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을 때와 안는 것을 그만둘 때
"안을 때와 안는 것을 그만둘 때요" (전 3:5)
필자는 본문 말씀을 대할 적마다 자녀를 안을 때가 떠오른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안고 내려놓기를 얼마나 반복하는지 모른다. 안아 달라고 떼쓰는 아이 때문에 버겁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는 금세 자라 점점 안는 횟수가 준다. 벌써 초등학생만 되도 잘 안기려 하지 않는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되면 취직을 하거나 결혼을 할 테고, 그때는 거의 안을 일이 없을 것이다. 안을 때가 소중한 이유는 이렇듯 안는 것을 그만둘 때가 오기 때문이다. 포옹은 사랑의 표현이고 사랑은 표현해야 의미 있다. 부모든 자녀든 연인이든, 누군가를 안고 안길 수 있음은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소중한 복이다. 초림 당시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서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특히 의심 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어린아이들을 두 팔을 벌려 꼬옥 안아 주시기도 했다(막 9:36).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두 팔이 벌려진 채로 죽으셨는데 이것을 상상해 보면 마치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조물인 인류를 안아 주시고자 두 팔을 벌리고 계시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의 표현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가족을 안아 줌으로써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사랑, 즉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것이 “안을 때”를 가장 잘 아는 그리스도인의 현명한 모습이다.
화해케 하라 하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에 널리 전하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