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보존하신 말씀 분류
“책”인가, “두루마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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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4월호>
사탄의 주된 공격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기록된 이래로 사탄은 그 기록된 말씀을 훼손하기 위해 집요하게 시도해 왔다. 특히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들”과 그 말씀이 기록된 “책”을 제거하고, 성경의 “권위”를 실추시키려는 사탄의 공격은 더욱 강력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훼손의 시도는 <개역한글판>에 이어 <개역개정판>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한글킹제임스성경>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말씀들(them)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them)을 보존하시리이다. (시 12:6,7)
<개역개정판>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보존하시리이다
성경에서 기록된 말씀의 “보존”에 관해 가장 강력하게 선언하는 구절은 “시편 12:6,7”이다. 이 구절을 훼손하기 위해, 사탄은 『말씀들』(words)을 「말씀」으로 바꾸고,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를 「그들을 지키사」로 변개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주의 말씀들』을 받는 영어 “them”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하기 위해 “그것들을 간수하시리니”처럼 대명사로 번역하지 않고, 실제 명사를 그대로 받아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로 번역하였다. 이러한 “them”(『말씀들』)을 이어받는 두 번째 “them”(『그것들』)을 <개역개정판>처럼 「그들」로 번역하면, 이 “them”은 6절의 『주의 말씀들』이 아닌 5절의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 같은 “유대인들”을 받는 대명사로 보이게 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말씀 보존”에 관해 약속하신 말씀이 “유대인 보존”에 관한 말씀으로 바뀌게 되는데, 바로 여기에 사탄의 속임수가 있다. 성경에는 “유대인 보존”에 관한 말씀이 여러 군데 있어서(렘 31:35-37, 말 3:6, 롬 11:25,26 등) 더 이상의 계시가 불필요할 정도다. 그러나 “말씀 보존”(『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에 관한 구절은 “시편 12:6,7”이 가장 직설적이기에(cf. 마 24:35), 이 선명한 구절을 없애면 어떤 그리스도인도 “보존된” 말씀을 소유할 수 없다는 원문비평학자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게 된다. “시편 12:6,7”은 사탄이 제거하고 싶어 할 수밖에 없는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
이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각 사람에게 증거함이니 누구든지 이것들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계 22:18)
<개역개정판>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개역개정판>은 『책[book]』으로 동일하게 번역되었어야 할 헬라어 “비블로스”(bi;blov)와 “비블리온”(bibli;on)을 “요한계시록”에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비블로스”(계 20:15)는 “책”으로, “비블리온”(계 22:18)은 “두루마리”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성경이 지닌 『책』으로서의 권위를 훼손하려는 사탄의 교묘한 전략이다.
고대의 책들이 “두루마리” 형태였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두루마리”와 “책”은 동의어가 될 수 없다. 종이, 옷감, 가죽 등을 “말아 놓은” 것이 “두루마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역한글판>에서도 「책」으로 번역되어 있던 “비블리온”을 <개역개정판>에서 “두루마리”로 변개한 의도는 무엇인가?
본문 요한계시록 22:18에서 사용된 『책』이라는 단어는 “요한계시록” 자체를 의미하고, 더 나아가 “성경” 전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 「두루마리」라는 표현을 쓰면, 요한계시록이 아닌 “별도의” 예언 두루마리가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되어 예언의 권위를 분리시키고,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권위 있는 예언서”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 사탄은 「두루마리」라는 단어를 <개역개정판>에 새로이 도입함으로써 모종의 「두루마리」를 “또 다른 권위”로 제시하고 성경의 권위를 상대적으로 실추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계략을 미리 아시고, 『생명의 책』이라는 동일한 표현에 대해 요한계시록 20:12에서는 “비블리온”을 사용하시고, 15절에서는 “비블로스”를 사용하셨다. <개역개정판> 번역자들도 15절의 『생명의 책』 때문에 12절의 『생명의 책』을 “생명의 두루마리”로 변개시키지는 못했다. 결국 그들 스스로가 “비블로스”와 “비블리온”이 동일하게 『책』이라는 뜻임을 자인한 것이며, 요한계시록 22:18의 “비블리온”을 굳이 “두루마리”로 번역한 것은 한 권의 “완성된 책”으로서의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려는 의도적인 변개임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
모든 성경(scripture)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6)
<킹제임스흠정역>
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기록한 “책”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일은 비단 “변개된 원문”에서 번역된 <개역한글판>이나 <개역개정판> 같은 책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보존된 성경인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했다고 하는 <킹제임스흠정역>도 “성경”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없애 버림으로써 그들 마음대로 성경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있다.
“성경”이라는 단어의 용례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책”이라는 단어를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말에서 “책을 가져왔다”고 표현할 때는 “책의 내용”을 가져왔다는 뜻이 아니라 “책이라는 물건”을 가져왔다는 뜻이다. 또한 “책을 읽었다”고 표현한다면 “책의 내용”을 읽었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말하는 사람이 어떤 동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책”이라는 단어가 “책”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책의 내용”을 의미하기도 함을 보여 준다. “책”의 용례와 마찬가지로, 우리말에서 “성경”은 “성경책”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성경의 내용”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책을 가져와서 성경의 내용을 읽었다”고 표현하지 않고, “성경을 가져와서 성경을 읽었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에 무지한 <킹제임스흠정역> 번역자는 “성경”에서 “성경”을 지칭하는 단어인 “scripture”를 모두 “성경기록”으로 번역함으로써, 그의 책에 “성경”은 없고 “성경기록”만 있게 되었다. 웹스터 사전(1828)에서는 “scripture”를 “구약과 신약의 책들; 성경”(the book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 the Bible)으로 정의하기에, 그는 우리말 용례뿐만 아니라, 그가 좋아하는 “영어 사전”의 용례마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믿는다”는 것은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믿는다는 것이다. “성경”(聖經)에는 “글 경”(經)이라는 한자가 포함되어 있기에 굳이 “기록”이라는 사족(蛇足) 같은 번역을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경은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올바로 번역한 <한글킹제임스성경>뿐이다. 이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온전히 드높여 드리는, 한 권의 완성된 “책”(the Bible)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