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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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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2월호>
필자는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로, 특히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대열에 선 이후로 “성령을 거스르는 육신의 처절한 죄성”(갈 5:17)과 마주해야 했다. 성령님께서 내주하시자마자 시작되는 “육신의 발악”이 무엇인가를 나뿐만 아니라 내 옆의 지체들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맛보았고, 그로 인한 실망과 말 못할 상처 속에서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어둠 속에서 빛을 더듬어 찾듯” 조금씩 고민해 나갔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장 방해하는 것이 ‘성경대로 믿는’ 동료 그리스도인의 ‘육신’이라는 사실”을 지난 26년 동안 몸소 겪으면서 깨우쳤다. 이런 깨달음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어느 날 문득 “낯설게” 여겨진다는 점도 알았다.지역 교회 안에는 도덕적 결핍을 무심코 쏟아 내는 이들이 있고, 자신의 영적 미숙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여전히 “아담의 타락한 본성”을 지닌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설교자든 극악무도한 범죄자든 그들이 입고 있는 “육신” 자체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기에(롬 7:18) 성령님의 통제를 받지 못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헛된 기대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구원받은 죄인”에 불과함을 인정한 뒤, 내 옆의 지체들의 영적, 도덕적 실패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나 자신에 관해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마 7:3). 결국 우리가 이르러야 할 종착지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형제자매들은 육신을 입고 있기에 변덕스럽고 부서지기 쉽지만, 오직 주님의 말씀만은 썩지 않고 영원하며 완전하기 때문이다(벧전 1:23-25, 시 19:7). 본 논단에서 다룰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구원받은 죄인”을 넘어선다. 즉 “나”부터가 소망 없는 육신을 신뢰하지 않고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삼고 살아가는 존재여야 함을 “뼈저린 경험”(시 119:28,50,51)과 내색하지 않는 “오래 참음”(골 3:12) 속에 터득해 나갈 때, 비로소 “익숙해지는” 이름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거나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진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세 가지 경우”에 단 “세 번”(행 11:26; 26:22-28, 벧전 4:16) 언급되지만, 성경 전체적으로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합당한 삶이 매우 구체적이고도 엄격하게 제시된다.
“그리스도인”이 성경에 최초로 언급된 예는 “사도행전 11:26”이다. 『그를 만나 안티옥으로 데리고 오니라. 그리하여 그들이 일 년 내내 교회와 함께 있으면서 많은 무리를 가르치니 안티옥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더라.』 제자들이 안티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이유에 대해 성경은 함구한다. 누가, 왜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는지에 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추측이 난무하지만 정확히 알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안티옥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안티옥의 교회에서 바나바와 사울(바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배웠고, 그런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이다. “제자”는 영어로 “disciple”이며, 이 단어는 “훈련”의 뜻을 지닌 “discipline”과 깊은 연관이 있다. 즉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단과 훈련을 거쳐 “그리스도인답게” 길들여져야 하는 것이다. 죄인이 처음 구원받은 순간은 아직 훈련되지 않은 상태이며,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된 그들을 적합한 시련과 징계를 통해 단련시키기 시작하신다(히 12:6-8). 복음을 선포하고 잃어버린 혼들을 주님께로 이겨오는 구령 활동은 갓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도 즉시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거리에서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연단된 제자”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구령은 복음에 대한 믿음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제자의 길은 그보다 깊은 차원의 헌신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참된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모든 순간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최우선 순위에 모시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최종권위와 가치관의 기준으로 삼으며, 그 어떤 순간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주님과 그분의 일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아끼는 모든 것과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어놓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이 “제자”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이 성경에서 두 번째로 언급된 것은 “사도행전 26:22-29”에서이다. 사도 바울이 아그립파왕에게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실 것과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신 첫 번째 분이 되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에게 광명을 선포하시리라는 것”(행 26:23)을 증거했을 때다. 그때 아그립파는 바울에게 『네가 나를 설득시켜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 26:28)라고 했고, 바울은 그에게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게 듣는 모든 사람도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었거니와 이렇게 결박당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바라나이다.』(행 26:29)라고 했다. [29절의 “그리스도인”은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문맥상 이해를 돕기 위해 넣은 단어이다.] 이 경우에 “그리스도인”의 의미는 단순하다. 그것은 “복음을 믿고 거듭난 사람”을 뜻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되심과 부활을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사건으로 믿고 구원받은 사람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이 성경에서 세 번째로 언급된 것은 “베드로전서 4:16”에서이다. 이때 “그리스도인”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당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 4:16).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은 박해의 상황 속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난다. 현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인”이란 이름 자체가 고난의 이유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그 이름을 주신 그리스도를 세상이 미워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것은 너희를 미워하기 이전에 나를 미워한 것임을 알라』(요 15:18).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겪는 박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에 따른 경건을 추구하며 세상에서 성별한 대가”로 받는 당연한 결과이다(요 17:14, 딤후 3:12). 사도 베드로는 세상에서 갖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오히려 그 고난이 “내가 세상이 아닌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요 17:14,16)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일의 정점에 “고난”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죄로 인해 죽었던 “영”이 성령님에 의해 다시 살아난 사람이다(엡 2:1, 요 3:6-8). 성령님께서는 그의 영이 거듭날 때 그의 혼을 “육신의 죄들의 몸”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그리스도의 할례』(골 2:11)를 행해 주셨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은, 영이 죽은 채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된(엡 2:12) 죄인들과 달리, 『영과 혼과 몸』(살전 5:23)의 삼중구조가 더욱 분명해졌으며, 자신이 『영과 혼과 몸』의 구조로 창조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성령님께서 행하신 영적 할례는 죄의 몸을 벗어 버린 “혼”이 육신의 죄에 오염되지 않게 함으로써, 또 그 혼을 그리스도의 몸 안에 넣어 주심으로써(고전 12:13) “혼의 구원”(벧전 1:9)을 영원히 보장받도록 했다.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딛 3:5)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 된 “그리스도인”은 그의 존재적 체계 자체가 세상 죄인들과 다르다. 그의 “영”은 거듭났고, 그 “속 사람” 안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신다(롬 8:16, 엡 3:16).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서 행하게 되며(롬 8:14),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어떤 성경이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고전 2:13)인가를 알게 된다(<한글킹제임스성경>).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바른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일들』(고전 2:11)을 깨닫기 위해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는 사람이다(세대주의, 딤후 2:15).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인” 안에 충만해지실 수 있고(엡 5:18),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며(갈 5:22,23), “그리스도인”이 세상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행 1:8). 『하나님의 영』, 곧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을 소유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람”(롬 8:9), 즉 “그리스도인”이다. 『진리의 영』께서 영원히 함께 거하신다는(요 14:16,17) 사실은 “그리스도인”을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존재가 되게 한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인,” 곧 “하늘로부터 오실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하늘의 시민권자”(빌 3:20)에게 주시는 “상호 관계 명령”이 있다. “형제애로 서로 다정하게 사랑하며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라”(롬 12:10). “오직 생각의 겸손함으로 남을 자신보다 존중하라”(빌 2:3).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엡 4:2). “서로 친절하고 다정다감하며 서로 용서하라”(엡 4:32). “서로 물어 뜯고 삼키다가 서로 멸망하지 않도록 성령 안에서 행하라”(갈 5:15,16). “사랑으로 서로 섬기라”(갈 5:13). “너희의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4). “그리스도인, 그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은 “사랑”에 있다. “누가 그리스도인인지 어떻게 아는가?”에 대한 해답도 “사랑”에 있다(요 13:35). “사랑”은 시기하지도 교만하지도 무례하지도 않다!(고전 13:4,5) “사랑”은 동료 그리스도인에게 “육신의 악취”(고전 3:3)를 풍기지 않는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육신을 억제하고(갈 5:17) “사랑”에 관한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