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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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있었던 일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었을 것 같은 소녀들 셋이 나란히 횡단보도를 건너왔고, 필자는 전도지를 주면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다. 그중 둘은 관심을 보였지만 한 명은 영 싫은 눈치였는데, 그 한 명이 급기야 복음을 들으려던 두 친구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그냥 가자고 보채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필자의 뇌리 속에 본문의 진리가 스쳤고, 단호하게 이렇게 꾸짖었다. “이 두 친구들이 지옥에 가면 책임질 수 있어요?” 적잖이 당황한 그 소녀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되어 두 친구가 복음을 듣고 거듭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본문에서 바울이 엘루마를 꾸짖어 그 눈을 멀게 한 일을 계기로, 총독 서기오 파울로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상황과 대동소이한 상황이었다(행 13:12). 물론 친구들과 놀러 나와서 웬 모르는 사람에게 꾸지람을 들은 그 소녀에게 인간적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혹자는 세 명 다 구원받을 방법은 없었겠느냐고 묻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바둑이나 장기와 같은 전쟁 “놀이”가 아니다. 최선의 수를 찾아내기 위해 깊이, 또 충분히 생각할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 어떤 전쟁보다도 치열한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는 최선의 수를 찾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낭비할 시간이 없다. 그저 최악을 막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여야 할 뿐이다. 그리스도의 군사라면 한 사람이라도 더 이겨오는 일, 그 일만을 생각하면서 때로 마음을 모질게 먹을 줄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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