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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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란 소통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말하는데, 본문에서는 “신비의 교제”를 언급한다. “신비”란 감추어져 있던 무언가를 “때”가 되어 알려지도록 나타내는 것이다(롬 16:25,26). 이러한 성경적인 의미를 접어두고서라도, 바울은 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를 “신비의 교제”라고 한 것일까? 창조주와 피조물이 교제한다는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보라. 교제는 수평적 관계이며, 수직적 관계에는 오직 명령만이 존재한다. 창조주께서 피조물과 교제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셈이니, 창조주와의 교제는 신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교제가 하나님과 그분의 자녀들 사이에만 존재할까? 유대인과 그들이 심지어 “개”로 취급하는 이방인과의 교제가 십자가를 통해 가능하게 되었다(엡 2:14).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방인)의 구별 없이 한 몸으로서 교제가 이루어진 것은 참으로 신비인 것이다. 또한 살인자와 피해자가 어떻게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교회를 박해하며 죽음에 내어준 살인자 바울이 친교의 악수를 내밀었다(갈 2:9). 가해자와 피해자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다. 끝으로 주인과 종의 관계를 보라. 주인과 종이야말로 진정한 수직 관계다. 그럼에도 빌레몬은 그가 부리던 종 오네시모를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받아들이라는 권면을 받았다(몬 1:16). 이처럼 그리스도를 통해서 시작된 교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다(갈 3:28). 바로 이것을 “신비의 교제”라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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