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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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강물이 되어 흐른다.’는 말이 있듯, 세상의 강물은 깊은 슬픔의 대명사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내신”(계 21:4) 뒤 등장하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 나오는 수정처럼 맑은 생명수의 정결한 강』(계 22:1)은 깊은 슬픔과는 무관한, 저주를 다 씻어낸 생명의 강물이다.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간 유대인 포로들은 본문 말씀처럼 바빌론 강변에 앉아 고향인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러나 바빌론의 강물은 유대인 포로들의 깊은 슬픔을 저 멀리 흘려보내지 못했다. 오히려 세상의 강물은 시온에 대한 그리움을 강물의 길이만큼 늘리고 슬픔을 강물의 깊이만큼 깊게 했다. 그들은 그들의 죄로 인해 포로로 사로잡혀 왔기에, 그 강변은 분주한 삶에서 떠나 온 여유로운 도피처가 아니라 그들의 죄에 대한 회개를 낳는 곳이었다. 『우리가 타국 땅에서 어찌 주의 노래를 부르리요? 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아니하면... 내 혀로 내 입천장에 붙게 하라』(시 137:4-6).
성도라면 죄를 짓는 자신이 미워서 눈물을 흘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비통한 울음은 분명 눈물의 강물이었을 것이다(마 26:75). 당신도 참회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눈물은 참된 참회의 증거이다. 당신의 볼에 흐른 두 줄기의 눈물은 당신이 주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증언하는 ‘두 증인들’이다.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간 유대인 포로들은 본문 말씀처럼 바빌론 강변에 앉아 고향인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러나 바빌론의 강물은 유대인 포로들의 깊은 슬픔을 저 멀리 흘려보내지 못했다. 오히려 세상의 강물은 시온에 대한 그리움을 강물의 길이만큼 늘리고 슬픔을 강물의 깊이만큼 깊게 했다. 그들은 그들의 죄로 인해 포로로 사로잡혀 왔기에, 그 강변은 분주한 삶에서 떠나 온 여유로운 도피처가 아니라 그들의 죄에 대한 회개를 낳는 곳이었다. 『우리가 타국 땅에서 어찌 주의 노래를 부르리요? 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아니하면... 내 혀로 내 입천장에 붙게 하라』(시 137:4-6).
성도라면 죄를 짓는 자신이 미워서 눈물을 흘려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비통한 울음은 분명 눈물의 강물이었을 것이다(마 26:75). 당신도 참회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눈물은 참된 참회의 증거이다. 당신의 볼에 흐른 두 줄기의 눈물은 당신이 주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증언하는 ‘두 증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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