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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용어를 혼란스럽게 하는 신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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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3월호>
김희철 / 킹제임스성경신학원 석사과정신학자들은 잘못된 교리 위에 자신들의 기초를 세우고 공고히 해 왔다. 그들은 성경의 서로 다른 단어를 같은 것으로 보는 이상한 습성을 지녔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늘나라”이다. 앤서니 후크마(1913-1988)는 1900년대에 장로교에 속한 미국의 칼빈 신학 대학의 조직신학 교수였다. 자신의 저서 <개혁주의 종말론, The Bible and the Future>(부흥과개혁사)에서 후크마는 자기가 왜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을 같은 것으로 보는지 이유를 설명했다. 즉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기를 꺼려했기 때문에, 후대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하늘”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면서 하나님 대신 하늘이란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물론 증거는 없다). 후크마는 “비록 마태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용어를 4번 언급하기는 하지만, ‘후대 유대인 문헌’에서 발견되는 ‘말쿠트 샤마임’이라는 히브리어의 헬라어 직역이 ‘천국’이므로, 마태가 주로 유대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쓴 것을 고려한다면 하나님의 나라 대신 천국을 썼어도 같은 뜻으로 통용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같은 대상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오류를 퍼뜨렸다.
“후대 유대인 문헌”이 도대체 무엇인가? 근거를 좀 알려주겠는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도 마태가 당시 배교한 유대인들의 문화나 문헌을 참고해서 “하나님” 대신 “하늘”을 사용했다는 말인가? “후대 유대인 문헌”이라면 배교한 유대인 랍비들의 미드라쉬와 탈무드를 말하는 것 아닌가? 마태가 그런 유대적 문화를 참고해서 하나님을 하늘이라고 불렀다는 것인가? 마태복음 어디를 뒤져 봐도 마태가 “하나님”을 “하늘”로 부른 경우는 “결코 없다!” 이러한 주장이 그럴싸하게 보이는 이유는 믿음 없는 악한 마음 때문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성경이 어떤 책인지에 대한 믿음조차 결여되어 있기에 그러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아무렴, 칠십인역 같은 신화적인 조작 문서가 초림 전에 존재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인데 어련하겠는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다(딤후 3:16). 직접적으로 성령 하나님께서 단어와 표현 하나하나를 선정하셔서 그분 자신의 호흡을 불어넣어 쓰게 하신 책이 성경이다. 성경의 원저자는 성령 하나님이시며,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그 성경을 기록하는 일에 쓰임받았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에 이미 그 보존에 관한 약속이 있으며(시 12:7),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헬라어가 통용되던 시대에 말씀하신 그분의 말씀들도 모두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마 24:35, 막 13:31, 눅 21:33). 즉 “천국”(Kingdom of Heaven)이라고 언급하신 신약의 헬라어 단어 선정과,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라고 언급하신 단어 선정에 있어서 사람이 임의로 그것들이 “같은 뜻이다,” “다른 뜻이다”라며 정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는 지독하게 교만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늘(Heaven)과 하나님(God)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성경의 서술이 어떠한지 철저하게 비교함으로써 구분할 것은 구분하고 합칠 것은 합칠 수 있다. 그러나 헬라어 표현법이나 찾아다니며 아무런 증거도 없는 “추측”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말한다고 해서 신학자들의 그러한 주장을 성경적인 진리로 받아들이면 절대로 안 된다. 그들의 거짓 교리를 믿는 사람은 인간의 전통과 교리 위에 자신의 믿음을 세우게 될 것이며, 그러한 교리를 근거로 드려지는 모든 기도와 경배에 사용되는 말들은 하나님께 거절당하게 될 것이다(마 15:9, 막 7:7).
올바른 원칙에 따라 번역된 영어 <킹제임스성경>과 <한글킹제임스성경>의 “직역”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정직하고 올바른 것이다. 물론 모든 표현 자체가 “직역”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교리적인 중요성이 있거나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단어에 대해 원문의 표현 그대로에 충실하려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왜 이 번역 성경들을 쓰셔서 많은 사람들을 진리의 지식에 이르게 하셨는지 잘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스스로 현명한 척하는 신학자들은 천국과 하늘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를 합쳐 놓고 그들 스스로 혼란에 빠져, “하나님의 나라를 정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꽁무니를 빼고 도망가거나 다른 신학자들의 “의견” 따위만 즐비하게 나열한 채, “내 생각에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의미인 것 같다.”라고 할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꾀와 헛된 생각에 빠졌을 뿐이다(고전 3:19, 20). 그들 신학자들은 자기를 따르는 학생들을 미혹하여 줄줄이 오류의 구덩이에 빠뜨려 왔으니, 실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둘 다 구덩이에 빠진” 격이다! 그들의 신학적인 문제는 그 모든 경우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대하는 그릇된 태도에서 기인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Heavenly Kingdom)와 “천국”(Kingdom of Heaven)은 어떠한가? 왜 <한글킹제임스성경>은 같은 표현처럼 보이는 “하늘나라”와 “천국”을 구분하는 것인가? 한자 뜻으로 보면 똑같은 말 아닌가? 이는 헬라어 <표준원문>에 충실하기 때문이며, 성령님께서 단어 선정을 다르게 하신 의도를 열심히 찾고 공부한 사람들이 그 이유를 분명히 규명했다.
우선 “하늘나라”라는 단어는 신약에 한 번 나오는데, 디모데후서 4:18(『그의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 나를 보호하시리니』)이 그곳이다. 성령님께서 헬라어 “에퓨라니온”으로 하늘나라를 표현하셨을 때, 그것은 단순히 하늘의 뜻만을 가지지 않고 물리적인 하늘 자체의 뜻을 내포하려 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말하자면 “하늘나라”와 “천국”이 분명히 구분되는 이유는 성경 자체의 진술 때문이다. “하늘나라”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쓰기 오래전에 다녀왔던 바로 그곳이다(고후 12:2). 이는 셋째 하늘이라 불리는 장소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나의 아버지 집』(요 14:2)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실제적인 도성이 있고(히 12:22, 계 21:2), 하나님께서 가장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신다(시 11:4). 그곳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들려 올라가신 장소이기도 하다(행 1:9). 성경대로 믿는 설교자들은 성경이 “하늘나라”와 “셋째 하늘”과 “새 예루살렘”과 “하늘의 예루살렘”과 “나의 아버지 집”을 동의어에 가까운 용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안다. 그러나 “천국”에 관해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는, 물리적인 하늘이 아니라 땅에 세워지는 왕국에 관해 언급하실 때만 사용하신다(마 3:2; 4:17; 8:11; 10:7; 11:12; 13:44). 특히 마태복음 11:12에서 예수님께서는 『침례인 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폭력을 겪고, 폭력을 쓰는 자들이 힘으로 그것을 차지하느니라.』라고 언급하셨는데, 만일 이것이 지금 우리 머리 위 우주의 정북 방향 끝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늘나라”라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그곳이 힘으로 차지당해 왔다는 말인가?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놀랍도록 단어를 구분하셨는지 알 수 있으며, 성령님께서 <킹제임스성경>에 어떻게 역사하셔서 그 교리적 구분을 명확히 해 두셨는지를 알고서 놀라게 된다. 단, 성경이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거룩한 책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그러한 구분을 발견할 수 있다. 성경에 관한 이와 같은 믿음이 결여된 사람은 성령님께서 진리로 인도하지 않으신다.
또한 신학자들은 “지옥”이라는 번역에 대해서도 발작을 일으킨다. 그들은 “지옥”이라는 단어가 구약의 히브리어 “스올”로 음역되어야 한다며 <킹제임스성경>을 공격하고, RSV가 더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히브리어가 지옥과 음부를 단어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스올”이라는 히브리어 원문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며, “스올”의 의미가 단지 “죽음 후의 상태나 장소”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신학자들은 “신구약 중간기”를 언급하면서 그때의 문화적 변화로 인해 “스올”의 개념이 확장된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렇기에 지하 세계에서 경건한 자와 불경건한 자 사이에 구분이 있는 개념은 그 기간에 생겨난 것이고, “형벌의 장소”는 히브리어 “스올”에 없는 의미였는데 그 중간기를 지나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거짓말한다. 아, 그럼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9장과 누가복음 16장에서 지옥을 언급하실 때 신구약 중간기의 유대인 묵시 문학 따위나 헬라적 문화의 영향을 받으셔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말인가? 위대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헬라 문화의 영향 때문에 구약의 “스올”에는 없던 “지옥”이라는 개념을 마가복음 9장과 누가복음 16장에 추가하셔서 “하데스”를 말씀하셨다는 것인가?
히브리어 “스올”에는 분명히 지옥의 개념도 있다. 배교한 신학자들은 실로 가증한 거짓말쟁이다! “스올”은 고통의 장소라는 의미를 확실히 갖고 있으며(시 116:3, 욘 2:2), “스올”에서의 고통은 불로 인한 것임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사야서를 인용하시면서 그 의미를 분명히 다루셨다(사 66:24, 막 9:43, 마 12:40). 선지자 요나가 갔던 “스올”(욘 2:2)은 분명 “하데스”(마 12:40)이고, “하데스”는 분명 “지옥”이다(막 9:43-48). 구약성경의 “지옥” 번역은 너무도 합당한 번역인 것이다! 스올은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이 가는 장소로서의 “음부”와 고통의 장소로서의 “지옥”으로 나누어 번역해야만 그 의미가 명확해지며, 신약성경의 “지옥” 번역과 일치되어 신ㆍ구약성경이 통일성을 갖게 된다.
번역은 수용언어에서 그 의미를 명확히 해야 한다. “스올”이나 “하데스” 같은 중요한 단어를 음역하게 되면 읽는 사람에게 그 뜻이 다가오지 않는다. 스올이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고통의 장소”와 “죽은 사람이 가는 장소” 두 가지로 쓰이는 것이 분명하다. 유대인들이 이 두 의미를 합쳐 말하는 “스올”을 다른 민족들이 읽게 되면 “고통의 장소”에 대한 의미가 약화되거나 없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영어는 히브리어보다 단어 자체가 많다. 영어로는 음부와 고통의 장소가 각기 다른 단어로 구분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음부”(grave)와 “지옥”(hell)으로 구분되어 번역될 수 있으며, 성령님께서는 <킹제임스성경>의 구약을 번역하심에 있어서도 악인들의 고통과 심판을 의미할 때는 “지옥”(hell)을 선택하셨고, 일반적인 죽음 이후에 가는 장소를 의미할 때는 “음부”(grave)를 선택하셨다. 그렇기에 <킹제임스성경>이 원어 성경을 “주석”하기도 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러한 영감받은 성경이 지옥과 음부를 올바로 구분하여 번역함으로써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에게 음부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누가복음 16장과 사도행전 1:25, 요한계시록 20:3 등을 통해서 명확히 알려 준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다른 변개된 성경들에서는 알 수 없는 “향상된 계시”가 <킹제임스성경>을 통해 주어진다. <킹제임스성경>이 같아 보이지만 결코 같지 않은 단어들과 표현들을 놀랍도록 구분한 것을 확인함으로써,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에 하나님께서 깊숙이 개입하셨다는 사실을 더욱 굳게 믿을 수 있다.
배교한 신학자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성경의 서로 다른 단어들을 합쳐서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그들의 의견 따위는 존중하지 말라. 존중하는 자는 그 이단들에게 동조하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