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할 줄 아는 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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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godliness)이란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선한 양심과 믿음을 말한다. 믿음의 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이 드러내는 첫째 항목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성도이면 육신적이 된다. 육신적이 되면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할 수 없다. 육신적이 되면 욕심이 발동한다. 욕심이 발동하면 죄를 짓게 된다. 죄가 진행되는 단계를 보라.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영적 비중보다 육신의 비중이 더 커지게 되면 주님과의 교제가 안 되고 그의 삶은 세상 지혜를 따르게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경의 권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그 반대가 된다. 그렇게 되면 그의 삶에는 경건함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현재의 환경, 현재의 수입, 현재의 사역의 규모로 만족할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discipline)시켜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지상에 사는 동안에 경건할 수 없게 되면 그는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오는 기쁨을 잃어버리게 된다.
라오디케아 시대의 교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한 것을 경건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그것은 경건이 아니다. 경건이 아니기에 자신에게 유익이 못 되는 것이다. 탐심은 우상 숭배이지 경건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탐심을 버리지 못하는 한 그의 영적 삶에는 진전이 없게 된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영적 비중보다 육신의 비중이 더 커지게 되면 주님과의 교제가 안 되고 그의 삶은 세상 지혜를 따르게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경의 권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그 반대가 된다. 그렇게 되면 그의 삶에는 경건함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현재의 환경, 현재의 수입, 현재의 사역의 규모로 만족할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discipline)시켜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지상에 사는 동안에 경건할 수 없게 되면 그는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오는 기쁨을 잃어버리게 된다.
라오디케아 시대의 교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한 것을 경건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그것은 경건이 아니다. 경건이 아니기에 자신에게 유익이 못 되는 것이다. 탐심은 우상 숭배이지 경건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탐심을 버리지 못하는 한 그의 영적 삶에는 진전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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