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적절한 교리와 교훈이 가득찬 이 책들은 신약 성경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중요한 기둥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별히 베드로는 변형산에서 주님의 영광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부인했었으나, 바닷가에서 다시 만난 주님으로부터 다시 부름받음으로써, 그때 받은 목양의 사명이 그의 글에 여실히 묻어 나 있다. 따라서 베드로 전서에서 목자들에게 주는 교훈은 모든 사역자들에게 귀한 지침이 될 뿐 아니라, 오늘날의 모든 목자들의 귀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 모든 교리와 교훈들이, 때로는 환란과 재림을 다룸에 있어서 다소 난해하다고 여겨졌던 교리들이 이 주석서에서 피터 럭크만 박사의 명석한 해석으로 명확하게 풀리고 있다. 또한 본서는 피터 럭크만 박사의 강의 테잎을 직접 옮긴 것이기 때문에 그 말투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강의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독자들의 눈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 크게 열리게 될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이며 초대 교회의 기둥이었던 베드로 사도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보자.
이 책을 내면서 / 3
베드로전서
서문 / 7
베드로전서 1장 / 9
베드로전서 2장 / 66
베드로전서 3장 / 129
베드로전서 4장 / 194
베드로전서 5장 / 239
베드로후서
서문 / 258
베드로후서 1장 / 262
베드로후서 2장 / 326
베드로후서 3장 / 369
서문
서문
베드로전서 서문
베드로전서는 전체 5장 105절로 되어 있고,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경우 전체 2,482개의 단어로 기술되었다. 시몬 베드로에 의해 기록된 이 서신서는 대략 A.D. 60년경으로 그 기록 연대를 잡는 게 보통인데, C. I. 스코필드 역시 여기에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이 만약 벌링거 파(派) 사람이거나, 혹은 오헤어나 스탬 같은 사람들의 추종자라면, 당신은 필경 베드로전서가 야고보서와 마찬가지로 유대인에게 보낸 서신서라고 배웠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배웠다면 당신은 아주 잘못 배운 것이고 그들은 당신에게 아주 잘못 가르친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전서 3:21을 읽으면서 “물침례 구원”을 정당화하는 구절로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경을 조금만 제대로 읽는 사람이라면 베드로전서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서신서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금만 올바른 관점을 갖고 성경을 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베드로전서 3:21이 “물침례” 구원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이 오헤어든, 스탬이든, 베이커든, 아무튼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필경 베드로전서 3:21을 물침례 구원설을 정당화시키는 근거 구절로 받아들일 뿐더러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베드로전서가 유대인에게 보낸 편지라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일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당신은 그 어처구니없이 잘못된 생각 때문에 조만간 아주 골치 아픈 문제에 부딪치게 될 텐데, 당신이 정신나간 사람들을 추종하고 그들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바람에 스스로 자초하게 된 그 골칫거리가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1절에서부터 당신을 곤경에 빠뜨린다.
자, 그럼 이제 그 1절부터 읽어 보라.
책 속으로
책 속으로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폰토, 갈라디아, 캅파도키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타국인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케 하심을 통하여, 순종함과 예수 그리
스도의 피뿌림으로 택함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충만할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폰토, 갈라디아, 캅파도키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타국인들』(1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시몬 베드로는 지금 이 편지를 누구에게 써 보낸다고 말하고 있는가? 어디어디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에게”라고 과연 밝히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베드로는 지금 어디어디에 흩어져 있는 “타국인들에게”(to the strangers)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에 야고보서 1:1은 뭐라고 돼 있는가? 『널리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라고 언급하고 있다. “열두 지파”라면 누구를 말하는가? “열두 지파”라면 성경에서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유대인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여기 베드로전서 1:1은 “유대인”도 아니고 “열두 지파”도 아닌 『타국인들』에게라고 명백하게 적고 있다.
그렇다면 “타국인들”은 누구를 말하는가? “타국인들”(strangers)이라는 단어는 구약 중에서도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서부터 나오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인들”을 일컬을 때 성경이 사용하는 단어다. 지금은 “외국인들” 또는 “타국인들”을 영어로 표기할 때 보통 “foreigners”라는 단어를 쓴다. 가끔 “aliens”라는 단어를 쓰기도 하지만, 이것은 요즘에 와서 “외계인들”이라는 의미로 자주 쓰이기 때문에 지구상의 외국인들에게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잘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외국인들을 유대인의 입장에서 “타국인들”이라고 말하고, 영어로는“strangers”라고 쓴다. 원래 “낯선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단어는 『타국인들』 외에도 “나그네들,” 또는 “여행자들”이라는 의미로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다.
『타국인들』이 교리적으로는 유대인 사회에 들어와 사는 비유대인들, 유대인과 함께 살기는 하되 유대인들이 아닌 사람들, 곧 유대인들과 섞여 사는 이방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물론 유대인들도 남의 나라에 살면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타국인들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여러 가지 율법들을 주시면서 유대인들이 자기네들 속에 들어와 함께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방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타국인을 학대하거나 압제하지 말라. 이는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타국인들이었음이라』(출 22:21). 이집트인들의 입장에서는 이집트 땅에 살던 유대인들이 “외국인들,” 곧 『타국인들』이었다. 그 반면에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이집트인들이 『타국인들』이요, 이방인들이었다.
그런즉, 유대인인 베드로가 여기 1절에서 『폰토, 갈라디아, 캅파도키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타국인들』이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이들 각 지방에 흩어져 사는 그 지방 사람들, 즉 폰토에 사는 타국인들과 갈라디아에 사는 타국인들, 캅파도키아에 사는 타국인들과 아시아에 사는 타국인들, 그리고 비두니아에 사는 타국인들을 일컫는 게 분명하다. 이들은 비유대인들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볼 때 유대인이 아닌 사람은 누구나 다 타국인일 수밖에 없다. 교리적으로 성경에서 “타국인”이라는 말은 곧 “비유대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성경에서 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이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일컬어 “타국인들”이라고 부르는 예는 없다. 유대인들이 이집트에 들어가 살고 있던 당시를 회상하며 자신들이 이집트에서 “타국인들”이었다고 표현하는 예는 있지만, 팔레스타인에 사는 유대인들이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동족을 보고 “타국인들”이라고 부르는 예는 없다는 얘기다. 내가 당신에게 그 예를 한 군데 보여 주겠는데, 이런 예라면 뭐니뭐니해도 사도행전 2장만한 데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2장에는 때마침 오순절을 맞아 당시 신앙심이 깊은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행 2:5). 이들은 분명히 유대인들이기는 유대인들이었지만, 파대, 메데, 엘람, 메소포타미아, 유대, 캅파도키아, 폰토, 아시아, 프루기아, 팜필리아, 이집트, 쿠레네에서 가까운 리비아의 여러 지방, 그리고 또 크레테와 아라비아 등, 팔레스타인이 아닌 타국 땅에서 출생했거나 거기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다(행 2:8-11). 이들이 명절을 고국에서 보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잠시 귀향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보고 “타국인들”이라 부르고 있지는 않다. 한편, 여기에 또 유대인이 아닌 로마에서 온 『여행자』들, 즉 로마인들이 또 그들 가운데 섞여 있었는데, 이 『여행자』들 역시 “타국인들”(strangers)이라는 말이다(행 2:10). 그래서 사도행전 2:10의 『로마에서 온 여행자』란 곧 “로마에서 온 타국인들”이란 뜻인데, 이들을 두고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이라고 같은 절 안에서 정의하고 있음을 우리는 본다. 『유대인과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 즉 위에서 열거한 대로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유대인과 로마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타국인들”이 오순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운집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유대인”이라 지칭하고, 외국에 살고 있으되 유대인 사회에 합류해 유대교로 개종하여 유대인들과 한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타국인들”이라고 따로 구별해서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다시 베드로전서 1:1로 돌아오자.
베드로전서는 이처럼 유대인이 아닌 『타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서신서인 것이다. 물론 이 책에도 유대인들을 지시하는 구절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서신서의 수신자들이 유대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길 만큼 유대인들을 상대로 한 언급들이 꽤 많이 나오는 게 사실이다. 이를테면, 좀 약하기는 하지만 1:5이 그것이고, 1:10 역시 좀 약하기는 하지만 유대인들을 지시하고 있으며, 1:18에서는 이것이 아주 강하게 나타나고 있고, 좀 모호하기는 하지만 1:7도 그러하며, 2:12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고, 4:3은 유대인과 이방인들 양쪽에 다 걸치지만 어쨌든 부분적이나마 유대인도 지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들 구절들은 주로 구원받고 거듭난 유대인들과 관련되는 구절들로 보아 무방한데, 바울이 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데 반하여 베드로는 야고보나 요한처럼 “주로” 유대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파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베드로가 오로지 유대인들만을 상대로 복음을 전파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보겠다). 반면에 베드로전서 중에서 주로 이방인들을 지시하고 있는 구절들을 예로 들자면, 좀 약하기는 하지만 1:9이 있고, 1:23도 좀 약하기는 하지만 최소한 대환란과 무관한 것만은 확실하며, 1:20도 꽤 약하지만 이방인들을 지시하고 있고, 구원받은 이방인들은 유대인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에 속한다는 점에서 2:9은 아주 강하게 이방인들을 지시하고 있음이 분명하며, 좀 모호하지만 2:11도 그러하고, 4:3은 아주 강하게 그것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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