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사람은 심판을 깨닫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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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은 비록 지난날 자신들이 겪은 천인공노할 만행을 회복할 길은 없지만 한 개개인의 인생을 파멸시킨 일본인의 만행에 대해 사죄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복수의 칼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용서하겠다는 한 인격자의 또 다른 결의이기도 하다. 이런 자애(lovingkindness)가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분출된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안에서 하나님만이 인정해 주시는 “선”(goodness)이 있다. 『죄를 지으면 그를 꾸짖고, 그가 회개하면 용서하라』(눅 17:3). 세상에 죄짓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롬 6:23),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도 있다(요일 5:17). 그게 무슨 죄인가? 자기의 죄를 심판주 앞에 서기 전에 고백함으로써 용서받는 것이다(요일 1:7,9).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가졌다. 일본인들에게 그들 할머니들에게 행했던 죄들에 대해 뒤늦게나마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라는 것이다. 그 집회는 1,200회가 넘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족속이 아니기에 죄를 짓고서 회개할 기회를 얻었지만 외면해 버렸다. 그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아야만 한다(막 9:44,46,48). 아베 신조는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우리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를 바랐는데 그게 3년 반 만에 이루어졌는데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명쾌히 사과하지 않아 한 나라의 수상다운 면모를 보이지 못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스쿠디아인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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