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는 저자의 고전적인 저서이다. 이 책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왜 그처럼 무력한 삶을 사는지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다. 저자의 논제는 단순하고 솔직하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씨뿌림과 수확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다루는 하나님의 영적 법칙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간결하고, 실용적이며, 기지가 넘치는 이 책은 어디를 펼쳐보아도 그 탁월함이 엿보인다. 많은 설교자들의 설교 자료로 애용되어 온 본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분명 그 가치를 더할 테지만, 페이지마다 자신의 삶과 신학을 그대로 옮겨놓은 저자의 삶이야말로 영원에 이르도록 그 가치를 더할 것이다.
제1장 숙고하기 / 21
- 우리는 우리가 뿌리지 않은 것을 많이 거둔다.
제2장 식별하기 / 51
- 우리는 우리가 뿌린 것을 거둔다.
제3장 기다림 / 73
- 우리는 우리가 뿌린 때와 다른 계절에 거둔다.
제4장 기억하라 / 99
- 우리는 우리가 뿌리는 것보다 많이 거둔다.
제5장 실행에 옮기기 / 121
- 우리는 우리가 뿌린 것과 비례하여 거둔다.
제6장 인내하라 / 143
- 우리가 끝까지 인내하기만 하면 선한 것을 충만하게 수확할 것이나, 악은 자신의 것을 수확하려고 온다.
제7장 기억에서 지우기 / 171
- 우리는 지난해의 수확에 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올해의 것에 대해서는 할 수 있다.
<서문>
...추수의 일곱 법칙
법칙 1. “우리는 우리가 뿌리지 않은 것을 많이 거둔다.”
모든 생명은 앞서 존재했던 생명에서 나온다. 이는 루이 파스퇴르가 적절히 입증했듯이, 자연발생적인 세대 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두는 것은 자연스럽게든 의도적이든, 하나님에 의해서든 인간에 의해서든, 긍정적인 결과를 위해서든 부정적인 것을 위해서든 이전에 이미 심겨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수고하지 않은 많은 것을 베풀기도 하지만, 타인의 수고에 동참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밭에 뿌려진 독보리를 받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가 타인이 행하는 것으로 영향을 받으며, 그것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법칙 2. “우리는 우리가 뿌린 것을 거둔다.”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우리는 거둔다. 따라서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둘 것이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둘 것이다.
법칙 3. “우리는 우리가 뿌린 때와 다른 계절에 거둔다.”
우리는 한 계절에 심고, 다른 계절에 거둔다. 씨가 심겨진 순간 추수하는 일은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법칙 4. “우리는 우리가 뿌리는 것보다 많이 거둔다.”
이보다 의미심장하고 진지해지는 사실은 없다. 우리가 바람을 심으면 회오리바람을 거둔다. 우리가 선을 심으면,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하나님의 손에서 풍성하게 받는데, 이는 추수가 심겨진 씨보다 언제나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떤 농부도 무언가를 심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법칙 5. “우리는 우리가 뿌린 것과 비례하여 거둔다.”
인색하게 뿌리면 인색하게 거둔다. 그러나 아낌없이 뿌리면 그에 따라 거둔다. 더 넓은 밭에 뿌릴수록, 더 풍성한 수확을 거둘 것이다.
법칙 6. “우리가 끝까지 인내하기만 하면 선한 것을 충만하게 수확할 것이나, 악은 자신의 것을 수확하려고 온다.”
잡초는 스스로 자라지만, 정원의 채소들은 그렇지 않다. 이것들은 많은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법칙 7. “우리는 지난해의 수확에 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올해의 것에 대해서는 할 수 있다.”
작년은 우리가 다시 체험할 수 없고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과거의 일이다. 우리의 관심은 우리가 지금 당장 생산하고 있는 것을 향해 있어야 한다.
<책속으로>
추수의 법칙 4 - 우리는 우리는 우리가 뿌리는 것보다 많이 거둔다
뿌리고 거두는 과정에 있어 이 영속하는 사실이 없다면, 그 어떤 것을 심으려는 농부는 없을 것이다. 만약 땅 속에서 발아한 것만 되돌려 받는다면, 어떤 씨들은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단단한 길에 떨어져 공중의 새들의 몫이 될 것이기에, 농부는 결국 그 과정에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어떤 씨는 땅이 충분히 깊지 않아 생명을 부양할 수 없기에 잃어버린 바 될 것이고, 또 다른 씨는 자라다가 가시덤불에 눌려 숨이 막혀서 결코 열매를 내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손실을 보상하고 씨뿌리는 일을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은 어떤 씨가 좋은 땅에 떨어져 30배, 60배 그리고 100배의 열매를 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농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해당되며,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모든 경우에 해당된다. 우리가 잘못된 것을 심으면, 심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거둘 것이고, 좋은 것을 심으면, 마찬가지로 좋은 수확을 거둘 것이다.
성경의 직접적인 진술
이 법칙은 두 구절에서 힘주어 강조된다. 잠언 22:8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죄악을 뿌린 자는 헛된 것을 거두리니...』 여기서 “헛된 것”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벤”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게세니우스에 따르면, 그것은 ‘거짓, 속임수’(시 36:4, 잠 17:4)를 말할 수 있고, ‘사악함, 죄악’(민 23:21, 욥 36:21, 사 1:13)을 말할 수 있으며, ‘불행, 역경, 재앙’(시 55:4; 90:10, 욥 15:35, 합 3:7)을 말할 수도 있다. 이 마지막 의미에서 그것은 또한 ‘슬픔, 비탄’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라헬은 아기를 낳다가 죽었는데, 그녀는 그 아이의 이름을 ‘베노니,’ 즉 ‘슬픔의 아들’이라 불렀다(창 35:18).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를 ‘베냐민,’ 즉 ‘내 오른손의 아들’이라 불렀다. “애곡하는 자들의 빵”(호 9:4)도 동일한 단어이다. 그것은 재앙의 빵이요 역경의 빵인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 단어와 그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사악함”을 심으면 슬픔, 비탄, 고통, 근심을 포함하는 역경의 추수를 거둘 것이라고 말씀하는데, 그대도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것이 추수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이 원칙을 확립하는 두 번째 구절은 호세아 8:7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그들이 바람으로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으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 회오리바람은 히브리어의 강조 형태, 즉 ‘강력한 회오리바람’을 말한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그대가 똑같은 것만을(바람을 심었으니 바람으로 거둔다) 거두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관련된 전체 진리의 일부에 불과하다. 쉽게 말하면, 오히려 그것은 “바람을 심었으니 강렬하고 파괴적인 토네이도를 거둔다!”는 개념인 것이다.
야곱을 통해 본 원칙
야곱은 추수의 법칙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예이다. 창세기 27장에서, 리브카는 남편 이삭이 두 쌍둥이 중 큰 아들에게 들에 나가 고기를 사냥해서 별미를 만들어 주면 그를 축복해 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엿들었다. 리브카는 둘째가 첫째 에서 대신 그 축복을 받기 원하여 야곱에게 자신의 충고를 말없이 따르라고 말한다. 그가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죽이면, 자기가 그것으로 이삭을 위해 별미를 준비하겠다는 것이었다.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고 야곱은 매끈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야곱은 그의 형의 외출복을 입었다. 그후 리브카는 그의 손과 목에 염소 새끼의 가죽을 붙였다. 그뒤 그는 아버지가 있는 장막에 들어갔고, 그 속임수는 효과가 있었다. 그는 축복을 받자마자 밖으로 나왔고, 그때 다름아닌 에서가 들어오게 된다. 그 속임수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삭은 야곱을 이미 축복해 버렸고, 자신의 말을 번복할 수 없었다.
리브카와 야곱은, 자라서 똑같은 열매를 맺고 더 풍성히 맺을 씨들을 이 사건 속에 심어 버린 것이다. 이와 관련된 모든 것을 망라하자면 일련의 메시지들이 필요할 테지만, 우리 추수의 법칙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한번 보도록 하자. 첫째, 야곱은 자신이 한 일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었으니, 이는 에서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만 하면 야곱을 죽이겠다고 위협을 했기 때문이다. 리브카는 야곱이 집에 머무는 것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판단에 그를 하란에 사는 자기 오빠 라반에게로 보냈다. 그녀는 『네 형의 분이 풀릴 때까지... 몇 날』을 있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창 27:44). 그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사람을 보내서 거기에서 너를 불러오리라』(창 27:45). 리브카는 그녀가 자신의 아들을 두 번 다시 못보리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오기 전에 죽었고, 결국 자신 외에 비난할 자가 없었다.
야곱을 본보기 삼으면, 추수가 실로 분명해진다. 야곱은 그의 형을 거슬러 음모를 꾸몄고, 속임수로 아버지에게서 축복을 받았다. 이제 그는 동일한 것은 물론, 훨씬 더 심하게 받을 예정이었다. 첫째, 그는 그가 사랑했던 라헬 대신 레아를 아내로 받았다(창 29장). 라반은 장자권에 관하여 그가 잊지 못할 무언가를 가르칠 예정이었다. 형제를 속이는 것과 아내를 받는 일에 속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삭과 리브카가 두 아들에 대해 가졌던 분명한 불일치는 그들의 자녀들에게 뿌려졌고, 그것은 야곱의 집안에 존재했던 문제들 속에서 그 꽃이 만발했다. 야곱과 그의 형이 약간의 불일치를 보였으나, 그것은 레아의 자녀들과 그녀의 여종의 자녀들, 그리고 라헬의 자녀들과 그녀의 여종의 자녀들 사이에 가로놓인 문제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야곱은 바람을 심고 강렬한 회오리바람을 거둔 것이다. 그의 아들들은 그에게 음모를 꾸며 요셉을 데려다 이집트에 팔았으며, 그후 그들은 그의 채색옷을 취하여 염소 새끼를 죽이고 나온 피에 그것을 담근 뒤, 그들의 아버지에게는 들짐승이 요셉을 죽인 것이 분명하다고 말한 것이다. 수많은 세월이 지나도, 야곱이 아는 것이라고는 요셉이 죽었다는 사실 외에 변함이 없었다.
그는 음모를 꾸몄고, 훨씬 더 사악한 음모를 거둬야 했다. 그는 단기간을 속였으나, 심히 긴 시간을 속임당하고 슬퍼해야 했다. 그는 여러 염소 중 새끼 한 마리를 이용했고, 그것은 그를 대적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는 옷을 걸쳐 입었고, 누군가가 그를 옷으로 속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야곱은 가슴앓이와 슬픔과 고통이라는 훨씬 더 많은 수확을 거뒀는지라, 그는 이집트로부터 두 번째로 곡물을 받기를 원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요셉도 없고 시므온도 없는데 너희가 베냐민도 빼앗아 가려 하니, 이 모든 것들은 나를 거역함이라』(창 42:36). 후에, 야곱은 직접 이집트로 내려가 요셉을 만났을 때, 파라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순례길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생애의 세월이 짧고 험악하였으나...』(창 47:9). 아, 참으로 그러하고, 그러하도다! 야곱은 추수의 법칙들에게 따라 거둬들였던 것이다(pp.1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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