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위험하지 않은” 놀이터의 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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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교수는 우울감, 자해, 자살 등의 문제에 있어 10대들의 상태가 과거에 비해 크게 악화된 원인으로 “안전제일주의”를 꼽았다. 그는 아이들에게는 “위험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어른들의 감시를 받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예로부터 “놀이터”란 부러지고 까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면서 거기로 놀러 나가 도전 정신을 발휘하고, 위험이나 공포에 직면하고, 성취감을 맛보고, 자신의 한계를 깨달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부모들이 아이들을 “과보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됨에 따라 놀이터는 “재미”보다 “안전”을 우선하는 공간으로 변해 갔고, 더 이상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하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설상가상으로 스마트폰이 등장함에 따라 아이들은 “위험한 놀이”를 경험할 기회를 점차 잃었고, 결과적으로 자그마한 불안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 하이트 교수의 설명이다. 이처럼 “위험”이 없으면 “성장”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계신다면 어째서 그리스도인들도 아픔을 겪느냐”면서 우리의 신앙을 조롱하지만, 그런 생각은 무식의 발로일 뿐이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성장하려면 때로는 “악!” 소리가 절로 나는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창 32:25). 이 점을 시편 기자도 고백하지 않았던가? 『내가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 좋사오니 이는 내가 주의 규례들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니이다』(시 1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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