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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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레이셔스 보나르 박사는 밤에 커튼을 치고 잠들기 전 항상 이 말을 했다고 한다. “오, 주님! 혹시 오늘밤에?”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되뇌었다고 한다. “주님! 혹시 오늘인가요?” 그는 주님께서 어느 순간에 오실 것인지 하루도 빠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쉽사리 믿어지지 않겠지만 세상에는 이렇게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성경을 앞표지에서 뒤표지까지 다 믿는 성도들은 날이면 날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고대한다. 성경에 뚜렷이 기록되어 있는 약속을 어찌 믿지 않으며, 어찌 고대하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 그대로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3:2). 나이가 들 만큼 들고 자주 늙은 육신이 삐거덕거려 고통을 수반할 때면, 이 흠결투성이 육신이 홀연히 변형될 그날이 절로 기다려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성도들을 위해 예비된 면류관 가운데에는 의의 면류관이 있는데 이것을 받을 자격은 절대로 어렵거나 까다롭지 않다. 더도 덜도 말고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다만 그분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기만 하면 된다. 더구나 벌써 여섯 천 년이 가고 그분께서 다시 오실 일곱 번째 천 년에 들어섰는데 죽음을 보지 않고 그날을 맞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으리라.
당신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는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성도들을 위해 예비된 면류관 가운데에는 의의 면류관이 있는데 이것을 받을 자격은 절대로 어렵거나 까다롭지 않다. 더도 덜도 말고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다만 그분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기만 하면 된다. 더구나 벌써 여섯 천 년이 가고 그분께서 다시 오실 일곱 번째 천 년에 들어섰는데 죽음을 보지 않고 그날을 맞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으리라.
당신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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