠뻑 젖었고, 몸은 녹초가 되었으며, 마음에 기쁨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상태로 숙소로 돌아와 서로의 구령 간증을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둘째 날, 아침 식사를 마친 다음 목사님의 기도와 함께 두 번째 여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체력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아침을 맞았기에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평소에 나름대로 맨몸 운동을 해 왔건만 막상 실전에 부딪혀 보니 동행한 형제들보다 쉽게 피로를 느꼈다. 이를 눈치 챈 서정식 형제가 나를 차량 팀으로 재배정해 준 덕에 걷는 수고를 조금 덜 수 있었다. 형제는 『각자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남의 일도 돌아보라.』(빌 2:4)라는 말씀을 “성경대로” 실행했던 것이다.
차량 팀원이 되었기에 그날은 김강산 형제와 한 조를 이루어 복음을 전했다. 차를 타고 꼬불꼬불한 길, 울퉁불퉁한 길, 좁은 길, 급경사의 비탈길, 막다른 길을 다니며 한 집씩 방문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빈집이 많았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어느 집에서는 남편이 나와 여지없이 거절하는 말을 해서 발걸음을 돌리는데 그의 아내가 부엌에서 이렇게 뇌까렸다. “저 짓 하려고 여기까지 내려왔대?” 웬만한 무시와 모욕쯤은 견디거나 금방 털어 버릴 수 있는 방어력을 지녔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은 여운을 길게 남겼다. “여기까지 와서 이런 생고생을 하냐? 누가 듣는다고!” 마귀가 비웃으며 날린 한 방에 마음이 그만 산골바람에 풀잎 휘어지듯 흔들렸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내가 사기를 잃고 포기하지 않게 하셨다.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말씀을 떠오르게 하셔서 마음에 새 힘을 얻게 하셨다. 『십자가를 전파하는 것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나는 차에서 내려 산 중턱에 있는 오래된 나무 집 마당에 혼자 계신 할머니를 만났고, 팔순이 넘은 노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다시 태어나 새 생명을 얻는 일을 도왔다. 떠나려는 나에게 할머니가 말했다. “이 집엔 아무도 안 와. 자식들도 안 온 지 오래됐지.” 듣기에 참 가슴 아픈 작별인사였다. 그 말에 나는 “조금만 참으세요, 할머니. 우리 하늘나라에서 곧 봬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를 전했다. 그렇다. 이 땅에서는 구원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누구나 수고와 아픔과 눈물이 많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영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만날 날을 간절히 바라면서 그 소망의 힘으로 매일을 견뎌 내는 사람이 아니던가. 할머니도 남은 생애 동안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롬 14:17)을 누리시기를 주님께 기도드렸다.
거기서 내려오는 길에 집 몇 채가 보이기에 차를 세웠다. 그중 한 집은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는데, 자세히 보니 낡고 긴 창고 끝자락에 허름한 초가집이 있었다. 마침 연로한 할아버지가 나오시기에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는데, 처음에는 의아해 하셨지만 자기의 죄를 찌르는 말이 계속되자 할아버지는 두 손을 들고 주님께 항복하셨다. 짧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기에 할머니가 계시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셨다. 들어가서 복음을 전해도 되겠는지 여쭸더니 흔쾌히 허락하셨고, 할머니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셨다. 노부부에게서 발길을 돌리는데 하나님께서 참으로 놀라운 방법으로 만나게 해 주신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그 뒤 좁은 산길을 가던 중에 전경이 좋은 터에 자리 잡은 교회 부지와 건물이 보였다. 이 산골까지 삯꾼이 들어와서 자기 성을 짓고 사는구나 싶었다. 어쨌든 그들도 복음을 들어야 할 죄인일 것이 거의 확실했기에 그쪽으로 향했다. 한 여성이 수고한다는 인사로 나를 맞으면서 자기를 권사로 소개했다. 곧이어 자신도 구원받았다는 식으로 얘기하는가 싶더니 다시 확신이 없다며 횡설수설하는 모습에서 구원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복음을 전하자 자기네 교회 목사가 유명하니까 설교를 들어 보라고 되레 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 유명한 목사는 어떤 성경을 보느냐고 묻자 그녀는 그 목사가 여러 성경을 본다고 했다. 더 깊은 얘기를 나누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전도지를 건네고 나오는데 마음이 답답했다. 종교에 잘못 찌든 죄인과 대화를 풀어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정이 끝날 무렵 비가 시원하게 내렸다. 마치 하나님께서 수고했다고 주시는 선물 같았다.
마지막 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아쉬워 예정보다 한 시간 일찍 숙소에서 나왔다. 동료 형제들은 한결같이 열정을 다해 구령을 했지만 나는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그래도 내 몫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목적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에 힘을 다해 걷고 또 걸으며 복음을 전했다. 그렇게 마지막 목적지인 정선에서 초등학생 1명을 구령하고 전도 여행을 마쳤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평생에 적어도 한 번은 “오지 선교”에 몸을 드리기를 지면을 빌어 권하는 바이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날이 곧 올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보다 개가 더 많은 첩첩산골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한 채 쓸쓸히 노년을 보내다가 지옥으로 갈 죄인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통해서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시간을 사서 얻으라. 이는 그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니라』(엡 5:16).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