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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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재 같은 땅 이스라엘 요약정보 및 구매

피터 S. 럭크만(Dr. Peter S. Ruckman) 저 / 이혜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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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출간일 : 2020년 10월 16일 초판 2쇄
쪽수 : 520
무게 : 770g
크기 : 153*223*27mm 신국판 무선제본
ISBN : 978898879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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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재 같은 땅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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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상세설명

    이스라엘은 어떤 나라인가?

    성경의 중심임에도 불구하고 그 민족은 이 세상에서 철저히 버림받아 왔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고난을 당했고, 또 그들의 왕을 거절했기 때문에 세상 가운데서 고난을 당했다. 성경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반항적이고 목이 곧은 백성이다. 그들은 소돔인들과 카나안인들보다도 더 악하게 행했다. 그들은 하나님께 철저히 버림 받았으며, 크나큰 심판 가운데 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민족을 영원히 보존하실 것이며, 그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역사의 중심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수난을 당한 땅, 세상의 모든 관심은 바로 이 땅에 몰려 있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모든 것들을 제시한다. 이 땅의 수난의 역사, 이 땅을 둘러 싼 음모들, 이스라엘과 연관되어 오해되어 온 모든 신학적 오류들, 그리고 이 땅에 대한 성경적 관점, 이 주제에 대해서 이처럼 정확하게 제시한 책은 일찍이 없었다.

    상품 정보 고시

  • 들어가는 말 / 3
    서  문 / 22


    제 1 장  덫은 놓여졌다 / 41
    제 2 장  성경 해석에 존재하는 “머피의 법칙” / 59
    제 3 장  장애물 / 93
    제 4 장  스스로 증명하는 책 / 123
    제 5 장  “눈에 가시”의 역사 / 146
    제 6 장  “최신” 성경 역본들의 열매 / 169
    제 7 장  수많은 “그리스도들” / 200
    제 8 장  불타는 가시덤불에 계속되는 박해 / 208
    제 9 장  2천 년의 암흑 끝에 비추는 최초의 서광 / 235
    제10 장  마호메트, 교황, 처칠 vs. 하나님의 말씀 / 253
    제11 장  처칠의 팔레스타인 “평화전개운동” / 291
    제12 장  대가를 지불하다 / 317
    제13 장  제 무덤 파는 UN / 347
    제14 장  함-카나안-이스마엘-마리아-마호메트와 손잡는 미국 / 381
    제15 장  화평이 없는데도 화평을 말하다 / 419


    부록 1  박식한 시온 장로들의 의정서 / 451
    부록 2  유대인 “메시야” / 459
    부록 3  성전 재건 / 466
    부록 4  “거룩한” 코란의 진짜 수 / 476


    에필로그 / 482
    어휘 사전 / 488
    지도 / 496 

  • 서문


    독자가 읽게 될 이 책은 플로리다 주만큼도 크지 않은 한 조각 땅에 대한 내용이다. 400쪽에 달하는 책의 주제로서 이보다 더 재미없는 주제도 없을 줄 안다.


    여기서 우리는 근동 지방의 한 조각 땅을 다루려고 한다. 창세기 15:18-21에는 그 땅에 대한 전체 배열이 나와 있다. 이 땅은 전 세계 인류 역사의 결말을 결정지을 뿐 아니라, 인간들이 고안해 낸 모든 정치, 종교, 교육, 과학 기관(그리고 체제)의 완전한 멸망을 미리 알려 준다. 이 땅이 선택된 배후 목적은 5000-6000년에 걸쳐 지구상에서 피가 흘려질 것과, 그 뒤에 EU, UN, PLO, 바티칸, 미국 의회, 영국 의회, 중공, 미합중국, 소련, 일루미나티, 메이슨 조직이 완전히 멸절될 것을 보장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에 6,000년 동안의 “과학적 연구”와 통신 및 교통의 발달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이에 대해 독자들 중에 누군가는 “못믿겠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한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어찌하겠느냐? 그들의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무효화시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 기록된 바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고 함과 같으니라』(롬 3:3,4).


    혹자는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그건 바울의 사적인 해석을 일부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기운을 내라. 나는 하나님을 믿나니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행 27:25).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수백만 명이 그걸 안믿으니 내가 그걸 믿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당신은 다른 종교 서적과 똑같은 한 권의 책을 인용할 뿐이다.” “나는 베드로후서 3:3,4이나 요한계시록 20:11-13; 21:1-5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을 보라. 『그 중에는 그가 말한 것을 믿는 사람들도 있고 또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도 있어서』(행 28:24).


    내가 지금까지 쓴 것 또는 앞으로 쓸 것(또는 인용한 것)을 꼭 믿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당신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이지 당신과 나 사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간략한 역사를 사람들은 무척이나 싫어할 것이다. 그것은 세계 다섯 개 대륙의 힌두교도나 이슬람교도, 카톨릭 신자, 몰몬교도, 인본주의자, 무신론자들에 의해 20세기의 “증오 문서”로 낙인찍힐 것이다. 심지어 유대교 랍비조차도 우리가 앞으로 인용할 구약의 증거 구절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구약에서 직접 인용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물론 독자가 그것을 꼭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은 환상을 보았거나 “환청”을 들었거나 “심리적 영상”을 본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성경을 덮어 버리고 성경에서 비켜가 버리고 성경을 던져 버리면 되지 않는가? 로마서 3:1-3에서 성경을 던져 버리면 될 것이다. 디모데전서 3:16에서도 던져 버리려고 할 것이다. 1880년 이후에 나온 200개의 영어 번역본이 하나같이 디모데전서 3:16을 던져 버렸기 때문이다(RV, ASV, NASV, RSV, NRSV, NIV, CEV, TEC, NWT, NEB 등)


    『경건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성령으로 의롭게 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로 들려 올라가셨음이라』(딤전 3:16).


    그리고 그 구절을 쓰레기통에 버린 다음에는 다음의 구절들도 함께 버려야 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방패시니라. 너는 그분의 말씀들에 더하지 말라. 그분이 너를 책망하실까 함이며, 네가 거짓말쟁이가 될까 함이라』(잠 30:5,6).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그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거기에서 빼지도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지니라』(신 4:2).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b). 『먼저 이것을 알지니,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사로운 해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 예언은 예전에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니라』(벧후 1:20,21). 『이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음이니, 이 말씀이 믿는 너희 가운데서도 효과적으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자, 전부 던져 버려라! 하나님께서 그 구절들을 기록하시지 (또는 받아 적도록 불러 주시지) 않았다면 “시내사본”과 함께 그 구절들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것이 무슨 해가 될 게 있겠는가? 시내사본은 진짜로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필사본이다.


    종교적 편견은 버려라!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이고 “영”이고 “진리”(요 17:17)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을 던져 버리려 한다면, 마호메트에게 그의 코란을 쓰레기통에 던지라고 말한다고 해서 까다롭게 나오지 말라는 말이다. 내가 참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종교적 편견을 가진 사람이다!


    ...(중략)...


    이 서문에서 우리는 그저 간단하게 독자는 거짓말쟁이이고 성경의 저자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고 말하는 바이다. 우리가 앞으로 인용할 성경의 단 한 구절도 당신이 그 구절은 이런 뜻이라고 생각한다거나 이런 뜻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대로 해석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서문과 함께 우리는 이제 “생툼 생토룸”(지성소) 안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한 조각 땅의 역사이다. 이것은 순수한 역사이며, 자신이 대하는 것이 실제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모든 독자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기록되었다. 여기에는 아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미국의 최후, UN의 최후, 바티칸이여 안녕, EU여 안녕! 성경에 기록된 이름과 날짜, 숫자 속에서 “역사상의 오류”를 찾아내려 함으로써 스스로 자기 목을 베는 모든 기독교 히브리어 또는 헬라어 학자(또는 성경 교사)들이여, 잘가라!


    성경을 고치는 자들이여, 잘가거라! 백보좌 심판에서 만나자(계 20장)!
     




    책 속으로 


    제 8 장 불타는 가시덤불에 계속되는 박해


    최초의 “게토”(유대인 격리 거주지역)는 1266년에 브레스로우의 카톨릭 공회의 허락으로 폴란드에서 시작되었다. 게토는 도시의 일부분과 나머지 부분을 벽과 도랑으로 (또는 벽과 울타리로) 구분지은 것으로, 게토 거민들의 자치 단체를 “카할”이라 하는데, 이것은 선출된 유대인 재판관들과 장로들, 랍비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이 게토는 1939년부터 1945년 사이에 6백만 유대인을 멸절시키기 위한 아돌프 히틀러의 계략의 원형이 되었는데, 히틀러의 경우 유대인들은 게토에서 집단 처형장으로 곧장 이송되었다. 히틀러의 “기술자들”(스타이너의 <트레블링카>를 볼 것, 1966)은 유대인 심리학, 특히 논리 게임, 지적 퍼즐에 관한 전문가들이었다. 탈무드를 오랫 동안 연구한 사람이라면 유대인의 특성을 간파하고 있을 것이다. 가상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추측과 사고와 논리로써 풀어 보려는, ‘정신 운동’에 대한 그들의 고정 관념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철학은 유대인들을 집단 처형장으로 몰아갔다.


    히틀러는 게토마다 “쥬든랏”(Judenrat, 유대인 평의회)을 둠으로써 유대인이 다른 유대인들을 총살 구덩이로 쓰러넘어뜨리고 가스실로 몰아넣게 만들었다. 집단 처형장에서조차 수감된 유대인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은 유대인들이었으며, 그들은 굶주림, 질병, 독극물 주사, 과로, 독가스, 총살 등으로 죽어갔다.


    폴란드의 모든 로마카톨릭 신자들이 유대인들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갖고 있음을 인지한 히틀러는 지혜롭게도 미래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고향을 처형 장소로 이용했다. 그는 여섯 개의 대형 집단 처형장을 세웠는데, 교황 피오 12세와 맺은 그의 정교 조약(교황 요한 바오로는 이를 “승인”했다.)으로 그는 즉시 성공할 수가 있었다.


    이 두 교황(피오 12세와 요한 바오로 2세)의 극악무도한 범죄의 진상을 은폐하려는 뉴스 미디어의 모든 시도는 허사였다. 1933년에서 1945년까지는 둘 다 유대인 박해에 대해서 철저히 입을 다물었으며,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의 집단 처형장에 로마카톨릭 수녀들을 위한 기념비를 세우고자 했을 때 그 자리에서 죽은 단 한 명의 유대인도 거론하지 않았었다.


    요한 23세,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2세를 거치면서 언론은 홀로코스트의 책임을 마틴 루터에게 돌리고자 했다. 정작 마틴 루터가 로마카톨릭 신자로 교육받았던 사실은 간과하고 말이다. 또한 그들은 다음과 같은 역사의 진실을 편리하게도 간과해 버렸다.


    1. 교황 바오로 4세는 로마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게토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1555년에 있었던 일인데 루터는 1546년에 죽었다. 따라서 바오로 4세는 루터의 추종자가 아니라 그저 로마카톨릭 교황이었을 뿐이다.
    2. 교황 그레고리 6세(1045-그는 루터보다 490년이나 앞섰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을 위해서 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3. 로마카톨릭의 제4차 라턴 공회(루터보다 300년 앞섰던) 때 모든 유대인들은 “다윗의 별”을 달고 다녀야 한다고 결정되었다.
    4. 교황 그레고리 9세(루터보다 350년이나 앞선)는 탈무드를 모조리 압수하고, 거부하는 자는 처형하도록 명령했다.
    5. 나치와 피오 11세의 협약은 로마를 히틀러 손에 넘겨 주려는 추기경 유진 파셀리[베를린에 있던 히틀러의 추기경]의 13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였다. 후에 추기경 파셀리는 교황 피오 12세가 되었으며 피오 11세가 서명한 정교조약을 강화시켰다.


    나치의 행위에 대해서 교황 피오 11세, 교황 피오 12세, 요한 바오로 2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요한 바오로(2000년)는 모든 사람을 향한 막연한 사과를 했는데, 그 사과란 것조차도 자신의 양떼 - 유일하고 참되며 “거룩하고” 사도적 가르침을 받드는 교회 등등 - 가 일부의 사람들을 잘못 대한 점에 대해 막연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결국 진정한 “호기”를 얻는데, 독립 전쟁(1948) 때의 이 승리는 하나님께서 1,900년 만에 처음으로 허락하신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카톨릭 추기경들은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가 “운전석”에 앉아 카톨릭 공산주의 담화를 나누게 만들었고, 그때 이탈리아 출신의 교황은 저격당하고(물론 사고였다!), 폴란드에서 히틀러가 세운 여섯 개의 집단 처형장 사이에서 자라난 사람은 교황 자리에 앉게 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반 유대주의적 배경은 지구상에 어느 유대인 증오자 못지않게 “인종차별주의”적이다. 그의 “고향땅”에 집단 처형장이 세워진 곳은 소비보르, 벨제크, 아우슈비츠, 트리블링카, 테레인스타트, 마즈데나크였다.


    마틴 루터가 태어난 때로부터 90년 내지 100년 전에 코라코우의 한 카톨릭 사제는(1407) 카톨릭 신자들로 구성된 폭도들을 이끌고 게토로 들어가 카톨릭 사제에게 물뿌림을 받기를 거부한 유대인 남자, 여자, 어린아이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들은 535년 뒤에 유고슬라비아에서 일어난 것과 아주 똑같은 일을 했던 것이다. 루터가 평생 동안 쓰거나 설교한 그 어떤 것도 들어 보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20세기의 바티칸 제국주의>를 볼 것, 아브로 맨하탄 저, 1965).


    폴란드 왕 카시미르 4세는 1447년에 유대인들에게 소정의 특권을 제공했지만, 그런 일이 있자 폴란드 내의 모든 카톨릭 교회 사제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에 왕은 즉시 그 특권을 보장하는 특허장을 무효화시켰는데, 이때 마틴 루터는 태어나지도 않았다(1447). 1939년에 발행되었던 “특허장”(교황 피오 12세 당시에)은 인종 말살을 실행하는 집단 처형장으로 대체되었던 것이다(1940-1945).


    그때 피오 12세는 입 한 번 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루터의 추종자가 아니었다.


    자, 여기 계속해서 불타는 가시덤불이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그 장소를 기억하는가? 그것은 B.C. 1500년의 일이었는데, 지금 종교개혁으로 이어지는 암흑 시대의 중간에 가시덤불은 계속해서 타고 있다. 그것 참 대단한 덤불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왜 가시덤불이 불타 없어지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덤불이 이렇게 대답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나의 의지력을 행사할 뿐이다. 나는 유례없이 똑똑한 덤불이고 살아남으려는 강한 의지를 지녔다. 나는 하루 24시간 계속해서 이 불을 최대한 이용하려 한다. 그러니까 B.C. 1500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출 3-15장). 나 참 똑똑하지?”


    그런데 말라키(B.C. 389)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주이므로 변경하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너희 야곱의 아들들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말 3:6).


    1648년 우크라이나의 코사크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는데,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던 중 그들의 지도자 헤트만 보단 크밀니키가 폭풍의 눈처럼 그 지역을 뒤집어 엎었다. 유대인 남자, 여자, 아이들은 산 채로 불태워지거나 매장당하거나 우물에 처박혀 죽었다. 1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갈리카와 우크라이나에 사는 유대인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그런데 마틴 루터는 이 일과 아무 상관도 없었으며, 살인자들은 야만족 혹은 그리스 정교도들이었다.


    러시아의 그리스 정교회(이는 로마카톨릭 교회의 동방 지교회이다)는 1504년에 모든 유대교 “이단자들”은 화형대에서 불태워야 한다고 선언했다. 1526년에 로마 교황에게 파견된 모스크바 대사는 교황에게 모스크바 시민들은 유대인들을 자기네 국경으로 넘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짜르 이반 4세(“폭군”)는 유대인들이 러시아 내로 물품을 반입하는 것조차 금지했다. 러시아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합병했을 때 그 나라들에는 이미 유대인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리투아니아도 마찬가지였다.


    짜리나(女帝) 예카테리나는 표트르 대제의 본을 따라 러시아에서 모든 유대인을 즉각적으로 추방하도록 명령했으며(1727), 1753년까지 짜리나 엘리자베타 표트르프나는 유대인 35,000명을 축출했다.


    이방인들이 본 유일한 “빛”은 불타는 가시덤불이 내는 빛이었다.


    35,000명의 유대인들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남자, 여자, 아이들 중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은 온 인류의 아버지시요 인류는 형제”라는 사상으로 개종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미쉬나, 토라, 제2 토라, 구전 율법, 게마라, 탈무드, 미드라쉬가 이 모든 일에 무슨 영향을 끼쳤는가? 1700년 동안 이스라엘이 이룩한 종교적 업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프랑스에서는 샤를마뉴의 자손들이 죽고 난 뒤(1096-1200) 교황들이 국내의 유대인들을 남김없이 죽이려 들었다. 교황 그레고리 9세는 유대인들이 탈무드를 광신적으로 신봉하기 때문에 물뿌림을 받으려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랑스 국왕 루이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갖고 있는 탈무드를 전부 시 당국에 넘겨주도록 명령했고, 이에 반항하는 자는 처형하도록 했다. 그런데 모든 프랑스 군인들은 로마카톨릭 신자들이었지, “루터 추종자”들이 결코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1306년에 북부 프랑스에서 쫓겨났으며, 프랑스 혁명(1791-1795) 때까지 어떤 자유도 누리지 못했다. 그들은 400년을 더 “불타고” 있기만 했던 것이다. 프랑스 내에서 전통을 따르는 유대인들은 “트로이스의 라쉬”(“성경 주석의 왕자,” 1040-1105)라는 인물을 추종했는데, 그의 제자들은 우리가 앞서 언급한 “토사피스트”들이었으며(본서 6장 참조), 그들은 구약을 문자적으로 해석했다. 한편 프랑스에서 이성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유대인 철학가들은 레위 벤 게르손(Levi Ben Gerson, 1288-1344)이라는 사람을 따랐다.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중세 시대에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들 중 하나”였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거듭나지 못하고 말만 거창한 멍청이”였다는 뜻이다.


    B.C. 3000년부터 A.D. 2000년 사이에 있었던 “독창적인 사상가”들이란 그저 “자기 시대보다 앞서” 생각할 줄 알고, 그럼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법을 어기는 기술을 미리 만들어 냈던 죄인들을 지칭할 뿐이다. 그들 뒤에는 미리 예언된 그의 타락성을 따라잡는 죄인들이 있게 마련이어서, 그 죄인들은 그 인물이 ‘자기’ 시대와 나이에 있어서 “독창적인 사상가”였음을 증명하게 된다. 그런 자들의 급진적이고 거듭나지 못한 타락성(역[逆]다윈주의)에 대한 무수한 예들은 음악가들, 작가들, 철학가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바르톡, 쇼엔버그, 힌드미스, 쇼스타코비치, 라벨, 볼레즈, 피카소, 미로, 브라크, 몬드리안, 폴록, 워홀, 터너, 고갱, 제임스 조이스, “랩” 브라운, 칼 마르크스, 존 듀이, 버트란트 러셀, 마오 쩌뚱 등이다.


    이 거듭나지 못한 타락성이 작용하는 방법이란 간단하다. 타락성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인간의 모든 행위에 대한 지침으로서 다윈주의를 채택하는 것이다. 이 말은 낙태율, 이혼율, 살인율의 증가와, 포르노그래피나 성 도착의 만연 등 한 국가가 정글의 법칙에 호소하게 만드는 모든 현상들을 “진보”라 부르는 데 동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가장 좋은 예는 오스트레일리아이다. 이 나라는 법을 지키며 사는 시민들의 손에서 총기를 몰수했는데(1999년에서 2000년 사이) 그로부터 한 해 동안 살인사건이 300퍼센트나 증가했다.


    머리에 두뇌가 안 들어 있는 다윈주의 원숭이나 그것을 “진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로마카톨릭 교황들은 늘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유일하고 참되며 거룩한 사도적 교회”의 정신을 “수행”한다고 말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1215년에 교황은 모든 유대인들은 날 때부터 로마카톨릭 신자들의 종이며, 로마카톨릭 왕들의 “노예”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두뇌를 가지고 따지자면, 토마스 아퀴나스와 비교할 때 레위 벤 게르손은 천재로 보일 지경이다. 이 카톨릭 성경 무식자들은 지성에서 부족한 것을 무지를 가지고 대체했으니 말이다.


    “로마와 카톨릭교회 지배 하의 모든 도시에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과 전적으로 분리되어 살 것이며”(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다. - 요 18:12. 성경은 유대인들이 지은 죄의 대가를 1,200년 후에도 치르게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출구와 입구가 하나뿐인 거리에서 살아야 한다.”(요 10:9) “유대인들은 한 개의 회당을 세울 수 있으며, 어떤 땅도 소유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 1215년 이후에 유대인들은 발목까지 잠기는 물 속에 서서 가시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자기가 있는 지역의 로마카톨릭 귀족들의 “노예”가 될 것을 맹세해야 했다. 슐레지엔에서 유대인들은 세 발 달린 흔들거리는 의자 위에 서서 그 맹세를 해야 했으며, 또 머리에 기도 수건까지 쓰고서 그 저질스런 로마카톨릭 의식을 치러야 했다. 유대인에게서는 수입의 절반을 세금으로 뜯어갔던 색스니에서는 돼지 가죽을 걸치고 그 맹세를 하게 했으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유일하고 참된 교회”의 전형적인 절차인 것이었다. 루터는 그로부터 300년 뒤에 태어난 색슨인이었다.


    참으로 불타지만 소멸되지 않는 가시덤불인 것이다.


    정복자 윌리엄은 영국을 침공했을 때(1066) 유대인들을 루앙에서 데려왔으며, 그들은 런던, 베리, 성 에드몬드, 노르위치, 엑스터, 요크 등에 공동체를 형성했다. 영국에서 (그리고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서) 그들은 왕이 국가들 간의 전쟁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환전상과 대금업자의 일을 하도록 요구받았다. 그들은 네델란드에서는 이러한 은행업을 통해 부유해지기까지 했는데, 유대인 역사가들은 이런 돈 놀이를 통해 그들 중 일부가 상당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유대 민족을 일반 백성의 시기의 대상으로 만들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이 “일반 백성”은 언제나 로마카톨릭 사제들의 감독 아래 있는 로마카톨릭 신자들이었던지라 그로 인해 상당한 문제가 야기되었으며, 카톨릭 신자들은 유대인은 무슨 이유로도, 그들이 얼마나 근면했는지 정직했는지에 관계없이, 부자가 될 권리가 없다고 믿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샤일록”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스페인에서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고문하고 죽인 뒤 종교 재판소의 교리성성(敎理聖省)[신앙․도덕 문제를 다루는 교황청의 기관-역자주]은 남은 유대인들을 모조리 죽이고자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옮겼다(1531). 유대인들은 네델란드로 도망했는데 이는 유트레이트 연맹이 1579년에 네델란드를 스페인의 영향력으로부터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9년 후(1588) 하나님께서는 스페인 무적 함대를 프랑스, 영국, 스코틀랜드, 네델란드 연안에서 침몰시키셨는데, 그 함대에는 스페인 군사들만이 아니라 종교 재판소의 간부들이 고문 도구들을 가지고 타고 있었다. 영국 개신교도들을 고문하기 위함이었다.


    하도 많은 유대인들이 네델란드로 도망쳤기 때문에 암스테르담은 유럽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새 예루살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이란 말을 쓰려면 그들은 자기들이 멸시한 그 책, 바로 신약성경에서 바울 서신을 표절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용어는 갈라디아서 4장과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온다(후자는 사도 요한의 글에서 나온다). 다시 한번 주목할 것은, 성경은 성경을 멸시하는 죄인들의 지성과 사고를 통제한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들이 자기들이 하는 말이 어디에 나오는지 찾기 위해 성경을 읽어 보지 않더라도 말이다(pp.21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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