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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책 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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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10월호>
과도기적인 책들 가운데 마태복음, 사도행전, 요한계시록은 내용들 대부분이(예외는 있음) 순차적인 흐름에 따라 교리들이 전개되어 나가기 때문에 경륜들이 “변하는 주요 지점”에 대한 올바른 지식만 있으면 경륜에 따른 서로 다른 교리들을 구분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마태복음의 경우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지점은 27장이다. 이 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를 기점으로 구약이 끝나고 신약이 시작된다. 사도행전은 사도행전 7장이다. 이 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민족적인 차원에서 왕국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장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은 이스라엘(유대인)에서 교회로 옮겨간다. 요한계시록은 1-3장(교회 시대), 4-19장(환란 시대), 20-22장(천년왕국과 영원 시대)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변화의 기점을 중심으로 경륜적인 진리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진전되는지 공부해야 진리의 지식들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 반면에 히브리서는 다른 과도기적인 책들과 다르게 순차적이지 않고 경륜에 따른 서로 다른 교리들이 여기 저기 섞여 있어서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이제 과도기적인 책들에 나타난 경륜적인 특징들을 책별로 살펴볼 것인데, 신약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과도기적인 책은 “마태복음”이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전환되는 책
마태복음은 “신약”을 여는 첫 번째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의 내용과 완전히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약과 연결되어 있다. 말하자면 구약과 신약을 연결해 주는 책이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도 같은 위치에 놓여진다. 사복음서 모두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속에 놓여있는 책이며 그 중 첫 번째 책이 마태복음이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신약의 첫 번째 책으로서 가지는 위상과 다르게 신약적인 특징보다는 오히려 구약적인 특징들이 주를 이룬다. 이로 인해 수많은 목사들과 신학자들 및 교사들은 상당한 혼란을 느낀 나머지 마태복음의 많은 구절들을 교회 시대를 향한 “교리”로 무분별하게 가져와 적용함으로써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신약에 있으면서도 구약적인 구절들을 많이 담고 있다. 경륜적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기까지 당시의 사람들은 율법 아래에 있었고 구약의 연장선상에서 율법의 규례들을 지키며 살았다. 그래서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교리들, 곧 거듭남과 십자가의 보혈, 믿음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은혜의 구원,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개념들이 그들에게는 전혀 없었다. 그런 교리들이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계시된 적도 없었다(암시만 되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마태복음에는 교회나 이방인들과는 전혀 무관한 구절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보다 더 쉬운 이해를 위해 아래의 그림을 참조하라. 이것은 마태복음이 경륜적으로 차지하는 위치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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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듯이, 마태복음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책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는 기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그래서 십자가 이전을 구약, 십자가 이후를 신약이라 부르는 것이다. 구약이라 하면 말 그대로 “옛 언약”(the old testament, 고후 3:14)을 말하는데, 이는 “첫 언약”(the first testament, 히 9:15)이라 불리기도 한다. 반면에 신약은 “새 언약”(the new testament, 히 9:15)이며 “더 좋은 언약”(a better testament, 히 7:22)으로도 불린다. 무엇보다 더 좋은 언약인가 하면, 십자가 이전의 경륜에서 제시되었던 육신적 계명의 율법에 따른 “첫 번째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다. 말하자면 신약은 구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다.
여기에서 구약과 신약할 때, “약”(약속)에 해당하는 “testament”(헬, 디아데케)는 “유언”과 “약속”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신학적인 용어로는 “언약”이라 하고 성경에서는 문맥에 따라 둘 중 하나로 적절하게 번역된다. 1) 기본적으로 유언은 이제 곧 죽게 될 사람이 지상에 남겨두고 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이다. 그래서 유언에는 필연적으로 죽음이 따라온다. 또한 죽음은 일반적으로 “피”와 연관되는데, 2) 이때 죽으면서 흘리게 될 피로 맺은 언약이 바로 “testament”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구약은 “옛 피”(old blood)로 맺은 언약을, 신약은 “새로운 피”(new blood)로 맺은 언약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누가 죽었고 누구의 피가 흘려졌다는 것인가? 구약은 최초 “어린양”의 피가 흘려진 이래로(창 3:21, “가죽 옷”) 율법의 규례를 따라 해마다 계속해서(히 10:1) 죽어간 수많은 동물들의 희생제사로 점철되어 있는데, 말하자면 구약은 “옛 동물들의 피”로 맺은 언약이다. 반면 신약에서는 모든 죄인들의 구속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다. 그분은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진정한 “어린양”이셨다(요 1:29). 따라서 신약이라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로운 언약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히 9:15-20에 따르면 유언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유언한 사람이 죽어야만 한다. 『유언은 사람이 죽은 후에야 효력이 있으며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전혀 효력이 없느니라』(히 9:17). 그러니까 새 언약의 중보자(히 9:15)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셔야만 신약이 시작될 수 있다. 이 유언(마 26:28)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유언을 남기신 예수님께서 죽으셔야만 한다. 그래서 구약은 말라키로 끝나고 신약이 마태복음부터 시작되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까지는 아직 신약이 시작된 것이 아니다. 유언한 자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효력을 발생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이전까지는 여전히 구약의 상황이지 신약이 아니다. 때가 차서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율법 아래 태어나셨고(갈 4:4,5), 또한 할례의 일꾼으로서 구약의 약속들을 확고히 하시는 가운데 율법 아래에서 사역하셨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율법을 온전히 이루시고 율법의 끝이 되셨다(롬 10:4, 요 1:17).
이렇게 율법의 마침이 되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마태복음 27:50(막 15:37, 눅 23:46, 요 19:30)에 가서야 비로소 신약이 시작된다. 유언한 자가 죽었으니 드디어 신약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십자가를 기점으로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게 된다. 마태복음 전체 28장 가운데 27장에 이를 때까지는 여전히 “구약”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구절들 대부분이 “구약적인 내용들”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미리 아심 가운데 신약은 시작될 것이었으므로, 신약시대로의 새로운 경륜의 변화와 이에 따라 등장하는 교회에 관한 내용들은 마태복음 곳곳에서 간접적으로 암시되고 있다.
구약의 경륜과 신약의 경륜의 차이
전환기적인 책은 두 가지 경륜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경륜에 해당하는 두 가지 교리적인 특징들이 동시에 발견된다. 마태복음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책이므로, “구약의 경륜”과 “신약의 경륜”이 함께 다루어진다. 따라서 구약에 해당하는 교리와 신약에 해당하는 교리가 함께 등장하는 것이다. 구약에는 여러 개의 경륜들이 등장하지만 “구약의 경륜”이라 한다면 주로 “율법시대의 경륜”을 말한다. 신약에도 역시 여러 개의 경륜들이 등장하지만 신약을 대표하는 경륜은 바울서신을 중심으로 제시되는 “교회 시대의 경륜”이다.
구약의 경륜과 신약의 경륜은 동일하지 않다. 이는 전자에 해당하는 율법과 후자에 해당하는 바울 서신의 내용을 간단히 비교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구약에서는 “안식일을 지켜라.”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등의 엄격하고 까다로운 규례들이 나오는 반면, 사도 바울은 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 단 한 번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한 적이 없고 또한 음식은 감사함으로 먹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음식을 삼가라고 명령한 적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을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경고했다(딤전 4:1-5). 이것이 모순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상호 모순되어 보이는 이러한 명령들은 각각이 속한 경륜 안에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올바른 진리인 것이다. 다만 교리적으로 어느 시대, 어느 사람에게 올바르게 적용해야 하는 가의 문제인 것이다. 구약의 율법은 구약의 유대인들에게, 신약의 복음은 신약 성도들에게 맞추어져 있다. 구약의 율법은 신약 성도들에게 얼마든지 영적으로는 적용이 가능하지만, 결코 교리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이처럼 모순은 아니지만 서로 상충되어 보이는 교리적인 내용들이 동시에 나타나는 책들이 바로 전환기적인 책들이다. 전환기적인 책들 안에는 두 개 이상의 경륜이 포함되어 있다. 바울 서신은 교회 시대에 적용해야 할 교리들로 가득 차 있고 은혜의 복음으로 일관한다. 그러나 전환기적인 책들은 신약에 속해 있으면서도 은혜의 복음이나 신약 성도들이 지켜야 할 교리들로만 일관하지 않는다. 어떤 구절들은 구약적인 율법과 관계가 있고, 행위구원이라든지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는다는 등의 내용들, 왕국복음, 그에 따른 표적들이 등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전환기적인 책을 다룰 때에는 특히 성경 구절들을 올바로 나누어(rightly dividing) 공부할 수 있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딤후 2:15). 고기를 올바르게 잘게 나누어 먹지 않으면 소화불량에 걸리기 마련이다. BB
(각주)--------------------------
1) “testament”란 단어는 구약에는 등장하지 않고, 신약에서만 14회 등장한다. 이 중 “유언”의 의미로는 2회 사용되었고(히 9:16,17), 나머지는 모두 “언약”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26:28, 막 14:24, 눅 22:20, 고전 11:25, 고후 3:6,14, 히 7:22; 9:15,18,20, 계 11:19).
2) 성경에서 “죽음”에 관한 내용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2:17에서이다. 금지된 열매였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결과는 죽음이었다. 그런데 그 나무로부터[그 나무는 포도나무였다, 피터 S. 럭크만, 『창세기 I』(서울: 말씀보존학회, 1998), pp.70,71 참조] 인간은 “피”를 얻게 된다(성경에서 포도는 피의 예표이다, 마 26:26-28). 말하자면 “죽음”은 “피”와 더불어 인류에게로 들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