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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용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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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3년 09월호>
조도희 / 부산성경침례교회 담임목사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는 구원받은 죄인을 준비시켜서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는 그분께서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는 점이 있다. 사람은 하나님 없이는 단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으나, 주께서는 사람이 없어도 아무 변화도 없으시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께서는 경건하지 않고 타락한 죄인을 필요로 하시는가? 왜 주께서는 고집 세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사용하고자 하시는가? 이것이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는 일은 그 사람의 장점이나 지능, 능력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마음에 두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 8: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 홀로 남겨 놓아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게 하실 수 있으셨다. 언약과 약속들로부터는 타국인처럼 되게 하실 수도 있으셨다(엡 2:12). 그러나 그렇게 하시는 대신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고, 또한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하시기 위해 먼저 “잃어버린 죄인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이를 잘 나타내 주는 그림이 “아무도 타 보지 않은,” 길들여지지 않은 나귀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아무도 타보지 않은 매여 있는 나귀 새끼 한 마리를 보리니 풀어서 끌고 오너라.』(막 11:2)라고 하셨다.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가리켜서 그가 들나귀 새끼같이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욥 11:12). 나귀는 가장 다루기 힘든, 완고한 짐승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어리석어서 자신이 왜 채찍을 맞는지 이해하지 못하여 겨우 길들여진 이후에야 채찍의 의미를 이해한다. 나귀처럼 완고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길들여지는 때는 주께서 그 사람을 타실 때로, 주께서 그 사람을 받으셔서 통제하셔야만 길들여지는 것이다. 묶여 있던 그 나귀를 풀어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끌고 온 후에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용하실 수 있다. 죄의 종으로 묶여 있던 죄인을 풀어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의의 종으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기 위해서 베푸시는 은혜는, 구원받은 자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초청”하시는 것이다. 이 은혜에 대한 자발적인 반응이 “헌신”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눅 9:23).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이 은혜를 깨달은 바울이 애썼던 것은 모든 일에 자제하는 일이었고,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더 이상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어떻게 해서든지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전 9:27). 바울에 따르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도 버림받을 수 있는데, 이는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을 말한다. 이 일은 제자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을 중단했을 때 일어나게 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누구든지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잃으면 구하리라.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버림을 받게 되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눅 9:23-25) 제자로서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자신이 십자가에 죽었음을 확인하고(고전 15:31) 마땅히 져야 하는 자기 십자가를 자원하여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라야 한다.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한다면 구원을 잃고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천년왕국에서의 유업을 잃게 된다. 말하자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분께로부터 버림받아 지옥에 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도의 몸과 살과 뼈의 지체이기 때문이다(엡 5:30).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천년왕국의 유업과 관련해서는 그 성도가 지상에서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게 된다(갈 5:19-21).
사람을 사용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영적 훈련인 “가지치기”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죄인을 구원하여 사용하시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다(요 15:2).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는 성령의 능력으로 열매를 맺어 자기 인식을 통한 참된 만족을 경험하고, 그 열매로 다른 사람들을 온전히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잃어버린 죄인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령의 열매(롬 1:13),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죄에 대한 승리의 결과로 맺게 되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롬 6:22), 자신의 소유를 기꺼이 나누어 주는 열매(롬 15:28), 그리고 온전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하는 인격의 열매(갈 5:22,23), 참된 경배자로서 맺게 되는 찬양과 감사의 열매(히 13:15)를 맺어 삶의 위대한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요 15:11). 이렇듯 우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으로 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공급해 주신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게 하시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셔서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열정을 주시며 기도할 수 있게 용기를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그분 안에 거함으로 인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런데 가지가 가지이기를 부인하고 고의적으로 열매 맺기를 거부한다면 농부이신 아버지께서는 자녀를 가지치기의 과정을 통하여 다루신다(요 15:2).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더 많은 열매를 맺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아버지께서 제거하신다. 양분이 잎사귀들로만 흘러들어가 잎만 무성해진다면 그 잎들을 잘라내신다. 설령 잎 자체가 선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로 인하여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제거의 대상이 된다(막 11:13,14). 비록 가지치기의 과정에서 상하게 하실지라도 절대로 해가 되지는 않게 하신다.
사람을 사용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징계”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를 징계하신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고 그의 나무라심을 싫어하지 말라. 이는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꾸짖으시기를 마치 아버지가 기뻐하는 아들에게 하는 것같이 하심이라』(잠 3:11,12).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징계에 대해 쓴 뿌리를 가져서는 안 된다. 『열심히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미치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와서 너희를 괴롭게 하거나 혹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며』(히 12:15).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다룬 것에 대해 쓴 뿌리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심히 모질게 대하셨음이니라』(룻 1:20). 그러나 밧세바와의 간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함으로 인하여(대상 21:1) 징계를 받은 다윗은 즉시 징계를 하나님의 뜻으로 잘 받아들였는데, 그 시작은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것이었다. 『내가 주를 거역하여 죄를 지었노라』(삼하 12:13).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크게 죄를 지었나이다』(대상 21:8).
그리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처분으로, 밧세바와의 간음으로 태어난 아이의 죽음과 주께서 보내신 전염병의 징계를 잘 견디었다. 후에 다윗은 자신이 받은 고난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한다. 『내가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 좋사오니 이는 내가 주의 규례들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니이다』(시 119:71). 이는 징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고, 또한 그 사랑의 표현이 징계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징계가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슬픈 것 같으나 후에 그로 인하여 훈련된 자들에게는 화평한 의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징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사랑하셔서 매를 드실 때에는 자녀의 허락을 묻지 않으신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행하시는 징계는, 그 자녀가 그것을 받을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반면 성도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 행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순종하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징계는 불순종의 과정에서 일어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온전히 순종하는 자녀를 징계하지 않으신다. 징계가 임할 때 확신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잠시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다. 『주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으시는 아들마다 매질하시느니라』(히 12:6). 주께서는 들나귀 새끼같이 태어난 당신을 사용하기 원하신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