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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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정예병인 “선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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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1월호>

성경에는 “선지자”라는 호칭이 “450회 이상” 나온다. “이름”이 언급된 선지자들의 수는 “약 49명”이며, 이 명칭이제일 처음 등장하는 성경 본문은 “창세기 20:7”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 사람[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를 돌려주라.그는 선지자니,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여 네가 살 것이라. 그러나 네가 그녀를 돌려주지 않는다면, 너는 알지니, 네가분명히 죽을 것이며, 너와 네게 속한 모든 자들이 죽으리라.』 이처럼 “아브라함”은 “선지자”였다(B.C. 1898).하지만 “연대기적인 순서”에 따르면 최초의 선지자는 “에녹”이었다(B.C. 2952). 이는 “에녹”이 선지자의 기본적인임무, 곧 미래의 일을 “예언”했고, 또 죄에 대해 “책망”하면서 “심판”을 경고했기 때문이다. 『아담의 칠 대 손에녹도 이들에 대하여 예언하여 말하기를 “보라, 주께서 수만 성도들과 함께 오시나니[재림에 관한 예언] 이는 모든 사람을심판하시고 그들 가운데 있는 경건치 않은 모든 자가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행위와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이주를 거슬러 말한 모든 거친 말에 대하여 정죄하시려는 것이라[죄에 대한 책망과 심판에 관한 경고].”고 하였느니라』(유1:14,15).

우선 “선지자”(prophet)는 “예언자”(prophet)이다. “미리 말하는 사람”인데, 물론 “자기 생각”에 따른것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미래의 일”을 미리 말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 시대”에는,어떤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것을』 “주”의 『이름으로 감히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이름으로 말한다면 그 선지자는』 결코 “죽음”을 면치 못했다(신 18:20). 이렇듯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는주님께서 그의 『입에 넣어 주시는 말씀』(민 22:38)만 예언해야 했던 것인데, 그렇게 미리 말한 “예언들”이“이사야”부터 “말라키”까지 17권의 선지서 안에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선지서”는 “예언서”이고, “선지자”는“예언자”이다!

한편 “선지자”는 소위 “대언자”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죽어 버린 “정통주의자들”이나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은선지자를 “대언자”로 부르기를 좋아한다. “대언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는 사람”으로, “어떻게 인간이 ‘예언’할수 있는가?”라는 “쓸데없는 의문”에서 비롯된 호칭이다. 말하자면 선지자는 “미리(fore) 말하는(tell)사람”(foreteller)이 아닌, 누군가를 대신하여 “앞쪽으로(forth) 말을 토해 내는(tell) 사람”으로,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서 바깥으로 말해 내는 사람”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그결과 이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지”를, 자기들이 강단에서 제멋대로 떠벌리는 시답지 않은 메시지와 똑같은종류로 전락시켰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인 경우가 “흠정역”을 출간한 “정동수 목사”인데, 그는 “선지자”를, “대신해서말해 주는 대변인” 정도로 생각한 나머지 모두 “대언자”로 변개시켰고, 또 “예언” 역시 “대언”으로 변개시켜 버렸다.이로써 “선지자”와 “예언”이 나오지 않는 사상 초유의 매우 “이상한 성서” 하나를 만들고 말았다.

그런데 “선지자”는 “예언”만 한 것이 아니고, 앞서 언급한 “에녹”처럼 예언 속에서 “죄”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며강력하게 “책망”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위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선지자들”을 당대의 죄가 만연한“사회 부조리”를 개혁한 “종교적 사회주의자”나 “사회 개혁가” 정도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순히도덕적인 죄악이나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책망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율법’을 어김으로써 하나님께 죄를 지은것”에 대해 책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악이 만연한 곳에는 언제나 “선지자들”이 있었다. 이에 “밥 존스 시니어”는“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타락과 배교의 시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선지자들”은“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회 전반의 시류”를 거스르는 “영적인 관념과 도덕적인 관념”을 지닌 사람들로서, 언제나 “세상의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 편”에 굳건하게 서 있었다.

특히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진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의분을 토하면서 그들의 죄를 책망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심판의 메시지”를 거침없이 선포했는데, 이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어떤 주저함이나 머뭇거림도 없었다. “사람들의 가려운귀”를 즐겁게 하거나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변죽이나 울리며 이야기하지 않았다.죄 많은 세상을 향해 “그럴듯한 긍정적인 말”을 해 가면서 유유자적하지도 않았다. “나도 옳고, 너도 옳고!”라는 식의“입에 발린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날 배교한 목사들에게나 걸맞은 “신사다움”이나 “부드럽고 다정한 분위기”는 눈을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책망의 메시지를 듣고 있으면, 마치 “지옥에서나 느낄 수 있을 법한섬뜩함”이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선지자들은 왕과 고관들 그리고 백성들로부터 “고난과 고통,” “박해와 핍박”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지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러한 고난을 “인내”로 견뎌냈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 『나의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으로 삼으라.』(약5:10)라고 말씀한다. 선지자들은 “구약 시대 신정 통치”에 있어서 일종의 “특수 부대”나 “공수 부대,” 또는“해병대”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제복”에는 “특수 부대 요원”임을 보여 주는 “부대 마크와 표식”이 붙어있었다. 그만큼 선지자들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용맹성,” “죽음도 불사하는 각오,” “어떠한 거친장애물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신념” 등 이런 “용기 있는 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고난 속에서 선지자들이 외친 “주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죄로 가득 찬 인간의 타락한 마음이 세상의모든 ‘재앙’과 ‘화’와 ‘진노의 심판’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둘째, 선지자들은 결코 “긍정적인 사고”로 무장한“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인간들의 힘으로 이 땅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무(후)천년주의자들”이 아닌 것이다. 셋째,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매 시대에 남겨 두신 “남은자들”(Remnants)에 대해서만 “희망”을 품었다. 넷째,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했다.다섯째, 선지자들이 전파한 메시지는 항상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했다. 여섯째, 선지자들은 이 땅의 유일한희망으로서 “모세오경의 예언들”을 성취하실 “메시아”를 제시했다. 일곱째, 선지자들은 “모든 종류의 통합”과 “인종혼혈”을 절대적으로 반대했다. 마지막 배교의 “교회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선지자들”이 지녔던 것과 동일한수준의 담대함과 용기를 지녀야 한다. 배교의 흐름을 거스르고 진리의 기치를 드높이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예언하고, 죄에 대해 강력하게 책망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선지자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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