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통교리강좌 / 칼빈주의 예정론 vs. 성경적 예정론
9 해외 기사 /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16 강단의 거성 / 그날 이후로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24 특집 소개 / 중동의 화약고, 이스라엘과 이란
25 특집 1 / 역사의 중심 “이스라엘”
31 특집 2 / “밀월”에서 “증오”로 변한 이스라엘-이란 관계
37 특집 3 / 모사드(MOSSAD) : 이스라엘의 보이지 않는 방패
43 특집 4 / 성경의 눈으로 읽는 “이란의 최후”
50 찬송시 / 네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라
52 신약교회사 / 자칭 여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한 두아티라 교회 (2)
57 영원히 보존하신 말씀 / “금식” 없이도 마귀들을 쫓아낼 수 있는가?
62 세대주의 특강 / “요한복음”과 세대적 진리 (4)
68 BB 쉼터 / “모래”에게도 “마음”이 있다면
71 변개된 구절들 / “책”인가, “두루마리”인가?
75 신학생 칼럼 / 사슬에 묶인 그리스도의 대사
80 이단 비평 / 성경을 “난도질하는” 극단적 세대주의 (2)
86 목회자 칼럼 /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
91 지상 강좌 / 소선지서 특강 - 호세아 (3) : 내 백성이 지식의 부족으로 멸망하는도다
박승용 / 성경침례교회 담임목사
캐나다 출신의 “생리학자”이자, “인류학자”요, “신학자”였던 “아서 커스턴스”(Arthur C. Custance, 1910-1985)는 “칼빈주의 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론”을 옹호하는 저작을 남겼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소위 “칼빈주의 5대 강령”(TULIP)은 “존 칼빈”(1509-1564)이 주장하기 1,100여 년 전에 이미 “어거스틴”(354-430)에 의해 확립되었다. 실제로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께서는 멸망하게 될 것을 예지하신[미리 아신] 사람들도 창조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려고 하셨기[미리 정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려고 했는지는[미리 정하셨는지는] 우리가 물어보아야 할 사안이 아니다[말하자면 ‘어거스틴’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주장한 것임]. 이는 우리로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자유 의지”(free will)를 부인했고 성경적인 개념의 “전적 타락”이 아닌 비성경적이고 비상식적인
“전적 무능력”을 믿었다[제1강령 :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이에 그는 “만일 당신이 믿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당신이
이미 하나님께서 정하신 파멸의 상태에 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무조건적인 선택”을 가르쳤다[제2강령 :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또한 무조건적으로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구속의 목적을 제한시켰고”[제3강령 :
“제한된 속죄”(Limited Atonement)], 사람이 회개하고 믿기 전에 먼저 “거듭나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가까이
부르실 때는 사람들의 뜻에 따라 부르시는데, 그 뜻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제4강령 : “저항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 마지막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구원을 견인하지 못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부인함),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선택받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은 상태로 죽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으나, 언제든지 죽기 전에 구원을 다시 받을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가 된다[제5강령 :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한편 “예정론”은 앞서 언급한 “무조건적인 선택”이라는 거짓 교리에 기초하고 있는데,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과
“멸망받을 사람”을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그분의 주권적이고 영원한 판결에 의해 미리 정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거짓 교리와 관련하여
“칼빈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놓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원한 선택’으로 ‘하늘나라의 후사’를 정하시고, 말씀의 씨를 뿌리시고,
뿌리를 내리게 하시며,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러나 ‘버림받은 자들’은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깨닫지도 못하며 멸망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는가? 거기에는 오직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뜻’만 있을 뿐이다. 우리의 생각은 미천하고 어리석어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행하심을 따라갈 수 없다(사 55:8,9). ‘선택과 예정’은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자비하심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최상의 삶의 자세이다”(존 칼빈). “선택이란, 인류 가운데 얼마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류 가운데 일부만을 구원하기로
목적하셨다는 말은, 그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구원하시지 않기로 목적하셨다는 것을 보여 준다”(루이스 벌코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하나님의 판결에 의해 ‘영원한 생명’으로 예정하셨고, 나머지는 ‘영원한 죽음’으로 예정하셨다”(R.L.
대브니).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들’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주권적으로 예정하셨다”(헤르만 혹세마). “바울 서신은 예정의 위대한
교리를 반복해서 가르친다. 사실 ‘바울’이 가르친 모든 것은 예정에 관한 교리의 기초를 형성한다”(J. 그레샴 메이첸). “선택의 교리를
‘바울’보다 더 쉽고 강력한 언어로 말한 사람이 있겠는가?”(로레인 뵈트너)
이보다 더 “비성경적이고 마귀적인 가르침”이
있겠는가? 결코 “바울”과 “바울 서신”은 “칼빈주의 예정론”을 가르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거부한다! 만일 그런 거짓 교리를 가르쳤다면
다음과 같은 말씀들은 성경에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약한 사람들에게 약한 사람같이 된 것은 약한 사람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을 구원하고자 함이라』(고전 9:22). 창세전에 이미 “구원받을 사람”이 정해져 있다면,
죄인들을 이겨오기 위해 그토록 애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는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명의 스승을 가졌을지라도 아비들은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존 칼빈”의 주장대로,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의 후사들”을 이미
정해 놓으셨다면, “복음을 통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낳았다”고 발언하는 “바울의 고백”은 매우 불경스러운 것이 된다.
심지어 “바울”은 죄인들이 구원받을 수 있게 하려고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을 애써 “설득하기까지” 했다. 『그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변론하며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설득시키니라』(행 18:4). 『바울이 회당으로 들어가서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니 석 달 동안이나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변론하고 설득시키더라』(행 19:8). 『그대들이 보고 들은 바와 같이 이 바울이 에베소뿐만 아니라 아시아 온 지역에서 손으로 만든
것은 신들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을 설득하여 돌아서게 하였으므로』(행 19:26). 『그러자 아그립파가 바울에게 말하기를 “네가 나를 설득시켜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하니』(행 26:28). 『그후 그들이 그와 날을 정하여 많은 사람이 그의 숙소로 찾아오니 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또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로써 예수에 관하여 그들을 설득시키더라』(행 28:23).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영원한 판결”에 의해,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죽음”으로 예정되어 있다면, 왜 굳이
“바울”은 죄인들을 이겨오기 위해 애를 쓴 것인가?
심지어 그 일을 위해 “목숨”을 걸었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러나 나의 달려갈 길을 기쁨으로 끝마치고 내가 주 예수로부터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일을 전혀 개의치 아니할 뿐 아니라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노라』(행
20:24). 도대체 왜 “바울”은 『많은 인내와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맞음과 갇힘과 소요와 수고와 깨어 있음과 금식』(고후 6:4,5) 등을
감수하면서까지 애써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려 했던 것인가? “칼빈주의 예정론”으로 “바울”을 조명해 보면, “바울”은 무척 “불쌍하고
처량한 사람”이 된다. 쓸데없는 노력으로 인생을 낭비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칼빈주의 예정론”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어리석은
군상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라. “칼빈주의 예정론대로라면, 창세전에 이미 ‘구원받기로 선택된 사람’은 어차피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사람이니, 지금 당장 긴급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걱정할 게 없고, 또 술 마시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살인을 저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반면, ‘지옥에 가기로 예정된 사람’은 구원받기 위해서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아우성치고 발버둥 쳐도 어차피 지옥에 가야
하기에 아무 소용도 없다고 느끼게 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해 해명할 수 있겠는가?” 또한 “오늘 이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한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 ‘나는 네가 하늘나라에 가도록 선택한 적이 없노라.’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성경적 예정론”은 “칼빈주의 예정론”과 확연하게 다르다. 우선 “칼빈주의자들”이 “예정”과 관련하여 자주
오용하는 두 본문이 있다.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예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 가운데서
첫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하여 예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입양할 것을 예정하셨으니... 모든
것을 그 자신이 의도한 대로 행하시는 이의 목적을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그분 안에서 유업을 받았으니』(엡 1:5,11).
그런데 “칼빈주의자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위 본문들 중 그 어디에도 “어떤 사람이 창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한 예정,”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미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은 성도들’이 ‘입양될
것’이라는 예정”만 언급된다. 물론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난 순간에 『양자 되는 영』(롬 8:15)을 받음으로써 “양자로서의 자격”을 이미
갖추었다. 그래서 우리가 “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롬 8:15)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양자가 되는 시기”는 이제
곧 일어날 “휴거 때”이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의 “몸”이 “구속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은 거듭나고, “혼”은 구원받았어도, 우리의
『죄의 몸』(롬 6:6)은 여전히 구속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되는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롬
8:23) 있다. 그날이 올 때, 우리는 『몸의 구속』을 받아 영원토록 『썩지 아니할 몸』과 『죽지 아니할 몸』을 입게 되고(고전 15:53),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들』(롬 8:17)로서, 곧 “양자”로서 “상속의 권리”를 누리게 된다.
그래서 “에베소서 1:5”에서는 “이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입양할 것을』 “예정했다”고 말씀하는
것이고, 또 “로마서 8:29”에서는 그러한 “입양”을 위해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는 일, 곧 『몸의
구속』(롬 8:23)을 “예정했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특히 “로마서 8:29,30”에서는 “구원과 연관된 일련의 사건들의 순서”를 보여 주고
있다. 우선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게 될지에 관한 “하나님의 미리 아심”이 있다(벧전 1:2, 엡
1:4). 다음으로 “미리 아심”에 따라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일치될 것이 “예정”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엡 1:4) 선택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입양』(엡 1:5)될 것이 “예정된 사람들”을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롬 8:30) 하신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 예정론”이다. 지금 당장 “칼빈주의 예정론”을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리고
“성경적 예정론”을 믿기 바란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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