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메인으로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6월호(통권 411호) 요약정보 및 구매

말씀보존학회 저

도서 선택옵션 0 개, 추가옵션 0 개

정가 3,000원
판매가 2,700 원  (10%↓ 300 원 할인)
배송비 3,000원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
품목정보
출간일 : 2026년 6월 1일
쪽수 : 96p
무게 : 160g
크기 : 153*223*6mm
ISBN : 9771228001100

선택된 옵션

  •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6월호(통권 411호)
    +0원
  • 상품 정보

    상품 상세설명

    2a809b59c594609c827e98cc917d9957_1779676609_3147.png










     
    그리스도인(Christian)은 글자 그대로 그리스도의 사람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머리에는 많은 왕관이 있고 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르며 피에 적신 옷을 입었는데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더라』(계19:12,13). 
    한글 개역성경은 신약성경만 하더라도 무려 2,000단어 이상이나 삭제되고 없다. 오역된 부분까지 합치면 성경이 아니다(그래서 '성서'라고 스스로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같은 원문에서 여러 가지 성경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성경이 130년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 성경을 대신하였기에 지금 우리가 거두고 있는 열매가 영양실조와 혼돈과 무질서 뿐인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제 주님 오실 날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의 정착과 바른 신학의 정립이다. 이러한 시점에 이르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라는 학회지를 발간하게 된 것은 우리들의 기도의 응답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이 나라 교회들의 성경지식이 이 학회지를 통하여 계속 성장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이 땅에 신학과 교리의 교통 정리자로서 그 몫을 다해 줄 것을 기대한다.

    상품 정보 고시

  •  3  정통교리강좌 / 구령의 열정

    11  신학 논단 / 주기도문 오독(誤讀)의 시대

    17  해외 기사 / 죽기까지 신실하라

    24  한국 교회 비평 / “성소수자”를 향한, 진리를 상실한 긍휼

    29  강단의 거성 / 하나님의 경이로운 일들을 숙고하라

    36  찬송시 / 그대 마음 주님 마음에 맞는가

    39  영원히 보존하신 말씀 /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삭제한 성서들

    45  신약교회사 /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사데 교회 (1)

    50  나의 사랑하는 책 / 존 W. 로렌스의 <추수의 일곱 법칙>

    55  기자의 논단 / 정치적 술수의 산물인 “니케아 신조”

    59  신학생 칼럼 / 예수 그리스도의 강건하고 훌륭한 군사

    65  나는 이렇게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되었다 / 천년왕국을 그리며

    71  세대주의 특강 / “주의 명절들”과 세대적 진리 (1)

    79  성경에 나오는 동식물들 / 사탄의 예표요 숭배 대상인 “소” (1)

    84  목회자 칼럼 / 목회를 시작하는 동역자에게 

    89  지상 강좌 / 소선지서 특강 - 호세아 (5) : 이틀 후에 회복되는 이스라엘


  • 하나님께서는 교황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박승용 / 성경침례교회 담임목사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니, 조금 있으면 하늘들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내가 또 한 번 흔들 것이요, 또 내가 모든 민족들을 진동시키리니 모구령의 열정

    의로운 자의 열매는 생명의 나무니, 혼들을 이겨오는 자는 현명하니라. (잠 11:30)

    박승용 / 성경침례교회 담임목사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옥을 향해 질주하는 불쌍하고 가련한 ‘혼들’(souls)을 하나님께로 ‘이겨오는 일’(winning)”이다. 이것이 바로 “구령”(Soul Winning)이다. “구령”은 일종의 “영적 전쟁”인데, 치열한 영적 전장에서 “구원받지 않은 혼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함으로써, 그 혼들을 사로잡고 있는 마귀들과 싸워 “이기고,” 그 혼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오는 일”인 것이다. 『그분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로부터 구하여 내셔서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으니』(골 1:13). “혼들을 구해 내는 과정”은 그 혼들을 장악하고 있는 『흑암의 권세』와 격렬하게 싸우는 과정이기에, 변개된 “개역개정판”이나 “개역한글판성경” 또는 “정동수”의 “흠정역”처럼, “win”이란 단어를 “얻다” 정도의 “사전적인 의미”로 번역해서는 “구령의 참된 의미”를 설명할 수 없다.


    언젠가 “경상북도 순회 설교”에서 여정을 함께했던 한 형제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목사님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하다가 하늘로 들려 올라가기를 원하십니까? 강단에서 설교하는 중에 올라가고 싶습니까, 아니면 기도하는 중에 올라가고 싶습니까? 아니면 성경 말씀을 가르치다가, 아니면 상담을 하다가, 아니면 지금처럼 순회 설교를 하다가 들려 올라가고 싶습니까?” 그전에는 “교회 강단에서 설교하는 중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 질문을 받았을 때는 “순회 설교를 하는 중에 들려 올라가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바뀐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순회 설교 둘째 날, 우리 일행이 단 한 명도 구령하지 못한 “경산 오거리”에서 설교할 때, 하나님께서 필자의 마음속에 불러일으키신 아주 “특별한 감정” 때문이었다. 그날 필자는 오전 내내 “달성군 화원역”을 시작으로 “수성구 범어역”까지 “대구”의 다섯 지역을 네 시간 정도 이동하면서 20분 분량의 설교를 5회, 곧 전체 “1시간 40분 동안”을 설교한 것인데, 그것도 마음이 가장 완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교했다. 첫째 날 일정에서는 설교에 경청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전도지도 잘 받아 가고 영접 기도도 따라 하는 등 복음을 전하기가 수월했다. 하지만 둘째 날 복음을 전한 “대구광역시”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사람들이 먹고살 만해서 그런지, 마귀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과, 단단하게 굳어 버린 완고한 마음속을 복음의 씨앗이 파고들어 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절감했다. 그래서 “죄에 대한 심판”과 “죽음과 지옥에 대한 두려움”에 관해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파해야만 했고 그만큼 필자의 온몸도 지치고 소진되어 갔다. 그야말로 치열한 “영적 전쟁”이었던 것이다. 

    묶음 개체입니다.



    그렇게 사투를 벌이듯 복음을 전하다가 “경산 오거리”로 온 것인데, 그곳 사람들 역시 들은 체 만 체했다. 날씨도,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오전과 달리 하늘에는 어느새 먹구름이 짙게 끼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했다. 설교하는 동안, 중간중간 ‘설교를 마칠 때까지는 비가 오지 않도록 비구름을 붙잡아 주옵소서.’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렇게 완고한 죄인들을 향해 좀 더 강력한 메시지를 담아 복음을 전하면서 몸과 마음이 서서히 지쳐 갈 무렵, 하늘에서 먹구름이 마구 일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로 격려하시며 위로를 주시는 것 같았다. “힘을 내라! 네가 설교하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고 있노라. 내가 네 설교를 기뻐하고 있으며, 너를 통해 영광을 받고 있도다!” 마침 “요한복음 3:16”의 말씀을 죄인들에게 선포하려 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감정과 확신 그리고 용기”에 힘입어,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라는 말씀을 더 우렁차게 외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저 옛날 완고한 유대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저 하늘에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던 “스테판”의 심경이 어떠했을지 느껴졌다.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특별한 감정”이었던 것이다.


    오래 전 어느 신문에 “비극적인 기사” 하나가 실렸다. “다섯 살 난 어린아이”가 평소에는 그토록 다정하게 지내던 자기 집 “큰 개”에게 물려 죽은 사건이었다. 그 개는 주인이나 자기 새끼도 문다는 성질 사나운 대형 “도사견”이었다. 이 난폭한 개가 아이를 물고 30분 동안이나 으르렁거리며 돌아다녔음에도, 주위에 있던 100여 명의 “방관자” 중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해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들은 “살려 달라”는 아이의 처절한 비명을 못 들은 척 외면하거나 눈앞의 광경이 너무나 무서워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야말로 매정하고 비정한 세태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두루』(벧전 5:8) 다니는 “마귀”는 그 포악한 “도사견”같이 수많은 죄인들의 혼을 물고는, 그들이 지옥으로 떨어질 때까지 잔인하게 으르렁대고 있다. 누가 “그들의 생명”을 건져 낼 것인가? 마귀에게 물린 자들이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그들을 외면하겠는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구원받지 않은 죄인들이 죽은 뒤에 어디로 가는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뿐 아니라 그들을 그 비극에서 건져 낼 방법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죽음으로 끌려가는 자들과 살해될 자들을 구해 주는 것을 삼가고 말하기를 “보라,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잠 24:11,12)라고 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런 성도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신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 어찌 주시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혼을 지키시는 분이 어찌 그것을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분께서 각자의 행위에 따라 보응하지 않으시겠느냐?』(잠 24:12) “구령의 열정”도 없고, 복음 전파에 관심조차 없는 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죄인들이 지옥에 가지 않을 것처럼 처신한다. 이 시대의 매정한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세상이 깨닫지 못한 진리를 알고 있음에도, 세상과 잘 지내기 위해, 괜히 복음을 꺼냈다가 어색한 관계가 되는 게 싫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 양 비겁하게 살아간다. 죽음으로 끌려가는 죄인들이, 바로 오늘 저녁에 함께 식사했던 그 죄인들이 내일 아침에도 과연 살아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가? <구령의 열정>의 저자 “오스왈드 스미스”는 이렇게 외쳤다. “사랑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사랑하던 사람이 죽어 집을 나서는 상여를 바라볼 때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럴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고귀한 혼들이 우리 주위에서 암흑과 절망의 어둠 속에 빠져 영원한 파멸로 치닫고 있음을 보면서도, 아무런 고통이나 아픔도 느끼지 않고, 눈물조차 흘리지 않은 채,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 버린 이 현실을 보라! 분명 하나님께서는 그런 연민의 마음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지만, 항상 그런 애통함을 간직하며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잘못이다.”


    “알렉산더 더프” 목사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중단하는 교회는 머지않아 ‘복음적인 교회’로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으며, “진젠도르프”는 “나는 나 자신의 개인적인 목표와 관계없이 복음을 선포하도록 운명이 정해졌다.”라고 말했다. “요한 웨슬리”는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듣기 원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나는 이것을 나의 고귀한 의무로 여긴다.” 영국의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는 “천사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 오직 ‘바울’과 당신, 그리고 나 같은 존재들만 복음을 전할 수 있다.”라고 했으며, “스코트” 목사는 “교회에 명령이 떨어졌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지체하는 것은 명백한 불순종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복음 전도자 “윌버 채프만”은 이렇게 말했다. “교회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프로그램이나 전략들 따위가 필요하지 않다. 교회 안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성경을 통해 배운 진리의 말씀대로 삶 속에서 실제로 살아 내는 것이다.” 

    묶음 개체입니다.



    앞서 언급한 “오스왈드 스미스”는 이렇게 탄식했다. “우리는 수많은 교회 활동 때문에 지칠 정도로 일하지만, 정작 교회의 진정한 임무인 복음을 전파하고 잃어버린 혼들을 주님께로 이겨오는 일은 거의 소홀히 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부끄러운 교회들의 현주소”이다. 또한 출산 장려금을 쥐여 주고, 집을 지어 주며, 노숙자들에게 밥을 퍼 주고, 불우 이웃을 도와주며, 동성애자들을 보호하고, 독거노인들에게 김치를 담가 주거나 연탄을 배달해 주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는 교회들을 향한 엄중한 경고이다. 특히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 채, 세상 정욕들로 마음을 채우고 있는 모든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경고이기도 하다. 

    묶음 개체입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 속에서, 1846년부터 “인도의 복음화”를 위해 자신의 일생을 온전히 바친 “로열 와일더” 목사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미들베리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세상에서 부와 명예가 보장된 탄탄한 앞날을 뒤로한 채 “앤도버신학교”를 거쳐 “인도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는 인도의 3,000여 개 마을을 30년 이상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했는데, 그가 배포한 전도지는 3백만 장에 달했다. 또한 그는 거리를 배회하는 3,300명의 아이들을 교회와 선교 학교로 데려와 가르치기도 했다. 그 결과 수많은 혼들이 구원받을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폰 웰츠” 남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이후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귀족’의 위치에서 내려와, 평생을 종으로 섬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겠다!” 이에 그는 “남작의 지위”를 버리고 부동산과 재산을 모두 포기한 채 척박한 “남미”의 “수리남” 땅으로 들어가 원주민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면서 주님을 섬겼다. “그의 고백”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내가 하나님의 종이 되었는데, 내게 섬기는 일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리요? 모든 허영심을 버리고, 오직 주님의 발아래에만 거하며 모든 것을 바치겠다.”


    “물 건너 생명 줄 던지어라. 누가 저 죄인을 구원하랴. 멸망 중에 빠진 죄인이니, 이 생명 줄을 누가 던지려나(1절). 너 빨리 생명 줄 던지어라. 형제여, 왜 지체하고 있나. 보아라, 죄인들 떠나간다. 이 ‘구조선’ 타고서 속히 가세(2절). 시급히 생명 줄 던지어라. 극심한 고난을 당하누나. 사망의 바다와 세상 물결, 저 캄캄한 곳으로 쉬 가겠네(3절). 이 세상 풍파는 쉬 지나고, 건너편 언덕에 이르리니, 형제여, 왜 지체하려느냐. 이 생명 줄 던져서 구원하게(4절). 생명 줄 던져, 생명 줄 던져, 물속에 빠져 간다. 생명 줄 던져, 생명 줄 던져, 지금 곧 던지어라(후렴)”(찬송가 <영광을 주께>, 475장). 이 찬송가는 1888년 미국의 침례교 목사 “에드워드 어포드”가 작사, 작곡한 곡이다. 그는 “보스턴” 부근의 작은 마을 “웨스트우드교회”에서 사역하던 1886년 어느 날, “난타스켓” 해변의 “해난구조본부”에서 구조대원들이 “난파선 승객들”을 구출하기 위해 “생명 줄을 던지는 훈련 장면”을 목격하고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생명 줄을 던져라!” 하면서 크게 소리치는 구조대원들의 외침을 가사에 그대로 담아낸 것인데, 이 찬송의 절박한 외침처럼 우리 모두는 죄인들이 “불못,” 곧 영원한 “불바다”로 던져지기 전에 그들을 속히 구해 내야 한다.


    여러분은 “영원한 불못”으로 끌려가는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이 현재 얼마나 위험천만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한번은 “어떤 목사”가 “이제 곧 ‘급행열차’가 지나갈 선로 위에서 ‘술’에 취해 깊이 잠들어 버린 사람”에 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회중들에게 “만일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 직면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엄숙하게 물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일어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가장 먼저 그 술 취한 사람을 선로 밖으로 끌어낼 겁니다. 물론 곱게 다룰 수는 없겠죠.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러서 차분하게 걸어 나오게 할 수도 없을 겁니다. ‘정신을 차려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그의 멱살이라도 거칠게 움켜잡고 끌어내야 할 겁니다. 설령 너무 힘에 부치고 지쳐서 그 사람 옆에 주저앉게 된다 해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끌어낼 겁니다.” 그러자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 상태가 바로 사망과 지옥으로 끌려가는 모든 혼들이 처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들은 선로에 쓰러진 채로 깊은 잠에 빠져 있으면 안 됩니다. 이제 곧 하나님의 심판의 열차가 당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내게 자랑할 것이 없으니 이는 내가 부득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정녕 내게 화가 있으리라! 내가 기꺼이 이 일을 하면 상이 있으려니와 기꺼이 하지 아니한다 해도 복음의 경륜이 내게 맡겨졌음이라. 그렇다면 내 상이 무엇이냐?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복음으로 인한 내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아니하는 것이로다』(고전 9:16-18).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부득불 해야 할 일』이다. 절대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불가피한 일”이며, 극심한 두려움과 강한 압박이 밀려오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고, 물러설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심지어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지 않을 때 그에게 “화”가 미칠 것으로 여겼다. “구령의 열정”이 없는 성도는 “깊은 잠에 빠진 성도”이고, “구령의 열매”가 없는 교회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죽은 교회”이다.

    “신실한 구령자”의 “복음 전파”를 통해, 죄인들이 돌이켜 회개의 진실한 눈물을 흘리고, 마시던 술병을 내던지며, 창녀 짓을 청산하고, 도박과 폭력을 멈추며, 자살의 늪에서 벗어나 추악하고 가증스러운 행위를 중단하는 “기적”을 본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여전히 안일하게 앉아만 있겠는가?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신의 혼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막 8:36) 한 사람의 혼은 세상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가치를 지녔기에, 우리가 구령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럽고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령의 열정”을 품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가 돼라. “눈물”로 씨를 뿌리고 “귀한 씨”를 가지고 나가서 울라!(시 126:5,6) 열정이 식었다면, “구령의 열정”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라. 『현명한 자들은 창공의 광명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의로 돌이키는 자들은 별들처럼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단 12:3). BB
     

    든 민족들의 열망이 이르리라. 그러면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채우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이 나중 집의 영광이 먼저 집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이곳에 내가 화평을 주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학 2:6-9).


    『복되시고 유일하신 통치자시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딤전 6:15)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보좌에서 일어나셔서 흰 말을 타고 “유리 바다”를 통과하여 온 우주를 가로질러 이 땅에 내려오실 때, 『하늘들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흔드시고 『모든 민족들을 진동』시키실 것이다. 그러면 바로 그 재림의 날에 모든 민족이 그토록 염원해 왔던 “열망”이 이르게 될 것이다. 『모든 민족들의 열망』이 무엇인가? 목사들과 신학자들 대부분이 착각하고 있듯이 『모든 민족들의 열망[the desire of all nations]』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바로크 시대에 아주 훌륭한 그리스도인 작곡가였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예수는 만인의 기쁨”(Jesu, Joy of Man’s Desiring)이라는 작품을 작곡했는데, 그는 『모든 민족들의 열망』을 “예수 그리스도”로 오해해 버렸다. 차분한 마음으로 잠시 생각해 보라! 이 땅에 죄가 들어와 인류가 “타락과 멸망의 길”로 나아간 이래로 지난 6천여 년 동안, 과연 어떤 민족이, 어떤 나라, 어떤 국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열망해 왔단 말인가?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을 잊어버린 역사”였지,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열망해 온 역사”가 아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소수”에 불과했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간절한 열망”이 그랬던 것인지, 언제나 “다수”의 위치에 있었던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오하면서, 그분을 “인류의 역사” 바깥으로 계속 밀어내기만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모든 민족들의 열망』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화평』이다! 『이곳에 내가 화평[peace]을 주리라』(학 2:9).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민족은 국가 간의 대립보다는 “세계 평화”를 열망한다. 1901년 이래로 모든 교황은 “이 땅의 화평”을 위해 기도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위선자들의 기도에 경청하시지도, 응답하시지도 않는다. 특히 “이 땅의 화평”은 인간들의 힘과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세 “암흑시대”에 일어났던 “제5차 십자군 전쟁 당시”(1217-1221), “로마카톨릭”의 유럽 사회에서 매우 유명해진 “이탈리아”의 “수도사”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Francis of Assisi)이다. 그는 기나긴 “십자군 전쟁”으로 시달리고 있던 유럽 각국의 백성들을 위해, “전쟁 무기”가 아닌 오직 “사랑과 평화의 도구”로 혈혈단신 “모슬렘 진영”에 들어가 “이슬람교의 수장”인 “술탄”을 만나 그를 개종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때 그가 했던 말은 오늘날 노래로 회자되고 있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라는 가사에 잘 담겨 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생명을 얻나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물론 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비록 무위에 그친 일이었지만, 당시 오랜 “십자군 전쟁”으로 지쳐 있던 유럽 사회에서는 상당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노랫말은, 그 안에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구원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가증한 “행위 구원”의 교리가 담겨 있고, 특히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성경적 진리”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국방부 장관인 “피트 헤그세스”가 “이란 전쟁” 관련 “브리핑 기자 회견”에서 “자비를 베풀 가치가 없는 자들(‘이란’)을 향해 ‘압도적인 폭력의 행동’을 내리소서. 사악한 혼들이 그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저주’로 넘겨지게 하소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라고 말하여 세간에 논란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특히 그는 이 발언을 하면서 시편 18:37을 인용하기도 했다. 『내가 내 원수들을 추격하여 그들을 따라 잡았으며 그들이 진멸되기까지는 내가 돌아오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야말로 “아전인수 격”의 지극히 사사로운 적용인데, 이는 이 구절이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문맥”이기 때문이다.


    성경으로 시작한 나라 “미국”이 하나님과 성경을 버리고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도 “미국”을 버리셨다. 과연 그러한 미국이 원수들을 추격하여 따라 잡을 수 있겠으며, 또 원수들을 진멸할 수 있겠는가? 한때 “세계 정상의 위치”에 있었던 “영국”과 “독일”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쳐부술 수 있었던 “미국”은 “매사추세츠 주”보다 작은 “한국”과 “베트남”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고 대규모의 손실을 겪고 말았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야심차게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이지만, 그의 미국은 작금에 벌어지는 “이란과의 전쟁”에서 예상치 못한 끈질긴 저항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급등한 유가”와 그에 따른 “지지율 하락”도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하지 못하다. 앞으로도 과거처럼 위대해질 수 없다! 『의는 민족을 높이지만 죄는 모든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 14:34). “피터 럭크만”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끝났다.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요나 3장’에서처럼 대통령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인데(6-10절), 그럴 가능성은 너무 희박해서 도박꾼이라도 이런 확률을 가지고는 단돈 1달러도 걸지 않는다. 그러나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당신이 한 개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그 의로움을 견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행 26:18) 돌이키라는 것이다.”


    한편 지난 4월 1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부활절” 관련 오찬 행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목사들이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트럼프의 승리”에 비유하는 신성 모독적인 발언을 쏟아 냈다. 백악관 “신앙 사무실”의 수장이자, “번영 신학자”인 “폴라 화이트” 여자 목사는 “트럼프” 대통령을 극찬하며 다음과 같이 대표 발언을 했다. “당신은 배신당했고, 체포되었으며, 거짓으로 기소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신 구원자께서 몸소 보여 주신 ‘익숙한 패턴’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역사가 거기서 끝나지 않았듯이, 당신의 역사 또한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셨고, 악을 물리치셨으며, 죽음과 지옥과 무덤을 정복하셨습니다... 대통령이여, 주님의 부활 덕분에 당신 또한 일어났습니다. 주님이 승리하셨기에 당신도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주님께서 당신에게 이 말씀, 곧 ‘주님의 승리 덕분에 당신이 손을 대는 모든 것마다 승리할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음을 확신합니다.” 정말로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가?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 마귀 들린 은사주의 “거짓 목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가 말하노라. 그들의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신다.” 하는 그 선지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 주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꿈들을 예언하고 그들에게 말하여 그들의 거짓말들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그릇되게 하는 자들을 내가 대적하노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도, 그들에게 명령하지도 아니하였으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전혀 유익이 없으리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그 집을 벌하리라... 너희는 “주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다시는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신의 무거운 짐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주 우리 하나님의 말씀들을 변질시켰음이라... 내가 너희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너희와 내가 너희 조상에게 준 이 성읍을 버리며 내 앞에서 너희를 내버리리라. 또 내가 영원한 책망과 영속하는 수치를 너희에게 가져오리니 그것은 잊혀지지 않으리라』(렘 23:31-34,36,39,40).



    그녀의 발언에 이어 단상에 선 “프랭클린 그레이엄”(배교자 “빌리 그레이엄”의 아들) 목사는, “트럼프” 대통령을, “페르시아”인 “하만”의 계략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 낸 “에스더”에 비유하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주님께서는 ‘에스더’를 통해 페르시아인들, 곧 이란인들이 단 하루 만에 모든 유대인 여인들과 아이들을 살육하려 했던 역사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유대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에스더’를 일으키셨습니다... 오늘날 이란의 사악한 정권이 원자탄의 불길로 모든 유대인을 살해하고 멸절시키려 함에도, 주님께서 ‘트럼프’ 대통령을 일으켜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이런 때를 위하여 그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 군대를 굽어살펴 주옵소서. 저 이슬람 미치광이들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하는 이란 국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특히 그는 2025년 10월 15일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휴전과, 인질들이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놀라운 성과입니다. ‘당신의 리더십’은 역사적입니다. 이것은 많은 기도에 대한 응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마 5: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통령이여, 바로 당신이 그런 사람입니다. 이번 주, 당신은 언론에서 ‘자신이 천국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농담으로 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당신의 혼이 안전하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영원을 보낼 것인지’를 확실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기서 언급한 “언론”은 2025년 10월 13일에 있었던 “인터뷰 내용”을 가리키는데,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 지구 휴전 합의 중재로 하늘나라에 갈 가능성이 커졌다고 봅니까?”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하늘나라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아마도 나는 천국행은 아닌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원 문제”는 차치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화평케 하는 자』가 아닌 것은 매우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소위 “복음주의 진영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가 공개적인 석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라!”라고 강력히 촉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듣기에 좋은 말만 늘어놓는 기도”를 했다는 것은 책망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은사주의 목사,” 그것도 성경에 나오지 않는 “여자 목사” 뒤에 서서 그녀와 자리를 함께한 것은 실로 추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과연 하나님께서 “성경적 성별”을 올바르게 실천하지 않는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시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목사들, 특히 “국방부 장관”을 염두에 두고 때 아닌 쓴 소리를 낸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교황 “레오 14세”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앞선 “배교자들”의 발언과 기도만큼이나 “교황”의 발언과 기도를 거들떠보지 않으신다. 교황은, 지난 3월 29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성지주일”(聖枝主日, 부활절 전 주일) 미사에서, 성경에도 없는 “삼종기도”(三鍾祈禱,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를 공경하는 뜻으로 아침과 낮과 저녁에 종을 세 번 칠 때마다 드리는 기도)를 하면서 이렇게 강론했다. “오늘날 세상을 보십시오. 평화를 말하면서 한 손에는 살상 무기를 들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전쟁을 축복하는 위선이 가득합니다. 최근 미국의 어떤 이들은 ‘미국을 위해 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을 전합니다...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폭탄에 축복을 내리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타국을 유린하며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십니다. 피 묻은 손으로 올리는 기도는 결코 하늘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참된 평화는 압도적인 화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자기희생과 용서에서 나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 살육의 기도를 멈추고, 평화의 왕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교황,” 당신이나 “의의 왕” 앞에 무릎 꿇기 바란다!


    아주 그럴듯해 보이는 강론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로마카톨릭”과 “교황”의 “위선”과 “가면”을 잘 알고 계신다. 왜냐하면 지상 최대의 “종교적 위선자”요, “사기꾼”인 “교황”을 수장으로 삼고 있는 “로마카톨릭”은 지상 최고의 “거짓말쟁이”이자, “살인자 집단”이기 때문이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래로, “로마카톨릭”은 오직 기만, 사기, 공갈, 부정, 교활, 아첨 등의 “거짓말”을 통해 자기들의 실체를 철저히 가려 왔고, 고문, 협박, 투옥, 추방, 전쟁 등의 “살상”을 도구로 하여 자기들의 정치적 입지와 종교적 조직을 강화하고 유지해 왔다. 특히 상황이 불리하다 싶으면 다음과 같은 전략을 즐겨 사용하는데, 거짓말로 자신의 적들을 매수하거나 적절한 타협을 위해 “평화를 위한 협상의 자리”로 그들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충분한 정치적 권력과 그것을 행사할 수 있는 권세를 확보했을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로마카톨릭에 위협이 되는 자들에 대해 “무자비한 살상”을 저지른다. 그래서 정권을 장악한 교황들은 “이단 사냥”이란 명목으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도나티스트, 폴리시안, 알비겐스, 왈덴스, 재침례교도 등)을 서슴없이 죽였다. 로마카톨릭의 “살인마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높은 절벽에서 내던져 산산조각 나게 했고, 동굴로 피신한 그리스도인들을 동굴 입구에 장작불을 피워 연기에 질식시켜 죽였다. 비틀거리는 노인들과 어린이들을 목매달아 죽였고, 찢어 죽였으며, 창자를 꺼내기도 했고, 쇠스랑으로 찔러 죽였으며, 물에 빠뜨려 죽였고, 칼로 찔러 죽였으며, 개들이 물어뜯게 해서 죽였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못 박아 죽이기도 했다.


    “로마카톨릭”이 전면에 내세우는 “평화”는 “연막”에 불과하다. 오늘날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고 떠들어 대는 “교황들”이나 “종교 통합과 평화”를 외치는 “로마카톨릭”의 거짓말 이면에는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고 반대하는 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죽여야 한다는 “살인적인 의도”가 내포되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들이 자기 이웃들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해악이 있나이다』(시 28:3).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를 숭배하는 이단자, “교황”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성경 위에 군림해 있는 “교황”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율법을 듣는 데서 귀를 돌이키는 자는 그의 기도마저도 가증한 것이 되리라』(잠 28:9). BB
     

  • 도서리뷰

    등록된 도서리뷰

  • 배송/교환정보

    배송

    로젠택배 배송

    배송비 : 2만원 이하 3천원 


    교환

    반품/교환 방법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