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설교자들에게 고함 분류

인격에 닿는 설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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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9월호>

성경은 설교와 설교자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이번 호에서는 설교자가 그리스도를 위해 이겨오는 죄인의 인격 중 지난 호의 “1. 지성”에 이어 “감정”과 “의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감정
감정은 지성이 받은 인상에 대해 그 사람이 보이는 반응을 뜻한다. 사람은 듣고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진 것에 대해서 어떤 결론을 내린다. 기쁨, 통증, 사랑과 미움, 동정과 반감, 용서와 복수, 관대함과 인색함 등을 느낀다.


복음을 제시하는 것은 감정이 움직이도록 매우 신중하게 계획된다. 죄의 흉악함을 꺼내 보일 때는 죄에 대한 증오가 일어나서 혼을 가득 채울 것이다. 죄 가운데서 죽는 끔찍한 결과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묘사될 때는 이 무시무시한 운명에 대해 두려움을 두드러지게 느낄 것이다. 구세주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고, 대신 겪으신 지독한 고통에 대해 들을 때는 연민과 감사와 사랑으로 반응할 것이다. 구원의 방법이 단순하면서도 다정하게 제시될 때는 틀림없이 소망과 기쁨과 평안의 감정이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갈보리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듣고서 돌 같은 마음으로 남아 있을 사람은 없다. 호소하는 과정에서 설교자가 적극적으로 감정에 다가가는 모습이 뚜렷하다. 『지나가는 너희 모든 자들아, 이 일이 너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냐? 보라, 내게 있었던 나의 슬픔과 같은 슬픔이 있는지 살펴보라. 주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의 날에 그 슬픔으로 나를 괴롭게 하셨도다』(애 1:12). 그래서 복음의 전체 이야기는 지성을 일깨우도록 세밀하게 계획될 뿐 아니라 듣는 이가 전파된 메시지에 동의하도록 감정도 자극한다.


묶음 개체입니다.


3. 의지


1)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의지를 존중하시기에 절대 강압하지 않으신다. 즉 의지에 간절히 청하기는 하셔도 결코 강요하지는 않으신다. 구원은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계 22:17)가 대상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생명을 얻으려고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요 5:40)라며 통탄하셨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두고도 슬퍼하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또한 주님께서는 다음같이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또 죄인을 초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쉼을 주리라』(마 11:28). 주님은 이렇게도 선언하셨다. 『만일 누구든지 그분의 뜻을 행하려고 한다면, 그 교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내 자신에 관하여 말하는 것인지 알게 되리라』(요 7:17). 주님께서는 도둑이 아니시기에 억지로 밀고 들어가지 않으신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계 3:20). 이렇듯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에게 간곡히 말씀하시면서 경고하시지만, 구주로 신뢰하라고 그를 강제하지는 않으신다. 그것은 듣는 사람이 기꺼이 결심해서 이르는 결과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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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께서는 조건 없이 의지를 내놓기를 요구하신다. 의지는 “사람의 혼”이라는 성읍에서 하나님의 아들께 가장 마지막에 항복하는 요새다. 깃대에 백기가 펄럭이기 전까지는 구원을 경험하지 못한다. 복음을 설교하는 궁극의 목적은 늘 듣는 이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겠다고 확실히 결정하도록, 주님을 생의 주인으로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성으로 확신이 서고 감정도 동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구주요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자신을 드리노라고 의지가 분명히 움직여 그가 동의하기 전까지는 죄의 끔찍한 결과에서 구원받는 일이 실현될 수 없다. 『이제 내가 일어나서 내 아버지께로 가리라[will]』(눅 15:18). 탕자가 바로 이렇게 말했을 때 전쟁이 승리로 끝났으니, 한때 거만하고 고집스럽던 마음이 그제야 바닥까지 낮아졌다. 그리스도께서 희망을 잃은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서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요 5:8)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다음과 같이 물으셨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wilt]?』(요 5:6) 바디매오의 경우에도 그랬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wilt]?』(눅 18:41)


3) 그러므로 설교자는 그리스도에 대해 의지로 결단하라고 주님의 이름으로 요구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설교자는 자신을 지지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하』면 된다(벧전 4:11). 죄인은 무조건 항복하라는 이 요구에 맞서면서 저항하고 얼버무릴 길을 찾거나, 타협해서 체면을 살리고자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죄인이 계속 정면으로 마주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순전히 구주와 그 죄인 사이의 문제이므로 아무도 그를 대신해서 결정해 주지 못한다. 그의 마음이 다음처럼 외칠 때에야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


“내어 드립니다. 내어 드립니다.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습니다.
죽기까지 사랑하심이 날 굴복하게 만듭니다.
이제 정복자이신 주님을 소유합니다.”


4) 성과를 강요하는 과한 압력은 치명적인 전염병이기에 단호하게 피해야 한다. 구원 공식과 대량 생산 방식은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나 생명은 없는, 안 그래도 이미 넘치던 열매를 늘리는 데만 성공했다. 이런 것들은 영적인 위협이 되어 왔다. 응용 심리학을 기가 막히게 사용해서 만들어 내는 집단 히스테리와 한낱 감정에만 호소하는 방식이, 복음을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칠 때는 확실하게 퇴출돼야 한다.
이렇듯 복음을 제시하고 수용하는 데 있어서는 사람의 지성, 감정, 의지, 곧 인격 전체가 관여한다. 제대로 구원을 경험하려면 각 영역이 기준에 도달해서 주님께 이겨져 와야 한다. 우리가 인격 전체에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서 우리의 『직무를 완수』하기를 바란다(딤후 4:5).


5) 참된 설교인지 점검하려면 세 가지를 물어봐야 한다. 우선 설교가 “지성”을 일깨웠는가? 다음으로 “감정”이 움직이도록 의도되었는가? 마지막으로 “의지”로 결단하도록 요구했는가? 각 질문에 대해 답이 긍정적이라면 진정한 설교였다 하겠다. 듣는 이가 옳게 생각하고, 바르게 느끼고, 제대로 행동하게끔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지성”에 닿기 위해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게, 논리적으로, 실례를 들어가며 설교해야 한다. 또 “감정”이 움직이게끔 진정으로, 열렬하게, 진심으로 전해야 한다. 아울러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 “의지”가 함락되도록 담대하게, 신실하게, 권위 있게 설교해야 한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이란 지성으로는 확신하고, 감정으로는 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느낌을 받고, 의지로는 회심한 사람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거듭남”이라는 기적은 하나님께서만 일으키실 수 있다.


4. 성경에 나오는 “마음”에 관한 연구


성경의 많은 구절들에 “마음”이 등장하며, 그 각각을 살펴보면 사람의 인격 전체가 “마음”이라는 말과 연관됨이 명확해 보인다. “마음”은 때로 “지성”을, 간혹은 “감정”을 강조하는 자리에 나온다. 한편 “의지”가 지배적인 요소로 나타나는 경우에도 쓰인다.


성경에서 몇 구절을 찾아 어디를 강조하는지에 주의하여 읽어 보면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1) 사리를 판단하는 기능인 지성 혹은 생각의 자리에 : 누가복음 1:51,66; 2:35을 보라. 『너희 마음속에 무엇을 의논하느냐?』(눅 5:22), 『마음이 지혜로운』(출 28:3), 『현명한 마음』(출 31:6; 36:1).
2) 반응하는 기능인 감정 혹은 느낌의 자리에 : 『마음은 두려움으로 인하여 실신할』(눅 21:26),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마음의 큰 환난과 고통 속에서』(고후 2:4), 『마음에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슬픔이』(롬 9:2),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졌기』(롬 5:5).
3) 결단하는 기능인 의지의 자리에 : 『한마음과 한 혼이 되어』(행 4:32), 『굳센 마음으로』(행 11:23),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여』(롬 6:17),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엡 6:6), 『내 마음의 소원과』(롬 10:1).
4) 지성, 감정, 의지가 어우러진 자리에 : 고린도후서 4:6, 마태복음 12:34, 로마서 10:9 등.


『마음에 믿으면』(롬 10:9)에는 생각으로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는 “지성,” 동의한다고 반응하는 “감정,”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요 생의 주인으로 받아들임에 전적으로 찬성한다는 “의지”가 관여한다. 이렇게 이루어졌다면, 그 마음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왔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설교하기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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