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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령자로 이끄신 그리스도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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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9월호>
나는 열 살 때 복음을 믿어 구원받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성경침례교회에 오기까지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른 성도들이 진리에 갈급함을 느껴 어렵사리 찾아온 것과 달리, 그저 부모님만 따라다녔던 나는 별다른 노력 없이 본 교회를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난생처음 개인적으로 갖게 된 성경책도 개역성경이 아닌 <한글킹제임스성경>이었다. 물론 그때는 그 보물의 가치를 알지 못했다. 그저 세상 교회 친구들이 가진 "멋진 디자인"의 성경을 부러워하면서 내 손에 들려 있는 "투박한" 성경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교회에 가는 것을 귀찮아하고 설교 시간을 지루하게 느끼며 종교인으로 살았던 나는 지옥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주님께 감사함은 있었지만, 내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광신도 같은 행동이라 여겼고 기본적인 것들(교회 출석과 십일조)에만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이마저도 지키지 않기 시작했고 그로 인한 불편한 마음도 애써 무시하며 살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한심하고 어리석을 정도로 구원받지 않은 자연인과(고전 2:14)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그러던 중 2014년 12월 25일, 내 평생에 주님의 도우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즉시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를 드렸는데, 필요할 때만 주님을 찾는 나의 이기적인 모습을 발견하고는 양심에 크게 찔렸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주신 주님께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너무 죄송스러웠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이 사건은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주님께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그날, 나는 곧바로 먼지가 쌓여 있던 <한글킹제임스성경>을 꺼내 들고 하루에 세 장씩 읽어 내려갔다. 그때부터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는데, 말씀을 읽는 것에서 기쁨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말씀과 진리의 서적을 읽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그때서야 성경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또 그 가치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개역성경 따위는 이 성경과 동일한 선상에 나란히 두고 비교할 가치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말씀을 읽고 난 후의 가장 큰 변화는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인데, 이는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구원받은 상태였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감지하고는 있었지만 매우 막연한 것이었고, 이번에는 그 멀게만 느껴졌던 사랑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매우 가깝게 여겨졌다. 한번은 조지 문델의 <믿음의 좁은 길>을 읽고 있을 때였는데, 『내게로 돌아오라.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하노라.』는 한 문장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이기적이고 제멋대로 살았던 나를, 하나님께선 여전히 오래 참으시며 기다려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로 돌아왔을 때는 책망보다는 사랑을 보여 주셨다. 구원받았을 때도, 곁길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도, 언제나 먼저 나를 사랑해 주신 것이다. 이런 사랑을 안 이상 그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없었다. 즉시로 지난날의 과오들을 하나님께 진심으로 자백했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 것을 결심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는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사랑이지만, 나 또한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되자, 자동적으로 "세상"이 싫어졌다.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요일 2:15)는 말씀을 몰랐던 때였지만, 세상과 관련된 것들이 싫어졌다. 책꽂이에 자리 잡고 있던 세상 지혜를 담은 책들, 핸드폰 속의 백여 가지가 넘는 세상 노래들, 수십 편의 세상 영화들 모두가 내가 좋아하고 아끼던 것들이었지만 버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그것들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직행했고, 대신 그 자리를 진리의 서적들과 찬송가가 차지하게 되었다.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때에야 비로소 내 삶은 기쁨과 행복과 감사로 넘쳐 났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나 또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작 나 같은 사람으로 인해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기뻐해 주신다는 것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다. 지난 13년간 나는 하나님께 실망만 안겨드렸다. 이제 얼마 남지도 않은 시간들만큼은 주님께 기쁨만 안겨드리고 싶다. 그러니까 이 많은 변화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 한 가지 사실에서 일어난 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게 된 것도 바로 이 "사랑" 때문이었다. 우선 <그리스도인의 성장 8단계>라는 책을 통해 성도라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처음에는 나를 위해서 죽어 주신 분을 위해 이 정도도 못할까 싶었다. 곧바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고 때마침 그동안 소식이 닿지 않은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친구를 첫 번째 목표로 삼아, 그 책에 나와 있는 구절들을 가지고 연습하면서 의욕이 넘치게 약속 장소로 나갔다. 하지만 막상 복음을 전하려 하니 인간적인 두려움에 긴장이 앞섰다. 급기야 난방이 되는 실내였음에도 추위에 떠는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하나님께 떨림을 멈춰 주시고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라고 간구했다. 놀랍게도 즉시로 떨림이 멈췄고, 기도 응답에 용기를 얻어 차분하게 복음을 끝까지 전할 수 있었다.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나는 그렇게 해서 구령자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작년에 구령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구리"에서 구령하는 성도들과 합류한 적이 있는데, 마침 그곳은 그 전까지만 해도 세상 친구들과 놀러 다니던 장소였다. 정욕을 채우기 위해 누볐던 곳을 이번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모습에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구령의 "첫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 현재는 하나님께서 선한 부담감을 주셔서 내가 살고 있는 마천동과 거여동을 오가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주님의 능력을 제일 많이 경험하는 것은 복음을 전할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이나 성경 말씀을 통해 한결같이 나를 도와주셨다. 언젠가 두 학생에게 복음을 전한 적이 있는데, 하나는 구원받지 않은 채 교회만 다니는 학생이었고, 다른 학생은 불교도였다. 교회를 다니는 학생은 어려움 없이 주님께로 이겨올 수 있었지만, 문제는 절에 다닌다는 학생이었다. 복음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기에 그저 몇 가지 질문만 할 요량으로 그에게 다가섰다. "학생이 믿는 신은 절에 있는 불상인가요?" 그는 "네!"라고 대답했다. "그럼 그 불상이 무너지면 친구의 신도 무너지는 건가요?" 그 아이는 답하지 않았다.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요. 불상은 사람이 만들죠. 사람이 신을 만들 수 있나요?" 역시 아무런 답이 없었다. 처음엔 여기까지만 물어본 후 찬찬히 생각해보라며 전도지만 전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침 사도행전 4:12의 말씀이 떠올랐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말씀이었지만 내 손은 정확하게 그 구절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말씀을 시작으로 복음을 전했고, 마지막으로 고린도후서 6:2을 보여 주면서 "하나님께서는 학생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그게 바로 지금인데 복음을 믿겠느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그 학생은 전혀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선택한 학생의 용기는 지금까지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또 성당을 다닌다는 학생을 만났을 때도 기억에 남는다. 그에게 구원받았느냐고 묻자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자기는 교회가 아닌 성당을 다닌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친구가 믿는 건 카톨릭이라는 종교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인가요?" 학생은 잠깐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하나님이요."라고 답했다. 이에 "친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볼까요?"라고 말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는 복음을 듣다가 "어떤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어도 예수님만 믿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얼굴에 심통이 가득해 보였기에 순수한 의도에서 나온 질문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답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해야 할 말을 알려 주셨다. "그럼 학생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피로 지울 수 없는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이 질문을 끝으로 학생은 입을 다문 채 복음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사실 난 복음을 전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 말도 잘 못하고 발음도 좋지 않다. 성경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며 부끄러움도 잘 타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말할 성격도 못 된다. 하지만 나를 쓰시는 주님은 위대하신 분이기에 나의 부족함은 조금도 문제 되지 않았다. 이제껏 세상 지향적으로 살던 나를 구령자로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성경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점 하나는, 내게 변화를 가져다 준 그 "사랑"이 성경의 첫째 계명이라는 것이다.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막 12:30). 13년 전에 구원받았지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바로 이 계명을 지켰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경로를 이탈한 나를 주님께서 친히 경주의 출발점으로 다시 데려와 주셨고, 지금은 결승점에서 기다리신다. 이제 나의 간절한 소망은 믿음으로 이 경주를 마치고 나를 보며 기뻐하실 주님을 직접 뵙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