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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난도질하는” 극단적 세대주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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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4월호>
“극단적 세대주의”는 성경을 올바로 나누는 것을 넘어 성경의 권위 자체를 난도질하며, 교회의 기초와 성령의 사역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치명적인 우를 범한다. 이들의 핵심 주장은 단 하나로 집약되는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개인적인 계시를 받고 사역을 시작한 시점부터 비로소 존재하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얼핏 보면 사도 바울의 특별한 권위와 그가 받은 계시의 독특함을 높여 주는 듯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성경 전체의 통일성을 파괴하고,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뿌리를 흔들어 버리는 위험한 독소가 가득하다.극단적 세대주의가 탄생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성경의 핵심 용어에 대한 치명적인 오역과 자의적 해석에 있다. 이들은 『과연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진대』라는 에베소서 3:2 말씀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하나님의 은혜의 시대”로 해석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시대가 바울에게 주어졌다.”라고 주장한다. 즉 “사도 바울과 함께 은혜의 시대(교회 시대)가 개막되었다.”라고 곡해한 것이다. 이는 마치 기업에 새로운 전문 경영인이 부임하여 혁신적인 경영 방침을 발표한 날을 두고, 그날이 기업의 창립일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은 논리적 비약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그분이 계시로 내게 신비를 알게 하신 것』(엡 3:3)이라면서 『다른 시대들에서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한(엡 3:5)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있는 나의 지식』(엡 3:4)이라고 말한다. 즉 『이방인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이 되며 그의 약속에 동참자가 된다』(엡 3:6)는 “교회 시대”와 관련한 지식이 사도 바울에게 계시된 것은 맞지만, 그것이 곧 교회의 탄생 시점과 일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경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사도 바울은 이미 존재하던 “교회”라는 유기체에 관한 “경륜”(경영 방침)을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받았을 뿐이다.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교회가 사도 바울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하지만, “사도행전의 어느 구절부터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시작인가?”라는 구체적인 질문 앞에서는 사분오열되어 서로를 비판한다.
가장 과격하고 파괴적인 벌링거(E.W. Bullinger)와 그의 추종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시작”을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유대인들에게 최종적인 거부 선언을 하고 이방인에게로 향한 시점인 “사도행전 28장 이후”로 잡는다. 이들은 사도행전의 전체 기간을 유대인을 위한 “왕국 시대”로 간주하며, 사도행전 28장 이후에 기록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옥중서신)만이 진짜 교회 시대를 위한 교리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도행전 기간에 기록된 바울의 서신들(로마서, 고린도전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등)은 “교회 시대”를 위한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
벌링거의 주장이 너무 비상식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스탬, 베이커, 오헤어 등은 교회의 시작점을 사도행전 중간 어디쯤으로 앞당기려고 시도했다. 오헤어는 사도행전 18장에서 “고린도 교회”에 관한 계시가 나오는 때를 교회의 시작점으로 주장하는데, 이는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침례로 한 몸인 교회가 형성된다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고전 12:12,13). 그러나 이것은 지식적인 계시일 뿐 사도 바울의 고린도 사역과 관련된 사도행전 18장이 교회의 탄생 시점이라는 뜻이 아니다. 스탬이나 베이커는 교회가 “바울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가 회심한 시점(행 9장) 또는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한 때(행 13장)로 잡는다. 이들의 견해도 문제인 것은, 사도행전 13장 이전인 10장에서 이방인 코넬료와 그 집의 사람들이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들의 사함을 받으리라.』(행 10:43)라는 신약 구원 교리와 일치하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이 사도행전 9장에서 등장하기 이전인 8장에서는 이방인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음으로써”(행 8:37) 구원받았다. 이들은 모두 “바울이 나타나기 전에” 신약적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롬 10:9,10)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형성했다. 바울이 개인적으로 계시를 받기 시작하거나 이방인을 대상으로 한 사역을 본격화한 때가 교회의 탄생 시점이라는 주장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성경에는 바울 이전에도 “그리스도의 몸”이 존재했다는 거부할 수 없는 증거들이 있다. 교회는 바울이 등장하기 전부터 실존하고 있었으며, 영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13에서 자신의 과거 행적을 회상하며 『내가 유대교에 있었을 때...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으며 황폐시켰고』라면서 교회가 바울이 회심하기 전부터 있었음을 고백한다. 이뿐 아니라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바울(사울)에게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던 사울에게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행 9:4)라고 하신 일은, 당시에 박해받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이미 유기적으로 결합된 “몸”으로서의 “교회”를 구성하는 지체들이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의 마지막 인사에서 안드로니코와 유니아를 가리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고 기록한다(롬 16:7). 성경에서 『그리스도 안에』는 죄인이 성령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그 몸의 지체가 된 것(고전 12:12,13)을 가리키는 핵심적인 표현이다. 바울 본인이 자신보다 먼저 교회의 지체가 된 사람들이 있었다고 기록한 것은, 바울 자신이 교회의 시작점이 될 수 없음을 스스로 천명한 것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행전 1:5에서 앞으로 제자들이 받게 될 “성령침례”를 예언하셨다. 제자들은 예언에 따라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에 “한 성령에 의하여 한 몸(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고”(고전 12:13), 이로써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이 점을 부인하는데,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라. 그들의 주장대로 사도행전 28장 이전까지 “그리스도의 몸”이 없었다면, 사도 바울은 회심하고 나서 사도행전 28장까지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사도행전 9장”파에 대해서는 어떤가? 당시 다마스커스로 가던 사울의 회심 이후에 제자들이 성령침례로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갔다면, 그보다 이전인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침례를 받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같은 제자들은 그동안 어느 몸에 속해 있었던 것인가? 이와 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성령침례가 마치 둘 이상 존재하는 것처럼 가르친다. 즉 사도행전 9장 이전에 성령침례를 받은 “유대인들”로 구성된 한 몸과 사도행전 9장에서 바울과 함께 시작된 “이방인들”로 구성된 한 몸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의 문제점은 “경륜”과 “교회의 시작”에 관한 것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의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물침례”를 신약 교회에서 완전히 제거해 버린다는 점이다. 이들은 에베소서 4:5의 『한 침례』를 근거로, 현재 우리에게는 오직 “성령침례”만 있을 뿐 “물침례”는 유대적 의식이므로 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문자적 해석을 가장한 직무유기인데, 주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마 28:19)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이 명령에 관해서도 궤변을 늘어놓기를, 그것은 “유대인 사도들”에게 주어진 것이며, 미래 세대인 대환란 때 적용되는 진리이므로, “물침례”는 교회 시대의 이방인 성도들이 실행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후 그들에게 “물침례”를 주었다는(고전 1:14-16) 점도 모르는 것인가? 만일 “물침례”가 이방인 교회와 상관없는 것이었다면, 바울이 왜 이방인들에게 침례를 베풀었겠는가?
마태복음 28장의 “지상 명령”을 교회 시대와 상관없는 “대환란 때의 유대적 왕국 복음과 관련된 명령”이라고 해석하게 되면, 교회 시대에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와 같은 명령들을 모두 거부해야 한다는 논리가 선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마태복음이 왕국 복음의 성격을 띠고 있을지라도 그 안에 담긴 “지상 명령”은 교회 시대의 복음 전파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이 “골방의 신학자”일 뿐 “거리설교자”와 “복음 전파자”가 되지 못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성경을 “난도질해서” 복음 전파의 동력을 가루로 만들어 흩어 버린 것이다.
극단적 세대주의는 성경을 과도하게, 그것도 잘못 나눔으로써 혼란을 야기하고 믿음을 파괴해 버린 극악한 이단 교리이다.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은 “성경을 나누라”는 명령에만 집착했지, 성경을 “어떻게 올바로 나누어” 해석하고 적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무지한 자들이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건전한 진리의 지식들을 내던져 버리고, 매우 혼란스럽고 불명확한 지식들만을 양산했다. 이처럼 세대적 진리를 망쳐 버린 자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성경을 건전한 영으로 올바로 나눔으로써 세대주의를 정확히 공부해야만 한다. 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