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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와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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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피터 S. 럭크만 저    /  윤지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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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0일 개정판1쇄 출간| 152*223*15mm 신국판, 무선제본 420g | 280 쪽 | ISBN : 97911859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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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
책소개

하나님의 말씀의 주요 주제는 왕국이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구원에 관한 구절보다 왕들 또는 왕국과 연관된 구절이 다섯 배나 되기 때문이다. 왕국이라는 주제는 너무나 중요해서 성경의 두 책이 "열왕기"라고 불리며, 다른 두 권은 "역대기"라고 불린다. 둘 다 왕들과 왕국들에 대한 연대기적 설명이다. 결국 왕국은 하나님과 인간의 주요 관심사인 것이다.


이 책은 두 가지 사실을 말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첫째는 인류 연합과 세계 평화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든 노력들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무산될 것이라는 사실이며,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이미 완벽한 형태의 정부를 예언해 놓으셨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이나 종교, 교육, 철학 등 인간의 온갖 노력으로 건설하려고 하는 유토피아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고, 대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그분의 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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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럭크만 박사(Dr. Peter S. Ruckman)

피터 럭크만 박사는 현재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이며, 펜사콜라 성경 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40년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럭크만 박사는 밥 존스 대학교(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 창세기, 출애굽기, 욥기, 시편, 잠언, 소선지서,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의 주석서를 저술함으로써 올바른 성경 진리를 밝히고 있다.
또한 럭크만 박사는 <킹제임스성경>이 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 있게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독보적인 학자이다.
특히 그의 저서 <필사본 증거>,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 <신약 교회사>,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 등에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그는 주석서와 성경 교리에 관한 150여 권이 넘는 책의 저자이며, 세계 전역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존경받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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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서  문 / 3


제 1 장  왕국에 대한 관심 / 13
제 2 장  억측과 가정 / 36
제 3 장  최초의 계획 / 53
제 4 장  개념과 발전 / 67
제 5 장  왕국의 붕괴 / 103
제 6 장  붕괴와 복구 / 140
제 7 장  연기된 왕국 / 176
제 8 장  가짜 왕국 / 210
제 9 장  사탄의 왕국 / 230
제10장  왕국의 완성 / 242


에필로그 /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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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책에 걸맞는 최고의 서문은 미국의 지난 열 명의 대통령의 연설에서 발췌하는 것이 알맞을 것 같다. 또 지난 열 명의 교황의 대중 연설도 함께 인용한다면 더욱 좋겠다. 그것들을 대략 요약해 보면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정치와 종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지도자들 중에 부정적인 역사관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2.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성경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3. 이들 모든 종교 지도자들은 역사적 사실들을 간과한 채 미래를 낙관적으로 제시한다.


다음은 느부캇넷살(B.C. 606) 이후 모든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해 온 말이다. 
 

  1.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함께 사는 날이 올 때까지는....”
  2. “나를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소서.”
  3. “하나가 되면 당당하게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4.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밖에 없다.”
  5. “인간 상호간의 믿음만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다.”
  6. “사람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버려서는 안된다...”
  7. “거대한 자원과 기술의 진보로 언젠가는 ...을 할 수 있으리라...”
  8. “모든 사람이 형제가 될 그 날을 고대하면서...”
  9. “창으로 보습을 만들고...”
 10.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려면 새로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1. “...할 그 날이 올 때까지 실망하지 말고 전진하자.”


이런 말들은 실현될 수 없는 달콤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창세기 3장 이후로 되풀이 되어온 이런 말들은 간단한 두 문장만으로 충분히 뒤엎을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이 역사에서 배우는 단 한 가지는 인간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와 “비가 올 경우 전쟁은 실내 체육관에서 열릴 것이다.”(러시아 속담)이다.


아무리 많은 유혈과 고문, 투옥, 혁명, 검열, 실패, 퇴보, 파산을 맛본다 할지라도, 인간은 스스로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진화론과 인류학에 대한 현대의 교과서들에 나타나듯이 인간은 “치유불가능한 낙관주의자”이다. 인류는 자신에 대해서는 놀라운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에 반해 성경에 대한 믿음은 놀랄 만큼 부족한 상태이다.


이 책은 두 가지 사실을 말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첫째는 인류 연합과 세계 평화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든 노력들은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무산될 것이라는 사실이며(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결과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둘째는 하나님께서는 이미 완벽한 형태의 정부를 예언해 놓으셨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이나 종교, 교육, 철학 등 인간의 온갖 노력으로 건설하려고 하는 유토피아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고, 대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그분의 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앞서 열거한 다 닳아 빠진 상투적인 어구들에 여전히 영향을 받고 있는 정치가들, 종교인들, 교육가들의 눈에는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 마치 인간성에 대한 모독이나 극도로 반 사회주의적인 발언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그들에게는 항상 “증오문학”이었기 때문이다.


과학이나 종교, 교육, 철학 등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인간은 이런 것들을 이용해서 나름대로 노력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많이, 너무나도 지속적으로, 그리고 너무나도 완전하게 실패했다. 그래서 정직한 사람이라면 이것들에 대해 전혀 점수를 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세계 연합”이라는 철학 체계를 기반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몽상가들에게는 다소의 설명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창세기 11장(바벨탑 사건) 이후로 이런 환상들이 인류에게 “꿈과 비젼”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왔다가 사라졌을 것이며, 이제 와서 거기에다 더 많은 비젼이 더해진다 해도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세상의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그리고 다른 “위대한 인물들”)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짚어 볼 것이다. 즉 이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두들겨 맞고, 난도질당하고, 멍들고, 찢기고, 부러지고, 상처입었으면서도 자신의 창조주가 주는 도움은 거부한 채, 스스로 뭔가를 해보겠다고 나서는 비참한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의 정치사를 다루고 있다. 물론 공산주의자나 파시스트, 또는 카톨릭 등의 인본주의적인 관점이 아니라 성경적인 관점에서 다루었다는 점에서 정치사를 다룬 기존의 책들과는 다르다. 따라서 이 책은 인본주의자들에게는 거부당할 것이다. 심지어 입으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거부당할 것이다. 그러한 반응은 일찍이 요한복음 16,17장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비춰볼 때 당연하다.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포함된 세계 조직은 성경적 진리에 관한 교리적인 논쟁은 회피하고 사람들을 통합시키고 연합시키려고만 한다. 그러나 결과는 지난 5천 년 간의 전쟁뿐이었으며, 더구나 가장 큰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가장 큰 연합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적 진리에 대한 교리적 논쟁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극단주의자”, “혼란케 하는 자” 등으로 낙인찍었다. 이는 “연합”을 방해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제거하기 위해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위대한 분리주의자시며, 나누시는 분이시다. 마찬가지로 성경도 분리의 책이며, 나누는 책이다. 모든 주요 종교, 정치지도자들은 성경을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가끔 성경을 인용하는 지도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는 인류 연합과 세계 평화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성경의 문맥과는 전혀 상관없이 뽑아내서 자기 마음대로 인용할 뿐이다.


그러나 어떤 종교, 어떤 정치지도자도 성경이 정부에 관해 실제로 말하고 있는 바를 감히 말하지 못한다. 성경에 따르면 이 세상 정부는 성경의 진리를 떠나서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고, 하나님께 다가가지도, 하나님을 경배할 수도 없다고 주장하셨던 분의 어깨 위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인류의 연합을 획책하는 지도자들의 눈에는 이것이 극히 독단적이며, 이기주의적이고, 환상에 사로잡힌 비정상적인 생각으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불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과 도교신자들과 유대인과 카톨릭을 어떻게 일치시킬 수가 있단 말인가? 성경은 이러한 이상한 “연합”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이유로 성경을 거부하는 것이다.


성경은 진리이다. 성경이 스스로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요 17:17). 그러므로 진리의 창시자께서 자신의 진리를 무시하는 정치, 종교지도자들을 처벌하시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떤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창세기 4:4,7에서부터 계시록 20장에 이르기까지 깨지지 않는 “연쇄 반응”을 형성하고 있다. 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기들끼리 다투도록 내버려 두신다. 그 결과 인류는 역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서로를 죽인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의 의견이나 어떤 철학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인류의 역사이다. 이와 상반되는 어떤 의견도 과학적일 수 없다. 그러한 것들은 역사적 사실들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역사가 이렇게 실패만 거듭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성경이 인간 역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어느 정도 깨닫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원인을 단지 인간의 미성숙이나 성장 부족, 또는 교육의 부족 등에서 찾으려 한다. 그래서 그들은 좀 더 계몽적이고 인간적이고 교육적인 방편을 통해서 이 일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인간들이 조금만 더 성숙하고, 조금만 더 서로 이해한다면 인류의 궁극적 목표인 세계 평화와 인류 화합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성숙과 성장과 이해가 이루어진다 해도, 오히려 그들이 이루고자하는 최종 목표는 곧 반대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교육, 과학, 종교, 철학 등은 그 자체만으로도 크게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계 평화”와 “인류 연합”을 가져오기 위한 어떠한 계획이라도 그 끝은 감옥과 정신병동과 법정 소송과 전쟁 보상, 국가 부채와 거리의 폭동, 혁명, 내전, 병원 침대, 그리고 무덤으로 귀결될 뿐이다. 이 책은 바로 이같은 실패에 대한 분석과 그에 대한 치유책을 담고 있다.


이 책은 1960년에 기록되었으나, 10년 동안 출판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그래서 이 책에 있는 날짜들 중에는 새롭게 수정되어야 할 것도 꽤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성경 이외에는 어떤 것도 참고하지 않고서 얻어낸 자료들이 지난 십 년 동안 정확하게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1960년에 기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 1990년 등과 같은 날짜들이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이 날짜와 연결된 사건들은 사람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실현될 것이다.


이 책의 출판과 때를 같이 해서 세 건의 엄청난 전쟁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65년간 일어난 15번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과학, 교육, 종교와 철학은 “놀랄만한 진보”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가장 큰 두 번의 전쟁이 일어날텐데, 과학과 종교와 교육과 철학은 그 전쟁들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 종교 지도자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전쟁을 저지시킬만한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는 참으로 잔인하며 참으로 끈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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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왕국에 대한 관심


인간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정치”와 “정부”다. 어떤 정부가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에 대한 문제는 하루도 거론되지 않는 날이 없다. 국내 정치뿐 아니라 해외 정치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입에서 날마다 끊이지 않는 이야기는 어떤 정부가 어떻게 들어섰으며, 어떻게 정치를 하고 있고, 어떤 나라와 어떤 나라가 어떻게 조약을 맺고 협정을 체결하며, 어떻게 갈등을 겪고 어떻게 전쟁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라는 주제는 현세기의 라디오, TV, 잡지, 신문에서 계속 보도될 뿐 아니라 항상 머리기사를 장식하는 것이다. 작가들이 역사책이나 전쟁 소설에서  약간의 도덕적 교훈을 끌어내려고 애쓸지라도 결국 모든 것은 정치와 정부에 관한 이야기다. 이렇게 정부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정부와 관계해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놀랄만한 일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애쓰면서도, 또 압제자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유지하고 새로운 “동맹”에 가담하려고 하면서도 참으로 이상하게도 성경은 완전히 간과해 버린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떤이들은 성경만이 사람에게 “선해지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책이라는 거짓된 이론을 제시하면서 인류에게 성경을 팔아 먹었다. 물론 성경에서 도덕적인 가르침과 도덕적인 기준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성경은 결코 도덕책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된 주제는 인간의 “선”이나 개인의 구원이 아니다. 물론 죄인들에게 있어서는 개인의 구원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죄인이나 구세주가 나타나기 오래 전부터 성경은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왕국”이다.


“왕국”이라는 주제는 이토록 보편적인 중요성을 띠고 있으며, 아담 이후로 모든 시대에 사는 모든 사람의 주요 문제였으며, 심지어 개인의 구원 문제를 소홀히 해도 되는 구실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사회 악’과 ‘계급의 죄’에 대해 가장 많이 분노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예를 들어 칼 막스(Karl Marx)는 불의에 분개하는 다른 “패배자들”처럼, 인류를 질병과 가난과 슬픔과 타락으로 이끈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약 4:1-4, 롬 12:14). 월 스트리트(Wall Street)와 모스크바와 로마의 죄들을 지적하는 것과, 펼쳐진 성경 앞에서 자신의 죄에 직면하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이 시대에 만연해 있는 자유주의 목사들은 이런 일에는 정통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정치 프로그램을 지지하는데 바친다. 그들은 사회악과 공동체의 죄들과 인종적인 죄들을 토론하는 데 강단을 사용한다. 반면에 강단에서 마땅히 논해야만 할 마태복음 28장, 요한복음 8장, 유다서, 로마서 3장, 갈라디아서 5장 등에 있는 주제는 무시한다. 왜냐하면 위 본문들은 종교 지도자들의 죄들과 개인의 사악함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시대와 같이 이 시대에서도 사람들은 사회와 정부를 치유하고자 하는데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문제의 근본 뿌리인 인간 개개인의 본성과 하나님의 말씀과의 관계는 철저히 무시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성경을 무시한 채 이 문제를 논하면서 서로를 죽이고, 성경을 바꾸는 일에 자신의 삶을 바치고, 이 일을 통하여 밥을 먹고 명성까지 얻으려 하는 것이다.


인간을 살리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 주는 가장 모순된 일이다. 벌집처럼 구멍 투성이가 된 시체 위에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라고 말한다면,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사람들은 뭔가를 찾고, 뭔가를 지지하기 위해 죽어갔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6,000년 간 계속해서 서로를 죽여 왔다. 메디아의 다리오 왕이 바빌론을 침략하고 노략질했을 때 그는 그것을 거의 이룰 뻔했다. 18세기에는 찰스 다윈이 나와서 “우리는 이전 보다도 지금 더 가까이 왔다.”라고 말한다. 인간이 동일한 주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다윈의 주장은 이단적인 반역 행위이다. 그의 계획에 따르면 인간은 위로, 그리고 앞으로 전진해야만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A.D. 20세기의 상황은 A.D. 17세기보다 더 낫지 않다. A.D. 15세기의 상황은 A.D. 10세기보다 더 낫지 않으며, A.D. 5세기의 상황은 B.C. 5세기보다 낫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A.D. 3000년의 상황은 B.C. 1000년의 상황보다 결코 낫지 않을 것이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는 항상 평화에 근접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평화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진화론자들에 따르면 모든 정치 지도자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은 진화되고 있는 유인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이 점진적으로 위대한 미래의 “이상 사회”를 건설해 나가고 있음을 암시해 줄 만한 희망적인 그림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줘야만 한다. 물론 그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신들의 이론을 뒷받침하려 하면서도 그 방법을 제시하는 단 하나의 책인 성경은 무시해 버린다(pp.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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