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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 2:3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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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현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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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 2:3을 읽다 보면 적그리스도가 나타난 후에 교회가 휴거되는 것처럼 읽히는데 이렇게 읽는 것이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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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구절인 데살로니가후서 2:3을 읽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글킹제임스성경>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 또 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그 날이 오지 아니함이라”(살후 2:3).
이 구절을 읽으면 꼭 멸망의 아들이 나타난 후에 교회가 휴거되는 것 같습니다.
일반 성도들뿐만 아니라 목사들과 신학자들까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구절이 뜻하는 바를 알기 전에, 우리는 먼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서신들의 특징을 살펴봐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이방인 회심자들에게 A.D. 54년경에 쓴 첫 번째 서신입니다. 갓 회심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 새로운 회심자들에게 강조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보통 누군가가 회심하면 그가 믿은 십자가의 중요성에 관해서 주로 이야기하기 마련인데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3:13에서
“<u>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u>에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 없도록 너희 마음을 견고케 하시기를 바라노라.”고 말합니다. “<u>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u>”는 재림을 말합니다.
또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2에서 “이는 <u>주의 날</u>이 밤에 도둑같이 오리라는 것을 너희 자신이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니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의 “주의 날” 역시 재림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재림에서 그치지 않고 “휴거”를 또한 새로운 회심자들에게 강조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5-17에서 그랬죠.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5-17).
바울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이처럼 휴거와 재림은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꿈과 소망이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내는 두 번째 서신에서도 바울은 휴거와 재림을 강조합니다. 먼저 재림은 “데살로니가후서 1:7-10”에서 언급됩니다.
“<u>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u>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임재와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 그 날에 주께서 오시면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받으시리라.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 가운데서 믿어졌기 때문이라.)”(살후 1:7-10).
7절의 “<u>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u>”가 바로 재림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휴거”는 어떤 구절에서 강조하는 것일까요? 데살로니가후서 2:1입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u>그 앞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u>에 관하여 이제 너희에게 간구하노니”(살후 2:1).
그런데 이 2:1은 “휴거”뿐만 아니라 “재림”도 강조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형제들아, <u>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u>과,” 바로 이 부분이 재림을 뜻합니다. 그 뒤에 “그 앞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에 관하여 이제 너희에게 간구하노니”라고 하면서 휴거를 이야기합니다. 원래 휴거가 먼저 있고 재림이 다음에 오는데, 성령님께서는 시간적 순서, 곧 시간적 흐름과 관계없이 재림을 휴거 앞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 앞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이라고 말씀하니까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분 앞에 모이는 “휴거”로만 해석합니다. 여기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성경에 대한 무지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은 3절까지 읽어야 문맥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에 인용된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1절]형제들아, 우리 ㉠ <u>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재림]</u>과, ㉡ <u>그 앞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휴거]</u>에 관하여 이제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2절] 영으로나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편지로나 ㉢ <u>그리스도의 날</u>이 가까웠다고 마음이 쉽게 흔들리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라. [3절]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 <u>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u>, 또 ㉠ <u>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u> ㉢ <u>그 날</u>이 오지 아니함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3절의 “이는 <u>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u>, 또 <u>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u> <u>그 날</u>이 오지 아니함이라.”를 “교회의 배교와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있고 나서 휴거가 있다”는 식으로 읽습니다.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 또 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u>그 날, 즉 휴거</u>가 오지 아니함이라”로 읽는 것입니다.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휴거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3절을 근거로 “교회가 멸망의 아들을 볼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환란을 통과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야 그 날이 온다, 즉 휴거가 있게 된다”고 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합니다. 3절의 “그 날”은 휴거가 아니라 2절의 “그리스도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1-3절을 관련 기호들만으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재림]... ㉡ 그 앞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휴거]
2절 ㉢ 그리스도의 날
3절 ㉡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휴거 전], 또 ㉠ 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재림 전] ㉢ 그 날[그리스도의 날]이 오지 아니함이라.
3절 ㉢의 “그 날”은 2절 ㉢의 “그리스도의 날”을 가리킵니다. 2절 ㉢의 "그리스도의 날"은 1절 ㉠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재림]과 ㉡의 그 앞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휴거]을 포함합니다. 바로 이 점이 핵심입니다. “그리스도의 날”은 교리적으로 “휴거와 재림”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위의 말씀을 도표로 확인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들의 배교 →  휴거(그리스도의 날)
 
멸망의 아들이 나타남  → 재림(그리스도의 날)
즉 교회들의 배교가 있고 나서 휴거가 있게 되고(휴거는 그리스도의 날에 포함됩니다), 멸망의 아들의 나타나고 나서 재림이 있게 됩니다(재림도 그리스도의 날에 포함됩니다). 말하자면 교회들의 배교와 멸망의 아들의 나타남이 있어야만 “그리스도의 날”이 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놓치면 성경 번역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한글킹제임스성경>은 3절을 바르게 번역했습니다.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 또 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u>그 날[그리스도의 날!]</u>이 오지 아니함이라.”
<b>다시 한 번 말하지만, 본문 해석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날"이지 휴거가 아닙니다!</b>
그런데 표준킹제임스성경은 “그 날”을 휴거로 보고서 본문을 다음과 같이 변개했습니다.
표준역
아무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오지 않으면 그날이 오지 않기 때문이라. <u>그러고 나서[and]</u> 그 죄의 사람, 곧 파멸의 아들이 나타나 보이리라.
[for that day shall not come, except there come a falling away first, <u>and</u> that man of sin be revealed, the son of perdition]
자, 표준역의 번역을 <한글킹제임스성경>과 비교해 볼까요?
<한글킹제임스성경>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 <u>또[and]</u> 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그 날이 오지 아니함이라.
표준역
아무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오지 않으면 그날이 오지 않기 때문이라. <u>그러고 나서[and]</u> 그 죄의 사람, 곧 파멸의 아들이 나타나 보이리라.
자, 어떻습니까? 완전히 다르죠? <한글킹제임스성경>은 문제의 and를 “또”라고 번역했습니다. 교회들의 배교와 멸망의 아들의 나타남은 “그리스도의 날”이라는 넓은 관점에서 보면 단순히 개별적인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표준역은 성경의 진리에 대한 무지에 더해서 영어 and에만 집착했습니다. 영어 본문의 밑줄 친 and 앞에서 본문을 잘라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오지 않으면 그날이 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변개한 것입니다. 언뜻 보면 “아, 배교가 있고 나서 그 날, 곧 휴거가 있는 거지.”라고 맞장구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날”은 휴거가 아닙니다! 문맥상 3절의 “그 날”은 2절의“그리스도의 날”이고, 2절의 “그리스도의 날”은 1절의 “휴거”와 “재림”을 모두 포함하는 날입니다. 표준역은 영어 본문의 밑줄 친 “and”가 교회들의 배교 이후에 있을 “시간적 흐름”을 나타낸다면서 “그러고 나서”라는 원래 있지도 않은 의미를 임의로 첨가하여 “<u>그러고 나서[and]</u> 그 죄의 사람, 곧 파멸의 아들이 나타나 보이리라.”라고 오역했습니다. 본문의 “그 날”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대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오직 “and”에만 집착해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했습니다. 누구라도 문맥을 무시하고 특정 단어에만 집착하면 말씀을 왜곡하게 됩니다. 성경의 문맥과 교리를 알아야만 가짜 킹제임스성경에 속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한글킹제임스성경>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 또 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그 날이 오지 아니함이라”(살후 2:3).
이 구절을 읽으면 꼭 멸망의 아들이 나타난 후에 교회가 휴거되는 것 같습니다.
일반 성도들뿐만 아니라 목사들과 신학자들까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구절이 뜻하는 바를 알기 전에, 우리는 먼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서신들의 특징을 살펴봐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이방인 회심자들에게 A.D. 54년경에 쓴 첫 번째 서신입니다. 갓 회심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데살로니가전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 새로운 회심자들에게 강조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보통 누군가가 회심하면 그가 믿은 십자가의 중요성에 관해서 주로 이야기하기 마련인데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3:13에서
“<u>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u>에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 없도록 너희 마음을 견고케 하시기를 바라노라.”고 말합니다. “<u>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u>”는 재림을 말합니다.
또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2에서 “이는 <u>주의 날</u>이 밤에 도둑같이 오리라는 것을 너희 자신이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니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의 “주의 날” 역시 재림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재림에서 그치지 않고 “휴거”를 또한 새로운 회심자들에게 강조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5-17에서 그랬죠.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5-17).
바울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이처럼 휴거와 재림은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꿈과 소망이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내는 두 번째 서신에서도 바울은 휴거와 재림을 강조합니다. 먼저 재림은 “데살로니가후서 1:7-10”에서 언급됩니다.
“<u>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u>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임재와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 그 날에 주께서 오시면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받으시리라.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 가운데서 믿어졌기 때문이라.)”(살후 1:7-10).
7절의 “<u>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u>”가 바로 재림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휴거”는 어떤 구절에서 강조하는 것일까요? 데살로니가후서 2:1입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u>그 앞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u>에 관하여 이제 너희에게 간구하노니”(살후 2:1).
그런데 이 2:1은 “휴거”뿐만 아니라 “재림”도 강조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형제들아, <u>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u>과,” 바로 이 부분이 재림을 뜻합니다. 그 뒤에 “그 앞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에 관하여 이제 너희에게 간구하노니”라고 하면서 휴거를 이야기합니다. 원래 휴거가 먼저 있고 재림이 다음에 오는데, 성령님께서는 시간적 순서, 곧 시간적 흐름과 관계없이 재림을 휴거 앞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 앞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이라고 말씀하니까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분 앞에 모이는 “휴거”로만 해석합니다. 여기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성경에 대한 무지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은 3절까지 읽어야 문맥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에 인용된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1절]형제들아, 우리 ㉠ <u>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재림]</u>과, ㉡ <u>그 앞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휴거]</u>에 관하여 이제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2절] 영으로나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편지로나 ㉢ <u>그리스도의 날</u>이 가까웠다고 마음이 쉽게 흔들리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라. [3절]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 <u>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u>, 또 ㉠ <u>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u> ㉢ <u>그 날</u>이 오지 아니함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3절의 “이는 <u>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u>, 또 <u>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u> <u>그 날</u>이 오지 아니함이라.”를 “교회의 배교와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있고 나서 휴거가 있다”는 식으로 읽습니다.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 또 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u>그 날, 즉 휴거</u>가 오지 아니함이라”로 읽는 것입니다.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휴거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3절을 근거로 “교회가 멸망의 아들을 볼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환란을 통과한다”고 가르칩니다. “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야 그 날이 온다, 즉 휴거가 있게 된다”고 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합니다. 3절의 “그 날”은 휴거가 아니라 2절의 “그리스도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1-3절을 관련 기호들만으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재림]... ㉡ 그 앞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휴거]
2절 ㉢ 그리스도의 날
3절 ㉡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휴거 전], 또 ㉠ 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재림 전] ㉢ 그 날[그리스도의 날]이 오지 아니함이라.
3절 ㉢의 “그 날”은 2절 ㉢의 “그리스도의 날”을 가리킵니다. 2절 ㉢의 "그리스도의 날"은 1절 ㉠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재림]과 ㉡의 그 앞에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휴거]을 포함합니다. 바로 이 점이 핵심입니다. “그리스도의 날”은 교리적으로 “휴거와 재림”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위의 말씀을 도표로 확인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들의 배교 →  휴거(그리스도의 날)
 
멸망의 아들이 나타남  → 재림(그리스도의 날)
즉 교회들의 배교가 있고 나서 휴거가 있게 되고(휴거는 그리스도의 날에 포함됩니다), 멸망의 아들의 나타나고 나서 재림이 있게 됩니다(재림도 그리스도의 날에 포함됩니다). 말하자면 교회들의 배교와 멸망의 아들의 나타남이 있어야만 “그리스도의 날”이 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놓치면 성경 번역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한글킹제임스성경>은 3절을 바르게 번역했습니다.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 또 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u>그 날[그리스도의 날!]</u>이 오지 아니함이라.”
<b>다시 한 번 말하지만, 본문 해석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날"이지 휴거가 아닙니다!</b>
그런데 표준킹제임스성경은 “그 날”을 휴거로 보고서 본문을 다음과 같이 변개했습니다.
표준역
아무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오지 않으면 그날이 오지 않기 때문이라. <u>그러고 나서[and]</u> 그 죄의 사람, 곧 파멸의 아들이 나타나 보이리라.
[for that day shall not come, except there come a falling away first, <u>and</u> that man of sin be revealed, the son of perdition]
자, 표준역의 번역을 <한글킹제임스성경>과 비교해 볼까요?
<한글킹제임스성경>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 <u>또[and]</u> 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그 날이 오지 아니함이라.
표준역
아무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오지 않으면 그날이 오지 않기 때문이라. <u>그러고 나서[and]</u> 그 죄의 사람, 곧 파멸의 아들이 나타나 보이리라.
자, 어떻습니까? 완전히 다르죠? <한글킹제임스성경>은 문제의 and를 “또”라고 번역했습니다. 교회들의 배교와 멸망의 아들의 나타남은 “그리스도의 날”이라는 넓은 관점에서 보면 단순히 개별적인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표준역은 성경의 진리에 대한 무지에 더해서 영어 and에만 집착했습니다. 영어 본문의 밑줄 친 and 앞에서 본문을 잘라서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오지 않으면 그날이 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변개한 것입니다. 언뜻 보면 “아, 배교가 있고 나서 그 날, 곧 휴거가 있는 거지.”라고 맞장구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날”은 휴거가 아닙니다! 문맥상 3절의 “그 날”은 2절의“그리스도의 날”이고, 2절의 “그리스도의 날”은 1절의 “휴거”와 “재림”을 모두 포함하는 날입니다. 표준역은 영어 본문의 밑줄 친 “and”가 교회들의 배교 이후에 있을 “시간적 흐름”을 나타낸다면서 “그러고 나서”라는 원래 있지도 않은 의미를 임의로 첨가하여 “<u>그러고 나서[and]</u> 그 죄의 사람, 곧 파멸의 아들이 나타나 보이리라.”라고 오역했습니다. 본문의 “그 날”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대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오직 “and”에만 집착해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했습니다. 누구라도 문맥을 무시하고 특정 단어에만 집착하면 말씀을 왜곡하게 됩니다. 성경의 문맥과 교리를 알아야만 가짜 킹제임스성경에 속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