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정통교리강좌 /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성경의 역사 (3)
9 해외 기사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17 강단의 거성 / 세 가지 가증한 짓
24 특집 소개 / “뉴에이지”에 무너진 한국 교회
25 특집 1 / 사탄의 신비주의 종교 “뉴에이지”
31 특집 2 / 뉴에이지가 낳은 “현대 교회 음악”(CCM)
37 특집 3 / “마술”과 “점술”에 빠진 자칭 “교회들”
43 특집 4 / 진리의 가면을 쓴 “4차원의 영성”
50 찬송시 / 그 아침에 그대 만나리
52 BB 칼럼 / 일론 머스크, “X” 그리고 적그리스도
57 영원히 보존하신 말씀 / 어리석은 자들의 “바늘귀 문과 밧줄” 시비
62 BB 쉼터 / “호기심”에 대하여
64 기자의 논단 / “칼빈주의”에 오염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
69 신학생 칼럼 / 지금은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
74 신약교회사 / 적은 능력으로도 말씀을 지킨 필라델피아 교회 (1)
79 세대주의 특강 / “창세기 1,2장”과 세대적 진리 (2)
86 목회자 칼럼 / 교회를 세우는 성경적 징계
91 지상 강좌 / 요엘 특강 (4) - “참된 회개”가 없이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성경의 역사
(3)
박승용 / 성경침례교회 담임목사
“헬라어 표준원문(Textus
Receptus)”을 만든 신실한 편집자들로는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1466-1536)와 “로버트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 1503-1559), “데오도르 베자”(Theodore Beza, 1519-1605), 그리고
“보나벤투라 엘지버”(Bonaventura Elzevir, 1583-1652)가 있다. 엄밀하게 말해 여기에 “두 사람”을 더 추가하자면,
“로버트 스테파누스”의 의붓아버지 “시몬 드 콜리네우스”(Simon de Colinaeus, 1480?-1546)와 “보나벤투라 엘지버”의 형제
“매튜 엘지버”(Matthew Elzevir, 1564-1640)를 들 수 있다.
우선 1516년, “에라스무스”가 그의 “헬라어 표준원문 초판”을 출간하기 전에, “프란시스코 히메네스”(Francisco
Ximenez, 1436-1517)가 “콤플루텐시안 폴리그롯”(Complutensian Polyglot)을 인쇄하면서[본지 통권 414호,
2026년 9월호,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성경의 역사 (2), p.5 참고] 올바르게 보존된 “헬라어 표준원문”(신약)도 제시했다. 참고로,
“콤플루텐시안”(Complutensian)은 “스페인”의 “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á de Henares)에 위치한
“콤플루툼”(Complutum)에서 출간되어 그 지명을 따른 이름이며, “폴리그롯”(Polyglot)은 “수 개 국어 대역 성경”이란 뜻이다.
이 성경은 실제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로 구성된 대역 성경”이었다. 비록 “히메네스”가 “로마카톨릭의 추기경”이자, “스페인 ‘톨레도’
지역의 대주교”이긴 했지만, 그가 인쇄한 “콤플루텐시안 폴리그롯”은 “바르게 보존된 원문”을 담고 있었다. “히메네스”는 “신약 본문”을
1514년 1월 10일에, “구약을 포함한 전체 본문”을 1517년 7월 10일에 인쇄 완료했다. 그러나 이 성경이 실제로 세상에 출간되어
배포된 것은 1522년으로, 그가 죽은 날(1517년 11월 8일)로부터 약 5년이 지난 뒤였다.
한편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에라스무스”는 “프랑스”의 “파리대학교”에서 유학하고 “고전 라틴 문학”을 연구한 “인문주의
학자”였다. 당시는 “종교 개혁”과 함께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나는 시기였기에 “인문주의”(Humanism)가 한창 발전하던 때였다.
“인문주의”는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슬로건 아래,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에 따라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을 이해하여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입장”을 표방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종교 개혁”(1517년)이 일어나기 64년 전인 1453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그곳에 있던
헬라어 학자들이 대거 서유럽으로 망명했다. 당시 “서유럽의 학자들”은 이들이 가지고 들어온 그리스의 언어, 문화, 예술, 철학 등 “그리스의
전통”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그러한 학문적 풍토 속에서 “헬라어 성경 필사본들”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바로 이 시기에
“에라스무스”는 1499년 “영국”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고, 이는 그의 일생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영국”에서 “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 “존 콜렛”(John Colet, 1467-1519) 등 당대의 저명한 “인문주의자들”을
만났으며, 이들과의 교류를 계기로 “헬라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리스 고전 지식과 학문”을 두루 갖춘 탁월한 “헬라어
학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더욱이 “존 콜렛”의 성경 연구에 커다란 영향을 받아 헬라어 성경 연구에 몰입했으며, 하나님의 섭리적인 인도하심 속에서
“헬라어 성경 필사본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성경 보존 역사”에 있어 하나의 큰 획을 긋는 사건이 되었다. 당시 “에라스무스”는
“바티칸 도서관”을 포함하여 유럽의 어느 나라 도서관이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기에, 실로 “광범위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었다. 특히
여행하는 중에도 여기저기서 필사본을 구했고, 가능한 모든 이들로부터 자료를 빌리며 수집에 열을 올렸다. 이때 “존 콜렛”에게서도 “두 개의
필사본”을 빌렸다.
이후 “에라스무스”가 “헬라어 성경 편집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스위스”의 “바젤”에 도착했을 때, 그의 수중에는 직접 사용할 수
있는 “다섯 개의 헬라어 신약 필사본”이 있었다. 이 다섯 개의 필사본을 근거로 그의 “헬라어 표준원문”이 나온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다른
필사본들을 전혀 참조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표준원문”에는 그가 구할 수 있었던 다른 필사본들에서 비롯된 본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1481년에 발견된 “바티칸 사본”도 점검했으나, “에라스무스”는 그것이 “변개된 사본”이라고 올바르게 판단하여 자신의 헬라어 성경
편집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현재 “에라스무스”가 사용한 다섯 개의 필사본에는 다음과 같은 일련번호가 표기되어 있다. 우선 필사본 “1”은
11세기 필사본으로 “복음서,” “사도행전,” “서신서”가 들어 있고, 필사본 “2”는 15세기 필사본으로 “복음서”가 담겨 있다. 필사본
“2ap”는 12,14세기 필사본으로 “사도행전”과 “서신서”가 들어 있으며, 필사본 “4ap”는 15세기 필사본으로 역시 “사도행전”과
“서신서”가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필사본 “1r”은 12세기 필사본으로 “요한계시록”을 수록하고 있다. “에라스무스”는 “복음서”와
“사도행전,” “서신서”를 편집할 때 필사본 “2”와 “2ap”를 주로 사용했고, “1”과 “4ap”는 가끔씩 참고했다.
한편 “에라스무스”는 “제롬”을 비롯한 교부들의 저술을 연구하면서 “신약 성경 원문”과 차이를 보이는 다양한 “이본”(異本,
variant readings)의 존재를 깊이 인지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헬라어 성경”을 편집하면서 “이본들 간의 차이,” “성경의 정경에
관한 문제,” “성경 본문에 대한 비평적인 쟁점들”까지 연구했고, 이를 “성경 뒤에 첨부한 주석”에서 심도 있게 다루었다. 말하자면 다양한
이본과 비평적인 쟁점들에 관한 “에라스무스의 지식”이 오늘날 학자들에게 알려진 거의 모든 이본에 관한 지식보다 약 460년이나 앞서 있었던
것이고, 특히 그가 그런 이본들에 대해 올바르게 분별하고 판단했다는 점은 “원문비평학적인 관점”에서 매우 가치 있고 높게 평가될 만하다.
그는 “그리스바흐,” “라흐만,” “티쉔돌프,” “웨스트코트,” “홀트,” “네슬,” “알란드,” “메츠거” 등과 같은 “성경을
변개시킨 현대 학자들”과 비교할 때, 본문을 분별하는 영적 안목과 성경 보존에 관한 올바른 지식 면에서 그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예를 들어, 그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마지막 부분인 “마태복음 6:13,” 예수님과 부자 청년의 대화를 다루는 “마태복음
19:17-22,” 마가복음의 마지막 열두 구절인 “16:9-20,” 천사들의 찬양이 언급되고 있는 “누가복음 2:14,” 겟세마네 동산에서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신 예수님의 고뇌 및 천사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 “누가복음 22:43,44,”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에 대해 다루는
“요한복음 7:53-8:11,” 그리고 “디모데전서 3:16”의 “경건의 신비” 등에서 어떤 것이 참된 본문인지를 주석을 통해 명확히 밝혀
두었다. 이상 언급한 구절들은 현대의 “성경 변개자들”이 의도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며 삭제하거나 괄호 처리를 시도하는 핵심 구절들이다. 그러나
성경 보존에 대한 “평범한 믿음”[본지 통권 413호, 2026년 8월호,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성경의 역사 (1), pp.5,6 참고]을 갖고
있던 “에라스무스”에게는 이 구절들을 “하나님의 말씀들”로 본문에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이렇듯 “에라스무스”가 자신의
주석을 정리할 때도 이토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성경 본문 자체를 확정하는 일에는 그보다 훨씬 더 신중을 기했으리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해서 “에라스무스”는 그의 “헬라어 표준원문”을 출간했는데, 1516년
“초판”을 시작으로 1519년(제2판), 1522년(제3판), 1527년(제4판), 1535년(제5판)까지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헬라어 신약
성경을 출간했다. 한편 초판에는 “삼위일체”를 명백히 증명하는 구절인 “요한일서 5:7”이 빠져 있었다. 당시 그가 참조한 헬라어 필사본
중에서는 이 구절이 들어 있는 사본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라틴역본>에는 그 부분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었기에,
“에라스무스” 역시 그 구절이 참된 말씀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라틴어”가 아닌 “헬라어 본문”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를 증명할
“헬라어 필사본”이 반드시 필요했으므로, 그는 향후 해당 구절이 포함된 “헬라어 사본”이 발견된다면 다음 판에 반드시 수록하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결국 이 구절을 담고 있는 헬라어 소문자 필사본 “61”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그는 약속한 대로 “제3판”(1522년)에 이 “거룩한
삼위일체 구절”을 온전히 넣었다. 이에 반해 현대의 변개된 성경들은 하나같이 이 핵심적인 “삼위일체 구절”을 삭제해 버렸다. 그러면서도 “삭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6절의 뒷부분”이나 “8절의 앞부분”을 잘라 내어 “7절”에 삽입함으로써 마치 “7절”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본지 통권 367호, 2022년 10월호, “삼위일체를 가르칠 자격이 없는 교회들, pp.1-8 참고].
말씀을 온전히 보존한 “에라스무스”의 여러 판본 중에서, “1535년”에 마지막으로 출간한 “제5판”은 이후에 출간된
“모든 판본의 기준”이 되었다. 특히 그가 초판을 출간했던 1516년 바로 다음 해인 1517년에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종교 개혁”이
“비텐베르크”에서 촉발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바르게 보존된 성경”이 “종교 개혁의 불씨”를 지피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무엇보다도 “마틴 루터”가 훗날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 성경”을 저본으로 삼아 그의 독일어 <루터성경>을
번역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에라스무스”는 자주 “농부, 직공, 뱃사람, 아낙네를 비롯해 스코틀랜드인, 아일랜드인, 터키인,
사라센인(이슬람교도) 등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순수한 신약 성경을 통해 그 안에서 말씀하시고, 치유하시며,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되, 육신의 눈으로 뵙는 것보다 더 진실하게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대면하기를 바란다.”라고 피력했다. “루터”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힘입어 그의 성경을 출간하면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바른 성경이 모든 인간의 손에 들어가게 하자! 그래서 그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직접 말씀을
해석하며, 직접 성경의 빛을 따라가서 영적인 자유를 찾도록 하자. 또한 성경에 입각한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두려워하게 만들자!” BB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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