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흘리심으로 낳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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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류장의 간이 부스엔 광고도 있게 마련이고, 주로 알록달록한 상업 광고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내가 본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활짝 모여 웃고 있는 입양 광고였다. 그 가운데 쓰인 글귀, ‘가슴으로 낳은 사랑’은 사뭇 인상적이었다. 사랑이 없다면 남의 자식을 데려다 키울 수 없을 테니까. 남이 포기한 자식 키우는 일이 기쁘지 않다면 누가 그 일을 하려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입양하신 것은 그분의 『기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다. 주님이 우리를 받아 주신 입양은 가슴으로 낳은 사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낳은 사랑이다. 그로 인해 우리가 『양자 되는 영』(롬 8:15)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가족』(엡 2:19)이 되었다. “하나님의 가족,”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따스하고 안정된 이름이다. 죄로 허덕이며 방황하던 죄인들을 『하나님의 집』(딤전 3:15)에 들여 가족의 온기를 느끼게 해 주고 부모로서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신 그 사랑은, 우리가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죄인들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양자임에도 잘못했을 때는 징계하여 『친아들』(히 12:8)로 대해 주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한 공동 상속자들』(롬 8:17)로 삼아 양자 그 이상의 지위를 부여해 주신 사랑을 어찌 인간의 것과 비교할 수 있으랴! 당신은 그 사랑을 아는가? 부모 마음 다 아는 자식 없다고 한다. 우리도 하늘의 아버지 앞에 그렇지 아니한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입양하신 것은 그분의 『기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다. 주님이 우리를 받아 주신 입양은 가슴으로 낳은 사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낳은 사랑이다. 그로 인해 우리가 『양자 되는 영』(롬 8:15)을 받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가족』(엡 2:19)이 되었다. “하나님의 가족,”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따스하고 안정된 이름이다. 죄로 허덕이며 방황하던 죄인들을 『하나님의 집』(딤전 3:15)에 들여 가족의 온기를 느끼게 해 주고 부모로서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신 그 사랑은, 우리가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죄인들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양자임에도 잘못했을 때는 징계하여 『친아들』(히 12:8)로 대해 주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한 공동 상속자들』(롬 8:17)로 삼아 양자 그 이상의 지위를 부여해 주신 사랑을 어찌 인간의 것과 비교할 수 있으랴! 당신은 그 사랑을 아는가? 부모 마음 다 아는 자식 없다고 한다. 우리도 하늘의 아버지 앞에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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