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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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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11월호>
지난 글(본지 제402호)부터 우리는 설교와 설교자의 필요성에 대해 성경이 왜 그토록 강조하는지를 살펴보는 중이다. 그에 이어 이번 글에서도 설교의 필요성에 대해 두 가지 면에서 알아보고자 한다.1. 설교는 복음의 사실을 밝히는 증인이다(행 1:8; 22:15; 26:22, 요 15:27, 요일 5:9).
1) 증인의 정의
증인이란 자기가 본 것이나 들은 것을 그 사건과 연관하여 사실로서 알고 있는 것을 진술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진실을, 진실 전부를, 진실만을 말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이 하신 일을 사람들이 알기를 바라시기에 그분의 백성 전체를 이 사실에 대한 증인으로 호출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내게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직접 선언하셨다. 요한복음 15장에 기록된 위대한 설교에서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나에 관하여 증거하시리라.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리라.』(요 15:26,27)라고 선포하셨다. 따라서 성도는 성령님과 동역하는 증인이다. 참으로 이것은 영예로운 특권이자 책임이 아닌가!
2) 증거의 목적
증거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계시와 성도가 다른 이에게 하는 선포로 구성된다. 그리스도인 각자는 자신의 주인이 그러셨듯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또 본 것을 증거하노라』(요 3:11). 증거는 그 대상에게 유리할 수도 있고 불리할 수도 있으며, 검사와 피고인 양측에서 제시한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다음을 엄중하게 말씀하셨고 모두가 숙고해야 한다. 『만일 누가 내 말을 듣고 믿지 아니한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내가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라. 나를 거절하고 내 말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말한 그 말이 그를 마지막 날에 심판하리라』(요 12:47,48). 그래서 복음은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향기』가 되고,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사망의 향기』가 된다(고후 2:16). 즉 복음이 성도에게는 영원한 복이 확실하다는 점을 증명하겠지만,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불신자에게는 위대하신 심판주 앞에서 불리하게 증언할 것이다. 이에 관해서 마태복음 12:41,42, 요한계시록 20:15, 사도행전 17:31을 읽어 보기 바란다.
그리스도를 등한시하고 거절하고 멸시한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멸망시키시는 날에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한다. 큰 백보좌에 앉아 계시며 불꽃 같은 눈을 가지신 분, 곧 만물을 자신의 눈앞에 벌거벗은 채로 명백하게 드러내시는 심판주를 마주하면, 지금 그의 입에서 술술 나오고 있는 번지르르한 구실이 침묵으로 바뀔 것이다. 그가 직접 들은 복음의 증거가 그 자신이 구원받는 방법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복음이 그가 받아야 하는 영원한 저주를 보장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주님의 증인이었던 에스겔에게 하신 말씀을 주목하라. 『그들이 듣든지 그만두든지 간에... 그래도 그들은 선지자가 그들 가운데 있는 것을 알게 되리라』(겔 2:5). 주님께서는 이후 7절에서도 거듭 『그들이 듣든지 그만두든지 간에 너는 내 말을 그들에게 고할지니』라고 하셨다.
3) 복음 전파는 하나님의 진리를 사람에게 나타내는 일이다.
복음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리가 나타나는 일이고(고후 4:2), 설교는 이 진리가 사람에게 알려지도록 하나님께서 권한을 부여하신 수단이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그의 말씀을 복음 전파를 통해 나타내셨는데』(딛 1:2,3). 그렇기에 복음은 하나님 편에서 “주시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사실(고전 15:1-4)을 하나님께서 “드러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에게 이 진리가 알려져야 한다. 설교자의 권위는 그의 메시지의 근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데서 나온다. 그를 통해 말씀하시는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다. 설교자 스스로는 내세울 위엄이 없으니, 이는 그의 위엄이 하나님의 말씀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설교자에게는 그가 전해야 할 메시지가 주어지며, 그 내용을 혼자 알아내도록 방치되지 않는다. 난데없이 그 사람에게서 뭔가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성경에 기록된 내용 중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쉬운 예로, 아이 편에 이웃에게 전갈을 보내려는 엄마가 있다고 하자. 전할 내용을 묻는 아이에게 “가는 중에 알게 될 거란다!”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선지자 학개는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주의 사자 학개가 주의 전갈을 백성에게 일러 말하기를』(학 1:13). 오, 더 많은 학개가 나오기를!
4) 이 복음 전파는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차고 넘치게 실행했다.
설교자라면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들의 설교를 세세하게 공부해야 마땅하다. 사도들이 설교에서 그리스도의 삶, 주님의 말씀과 사역, 그리고 죽음과 부활을 먼저 말한 뒤에, 어떤 식으로 청중의 마음에 그 진리를 적용하는지 주의해 보라. 이를 위해 베드로의 설교[행 2:14-36(32절에 주목), 3:12-26(15절에 주목), 4:8-12]와 스테판의 변호(행 7:2-53), 베드로가 코넬료에게 한 강론[행 10:34-43(39절에 주목)], 피시디아 안티옥에서 한 바울의 설교(행 13:16-43), 바울이 마르스 언덕에서 한 설교(행 17:22-31)를 읽기 바란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모든 설교의 개요를 작성해서 단락과 내용을 깊이 연구해 보면 유익한 훈련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믿든지 거절하든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기를 원하신다. 믿는다면 구원받겠지만, 그 반대라면 다가오는 심판의 날에 변명하지 못할 것이다. 설교자는 성령님의 능력을 통해 복음의 사실을 전하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면 된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듣는 이의 믿음을 깨우는 방법이다.
1) 믿음은 언제나 계시를 전제로 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롬 10:17). 이 사실은 다음의 말씀으로 쉽게 입증된다. 『그들이 믿지 아니한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롬 10:14)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등의 경우와 비교해 보라(히 11:4,5,7,8,17).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행동했고, 이것이 믿음이다. 구원받는 믿음은 인격체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과 사역을 혼이 확신하는 것이다. 즉 그 믿음은 죄인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며, 그리스도께서 완수하신 구속 사역을 신뢰하고, 그리스도를 주로서 고백함으로 증명된다. 믿음의 언어는 이렇다. 『나는 하나님을 믿나니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행 27:25).
2) 믿음에는 대상이 필요하다.
믿음 그 자체만으로는 장점이 없으며, 절대 확신을 갖고 의지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 부실한 은행을 굳게 믿고 일생 모은 적금을 투자했다가 모조리 잃고 마는 경우가 많다. 투자금의 안전 여부는 투자자의 믿음이 아니라 은행이 좌우하는 것이다. 진리의 성경에 우리가 확신을 갖고 의지할 대상으로 계시된 “믿음의 대상”은 “그리스도”이시고, 주님께서는 복음의 중심으로서 제시되신다. 죄인은 그 인격체와 그분께서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엡 2:8).
그렇다면 믿음에는 어떤 속성이 있는지 다음의 말씀들에 주목하기 바란다. 『모든 민족 가운데서 믿음으로 순종케 하나니』(롬 1:5). 『전파된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 것은, 그것을 들은 자들이 믿음을 결합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히 4:2).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들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음이니, 이 말씀이 믿는 너희 가운데서도 효과적으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즉 우리는 믿음 자체가 아닌 “믿음의 대상”과 더불어 전념해야 한다. 달리 말해 믿음은 분석이 아닌 실행이 요구되는 것이다.
믿음이, 굳센 믿음이 그 약속을 보네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네
불가능을 비웃더니
그것이 이루어지리라 외치네
어느 경건한 자매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자매님의 믿음이 그렇게 크다면서요?” 그러자 자매는 말했다. “아니요. 전 크신 하나님을 믿을 뿐이랍니다.”
3) 믿음은 구원받는 데 필수 조건이다.
빌립보 간수가 『선생님들이여, 내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이까?』(행 16:30)라고 묻자,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라고 답변했다. 설교자의 소임은 주님께 의지해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거기서 그의 책무가 끝난다. 하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고, 또 구원하실 것이다. 죄인이 하나님께서 두신 조건, 즉 하나님의 아들과 그분의 일을 믿을 때 말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4:2). 설교자가 청중의 마음에 있는 믿음을 깨울 만큼 충분히 말씀을 전했음에도 고의로 믿기를 거부한다면 그들의 머리에는 심판만이 머물 뿐이다. 『누구든지 나팔 소리를 듣고 경고를 취하지 아니하여 그 칼이 그에게 임하여 그를 제거하였으면 그의 피는 그 자신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겔 33:4). 물론 뜻있는 설교자는 청중을 향해 “싫으면 말고”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경건한 진심과 진지한 간청으로 『너희는 하나님과 화해하라.』(고후 5:20)라고 권면하고자 애쓸 것이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