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특집 목회자 칼럼 분류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10월호>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범죄했을 때,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다음과 같이 행동했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멸망시키리라 말씀하셨으나 그의 택하신 모세가 갈라진 틈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진노를 돌이켜 그들을 멸하시지 않게 하였도다』(시 106:23). 모세 한 사람이 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한 것이다. 그러나 모세 이후 여호수아의 인도로 카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솔로몬 한 사람의 배교로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첫 번째로 왕이 되었는데,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형상과 가짜 제사장, 가짜 명절을 만듦으로써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했다. 여로보암의 뒤를 이은 이스라엘 왕들은 여로보암의 죄들로부터 떠나지 않았고, 백성들의 죄는 여전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어 『너희는 너희의 악한 길에서 돌이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하고, 내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보낸 모든 율법에 따라 내 계명들과 내 규례들을 지키라.』(왕하 17:13)라고 책망하셨지만, 백성들은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우상을 섬기다가 B.C. 721년 앗시리아에 멸망당하고 말았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왕들보다 선한 왕들이 몇 명 있었고, 그 왕들을 통해 개혁과 부흥이 있기도 했지만 그들도 인간 쇠락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남유다 역시 B.C. 606년에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에게 침략을 당해 백성들이 포로로 사로잡혀 감은 물론, 성전의 기명들이 바빌론으로 옮겨지기까지 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배교한 두 왕국을 멸망시키시기 전에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심판을 경고하셨고, 그들에게 닥칠 재앙을 알려 주시면서 피할 기회를 주셨지만 왕들과 백성들은 전혀 돌이키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는데, 이러한 선지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예레미야”이다.

예레미야는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인물이다. 아이인 예레미야에게 사명을 부여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뱃속에서 너를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거룩하게 하였고 너를 민족들의 선지자로 정하였노라.』(렘 1:5)라고 하셨다. “예레미야”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쫓아내실 것이라”는 뜻인데, 그 이름에 맞게 남왕국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부패한 왕과 고관들과 백성들을 향해 죄를 책망하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지만, 안타깝게도 주님께 쫓겨나지 않기 위해 죄에서 돌이키는 사람이 없었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거리를 여기저기 달려서 이제 보고 알며, 거기 넓은 곳에서 찾으라. 만일 너희가 한 사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그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이 말씀처럼 예루살렘에는 단 한 명의 의인이 없었고, 남왕국은 예언대로 바빌론으로 끌려가야 했다.

남왕국의 배교는 영적 지도자들의 총체적인 타락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선지자들은 거짓되이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그들의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하니 그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 5:31) 당신은 남왕국의 타락한 모습에서 오늘날 배교한 교회들의 실상을 읽게 되지 않는가? 목사들은 바른 성경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보는 변개된 성경조차도 믿지 않으면서 비성경적인 교단 교리를 전하고 있다. 그 가짜 목사들은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는 명분으로 평범한 교인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 자기 목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무지한 교인들은 교회 직분이나 탐내면서 담임목사를 하나님의 종이라며 떠받든다. 실로 “목사들은 그들의 권력으로 다스리며 교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하니 그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라고 묻고 싶은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미리 내다보신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인자가 올 때 그가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눅 18:8)라고 하셨다. 이 질문처럼 마지막 때의 교회들에서는 믿음을 찾아볼 수가 없다. 교회들은 교적부에 등록된 교인 수를 자랑하고, 교인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지은 웅장한 교회 건물과 매주 걷히는 거액의 헌금을 뽐낼 뿐만 아니라, 때가 되면 성경에 없는 절기들을 지키면서 육신적인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고 호들갑이다. 이처럼 기독교계 전체가 부패하여 영적 암흑이 드리워진 시대에, 그러한 대세를 과감히 막아선 용기 있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때의 강력한 미혹인 은사주의에 점령당한 한국 교회들이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믿고 실행하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막혀 그들의 이상한 짓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보라, 성경대로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바로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은 성경대로 믿는 “거리설교자”이다. 『그때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더라. 이 모든 말을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서 일러 선포하라.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들을 듣고 그것들을 행하라... “내 음성에 복종하라.” 하였으나 그들은 복종치도 아니하였으며 그들의 귀도 기울이지 아니하고 각기 그들의 악한 마음의 상상대로 행했느니라』(렘 11:6-8). 선지자 예레미야는 언약의 말씀들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 임할 재앙을 경고하는 말씀을 거리들에서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한 사람” 예레미야의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리에서 외쳐 전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구원한 『그리스도의 복음』(롬 1:16)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거리에서 담대하게 외쳐 전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에 따라 사람들을 부르셔서 임무를 맡기시는데, 예레미야같이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선지자로 정해 놓은 사람도 있고, 아모스처럼 목동이자 뽕나무 열매를 거두는 사람을 불러서 선지자의 일을 맡기기도 하신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불러서 쓰시는 사람들에는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 있었고, 신약 시대에는 사도들과 그들로부터 배운 성도들이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그와 같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거리설교자들”이다.

당신은 “정동수”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인 정동수는 목사직을 “부업”처럼 하는 자로서,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보지 못하도록 마귀가 들어 쓰는 자이다. 이 마귀의 종은 <한글킹제임스성경>과 개역성경을 적절히 섞어 “킹제임스흠정역”이라는 것을 만들어 팔아먹고 있다. 정동수는 <한글킹제임스성경>을 비방하고 “말씀보존학회”를 비방하고, “피터 럭크만”의 책 내용을 도둑질해서 설교하면서도 럭크만 목사를 비방하고, 이송오 목사를 비방하며, 우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비방한다. 그런데 그렇게 비방하면서도 정동수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거리설교”이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을 향해 죄를 책망하거나 지옥에 가지 말라고 외치지 못하는 “짖지 못하는 개들”(사 56:10)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을 써가며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한다(롬 16:18). 정동수와 그의 추종자들은,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기에 자기 집안에서만 깽깽거리는 강아지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바른 말씀인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흉내 내는 정동수와 달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거리설교자들이다. 예레미야와 이사야 같은 구약 선지자들이 그랬으며, 예수님께서도 성전이나 바닷가, 산 위, 거리에서 설교하셨다. 사도 바울도 가는 곳마다 거리에서 복음을 전파한 거리설교자였다. 어디 사도 바울뿐이겠는가? 저 신실한 요한 웨슬리, R.A. 토레이, D.L. 무디, 프랭크 노리스, 피터 럭크만, 이송오 등 “진짜 목사들”도 거리설교자들이었다. 그들의 맥을 잇는 지금의 성경침례교회의 목사들과 성도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의 “목사”는 어떠한가? 그 사람도 거리에서 설교하는 복음 전파자이며, 그 교회 사람들도 그의 본을 따라 복음을 전파하는가?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은 “말씀으로 인해 겪는 박해를 기꺼이 감수하는 그리스도인”이다. 『오 주여, 주께서 나를 속이셨으니 내가 속았나이다. 주께서는 나보다 강하시며 이기셨나이다. 나는 매일 조롱 속에 있으니 모두가 나를 비웃나이다』(렘 20:7).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신 것은 죄지은 백성들이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예레미야의 임무는 남유다의 왕과 백성에게 죄를 지적하며 다가오는 멸망을 경고하는 것이었기에 그가 전파하는 말씀들은 철저히 부정적이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읍이 무너지고 불에 타며,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되고, 그 땅이 이방 왕에게 짓밟혀서 황폐하게 된다는 것을 전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의 말씀들을 들은 백성은 오히려 예레미야를 비웃고 조롱하며 박해했다. 그리하여 더 이상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의 마음속에서 그의 뼈들 속에 사무치는 타는 불같아서 참기에 지쳤고 견딜 수 없는지라(렘 20:9), 이전처럼 다시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선지자들 가운데 당대의 죄인들에게 환영받았던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초림 때 선지자로 사역하셨던 예수님께서도 비난과 조롱과 박해를 당하시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고 또 죽이려고 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이 일들을 안식일에 행하셨기 때문이라』(요 5:16). 교회 시대에도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데, 죄인들의 무관심과 조롱과 박해에 지쳐서 기운을 잃었다가도, 그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서 뜨겁게 역사하기에 도무지 입을 닫고 있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지옥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면 지옥에 관한 말씀으로 인해 마음이 뜨거워져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이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도 그러하리라』(시 9:17). 『지옥과 멸망은 결코 가득 차지 않으며』(잠 27:20). 『그곳[지옥]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4). 그리스도인은 그 죄인들이 들어가게 될 영원한 멸망이 섬뜩해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다. 그가 바로 목사든 집사든 형제든 자매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열심을 내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인 것이다.

당신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인가? 고난과 박해를 감수하며 죄인들에게 다가올 멸망을 경고하는 복음 전파자가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헛된 것이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멸망을 막을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바로 “당신”이 그 “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어떠한가? 우물쭈물 망설이지 말고, 지금 당장 복음을 들고 세상을 향해 나가라! BB

특집 목회자 칼럼 54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