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부활에 관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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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4월의 어느 주일날, 지역교회에서 설교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라디오를 켜고 주파수를 맞추는데 한 기독교방송에서 특이한 어투를 지닌 한 대형교회 목사의 설교가 들렸다. 내가 주파수를 돌리다가 순간 멈춘 것은, 그가 <개역성경>의 욥기 19:26을 읽고 나서 “몸의 부활”에 대한 증거 구절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어이없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개역성경>의 이 구절은 『내 몸을 입고 하나님을 보리라.』는 바른 말씀을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로 바꿈으로써 몸의 부활을 없애 버린 대표적인 구절이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그 목사는 자신이 읽은 구절과 자신의 말이 서로 모순되고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목소리를 높였고, 이 점을 모르는 교인들은 반사적으로 ‘아멘’을 외쳤다. 그러나 그들이 무지하더라도 그들의 ‘아멘’처럼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 ‘진실로’ 자기 몸을 입고 주님을 저 하늘 나라에서 만나 뵙는 것은 주님의 간절한 뜻이 아니던가!(딤전 2:4)
오늘은 현대 교회들이 지키는 “부활절”이다. 그들이 부활절을 지키는 것은 이교도의 풍습을 기독교 안으로 가져온 로마카톨릭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물론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핵심이다. 그러나 바른 신앙은 이교도들의 절기를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니다. 바른 신앙은 주님의 부활을 성경대로 믿고 실제적으로 증거할 때 소유하게 된다.
말하자면 그 목사는 자신이 읽은 구절과 자신의 말이 서로 모순되고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도 목소리를 높였고, 이 점을 모르는 교인들은 반사적으로 ‘아멘’을 외쳤다. 그러나 그들이 무지하더라도 그들의 ‘아멘’처럼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 ‘진실로’ 자기 몸을 입고 주님을 저 하늘 나라에서 만나 뵙는 것은 주님의 간절한 뜻이 아니던가!(딤전 2:4)
오늘은 현대 교회들이 지키는 “부활절”이다. 그들이 부활절을 지키는 것은 이교도의 풍습을 기독교 안으로 가져온 로마카톨릭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물론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핵심이다. 그러나 바른 신앙은 이교도들의 절기를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니다. 바른 신앙은 주님의 부활을 성경대로 믿고 실제적으로 증거할 때 소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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