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상황윤리, 상대적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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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층 사이에서 각광받는 가치관인 상황윤리는 이사야 선지자가 살았던 B.C. 760년경에도 존재했다. 절대적인 선악의 기준을 거부하고 상대적 진리를 적용하는 자들은 같은 일도 누군가에게는 선이, 누군가에게는 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아무도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기 쉬운 맹독이다. 자, 그렇다면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논리만 진리이고 절대적이라는 말인가? “상대적 진리”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자 거짓 아닌가? 어떻게 진리가 상대적일 수 있는가? 진리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허무맹랑한 말장난이며, 더러운 죄인이 자신의 죄를 합리화해서 양심의 정죄로부터 자유롭게 되려는 시도일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면서 양심을 주셨고 그 안에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하셨다(롬 2:15). 율법은 상황이 변해도 결코 요동하지 않는다. 동서고금의 모든 인간은 선이든 악이든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대면해야 하는 것이다. 상황윤리는 죄인들이 그럴싸하게 꾸며낸 저주받을 도피처일 뿐이다. 거기에는 인생의 아무런 해답이 없다. 오히려 성경에서 선과 악의 기준을 배워서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모든 의무니,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든 악이든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것임이라』(전 12: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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