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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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에게도 걷히지 않는 슬픔이 있을 수 있다. 슬픔이 만사의 주체가 되어 인생을 끌고 갈 때가 있다. 사람은 슬픔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찾을 것이기에, 슬픔이 있어야만 한나처럼 『마음이 비통하여 주께 기도하고 심히 울』 것이기에(삼상 1:10) 하나님께서 그냥 놔두시는 경우가 있다. 한나의 경우는 한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불임을 주께서 태를 열어 주시자 해결되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지루하리만치 길게 슬픔의 목줄을 늘이시어 평생을 의식하면서 살게 하신다. 육신의 타고난 장애나 후천적 병이나 사고로 생긴 육신의 변화들은 도사견의 이빨처럼 성도를 물고 늘어져, 그가 죽거나 휴거되기 전에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이 현재의 슬픔이고 항시의 슬픔인데도, 하나님께서는 어지간해선 그 슬픔의 문제를 거둬 가시지 않는다. 죄로 저주받은 육신의 문제는 죄의 저주라는 불변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며, 부활과 휴거가 아니고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슬픔의 가시밭에 내동댕이치신 후 그분의 자비를 비정하게도 거둬가 버리셨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분께서 현재의 슬픔에 관해 제시하신 해법은 우리의 눈을 미래의 밝음을 향해 고정시키라는 것이다. 교회가 휴거될 때 눈 깜짝할 순간에 갖게 될 그 초자연적인 몸을 기대하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현재의 슬픔에 미래의 기쁨을 겹쳐 입고 살아가야 한다. 울음을 결국 “웃는 울음”이 되게 해야 한다. 슬퍼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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