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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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비관해서 한강에 뛰어든 여성을, 전역을 앞둔 해군 중령이 무려 150미터나 헤엄쳐 구해 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조깅을 하던 그는 사람들이 여자가 물에 빠졌다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 구명환을 이용해 구조에 성공했다고 한다.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손만 내밀었을 뿐이고, 그분이 걸어 나온 겁니다. 오히려 내민 구명환을 잡아주셔서 고마운 마음이 컸습니다.” 죽어 가던 목숨을 애써 구하고서도, 그런 수고를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사들로서 복음전파에 헌신한 성도도 그와 같다. 아니, 더욱더 그러하다. 복음전파는 주님의 명령이기에(막 16:15) 마땅히 순종해야 한다. 갈보리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받고 영원한 지옥불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았다면, 주님께 큰 사랑의 빚을 진 자로서 그 사랑을 당연히 나눠야 한다. 사도 바울이 그 일의 참된 본이다. 그는 자유인이었으나 더 많은 사람들을 얻기 위해 “기꺼이”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려고 했다(고전 9:19).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았으나 큰 빚을 진 자처럼 복음을 들고 모든 사람에게 다가섰던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어 어떻게 해서든 몇 사람이라도 구원코자 최선을 다했고(고전 9:22), 그래서 모든 사람의 피로부터 깨끗할 수 있었다(겔 3:18). 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발만 동동거리며 외치는 것보다, 뛰어들 수 있다면 직접 손을 내미는 것이 생명을 구하는 길 아닌가? 죄인들이 지옥에 가게 되어 큰 일 났다고만 하지 말고 직접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책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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