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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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상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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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8월호>

언젠가 장로교신학대학교 총장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강의를 맡아 줄 것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칼빈주의를 가르치지요?” 하고 물었더니,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런 데서는 안 가르칩니다.”라는 것이 내 대답이었다. 성경을 강조하면서 칼빈주의가 비성경적이라는 말을 덧붙이자, 그는 내게 “성경을 너무 우상화하지 마십시오.”라고 했다. 그러나 정말로 “성경을 우상화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성경을 가지고서도 읽지 않고 고이 모셔두기만 하는 그가 진짜 “성경을 우상화하는” 자 아니겠는가?

명검을 가지고 있어도 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것이 명검인지, 싸구려 칼인지 알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지식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활용하지 못 한다면 배우지 않은 것만 못 하다. 기술이 있다고 해도 써먹지 않는다면 무용하게 된다. 힘이 있어도 일하지 않는다면 힘이 없는 사람만 못한 사람이 된다. 마찬가지로 성경도 “상고”할 때만 의미가 있다. “상고하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찾아내라는, 즉 공부하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성경을 상고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함이니, 그 성경은 나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음이라』(요 5:39).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기드온협회 같은 곳에서는 성경을 마구 나누어 준다. 물론 성경을 나눠 주는 것이 안 나눠 주는 것보다는 나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조건 나눠 준다고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 성경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야자열매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것을 주면서 어떻게 먹는지 가르쳐 주지 않는 것과도 같다. 먹는 법을 아는 사람은 도구로 열매를 따서 야자수를 마시고 속도 파먹을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먹는 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야자열매는 딱딱한 공에 불과할 뿐이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상고하는지를 모르면 그냥 두꺼운 책이 되고 만다. 성경은 아무렇게나 읽어도 되는 책이 아니다. 우리는 “성경을 바르게 상고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성경을 바르게 상고하려면, 첫째, 성경이 영감으로 기록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록하셨다는 뜻이다.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시다. 혹자는 우리가 믿는 이 성경을 두고 “이것은 사람이 번역한 것 아니냐?”라면서 시비를 걸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만일 틀린 성경을 우리에게 주면서 “이것을 믿으라.”라고 했다면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려 주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성경은 바르게 번역된 성경이기에 성령님께서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하신 것이다.

성경은 어떤 학자, 교황 따위의 도움을 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성경은 마치 태양과도 같다. 태양은 어떤 다른 천체의 도움을 받아 빛을 내는 것이 아니다. 태양은 스스로 빛을 낸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성경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그 자체, 그 말씀이다. 성경을 영감으로 기록하신 분이 그분의 말씀으로 스스로 증거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어떤 시비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부족한 피조물이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그 말씀에 대해서 무슨 토를 달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무조건 부복해야 한다. 여기에 있는 말씀은 “인간의 지혜로 가르치는 말”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이다(고전 2:13).

둘째, 영적 생명으로 태어나야만 성경을 바르게 상고할 수 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성경과 관계가 없다. 자기가 성경을 읽어 봐도 이해할 수도 없고 재미도 없다면, 자신이 정말로 거듭난 사람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적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고전 2:14). 영감으로 기록된 책을 이해하려면 성령님께서 주시는 내적 조명이 필수적이다.
물론 거듭났다고 해도 단번에 성경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는 사람이 그분의 조명을 구하면서 성경을 계속 읽으면, 매번 점점 더 깊이 있게 성경을 깨우칠 수 있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 땅에는 영적 깊이를 가지고 책을 쓴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이 땅의 교계 지도자란 사람들은 대부분 거듭나지도 못했고, 설령 거듭났다고 해도 성령님의 조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성경에는 성령님께서 조명을 비추어 주시지 않는다.


셋째, 영적 조건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기록된 바와 같으니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으로 보지도 못하였고 귀로 듣지도 못하였으며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온 적도 없었느니라.” 한 것이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우리에게 그의 영으로 나타내셨으니 이는 성령께서는 모든 것, 심지어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통찰하시기 때문이라』(고전 2:9,10).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교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보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여 주지 않으신 그것들을,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보여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기적인 사람들, 곧 자신의 성경 지식을 자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진리를 보여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일깨워 주신 것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쓰는 사람에게 그분의 말씀을 가르쳐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끝마치셨을 때에야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달랐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시기 전에 미리 하나님의 역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암 3:7).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믿음으로 그 일들이 일어날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 이런 믿음을 갖추어야 한다. 믿음을 갖추지 못하고 성경을 대하면, 미래에 대해 예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다.


넷째,

성경을 바르게 상고하려면 그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인식해야 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신 분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제자들조차 때로 주님의 말씀과 행동의 진의를 알지 못했다. 주님께서는 죽으시기 전에,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는 성경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다. 이는 말씀의 주인공이 곧 주님이시라는 사실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성경을 바르게 상고하려면 그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신 분의 음성을 직접 귀로 들었던 제자들조차도 때로 주님의 말씀과 행동의 진의를 알지 못했다. 주님께서는 죽으시기 전에,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성경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깨닫지를 못했다. 『그후 주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셨을 때 제자들은 주께서 그들에게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더라』(요 2:22). 제자들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분명 들었지만, 그 이해는 피상적인 수준에 그쳤다. 그 말씀의 주인공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에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경의 주인공이 예수님이심을 아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겪으셨던 모든 일은 “당연히 기록된 그대로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다. 『그때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 어리석은 자들아,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아, 그리스도가 이러한 고난을 당하고서 그의 영광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하시며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에 관하여 모든 성경에 있는 것들을 그들에게 설명하시더라』(눅 24:25-27). 주님께서는 “성경을 이루려고” 그 모든 고초를 겪으신 것이었기 때문이다(요 19:24,28,36,37).

다섯째, 성경을 기록하신 분으로부터 배워야 성경을 바르게 상고할 수 있다. 우리는 성령님께로부터 성경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은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것은 말씀이요, 말씀을 설명하는 것은 성령님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발설한 선지자들도,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는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었다. 그들은 선지자라는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저 깨달았던 것이 아니다. 그들도 자신 안에 계셨던 하나님의 영이 무엇을, 또 어떤 시기를 지시하시는지 탐구해야만 했다(벧전 1:10,11).

성경의 저자를 알면 책의 내용도 알 수가 있다.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성경을 알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된다.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 하나님을 모르면 성경의 내용도 알 수 없고, 반대로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성경을 반드시 상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섯째, 성경의 말씀 자체가 “영”임을 알아야 한다. 내가 엉뚱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성경적 진리를 말한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영”일 뿐 아니라 “생명”이기도 하며, 그 자체로 살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능력이 있어 양날이 있는 어떤 칼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가르고 마음의 생각들과 의도들을 판별하느니라』(히 4:12). 성경은 살아 있는 책이다. 그래서 말씀은 생명을 낳을 수 있다(벧전 1:23).

국민일보의 기자가 나에게 “번역에도 영감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나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성경은 “기록될 때” 영감이 주어지지, “번역할 때” 새로운 영감이 다시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 번역이 성령님과 무관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성령님께서는 끝까지 성경 번역에 관여하신다.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 일일이 개입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수많은 교열자들과 나는 일대일로 마주앉아 고칠 단어를 논한다. 그때 교열자들이 가져온 단어가 잘못되었다면, 성령님께서 그것을 알려주시고 그 수정안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과정이 없었더라면 성경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생명을 주는 말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께서 관여하셨기 때문이다.

일곱째, 전심을 다해 공부하고 그 의미를 알고자 해야 한다. 나는 비행기를 조종했다. 비행기는 내가 자든지, 책을 보든지, 신문을 읽든지, 잡담을 하든지 어쨌거나 목적지로 간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생각은, 너는 그 시간에 신학을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성경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별안간 무슨 지식을 가르쳐 주실 것처럼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정녕, 네가 지식을 구하려고 소리지르며 명철을 위하여 네 목소리를 높이고, 은을 구하듯이 지식을 구하며 숨겨진 보물들을 찾듯이 명철을 찾는다면, 네가 주의 두려움을 깨달을 것이요, 하나님의 지식을 발견하리니 주께서 지혜를 주시고 그의 입에서 지식과 명철이 나오느니라』(잠 2:3-6). 노력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없다. 나는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있을 때 그런 노력을 시작했다.

성경을 “상고하라”(search)는 명령은 마치 먹잇감을 빼앗긴 사자가 그것을 되찾아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찾듯이”(search) 성경을 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어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증거를 찾듯이 성경을 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을 베들레헴에 보내면서 말하기를 “너희는 가서 그 어린아이에 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search], 찾거든 내게 다시 알려 주어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하더라』(마 2:8).

고상한 베뢰아 사람들이 『전심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들이 그런가 하여 매일 성경을 상고』(행 17:11)했던 것처럼, 우리는 자신이 들은 그 진리가 정말로 확실한지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함으로써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을 상고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성경을 알아야 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줘야 한다. 어떤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리스도인이 그를 바른 길로 가도록 통제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여태껏 이 일에 소홀했다면 오늘부터라도 시작하기 바란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