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설교자들에게 고함 분류

인격에 닿는 설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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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7월호>

성경은 설교와 설교자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는데, 이번 호부터는 “설교와 인격”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설교가 효과적이려면 듣는 사람의 인격 전체에 닿아야 한다.

1) 인격이란?
인격을 정의하기가 어려운 것은, 그것이 복잡하기도 하고 만져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도하자면, 우리의 정신적이고 도덕적이고 영적인 자질이 주변에 남기는 인상으로서, 이 영역들에서 구별되는 특징들의 총합이라 하겠다. 지성과 감정과 의지에 있어서, 그 사람이 그런 존재이기에 주는, 즉 그가 아는 것, 느끼는 것, 행하는 것으로 다른 이들에게 주는 인상을 말하는 것이다. 인격은 그 사람의 성품 전체를 나타내며, 그가 가까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알 수 있다.
2) 인격은 드러난다.
사람은 세 가지 면으로 인격이 나타난다. 지식을 습득하고 유지하고 재현하는 지성, 자신이 아는 것에 반응하는 감정, 지성과 감정이 준 자극을 결정하고 이행하게 하는 의지를 통해서 드러난다. 즉 사람은 알고 느끼고 행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셋은 뚜렷하게 다르지만 하나로 묶여 있기에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각 활동은 그 사람 전체가 행하는 것이 된다.
3) 설교는 인격 전체에 호소해야 하고, 인격 전부를 그리스도께로 이겨와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 설교가 이르러 구원받는다면 다음의 세 가지가 일어나야 한다.
(1) 그의 지성을 깨우쳐야 한다. 이는 전파된 메시지에서 성경의 사실을 명확하게 알게 될 때 이루어진다. 복음은 하나님 편에서 주시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격이신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의 사역에 관해 어떤 사실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2) 그의 감정이 움직여야 한다. 이는 설교에서 제시한 사실들에 그가 반응할 때 일어난다.
(3) 그의 의지가 결단하는 지점까지 도달하게 해야 한다. 이 일은 그가 지적으로는 복음의 사실을 확신하고, 감정적으로는 복음에 동의하는 쪽으로 움직일 때 일어난다. 이제 그는 그 문제에 관해 무언가를 결심하고 그 결정을 행동으로 옮긴다.
4) 인격의 다른 부분을 잃어가면서 한 부분만 지나치게 강조해서 호소하면 위험하다. 여기서 많은 설교자가 실패한다. 이어지는 내용에 주목하기 바란다.
(1) 감정과 의지를 희생한 채 지성에 초점을 두고 호소하면, 형식적이고 차가운 주지주의[主知主義, 감정이나 정서보다는 지성 또는 이지(理智)를 앞세우는 경향이나 태도]를 낳는다. 이는 청중을 고드름처럼 투명하고 차가운 상태에 놓이게 한다.
(2) 지성과 의지를 희생한 채 감정에 초점을 두고 호소하면, 허황된 감상주의와 감각주의를 낳는다. 그러면 너무 뜨거워진 나머지 그를 만지는 모두가 데이고 만다. (3) 지성과 감정을 희생한 채 의지에 초점을 두고 호소하면, 단호한 개인주의를 낳아서 그 사람은 아무와도 어울리지 못한다.
이 각각의 경우는 상대의 인격 한 부분에만 닿았기 때문에 모두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다. 이런 모습은 현대의 부흥집회가 끝난 뒤 수천 명이 그저 속 빈 시인만 한 채로 남겨지는 현상을 설명한다. 설교자가 “결과” 얻기에만 적극적이었고, 또 그것이 너무 성공해서 문제였다. 그는 결신자를 얻는 데 더 조바심한 것이다. 『구원은 주께로부터 오나이다』(욘 2:9), 즉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두기보다는 말이다. 피조물에게 인격을 주신 하나님께서만이 그 사람에게 다다라서 그를 자신을 위해 이겨오실 수 있다. 사실 주님께서는 보통 주님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받은 사람을 도구로 하여 일하시지만, 그 과정은 성경 구절을 따라 이루어져야 하고, 듣는 이의 지성, 감정, 의지 모두에 닿아야 한다.

이제부터는 죄인이 구원을 경험할 때, 설교자가 그리스도를 위해 이겨오는 그의 인격의 각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지성

1) 지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질이며, 결코 가장 작지 않다. 일부 설교자가 인간이 사고하는 능력인 지성을 평가절하하면서 감정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성경을 읽으면 그것이 어리석은 생각임을 알게 된다. 성경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들 가운데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minds]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고후 4:4). 성령님의 조명과 중생의 능력을 떠나서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당연히 구원받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께서 말씀을 통해 죄인의 지성을 깨우치시고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게 해 주시지 않는다면 그는 그 진리를 알 수가 없다(고전 2:14).
2) 지성은 전파되는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일깨워져야 한다. 『주의 말씀들이 들어가면 빛을 주며 그것이 우매한 자에게 명철을 주나이다』(시 119:130). 그렇기에 말씀은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이지적으로, 강력하게 전해야 한다. 성경은 『지성의 눈을 밝히셔서』(엡 1:18)라고 말씀한다. 다윗도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내 눈을 열어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의 경이로운 것들을 보리이다』(시 119:18). 하나님만이 이와 같은 영적 이해력을 주실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대비하라.』(딤후 4:2)라는 말씀에 들어 있다. 바울과 같은 성도는 심고, 아폴로 같은 성도는 물을 주지만, 하나님 한 분만이 자라게 하신다(고전 3:6).
3) 설교로 지성에 호소해야 한다. 사도 바울의 설교는 『설명하고 입증하면서』(행 17:3), 『변론하며... 설득』(행 18:4)했다고 묘사된다. 그가 로마의 성도들에게 쓴 서신은 우리가 보유한 문헌의 전 영역에서 최고로 능숙하게 제시한, 또 명확하게 진술하여 이의를 달 수 없는 논리를 담고 있다. 바울은 전제에서 결론까지 정연한 순서에 따라 자기 주장을 입증하고자 말을 이어간다. 게다가 잘 모아진 근거, 이치에 맞는 사고, 강력한 실례를 사용함으로써, 서신 첫머리에서 시작한 주장을 확실하게 증명한다.

가장 위대한 성경 교사이자 설교자이신 주 예수께서는, 복음서에서 청중에게 전하고자 애쓰시던 위대한 진리를 분명하고 간결하게 말씀하셨다. 특히 산상설교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셨는데, 자신의 말씀을 근거로 논리적인 주장을 펼치셨다(마태복음 5:23,29,46 등을 보라). 주의를 기울여 사복음서를 읽으면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자주 진리를 말씀하신 다음, 거기서 단순하고도 타당한 결론을 이끌어 내셨는지 알게 된다. 그렇기에 설교자는 주님의 능력 안에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가능한 선명하고 강력하고 이해가 쉬운 지적인 방식으로 진리를 제시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듣는 사람이 알기 원하시는 바로 그 점에 대해 조금도 의문을 갖지 않도록, 설교자는 그 지식을 이해시키고자 고군분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돈된 배열, 명확한 서술, 논리적 주장, 이치에 맞는 사고, 실례 제시, 합당하게 적용된 결론이 요구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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