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어느 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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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치유받았을 때 엘리사는 그가 재차 강권한 예물들을 받지 않았다. 치료에 대한 당연한 답례였지만 엘리사가 그처럼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은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전쟁의 기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하시가 탐심에 이끌려 나아만을 속이고 예물들을 취했을 때 엘리사는 본문과 같이 호되게 책망하며 저주를 내렸다. 그들이 처한 “지금”은 적국의 물건을 탐내며 흥청망청할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주님께서 하늘의 왕국을 이 땅에 문자적으로 실현하시는 계획이 연기된 “지금”은 흑암의 권세가 활동하는 때이다. 『그러나 지금은 너희의 때요, 또 흑암의 권세니라』(눅 22:53).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흑암의 권세로부터 구하여 내셔서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셨다(골 1:13).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지금이야말로 휴거의 때와 가깝고, 영적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임을 직시하고 있다. 『이는 지금이 우리가 믿었던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음이라』(롬 13:11). 따라서 “지금”은 대적 마귀가 이전보다 더 사납게 울부짖으며 삼킬 자를 찾아 더 분주히 돌아다니는 때이다(벧전 5:8).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할 때이다(벧전 4:7). 이 민족의 복음화와 진리의 지식의 정착을 위해 맡겨진 시대적 사명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 이런 때에 기도로 함께 분투하기를 그치고 육신의 정욕만을 도모한다면, 그 사람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망각하고 정신 못 차린 “게하시”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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