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예정된 신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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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과 세마포 옷을 입은 그리스도의 신부 그림이 대조를 이룬 책 두 권이 책상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두 그림을 보자 “예정된 신부”라는 말이 떠올랐다. 칼빈의 예정론과 그리스도의 신부가 교차된 것이다. 주된 의문은 ‘신부를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예정해 놓는 사람이 있을까?’였다. ‘

신부는 구해 오는 것이지 예정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그의 종 엘리에셀을 보냈을 때,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친족 브두엘이 낳은 리브카를 이삭의 아내로 구했다. 그가 리브카의 가족의 동의를 얻어 그녀를 이삭에게로 데려가려고 했을 때, 그는 그녀를 주님께서 이삭의 아내로 정하셨다 해서 일방적으로 끌고 가려 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리브카를 이삭의 아내로 정하셨다는(appoint) 것은 아내 될 운명으로 예정하셨다는(predestinate) 것이 아니라 아내로 지정하셨다는 뜻이다. 비록 아내로 지정하셨어도 가고 안 가고는 리브카의 몫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를 불러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겠느냐?』(창 24:58)고 물었다. 가고 안 가고는 그녀가 정할 일이었던 것이다. 리브카는 “의지”를 사용해서 “내가 가겠나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성령(엘리에셀)께서 그리스도(이삭)를 위해 이방인 신부(리브카)를 구하시는 그림이다. 복음으로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믿겠다,” “안 믿겠다.”를 의지로 결정할 수 있다. 안 믿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도 별 수 없으시다. 칼빈의 예정론처럼 “예정된 신부” 같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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