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특집 목회자 칼럼 분류

가정의 달을 맞이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컨텐츠 정보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05월호>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세상도 가정이 중요하기에 가정의 달을 정해 가정의 중요함을 국민들에게 계몽한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기에 가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마귀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최초의 가정을 공격했다. 마귀는 최초의 인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했고,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가운데 그의 자녀들을 낳았다. 이 가정에서 최초로 태어난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살인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복을 받고 이룬 가정이었지만 죄로 인해 평화가 깨진 전쟁터가 된 것이다.

노아의 가정도 노아가 술 취했을 때 그의 아들 함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잃어버렸다. 아브라함도 이집트에 갔을 때 아내를 빼앗길 뻔했고,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온 하갈에게 들어가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사라가 이삭을 낳은 뒤 그를 쫓아내야 하는 큰 근심을 겪어야 했다. 다윗은 권력으로 우리야의 가정을 깨뜨리고 밧세바를 빼앗아 왔다가 그 대가로 그의 집안에 칼이 끊이지 않았다. 성경에 기록된 가정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살인과 간음과 음행, 시기, 다툼, 또 방탕과 탐욕과 악의로 인해 가정들이 깨졌고 가정이라는 모양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현대의 가정들은 어떠한가? 독거노인 세대가 백만이 넘고, 혼자 살다 죽은 노인들이 한참이 지나서야 발견되기도 한다. 맞벌이 부부가 급증하면서 방치된 아이들은 사회악에 쉽게 물들어서 범죄에 빠지고 만다. 가정을 이루고 산다 해도 가족 구성원이 서로에게 무관심한 가정들이 늘어난다. 집은 있지만 사랑이 없다. 사랑으로 시작된 가정이 증오와 적대감, 반항, 불륜, 폭력, 살인으로 엉망이 되고 있다. 계모가 아이를 죽이고, 친모가 아기를 방치했다가 죽자 비닐봉지에 담아 버리기도 한다. 왜 가정들이 이렇게 되었는가? 마귀의 지배를 받는 거듭나지 않은 『불순종의 자녀들』(엡 2:2)로 이뤄진 가정들이기 때문이다.

가정을 이루는 원동력은 사랑이다. 순수한 감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약 3:17), 이런 사랑으로 꾸려진 가정은 이 악한 현 세상에서 낙원을 맛볼 수 있는 장소가 된다. 특히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으로 이룬 가정은 하나님의 교회에 큰 힘이 되는데, 그렇기에 그리스도인 가정은 교회 다음으로 마귀의 중요한 공격 대상이 된다. 마귀는 갖가지 방법으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파괴하려고 애를 쓴다. 육신을 드러내도록 화를 내게 하기도 하고, 세상을 사랑하도록 탐스러운 것을 제시하기도 하며, 마귀가 직접 올무를 놓기도 한다. 욥의 가정은 마귀의 직접적인 공격으로 파괴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남편과 아내로서, 또 부모와 자녀로서 각자의 역할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에 더해 가정은 진정한 사랑과 이해가 있는 곳이 되어야 하며, “하우스”(House)가 아니라 “홈”(Home)이 되어야 한다. 구원받은 성도의 가정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을 수는 없고, 이 점은 바울 당시에도 그랬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가정 문제를 해결할 원칙을 성경에 기록하여 그대로 행하라고 명령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 가정의 첫 번째 원칙을 “자녀들”에게 제시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 왜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자식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없다면 자식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부모가 자신에게 어떻게 했는지 따지기 전에 부모에게 순종하려 해야 한다. 부모로서 정도를 벗어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를 잘 기르려고 얼마나 수고하는지 모른다. 악한 길로 인도하고 죄악을 저지르는 부모가 아니라면 그들에게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바울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킨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째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또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 함이니라』(엡 6:2,3). 이 말씀은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율법 중에서 헌법과도 같은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은 『주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령한 대로 네 아비와 네 어미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주 너의 하나님이 네게 준 그 땅에서 네 날들이 길어지고 네가 잘되리라.』(신 5:16)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 앞에 있는 계명들, 즉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을 숭배하지도 말라,” “주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와 같은 계명들에는 그것을 행하면 어떤 복을 주신다거나 무엇을 더해 주신다는 약속이 붙어 있지 않다. 하지만 효와 관련된 다섯 번째 계명에는 “그리하면 이 땅에서 장수하고 잘되리라”는 “약속”이 붙어 있다. 그래서 『네 아비와 네 어미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이면서도 『약속 있는 첫째 계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을 “계명”을 통해 주셨다는 점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단순히 순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소중히 여기고 보살피는 일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자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집에서 효도를 행하여 자기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선하고 기뻐하실 만한 것이라』(딤전 5:4).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향한 공경을 부모에게 보답하는 효도로까지 확장하셨다. 자녀들은 “부모에 대한 보답”이라는 성경적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 가정의 두 번째 원칙을 “부모”에게 제시했다. 『너희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신앙심이 있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런 말씀을 보면 “그래, 정말 우리 아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해야지.” 하고 단순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평소에 꾸중이나 잔소리를 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계하려 할지 모른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계하고 양육하면 아이들도 잘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점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동안 가졌던 믿음도 사려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기에 앞서서 “너희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이것이 자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기 위한 전제 조건이며, 이 순서를 망각하면 안 된다. 이 점은 자녀 교육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기에, 같은 맥락인 골로새서에서는 부모에게 오직 그 한 가지만을 당부한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성나게 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낙심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골 3:21). 부모가 자녀를 성나게 하는 일이 계속되면 자녀의 마음속에서는 부모에 대한 기대가 좌절로 바뀌어 낙심하게 된다. 낙심은 자녀를 부모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으로 만들기가 쉽다. 부모의 목표에 맞는 자녀가 되기를 강요하거나 부모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는 잘난 자녀로 만들려는 욕심이 자녀들을 성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자녀가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것 같아도 주의 교훈과 훈계를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라면 성경적인 훈육은 물 건너간 일이 되고 만다.

말하자면 부모는 자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려고 해야 한다. 주의 교훈과 훈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이고 그 말씀에는 매우 다양한 주제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사람이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는 것과 “거듭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려 주고 또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성경적인 기본을 망각하고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한답시고 온갖 “규제”와 “율법주의적인 틀” 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부모들이 있다. 자신이나 자녀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율법의 행위”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자녀 교육은 부모가 성경 구절을 말하고, 자녀에게 성경을 읽도록 “시키고,” 구절 암송을 “시키고,” 기도를 “시킨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시키는 것은 명령일 뿐 양육이 아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주의 교훈과 훈계를 따르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자신의 삶에서 보여 주면 자녀들은 그것을 눈으로 보고서 배우게 되는 것이다. 부모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자녀들을 책임지고 양육하는 청지기의 자세를 가져야 하되, 목자가 양무리의 본이 되듯이(벧전 5:3) 부모 자신이 가정에서 신앙의 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솔선해서 믿고 실행하는 부모에 의해 아름답게 운영될 수 있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어도 성경적으로 아름다운 가정은 살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 안에서 지상 최대의 낙원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답고 성경적인 가정은 가족 구성원들의 기도와 사랑과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며, 부모는 자녀를 성나게 하지 않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할 때 그 가정은 마귀가 무너뜨릴 수 없는 철옹성이 된다. 그리스도인 부모는 영적 분별력을 갖고서 자신의 가정을 지켜야 하며, 자녀들은 부모의 권위 아래서 순종함으로써 성경적인 가정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BB

전체 957 / 1 페이지
RSS
번호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