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선
작성자 정보
- 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1,995 조회
- 목록
본문
명절에 경배하러 온 어떤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뵈려고 하자, 주님께서는 “인자가 영광받을 시간이 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십자가의 죽음을 언급하신 것이었다. 주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은 그들의 왕을 거부했는데(요 1:11) 그 대신 이방인들이 주님을 찾아뵈려고 하니, 주님은 갈보리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실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하신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선 그 십자가의 죽음을 그분 자신이 영광받으실 시간으로 표현하셨다. 주님께 그 죽음은 결코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이었다. 우리말에는 “피곤해 죽겠다,” “슬퍼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처럼 육체의 고통과 관련하여 죽음을 사용하는 극단적 표현법이 있지만, 반대로 “예뻐 죽겠네,” “좋아 죽겠네”처럼 좋은 일에 죽음을 가져다 붙이기도 한다. 우리 한민족은 죽음을 최상급 형용사로 사용하는 언어적 습관이 있는데, 후자의 죽음은 극단의 긍정을 나타낸다. 우리 민족은 일상생활에서 죽음을 긍정적으로 사용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죽음은 부정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주님의 성도들의 죽음은 그분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시 116:15). 에스더처럼(에 4:16),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단 3:16-18) 의를 위해서 죽음을 불사하는 성도들에게는 그 죽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므로 주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이다. 죽음이 의를 옷 입을 때 그것은 빛나는 죽음이요 달콤한 죽음이며 아름다운 죽음이 된다. 주님의 신실한 성도들은 죽음을 통해서도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매우 독특한 사람들이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