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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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말씀은 초림 당시 유대인들이 귀 기울여 듣기를 주님께서 원하실 때 주님이 즐겨 사용하시던 말씀이다. 특히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신 뒤 하신 것이다. 『촛불을 켜서 곡식 되는 말 아래나 침상 아래에 두겠느냐? 촛대 위에 놓아야 되지 아니하겠느냐? 이는 숨겨진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비밀로 간직된 것도 공개되지 않을 것이 없음이니라』(막 4:21,22). 즉 촛불로 상징되는 “빛”을 가진 자는 그 빛을 숨기지 말고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진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니(막 4:23), 우리는 복음의 빛을 우리만 간직한 채 숨겨 두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들려오는 소리를 그 안에 수용할 수밖에 없는 두 귀가 있다. 보기 싫은 것은 눈을 감아 버리면 되지만, 듣기 싫은 소리는 스테판의 설교에 “귀를 막고” 달려들던 성난 군중과 같지만 않다면(행 7:57) 싫어도 들을 수밖에 없게 된다. 눈은 능동적이고 귀는 수동적이다. 그렇기에 복음을 육성으로 선포하기만 하면 고막의 울림을 통해 구원의 말씀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목청껏 외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님께서 왜 공생애의 전 기간을 거리설교로 보내셨으며, 그분의 사도들 역시 거리에서 설교했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지 않은가? 귀는 일부러 틀어막지 않는 한 들을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복음을 외칠 때 들을 귀 있는 자는 그것을 듣고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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