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다 귀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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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를 운전하다 보면 도로가 꽉 막혀서 꿈쩍도 못하는 경우가 잦다. 그런 상황임에도 “삐뽀삐뽀” 사이렌을 울리며 길을 비집고 들어오면 모든 차들이 길을 터주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구급차이다. 구급차는 끼어들기와 신호 무시는 기본이고 필요하다면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도 서슴지 않는다. 정체로 지친 마음에 “아, 나도 저렇게 여기저기 뚫고 빨리 가고 싶다”고 푸념은 할망정 응급 환자를 호송하는 운전자를 비방하지는 않는다. 구급차가 도로에서 그런 호의를 얻는 이유는 생명을 구하는 중대한 일로 수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은 예수님께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다”고 트집 잡는 바리새인들에게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귀한지를 언급하시는 대목이다. 이 대화에서 보듯 인간의 혼적 종교는 시체처럼 차갑다. 하나님을 “위한” 섬김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만족”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에는 관심도 없다.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향해 갖는 열성은 참으로 가증하며 사악한 “거짓”이다.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가 이미 성경에 기록돼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당신은 육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섬기는가, 아니면 생명을 구하기 위해 섬기는가? 영적 생명을 구하고 낳기 위해 그분을 섬기는가, 아니면 겉모양만 그렇게 꾸미고 딴 속셈이 있는 것인가? 진정한 영적 종교는 혼의 구원에 깊은 관심이 있다. 바로 이것이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성경대로 믿는 기독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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