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촛대 위에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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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소유한 자들을 가리켜 “빛의 자녀”라고 부른다(요 12:36). 이들은 달이 태양 빛을 반사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빛의 사자들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빛을 비추는 것은 아니다. 위의 비유에서는 촛불을 가지고서도 각각 말 아래, 침상 아래 그리고 촛대 위에 두는 세 부류가 나온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을 얼마나 날카롭게 구분하는지 주님의 말씀은 양날을 가진 칼임을 스스로 증명한다(히 4:12).
첫 번째는 촛불을 켜서 말 아래 두는 사람이다. 먹고 사는 일에 신경 쓰느라 빛을 비출 수 없는 사람인데, 여기서 곡식 되는 말이란 곡식을 사고 팔 때 양을 재는 상업적 기구이다. 이생의 염려는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가시나무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하라 하셨다(마 6:33).
둘째는 빛을 침상 아래 두는 사람이다. 나태하고 게을러 진리를 제쳐 두고 세상을 즐기는 사람을 일컫는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유익을 진리 위에 두어,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쾌락과 바꾸어 버린 사람이다. 빛을 가지고도 사용하지 않는 이런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악한 종』이라 책망하신다(눅 19:22).
그렇다면 마지막 부류는 어떤 사람인가? 천막 깁는 일을 하며 값없이 복음을 전파했던 바울과 같이, 대적들의 선전포고에도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연장을 들고 공사를 중단하지 않았던 느헤미야와 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디든지 갔던 빌립과 같이 진리를 생애의 가장 높은 곳에 두는 사람이다.
첫 번째는 촛불을 켜서 말 아래 두는 사람이다. 먹고 사는 일에 신경 쓰느라 빛을 비출 수 없는 사람인데, 여기서 곡식 되는 말이란 곡식을 사고 팔 때 양을 재는 상업적 기구이다. 이생의 염려는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가시나무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먼저 구하라 하셨다(마 6:33).
둘째는 빛을 침상 아래 두는 사람이다. 나태하고 게을러 진리를 제쳐 두고 세상을 즐기는 사람을 일컫는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유익을 진리 위에 두어,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쾌락과 바꾸어 버린 사람이다. 빛을 가지고도 사용하지 않는 이런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악한 종』이라 책망하신다(눅 19:22).
그렇다면 마지막 부류는 어떤 사람인가? 천막 깁는 일을 하며 값없이 복음을 전파했던 바울과 같이, 대적들의 선전포고에도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연장을 들고 공사를 중단하지 않았던 느헤미야와 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디든지 갔던 빌립과 같이 진리를 생애의 가장 높은 곳에 두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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