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일에 대한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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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범인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장면을 현장의 맨 앞줄에서 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건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딸을 위한 일이다.” 1990년 미국 어느 동네의 편의점에 사탕을 사러 갔다가 다음 날 숲속에서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9살 소녀의 엄마의 말이다. 2012년 7월 경남 통영에서 납치 살해당한 10살 소녀의 아버지는 “그 어린 것의 억울함을 달래 주려면 아빠인 내가 복수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면 국가가 대신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울먹였다. 같은 해 서울 중곡동에서 두 자녀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침입해 숨어 있던 범인에게 살해된 주부의 남편도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범인을 사형시킨다고 가슴의 응어리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그래야 아내의 원수를 갚을 수 있다. 범인이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어야 한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뒤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억울한 죽음으로 생을 마쳤는지 모른다. 그들을 사랑했던 가족들의 울분어린 탄원도 세월 속에 묻혀 버린 듯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계시는 공의로우신 심판주이시다. 국법은 악인을 놓쳤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법은 그들을 끝까지 추적한다. 지상 역사가 끝난 후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빠져 나갈 존재는 아무도 없다. 시간 속에 사라졌다고 여겼던 일들이 밝혀지고 마땅한 보응이 내려질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울분을 삭이고 평안을 유지해야 한다. 원수 갚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다. (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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