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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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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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6년 04월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에 관해 말씀하시다가 이런 일을 언급하셨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 그가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눅 18:8) 만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라고 하신 말씀이 옳다면, 재림 전에는 “의로운” 사람들의 믿음이 파산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자신이 돌아오실 때 무슨 믿음을 찾을 수 있겠느냐며 의문을 제기하셨기 때문이다. 즉 『불법이 성행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라는 말씀처럼,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는 데다 불법까지 성행하는 고로, 사람의 아들들로부터 믿음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오늘날의 기독교계에서 이러한 현상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는 지표는 “호전적인 근본주의자들”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이들의 불신에 대해서는 필자가 4,000페이지가 넘는 자료를 통해 기록해 두었으므로,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의 소위 “근본주의자들,” 적어도 그들 가운데 학자 출신의 유명 인사들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볼 필요도 없다. 사실상 그들은 “실용주의적 인본주의자들”이다. 이 용어는 해럴드 윌밍턴, 로버트 섬너, 알린 호튼, 트루먼 달러, 스피로스 조디에이츠, A.V. 핸더슨, J.R. 포크너 같은 배교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애프만, 위즈덤, 파노시안, 커스터, 닐, 밥 존스 3세, 마틴, 프라이스, 파스태드 및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는(요 12:43), 전혀 호전적이지 않은 초식동물과 같은 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라오디케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잃어버렸음을 잘 보여 주는 지표는 또 있다. 바로 “교회의 휴거”의 교리에 관한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은 미국 전역에서(1970년 이후로 강력하게) “교회의 환란 후 휴거”에 관한 자료를 배포하고 있다. 그 자료에 배경으로 깔려 있는 생각이란, “환란 전 휴거” 교리를 창안한 것은 예수회 사제였으며, 그 후 스코틀랜드의 이단들(“어빙파”라 불림)이 그것을 전파했고, 여기에 플리머스 형제단(해리 아이언사이드, C.I. 스코필드, 존 넬슨 다비, 크로닌)이 미혹되는 바람에 사람들이 오늘날 이 교리가 성경적 교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제에 관해 십여 편의 “소논문들”이 발행됨에 따라, 수천 명의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환란 전” 휴거가 정말로 있을지, 아니면 없을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복된 소망, 곧 위대한 하나님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음이니』(딛 2:13)라고 말씀한다. 이렇듯 성경으로 직접 확인해 보지도 않고 그런 자료들을 믿을 만큼 어리석었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하여 『그 복된 소망』을 버려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대신(살전 4:16) 다니엘의 “칠십째 주”와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배교함으로써 구약의 유대교로 돌아가기 직전이고(cf. 갈 3-6장),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주님께로부터 받은 지위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은 정통주의자들이 입에 발린 소리로 말하듯이 성경을 “진지하게” 공부했더라면, 다니엘의 칠십째 주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은 “믿음”과 “행위”가 한 사람의 구원을 결정한다는 점을 알고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그 복된 소망』을 버리고 휴거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고서는 테네시템플, 리버티대학교, 펜사콜라크리스천대학, 그리고 밥존스대학교의 교수진들의 주장을 의지한다. 이들은 모두 율법 아래 있던 구약의 구원이 은혜 아래 있는 신약의 구원과 같다고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은 앞서 언급한 학교들과 여타 수십 개의 신학교들에서 가르치는 표준적인 알렉산드리아 이단 교리이다. 하지만 진리에 깨어 있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이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를 통과할 것이라고 믿는 저 환란 후 휴거론자들이 내놓은 자료를 논박할 수가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 그가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그렇다. 주님께서는 지상에서 믿음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려우실 것이다.

자, 우리는 『성도들에게 단번에 전해 주신 믿음』(유 1:3)에서 떨어져 나간 저 그리스도인들이 어째서 그런 주장을 듣고 현혹되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성경에는 분명 모호한 부분도 있지만, 여기에 전혀 모호하지 않은 네 가지 분명한 진리를 제시하려고 한다.

첫째, 대환란을 예언하는 마태복음 24장 1절부터 36절까지 그 어디에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교회(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언급은 없다. 『만일 그 날들이 단축되지 아니하면 어떤 육체도 구원받지 못하리라. 그러나 택함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 날들이 단축될 것이라... 또 주께서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시리니, 그들이 하늘 이편 끝에서 저편 끝까지 사방에서 그의 택하신 사람들을 함께 모을 것이라』(마 24:22,31). 존 칼빈은 “선택”이라는 단어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여기 22절과 31절의 『택함받은 사람들』이 교회 시대의 성도들이라고 쉽게 단정했다. 이 부분에 관해서라면 칼빈은 마이클 잭슨이나 엘비스 프레슬리만큼이나 성경에 관해 엉망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나의 택한 이스라엘』(사 45:4)이라고 부르셨다. 그들은 한 장 안에서 두 번이나 『나의 택한 자』(사 65:9,22)라고 불리기도 했다. 칼빈은 “주권적 선택”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성경의 4분의 3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둘째, 교회 시대에 그 어떤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인자”를 찾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바울은 이 『인자[Son of man]』라는 표현을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이 용어는 유대적 칭호로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지상 사역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유대인 메시아이심을 지칭하기 때문이다(마 5-23장, cf. 롬 16:25,26; 15:16-24).

셋째,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환란을 기다리라고 하시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형제들아, 잠든 자들에 관해서는 너희가 모르게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가 소망이 없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잠든 자들도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3-18, cf. 고전 15:51-53, 요일 3:1-3, 빌 3:20,21, 딛 2:13).

넷째, 휴거는 신비이며, 바울이 이 신비에 관해 기록할 때까지는 계시되지 않았다(고전 15:49-52). 구약의 인물들은 누구나 구약 성도들이 환란 후에 들림받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진리가 성경 전체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이다(시 50편, 사 26장, 솔 2장, 욥 37장). 물론 칼빈은 이 목록에 있는 말씀들을 단 한 구절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설령 그가 그 말씀들을 읽었다 하더라도, 이 진리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복된 소망을 제거하려는 자들의 주장이 역사적으로도 사실이 아님을 우리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환란 전 휴거에 대한 언급은, 그들이 이 교리를 발명한 사람으로 지목하는 어빙이나 존 넬슨 다비가 나타나기 적어도 1,200년 전인 4-7세기경에 이미 존재했다. 니시비스의 에프라임(Ephraem of Nisibis) 혹은 익명의 에프라임(Pseudo-Ephraem)이 했던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 그리고 세상의 끝”에 관한 설교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설교는 당시 널리 읽혀지고 번역되었는데, 이 문헌을 보면 그 당시에도 대환란 이전에 휴거가 있을 것이라는 진리가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어찌하여 우리는 지상의 일들에 대한 모든 염려를 버리고 주 그리스도를 만날 예비를 하여, 그분께서 온 세상을 압도하는 혼란으로부터 우리를 이끌어내시도록 하지 않는가?... 이는 하나님의 모든 성도들과 택함받은 자들이 다가올 환란 이전에 모이고, 우리의 죄들로 인해 세상을 압도할 혼란을 보지 않게 하시려고 주께로 데려감을 받기 때문이다.” - 역자 주]

사람들이 휴거의 교리가 어떤 개인의 해석이라고, 누군가가 그 교리를 창안해 낸 것이라고 주장하든 말든, 어떤 이단이 그것을 가르쳤다고 비난하든 말든, 어디서 주워들은 정보를 누가 어떻게 전달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든 말든, 그 외에 누가 또 어떤 견해를 피력하든 간에 휴거가 진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배교자들이 버린 그 소망을 “복되다”고 일컫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소망이 하나님의 자녀를 정결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지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이 정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정결케 하느니라』(요일 3:3). 이 소망은 또한 그리스도인을 위로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8). 그리고 우리에게 화평을 준다(빌 4:5-7). 이 소망은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늘로부터 오실 『구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하고, 또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시키시는 그 능력의 역사로 인하여 우리의 천한 몸을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같이 변모시켜 주실 날을 바라게 한다(빌 3:20,21). 그런데 왜 이 복된 소망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즉 뉴스 매체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텔레비전 그리스도인들”이며, 뉴스 보도에 잠식되어서 살아간다. 그들은 뉴스 매체들이 전하는 소식들, 곧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국세청에 대해,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에 대해, “중동 문제”에 대해, 그리고 학교 내의 인본주의 만연 등에 대해 듣고서 “대환란”이 시작되었거나 곧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테네인들처럼(행 17:21)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 TV를 포함한 대중 매체가 내뿜는 오물 속에서 계속 뒹군 결과, 어느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건 다들 겪게 되는 공통된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 “환난”(요 16:33, 빌 1:28-30)과 마태복음 24:21에 나오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인 “대환란”을 혼동하게 된 것이다.

이제 그들은 대환란 전에 은밀한 “즉각적인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증거 구절”을 요구하며 아우성을 친다. 그들의 압력이 너무나 거셌던 터라, 어리석고 불경스러우며 서투른 <뉴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환란 전 휴거에 대한 “증거 구절”인 데살로니가후서 2:7을 가져다가 그곳의 “그”라는 단어를 대문자(He)로 표기하여 성령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물론 <킹제임스성경>을 변개하는 근본주의자들이 틀렸다. 데살로니가후서 2:7의 “그”는 성령님이 아니다. 무소부재하신 성령님께서는 옮겨지실 수가 없다. “그”는 데살로니가후서 2:3에 나오는 “죄의 사람”을 가리킨다. - 역자 주]. 그들은 “율법 아래 있던 구약의 구원이 은혜 아래 있는 신약의 구원과 같다”는 이단 교리를 가르치는 한편으로 그런 무지막지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보다 더 야비한 사기꾼 무리는 존재했던 적이 없다. 그들은 라오디케아 시대에만 있는 독특한 괴짜들이다.
우리의 입장은 시종일관 분명하다. 우리는 사람들이 누가 이 교리를 창안했다고 하든지, 언제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누가 그것을 믿었고 누가 믿지 않았다고 말하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가 유일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또 기울이는 질문은 이것이다. 즉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느냐?』(롬 4:3)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 자체가 신비인 것처럼(엡 3:1-6) 그리스도의 몸의 휴거 또한 분명한 신비라고 말씀한다. 만약 교회의 휴거가 지상 재림 전에 일어난다면, 그런 휴거는 적그리스도가 오는 것만큼이나 놀랍지도 신비롭지도 않은 일이 되고 말 것인데, 그런 일을 왜 기다리겠는가? 『주께서 너희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인내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바라노라』(살후 3:5). 『우리가 흙으로 만들어진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하늘에 속한 분의 형상도 입으리라. 그러나 형제들아,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으며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상속받을 수 없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 소리에 눈 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 15:49-52).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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