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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에 묶인 그리스도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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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4월호>
한 명의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거듭나면 마귀의 진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져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녀를 예외 없이 화해의 말씀을 전파하는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고후 5:20)로서 부르신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누구나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로서 복음을 들고 이 세상에서 활동해야 한다. 세상의 눈에는 그 일이 미련해 보여도, “복음 전파”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다(고전 1:24). 사도 바울은 이 “복음 전파”를 위해 자신이 『사슬에 묶인 대사』(엡 6:20)가 되었다고 했다.사전적 의미에서 “대사”란 “국가를 대표하여 권위를 위임받은 최고 직급에 있는 사람”이다. 한 국가의 대사도 영예로운 자리인데, 하물며 하나님께 받은 “그리스도의 대사”라는 영의 직분은 얼마나 영광스런 것이겠는가?(고후 3:8) 이 직분은 세상의 그 어떤 관직보다도 높고 위대하며 영원한 가치를 지닌 하늘의 소명이다. 하지만 많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사명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이 마지막 때의 현실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대사 임명장”은 받았는데 그 기억만 있을 뿐, 과연 지금 “그리스도의 대사”로 살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자신을 비춰 보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첫째, 당신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화해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가?
오래전, 20대 초반의 한 한국 여성이 남미 여행 중 예상치 못한 비극에 휘말렸다. 현지의 지인에게서 작은 가방 하나를 옮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선뜻 수락했으나, 그 안에는 “마약”이 들어 있었다. 여성은 현장에서 마약 사범으로 체포되어 1급 죄수들만 수용하는 남미의 악명 높은 섬 감옥에 수감되었다. 여성의 아버지는 현지 대사관에 간절히 도움을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고작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몇 년의 세월을 고통 속에 견디다 못한 아버지는 결국 국내의 외교부를 찾아가 자신의 몸에 석유를 붓고 분신을 시도하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 극단적인 호소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외교부는 즉시 현지로 조사단을 파견했고, 뒤늦게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서 여성은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사건 이후 현지 대사관 사무실을 조사한 결과, 여성의 아버지가 수년 동안 보낸 수많은 편지가 단 한 통도 뜯기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직무를 유기한 대사들은 모두 국내로 소환되어 즉시 직위 해제되었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사가 자국민의 생명을 외면하고 사명을 저버린 결과는 이토록 참혹하고 부끄러운 것이었다.
성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그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스스로 우리와 화해하셨고 화해의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겨 주신 것이라.』(고후 5:18,19)라고 말씀한다. 또한 우리가 이 『화해의 말씀』을 맡은 대사로서 언제 어디서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항상 대비하라고 명령한다(딤후 4:2).
당신은 『화해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평소 복음 전도지를 꺼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혹시 대사의 직분을 망각했거나 스스로 내려놓지는 않았는가? 당신이 학업이나 세상일에 몰두하는 사이에, 아니면 예상치 못한 사고나 질병 중에 주님께서 갑작스럽게 오실 수도 있다. 성도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탁받은 전권대사로서의 임무를 망각하고 수행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엄중한 징계를 피할 수 없으며, 끝내 그 고결한 명령을 거부할 경우 “본국”으로 “강제 소환”될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둘째, 당신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고난의 표를 새겨 가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 16:24)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 보혈을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십자가의 표”를 직접 보여 주셨다. 사도 바울 또한 채찍과 돌, 몽둥이에 맞아 피멍이 들고 온갖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몸을 주 예수를 따르는 증거로 삼았으며, 그는 이를 가리켜서 『주 예수의 표들』(갈 6:17)이라고 했다.
성도는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증명하는 고난의 표를 만들어 가야만 한다. 그러나 바쁜 일상 속에서 복음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는 일은 이제 흔치 않다. 정신없이 하루를 살다 보면 말씀을 읽을 시간조차 부족한데 언제 복음을 전하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업을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기에 주말 구령 활동이 아니고서는 “전도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정말로 그러한가? 출퇴근길에 마음만 먹는다면 마주치는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고난의 표를 새길 수 있다. 점심시간 중 단 15분이라도, 혹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이웃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고난의 표를 남길 기회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독방에 갇힌 죄수처럼 종일 침묵하며 고난의 기회를 외면하려는가? 이러한 침묵은 영적 태만이며, 우리를 위해 온갖 수치를 당하신 주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기회를 스스로 차단한 채 영적 게으름에 빠지는 순간, 당신은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회피하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성도 자신에게 복음으로 인한 고난의 표를 새기는 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달려가다가 넘어지고, 맞고, 멍들고, 깨진 그 영광스런 상처들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아무런 흔적도 없는 깨끗한 몸으로 주님 앞에 서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셋째, 당신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고 있는가? 세상은 죄를 정죄하고 사망과 지옥을 경고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주로 믿어야 한다는 외침을 견디지 못한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복음을 대적하며 조롱과 박해를 일삼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짓의 실체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야 깨닫게 되겠지만, 그때가 되면 너무 늦어 버리고 만다. 한번은 성경침례교회로 어느 감리교 목사가 항의 전화를 걸어 온 적이 있었다. 사연인즉 우리 교회 성도가 왜 자신의 교회 앞에서 복음을 전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복음 전파를 혼의 구원이 아닌 교인을 빼앗아가는 행위로 간주했던 것인데, 그런 그의 말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닌 “심한 악취”만이 풍겼다.
이처럼 지금은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들에게조차, 심지어 “목사”라는 이들에게조차 복음이 사망으로 인도하는 향기로 여겨지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죄와 죽음을 두려워하며 구원을 갈망하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대사들은 그들을 찾아서 쉼 없이 걸어야 한다. 우리의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 누군가는 복음의 향기를 맡을 마지막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절박함을 가져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또 어느 곳에서나 우리로 하여금 그분에 관한 지식의 향기를 나타내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이는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나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이기 때문이라. 정녕 이 사람들에게는 사망에 이르는 사망의 향기이나 저 사람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생명의 향기라. 누가 이런 일들을 원만히 감당하겠느냐?』(고후 2:14-16)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충성을 다하지 아니하여 고난의 표를 남기지 못한다면, 그 성도의 인생은 그리스도의 향기 대신 세상의 악취를 내뿜게 된다. 이는 마귀의 참소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주님 앞에서 수치를 당할 일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세상이 죄로 어두울수록,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의 입을 틀어막으려 할수록 더욱 강력하게 발산된다. 과연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외에 누가 이 고귀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겠는가?
찰스 스펄전은 “성도가 머무는 모든 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교지”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대사로 임명한 자녀들을 복음을 위한 최상의 적임지로 파견하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대사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주님의 일을 수행해야 한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만 하더라도 그 자부심이 대단하지 않은가? 그들은 승리의 영광을 거머쥐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피나는 훈련과 인고의 시간을 감내한다.
이러한 헌신은 복음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내한 사도 바울의 삶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즉 복음의 신비를 위해 스스로 “사슬에 묶인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었다는 바울의 고백은, 그가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쳤음을 의미한다. 우리 역시 세상이 채우는 사슬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위해 전진하는 참된 대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들로서 사명을 받은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하고 드높여 그분을 영화롭게 해 드려야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받은 “거룩한 소명”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