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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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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피터 S. 럭크만 저    /  편집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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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0일 개정판1쇄 출간| 153*223*12mm 신국판 반양장 사철제본, 무게 320g | 200 쪽 | ISBN : 979118591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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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교리의 혼란은 곧 믿음의 혼란을 가져오며, 그것이 성도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다. 특별히 야고보서는 신약성경 가운데서 특별히 행위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논쟁을 가져온 책이다. 이 논쟁에 있어서 믿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로마서를, 또 행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야고보서를 사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야고보서를 사용해서 행위를 주장하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이 책을 올바로 사용함으로써 참된 행위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야고보서는 이 시대의 죄인들이 구원받기 위해 행위가 필요하다고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본 주석서에서 피터 럭크만 박사님이 밝히고 있거니와, 야고보서에서 발생하는 이 문제는 야고보서의 저자와 수신자와 적용되는 대상과, 또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이 책이 설정하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알게 되면 명확하게 해결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거울”(약 1:23)과 같다. 야고보가 친히 강조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을 지속적으로 봄으로써 자기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발견하고, 또 내가 고쳐야 할 점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알 수 없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 없이 자기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볼 수 없으며,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 없이 자기의 모습을 씻을 수도 없다. 성경은 그런 책이다. 성경은 우리의 삶의 모든 지침을 제공해 준다. 아무도 성경 없이 참된 길을 걸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인생을 살려고 하는 것은 마치 어두운 밤바다를 지나가면서 나침반도 없이 항해하는 것과 같다. 그것도 요동하는 바다에서 말이다(약 1:6). 따라서 본 주석서는 교리적인 설명으로만 일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성도들에게 영적인 양식을 공급해 주어, 모든 성도들이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보며, 날마다 주님만을 의뢰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참된 믿음의 생활,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행해야 할 일 등을 여러 가지 사례들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참으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성도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깊이 있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언급했듯이 야고보서는 교리적으로 어려운 책이다. 이를 가리켜 히브리서에서는 “단단한 음식”(히 5:14), 즉 질긴 고기와 같다고 말한다. 즉 교리적인 질긴 고기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단단한 음식”을 줄 때는, 단순하게 신학자들의 지식욕을 채워 주기 위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이것 역시 영적인 양식으로서, 때때로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이 체하기도 하지만, 장성하여 그리스도의 군사로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먹어야만 하는 양식인 것이다. 아무쪼록 이 한 권의 책이 행위 구원의 거짓 교리로 인해 구원의 길을 놓쳐버린 이들에게 바른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믿음과 행위 사이에서 갈등하는 많은 성도들에게 참된 교리를 제공하며,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려고 하는 성도들에게는 풍부한 영적 양식을 제공해 주는 귀한 책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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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럭크만 박사(Dr. Peter S. Ruckman)

피터 럭크만 박사는 현재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이며, 펜사콜라 성경 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40년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럭크만 박사는 밥 존스 대학교(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 창세기, 출애굽기, 욥기, 시편, 잠언, 소선지서,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의 주석서를 저술함으로써 올바른 성경 진리를 밝히고 있다.
또한 럭크만 박사는 <킹제임스성경>이 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 있게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독보적인 학자이다.
특히 그의 저서 <필사본 증거>,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 <신약 교회사>,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 등에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그는 주석서와 성경 교리에 관한 150여 권이 넘는 책의 저자이며, 세계 전역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존경받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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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이 책을 내면서 / 5
들어가는 말 / 8


야고보서 1장 / 16
야고보서 2장 / 62
야고보서 3장 / 86
야고보서 4장 / 114
야고보서 5장 /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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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5장 108절로 구성된 야고보서는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경우 총 2,309개의 단어로 되어 있다. 그 기록 연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주석자들이 A.D. 44년경에서 47년경 사이로 보는 게 보통이지만, 나는 그보다 훨씬 이른 A.D. 36년에서 40년경 사이를 기록 연대로 잡는다(스코필드는 A.D. 46년경으로 기록 연대를 비교적 늦춰 잡는다). 내가 이처럼 야고보서의 기록 연대를 다른 사람들보다 이르게 잡는 데에는 물론 그만한 까닭이 있기 때문인데, 이 문제는 야고보서의 기록자가 과연 어떤 야고보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야고보서의 기록 연대는 이 책의 기록자를 사도 요한의 형제인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마 4:21; 10:2; 17:1, 막 3:17; 10:35; 13:3, 행 1:13)로 보느냐, 아니면,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출생한 “예수님의 아우 야고보”(마 13:55, 막 6:3, 갈 1:19, 행 15:13)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는 대부분 로마 카톨릭 측의 견해를 거리낌없이 받아들여, 야고보서가 예수님의 “사촌” 형제 야고보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가르치는 게 보통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로마 카톨릭 측은 자신들이 스스로 지어낸 “성모” 마리아의 “만년 동정녀설”이라는 허무맹랑한 교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육신적으로 출생한 자녀는 하나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친형제들이 하나도 없었다고 가르치지만, 이것이 터무니없다는 것은 성경이 증명한다. 요셉과 약혼한 사이였으되, 아직은 처녀의 몸이었던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고(마 1:18, 눅 1:26-38), 그 뒤 남편인 요셉과의 사이에 여러 명의 육신적인 자녀들을 더 낳았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는 친아우들과 누이들까지 있었다는 사실이 성경에는 분명하게 명기되어 있다. 그 구절들 몇 군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모친은 마리아라 하지 않느냐? 또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와 요세와 시몬과 유다가 아니냐?』(마 13:55) 여기서 『목수의 아들』이란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그런데 그분에게는 형제들이 또 있었는데,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와 요세와 시몬과 유다』였다고 그 당시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고, 이것을 마태가 기록해 놓았다.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와 요세와 유다와 시몬의 형제인 목수가 아니냐? 또 그의 누이들이 여기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느냐?” 하며, 그들이 주로 인하여 실족하더라』(막 6:3). 여기서 『마리아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분께서는 어렸을 적에 목수였던 요셉의 일을 도왔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분까지 『목수』로 소개된다. 그런데, 그분에게는 『형제』들 뿐만 아니라 『누이들』까지 있었다는 사실을 그 당시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고, 이것을 마가가 기록해 놓았다.


『우리에게 다른 사도들이나 주의 형제들이나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동반할 권리가 없겠느냐?』(고전 9:5)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들 가운데 몇몇은 주님의 제자 그룹에 합류하였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도 다른 사도들과 함께 사역했다. 바울은 이들을 『주의 형제들』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주의 아우인 야고보 외에는 다른 사도들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갈 1:19).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여럿 있었는지라, 바울은 혼동하지 않도록 주님의 형제였던 야고보를 두고 『주의 아우인 야고보』라고 명확하게 구별해서 부르고 있다.


위의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육신적인 형제들과 누이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너무나도 강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에 로마 카톨릭 측이 대단히 마땅찮게 여기고 거북해 하는 구절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야고보와 요세와 유다와 시몬... 또 그의 누이들』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친형제 자매들이 아니라 그분의 “사촌들”이었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가 낳은 자녀들이 아니라 그녀의 언니인 또 다른 마리아, 즉 예수님의 “이모” 격인 여자가 낳은 자녀들이었다고 떼를 쓴다. 말하자면,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출생한 아들, 즉 『주의 아우인 야고보』(갈 1:19)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 10:3, 행 1:13)와 동일 인물이었던 것처럼 우겨대는 것이다.


위의 몇 구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들 가운데 “야고보”란 이름의 형제가 분명히 있었는데, 그를 가리켜 마가복음 15:40에서는 『작은 야고보』라고도 지칭하고 있다.


이 예수님의 아우 “야고보”는 열두 제자 중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십자가 사건 이후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행 15:13-21). 그러나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세베대의 아들이었고 사도 요한의 형제였던 “야고보”는 사도행전 12장에서 이미 헤롯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사도행전 15장에서의 “야고보”는 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아우 야고보였다는 데에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요한의 형제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예수 그리스도의 아우 야고보, 이 두 사람 가운데 어떤 야고보가 야고보서의 기록자였을까? 만약, 야고보서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에 의하여 기록되었다면, 야고보서의 기록 연대는 그가 죽기 전 사도행전 12장 이전이었음이 명백하고(그는 사도행전 12:2에서 헤롯에게 죽임을 당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구원 등의 내용이 없어야만 이치에 맞는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야고보서는 이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변형산에서의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올리브 산에서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겟세마네에서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런 식으로 복음서의 주요 장면에서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으로 서술되면서, 마치 한 사람처럼 언급되는 이 세 사람, 즉 핵심적인 주요 제자들 가운데 늘 끼었던 그 야고보가 바로 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였던 것이다. 이 세 사람의 핵심 인물들 가운데 시몬 베드로가 자신의 서신서 베드로전․후서를 기록하였고, 사도 요한이 요한 1, 2, 3서 같은 서신서를 기록하였다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서신서를 기록했다는 것은 그의 사도적 위치로 보아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생각이다.


그는 사도행전 12:2까지 활동하다가 헤롯에게 순교 당했는데, 사도행전 12장까지라면, 바울에게 계시된 것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구원의 복음은 아직 명확하게 전파되기 이전이었는지라, 실제로 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은혜의 복음을 전파했다는 행적은 성경 그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기록한 서신서인 야고보서 안에서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구원”이라든가, “거듭남”이라든가, “그리스도의 몸” 같은 신약 교리들은 일체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야고보서의 기록자를 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로 지목하는 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또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서의 기록 연대 또한 서슴없이 사도행전 12장 이전, 즉 A.D. 40년 이전의 어느 시점으로 이르게 잡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면 주님의 아우 야고보에 대해 말한다면, 그는 사도행전 15장에서뿐만 아니라 21장에서도 여전히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 인물 중 하나로 활동하고 있으면서 사도 바울의 이방인들을 위한 사역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그 다음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가니 모든 장로들이 모였더라. 바울이 그들에게 문안한 후에 그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행하신 일들을 일일이 설명하니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주께 영광을 돌리더라』(행 21:18-20). 이러한 처지에 있던 “예수님의 아우 야고보”가 야고보서를 기록했다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는다.”라든가, 믿고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다.”든가, “거듭남” 등과 같은 신약 교리에 대하여 한마디 암시조차도 하지 않은 채 그토록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야고보서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즉 사도 요한의 형제 야고보, 복음서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하고 거듭거듭 거론되는 바로 그 야고보에 의해서 기록된 것으로 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야고보는 사도행전 9장에서 바울에게 일어났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채로 사도행전 12장에서 헤롯에게 순교당하고 말았다. 야고보서의 기록 연대를 사도행전 12장에서 그가 순교하기 이전, 즉 A.D. 36년에서 A.D. 40년 사이로 잡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고, 야고보서에서 은혜의 복음이 암시조차 되지 않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은 어느 경우에나 성경 구절들 안에 내재돼 있는 증거에 의해서만 입증되어야지, 주석자 개인의 생각으로 설명되거나 어느 종교 집단의 그릇된 교리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성경 구절들을 왜곡하고 무시해 가며 무리하게 설명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 모든 정직하고 건전한 성경 해석자들의 생각이고, 이것이 또 나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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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나의 형제들아, 만일 누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
       느냐?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의 양식조차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라.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라.”
       고 하면서 그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17  그와 같이 행함이 없으면 믿음만으로는 죽은 것이라.
  18  그러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네게는 믿음이 있으나 내게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
       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그러면 내가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자, 14절부터 26절까지 우리는 이제 아주 유명한 구절들을 살펴보게 될 텐데, 캠벨주의자들이나 몰몬교, 그리스도의 교회, 안식교, 은사주의자들, 로마 카톨릭, 루터 교회, 장로교 등과 같은 수많은 교파들이 너도나도 꼭 붙잡고 매달리는 구절들이지만, 교리적으로는 바울 서신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행위로 의롭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부분이기 때문에 자기 의를 곧잘 내세우는 자들은 너도나도 여기 야고보서 2장으로 우르르 몰려들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절들을 다루면서 아주 세심하게 주의하고 또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의 형제들아, 만일 누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14절).


『만일 누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면서』. 자, 뭐라고 언급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이 자기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라고 기술하고 있다. 야고보는 이 자가 진짜로 믿음을 가졌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야고보는 이 자가 진짜로 구원받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은 자기가 믿음을 가졌다고 “입으로만 말한다.”는 것이다.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아니, 그럴 수 없다. 진짜로 믿음을 지닌 것이 아니라 입으로만 말하는 믿음이라면, 그런 믿음이 어찌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믿음』이 구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로만 믿는다고 주장해 가지고는 진짜로 『믿음』을 가진 게 아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래에 이어지는 구절들은 교리적으로 우리를 환란 시대로 인도한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의 양식조차 없는데 너희 중에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라.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라.”고 하면서 그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15,16절)


대환란 때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약 1:1)의 유대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들은 『자비 없는 심판』(약 2:13)을 받게 될 것이다. 다음의 말씀들을 보라.


『인자가 그의 영광 중에 오고, 또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 그와 함께 오면 그때에 그가 그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그 앞에 모든 민족들을 모아 놓고 마치 목자가 양들을 염소들에서 갈라놓듯이 그들을 따로 갈라놓으리라. 그리하여 양들은 그의 오른편에, 염소들은 그의 왼편에 세워 두고 왕이 그의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라,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자들아,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그 왕국을 이어받으라. 이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으며,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대접하였고,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혀 주었으며, 내가 병들었을 때에 문안해 주었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와 주었음이라.’ 하리라. 그때에 의인들이 주께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주여, 언제 우리가 주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실 때에 마실 것을 드렸나이까? 언제 우리가 주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대접해 드렸으며, 헐벗으셨을 때 입을 것을 드렸나이까? 언제 우리가 주께서 병드신 것을 보았으며, 또 감옥에 갇히셨을 때 찾아뵈었나이까?’라고 하리라. 그러나 왕이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하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기 내 형제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하리라. 그때에 왕이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도 말하기를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아니하였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대접하지 아니하였고,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으며, 병들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문안 오지도 아니하였느니라.’ 하리라. 그때에 그들도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여, 언제 우리가 주께서 굶주리신 것과, 목마르신 것과, 나그네 되신 것과, 헐벗으신 것과, 병드신 것과,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돌보아 드리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하리니, 왕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이들 중에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리라. 그러므로 이들은 영원한 형벌에 들어갈 것이라. 그러나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리라.”고 하시더라』(마 25:31-46).


대환란 때에 유대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자들은 『불길 가운데서』 벌을 받게 될 것이다(살후 1:8,9). 여기에서 말하는 『불길』은 요한계시록 19:20,21과 요엘 3:11-16에서 그들을 태워 재로 만들 불을 의미한다(말 4:1-4). 그들은 그리스도의 『형제들』을 돕지 않고서(마 25:31-36) 대환란을 용케 “견뎌” 낸다 해도 여전히 “자비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마 25:44-46). 말하자면 교회 시대를 위한 바울 서신에서는 “오직” 믿음만으로 죄인이 구원받는다고 가르치지만(롬 4:5; 5:1), 대환란 때의 교리를 다루는 야고보서에서는 죄인이 믿음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약 2:14).


『그와 같이 행함이 없으면 믿음만으로는 죽은 것이라』(17절).


본문 17절은 구원을 위해 “믿음”과 “행위”가 필요하다고 말씀한다. 즉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믿음과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이것은 환란 시대를 위한 구원의 교리이지 교회 시대를 위한 구원의 교리가 아니다.


『그러자 그 용이 여인에게 분노하여 여인의 씨 가운데 남은 자들, 즉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우려고 나가더라』(계 12:17).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계 14:12).


요한계시록의 이 구절들은 대환란 때에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예수의 믿음”)를 가지고(믿음)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야 함을(행위) 보여 준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4:5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르치므로(『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 행함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믿음을 가르치는 야고보서 2:17의 말씀은 믿음과 행위로 구원받는 환란 시대에 교리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네게는 믿음이 있으나 내게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그러면 내가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18절).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14절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자기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했으니까, 이에 대해 여기 18절에서 누군가가 그 말을 듣고 그에게 “말하기를,”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고 도전해 온다. 그는 “아, 그래? 네가 믿음을 갖고 있다고? 그렇다면 나는 행함이 있다네. 자, 볼 텐가?” 하고 말하면서 무엇인가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며 믿음이 있다고 호언한 자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행동을 보여주는 이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얼마든지 이런 식으로 도전해 올 수 있다. 이럴 때, 믿음이 있다고 말로만 호언했던 당신은 아주 난처한 처지에 빠진다. 가령, 당신이 “나는 그리스도인이오.”라고 말했더니, 어떤 사람이 불쑥 나서서 하는 말이 “오, 그래? 어디, 그 믿음 좀 내게 보여주게나. 나는 행동으로 내 믿음을 보여줄 수 있다네.” 하고 도전해 온다면, 당신은 매우 곤혹스러울 것이다. 실은, 이 사람도 믿음을 갖고 있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말로는 믿음이 있는 체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 보여주려는 사람도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는 있으니까 말이다. 구원도 받지 못한 사람이 자기 의를 과시하면서 이렇게 으스대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본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증거를 보이지 못할 때, 이런 사람들한테 뭐라고 대꾸할 수 있겠나? 이러한 상황에서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오히려 더 불리한 입장에 빠질 것이다. 믿음이 있으면서도 그 믿음이 결과를 나타내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그 믿음의 증거가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에게서 그 믿음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잘 알고 지내던, 그린빌의 포레스트 턴베이라는 사람을 붙잡고 약 15분간 복음을 전하자 그 사람이 나에게 “제일침례교회의 아무개 집사 아시죠?” 하고 불쑥 묻는 것이었다. 내가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목사님은 나에 대해서도 잘 아시죠?” 하고 다짐하듯 물어 왔다. 그렇다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목사님. 그렇다면 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예, 아니오.’라고만 대답해 주십시오. 제일침례교회의 그 아무개 집사보다는 내가 더 낫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목사님은 이에 동의하십니까?” 나는 “예.”라고 대답했다. 그에게 가급적 겸손해 보이기 위해서 그러긴 했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결코 잊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당신의 나은 점이 당신을 구원해 주는 것은 아니오.”


구원 문제만 아니라면, 아닌 게 아니라 이 사람이 그 아무개 집사보다 더 훌륭한 사람인 게 사실이었다. 그 집사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도 상습적으로 시가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이 사람은 담배도 피지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으며, 정직하게 일해서 착실히 가정을 보살피는 아주 선량한 사람이었다. 단지 아직 믿음이 없어서 구원을 받지 못한 것만이 그에게 문제였다. 하지만, 이처럼 구원받지 못한 자도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람들을 향하여 “믿음, 믿음, 믿음, 말로만 떠벌리지 말고 어디 그 믿음을 행동으로 좀 보여 봐라.” 하고 얼마든지 도전해 올 수가 있다.


“일요일에 교회만 가고 성당에 가서 미사를 올린다고 다냐? 나는 결코 말로만 뭐라고 떠벌리지는 않는다. 나는 마음속의 일들을 오직 행동으로 나타내 보일 수가 있다.”


이렇게 큰 소리를 탕탕 치며 도전해 올 때, 당신도 그에게 뭐라고 한마디 뼈있는 충고를 해 줄 수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나는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찾아온 데이브 웨어스딘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히피들이 많이 모이는 한 공원에 가서 거리설교를 했다. 길가에 트럭이 한 대 서 있기에 그림 몇 장을 그 트럭에 걸어 놓고 예전에 하던 모습 그대로 설교를 했고, 그 자리에서 열 일곱 명이나 되는 죄인들을 구령했다.


거리설교를 마치고 자리를 뜨려는 참에 키가 껑충한 한 친구가 한 손에는 맥주병을 들고 또 한 손에는 담배를 꼽아든 채 내 그림 앞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와 내 그림들을 들여다보고 있더니 내게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지는 것이었다.


  “내가 한 장 가져도 되겠소?” 
  “맘에 들면 한 장 갖게나.” 내가 쾌히 응했다.
  “와, 이 그림 정말 끝내주는데.” 그 친구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아주 좋아했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소?” 내가 물었다.
  “아, 그럼요. 그분은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시지요.” 그가 대답했다.
  “내 말은 그분을 당신의 구세주로 영접했느냐는 거요.” 내가 따져 물었다.
  “그렇소이다. 그분은 나의... 구...세주...시죠. 아, 그렇고 말고요! 나를 좀 보시오.” 그 친구는 맥주병과 담배를 꼽아들고 있는 자신의 양손을 번갈아 내려다보면서 계면쩍은 듯 말을 좀 더듬더니 히히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술이라도 마시고 담배라도 피고 있는 게 아니겠소?” 그리고는 갑자기 풀이 죽으면서 또 이렇게 뇌까리듯 말했다.
  “나는 외롭소이다. 이렇게라도 해야지 그렇잖으면 내 외로움을 달랠 길이 없다오.”


하기야 술 마시고 담배 핀다고 구원을 못 받은 것은 아니다. 그 친구 말대로 그가 구원은 받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안단 말인가? 말로는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한 손에는 맥주병에 또 다른 한 손에는 담배라..., 글쎄, 아무리 봐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구원받아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반드시 간증이 나타나기 마련이다(pp.7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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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평가점수
1 혀를 붙잡아 매야 한다!! 등의 내용임. 권은향 1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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