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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말씀보존학회 - 한글킹제임스성경 및 진리의 지식을 전파합니다 &amp;gt; 바이블마스터 &amp;gt; 지식뱅크 - 로마카톨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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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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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피 묻은 돈, 사악한 권력 집단 로마카톨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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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생각도 안 하면서 다른 이의 눈 속에 있는 티만 지적하는 꼴불견인 사람을 성경은 &#034;위선자&#034;(hypocrite)라고 부르는데(마 7:3-5), 이 단어는 &#034;겉과 속이 다른 사람&#034;(배우, actor)이나 &#034;극단적인 비평가&#034;(hyper-critic)를 의미한다. 예수님 당대의 바리새인들은 &#034;위선자들&#034;이란 말이 꼭 어울렸던 자들인데, 그들이 자신들의 악한 본성을 숨기고 &#034;거짓된 경건&#034;을 실감나게 연기했음은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신성을 향한 극단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br/><br/>오늘날에도 그런 거짓된 경건과 종교적 열성으로 자신의 본 모습을 위장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바른 성경(요 5:39)과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을 비평하고 배격하는 위선자들이 많다. 그 으뜸은 단연 로마카톨릭이다. 교회 역사를 통관해 보건대, 그들은 &#034;거룩한 교회,&#034; &#034;하나님의 대리자&#034;임을 자처하면서도 성경을 배격해 왔고,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유혈이 낭자한 피바다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살인 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종교적·정치적·경제적 권력을 장악한 이후로 벌여 온 만행들은 건전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런 사악한 위선자 집단이 다른 이들의 악행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면 실로 가증스런 짓이 아닐 수 없는데, 실제로 바티칸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br/><br/>지난 1월 23일, 로마카톨릭의 수장인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 &#034;반(反)마피아·대(對)테러&#034; 담당 관리들과 만난 자리에서 &#034;피 묻은 돈, 사악한 권력&#034;이라는 원색적인 단어들로 이탈리아 조직범죄단인 마피아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마피아의 더러운 사업과 범죄에서 비롯된 돈은 &#034;피 묻은 돈&#034;으로, 이 돈은 &#034;사악한 권력&#034;을 초래한다.』 이어서 그는 &#034;마피아 현상&#034;을 죽음의 문화가 발현된 것에 빗대었고, 『그에 가담한 남녀의 마음을 어루만져 그들이 악행을 멈추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할 것이다.』라고 연설했다. 또한 『이 사회가 부패와 착취, 불법 약물, 무기 밀수, 인신 매매 등으로부터 정화돼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br/><br/>성경에는 문외한인 이 위선자가 분별력 없는 세상 사람들을 아주 그럴듯한 말로 현혹한다 한들 과연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눈까지 속일 수 있겠는가! 그가 진정으로 마피아 조직에 가담한 남녀들을 생각한다면 복음을 전해서 그들을 거듭나게 하는 것이 최우선적인 조치이다! 그러나 그는 복음의 능력이(롬 1:16) 아니고서는 인간의 옛 성품을 통제할 수 없다는 성경적 진리에 무지하기에, 그들의 삶이 변화되기를 바란다는 무의미한 기도만 뇌까렸던 것이다. 또한 후천년주의 누룩에 취하여 세상의 정화만을 외쳤을 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산 소망』(벧전 1:3)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세상이 정화되기 위해선 반드시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야 한다는 성경적 진리를 알지도 믿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br/><br/>교황이 비난의 대상으로 삼은 &#034;마피아&#034;는 이탈리아 시실리 섬에서 기원한 범죄 조직이다. 흔히 범죄 조직이나 그에 속한 일원을 가리킬 때 마피아라는 말이 통용될 만큼, 어둠의 세계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위상은 매우 독보적이다. 그러나 마피아는 그런 본래의 이미지와는 달리 지역 사회에서는 존경받는 시민들이요, 일견 합법적으로 보이는 일들을 통해 사회와의 갈등도 최소화하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음, 마약, 도박, 금융업 등의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며, 사업의 증진과 재물의 축적을 위해서라면 거리낌 없이 폭력과 살인을 자행하기도 한다. 영화 &lt;대부&gt;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바 그들끼리의 알력 다툼에서 기인한 잔인한 살상과 피로 얼룩진 역사는 &#034;마피아의 계보&#034;상에 역력히 드러난다.<br/><br/>&#034;마피아&#034; 역시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 집단인 것인데, 그들이 벌이는 악행에 대해 또 다른 위선자 집단인 &#034;카톨릭 교황&#034;이 맹비난하고 나섰던 것이다. 참으로 조소를 금치 못할 광경이다. 형태는 달라도 본질은 같은 자가 도대체 누구를 판단한다는 것인가? 마피아의 죄들을 비평할 만큼 교황이 &#034;영적인 사람&#034;(고전 2:15)이라도 되는 것인가? 카톨릭은 교황 자신이 내뱉은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운 집단인가? 어림없는 소리다. 경건의 모양만 갖춘 그들 역시 종교적·정치적인 &#034;권력과 단합&#034;을 내세워 마피아와 똑같은 짓을 자행해 온 &#034;사악한 집단&#034;이라는 것은 역사가 이미 증명한 사실이다. 마피아처럼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034;폭력과 살인&#034;을 저지르는 데<br/><br/>주저하지 않았고, 이를 통해 세력을 확장해서 벌어들인 &#034;피 묻은 돈&#034;으로 지금까지도 세상의 국가 원수나 정부 수반을 쥐락펴락해 오고 있는 것이다.<br/><br/>&#034;로마카톨릭&#034;과 &#034;마피아&#034;는 모두 그들의 아비인 마귀(요 8:44)에게서 나온바, 태생 자체가 동일한 집단으로서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이탈리아에서 발원했고, 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두 집단 모두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인간적 행위들을 일삼아 왔고, 그로 인해 막대한 부도 거머쥐었으며, 그러면서도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위선자들 중의 위선자들이다. &#034;피 묻은 돈, 사악한 권력 집단&#034;은 마피아뿐 아니라 카톨릭에도 정확히 들어맞는 표현이다.<br/><br/>1572년 8월 22일, 카톨릭은 &#034;위그노들&#034;(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들)을 말살시키기 위해 계획적인 학살을 감행했는데, 이른바 &#034;성 바돌로매 대학살&#034;로 알려진 참혹한 대규모 살인 사건이었다. 당시 카톨릭에 매수된 프랑스 국왕은 자신의 여동생과 위그노의 수장 꼴리니(Coligny) 제독과의 결혼을 주선한 뒤 그를 살해하여 참수했으며, 위그노들에 대한 대학살이 그 뒤를 이었다. &lt;폭스의 순교사&gt;에 따르면, 처음 단 3일 만에 1만여 명에 이르는 성도들이 학살당했고 시체들은 강물 속에 던져져 강물은 핏줄기처럼 변했다고 한다. 파리에서 시작된 이 대학살은 프랑스 전역으로 번져 나가 당시 처참하게 난도질당한 프로테스탄트들의 수는 약 10만여 명에 이르렀고, 그 &#034;피의 향연&#034;에 취한 카톨릭은 이 날을 대대적인 축제일로 지정하여 기념했다. 사지를 절단한 시체를 농락한다든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낸다든지, 그들의 살인 수법은 너무도 잔혹하고도 충격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항상 &#034;평화&#034;를 외쳤던 교황들의 위선적 만행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로마교황청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메달을 주조했고, 바티칸 궁전에는 이 학살을 묘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하며 절규할 때, 그 순교자들의 피에 취한 종교적 창녀 집단인 카톨릭(계 17:5,6)은 축배를 들면서 &#034;거룩한 교회&#034;요, &#034;하나님의 대리자&#034;로서 이를 기뻐하고 기념했던 것이다. 지금은 그들이 &#034;변했다&#034;고 말하는 자들은 카톨릭의 연막에 철저히 농락당한 자들이다!<br/><br/>그뿐만 아니라 이 &#034;잔인한 살인 집단&#034;은, 1208년 프랑스에서 1만여 명을 살해했고, 1237년과 1342년 사이에는 이탈리아에서 1만 명가량 되는 왈덴시안을, 1421년에는 수천 명의 후스파를, 1488년에는 역시 이탈리아에서 3천여 명의 왈덴시안을, 1546년에는 독일에서 5만 명을, 1572년에는 프랑스에서 8만 명을, 1567년에는 네덜란드에서 수천 명을, 1631년에는 독일에서 2만 9천 명을, 1641년에는 아일랜드에서 10만여 명을, 1685년에는 프랑스에서 4만 명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을 어린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살해했던 것이다. &#034;마피아 현상&#034;을 죽음의 문화가 발현한 것이라고 비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왜 이와 같은 자기들의 &#034;죽음의 문화와 역사&#034;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것인가? 그가 위선자가 아니라면 어디 한번 말해 보라!<br/><br/>또한 이들은 위와 같은 비인도적인 만행을 수도 없이 저지르는 가운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034;경제력과 자금력&#034;을 주도면밀하게 구축해 왔다. 매 시대마다 정치 세력과 결탁하여 부를 증진시켰고, 그들을 위협할 만큼의 세력을 확장시켜 유럽 각국 정상들을 손아귀에 넣음으로써 그들로부터 &#034;십일조와 헌금&#034;을 뜯어내어 자신들만의 &#034;왕국&#034;을 구축해 왔으니, 그것이 바로 &#034;바티칸 시국&#034;이다. 곧 『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계 17:5)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034;피 묻은 돈&#034;으로 이룩한 왕국이다! 이 보좌를 거쳐 온 역대 교황들은 자연스레 막대한 부를 손에 거머쥐었다.<br/><br/>아브로 맨하탄의 &lt;억만장자 바티칸, The Vatican Billions&gt;에 의하면, 카톨릭의 본거지 바티칸은 세계 각국의 금융 기관과 은행들, 그 외 여러 곳들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투자자이며, 세계에서 가장 유력한 국제적인 주식회사에 수십억 달러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로서 대략 5억 달러 이상에 이르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대부호다. 또한 세계 각국에서 카톨릭 지사들(교구들)을 설립하여 얻게 된 부동산 가치는 수백억 달러에 이를 만큼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바티칸이 소유한 자산 규모를 보여 주는 실례들을 일일이 적으면 지면이 부족할 정도이니,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만 매기면 교황이 세상 정점에 서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최근 한 경제 일간지에서는, 현재 갑부 8명이 소유한 부가 전 세계 인구의 50%(약 32억 명)의 부와 맞먹는다고 하면서 &#034;부의 편중 속도&#034;가 빨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는데, 결국 대환란 때에는 그 부가 &#034;창녀&#034; 카톨릭을 등에 업은 &#034;적그리스도&#034; 한 사람에게 집중될 것이다.<br/><br/>작년 11월, 카톨릭에서는 &#034;은드란게타&#034;(마피아 조직들 중 하나)의 일원으로 추정되는 한 사업가가 태풍으로 망가진 성당 지붕을 보수하기 위해 봉헌한 돈을 &#034;더러운 돈&#034;이라고 비난하며 돌려준 적이 있는데, 당사자 로크리 - 제라체 교구의 올리바 주교는 &#034;더러운 돈으로 교회를 지을 수는 없다.&#034;며 1만 유로의 &#034;헌금&#034;을 거절했던 것이다. 더러운 돈이라고? 그렇다면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면죄부를 팔아 벌어들인 돈은 깨끗한 돈이었던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권력자들을 매수해 거둬들인 돈은 진정 아무런 흠도 없는 돈이었던가? 마피아가 활개를 치는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과거에 카톨릭이 마피아의 헌금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언제까지 이 가증한 위선자들의 집단의 속임수에 우롱당할 것인가!<br/><br/>로마카톨릭은 자신들의 악한 본성을 숨기며 인류를 대상으로 근 1,600년 이상을 사기 쳐 온 사악한 집단이다. 『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갈 6:7). 세상은 마피아를 향한 교황의 지조(?) 있는 연설에 박수하며 동조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위선자에게 우롱당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다. 종교적 창녀 집단의 수장인 교황은 다른 이의 악행을 판단할 만한 자격이 없다. 그것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다. 『행악자는 거짓 입술을 유념하고, 거짓말하는 자는 사악한 혀에 귀를 기울이느니라』(잠 17:4). 교황의 사악한 혀에 귀를 내어 주는 순간 함께 행악자가 되고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위선자들에게 귀를 내주고 그들에게 동조하는 것은, 최대의 수치요 굴욕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24 Feb 2017 17:43:0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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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리베라 박사는 예수회 회원이었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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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nbsp; 리베라 박사가 실제로 예수회 회원이었다는 증거는 다음의 몇 가지 항목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br/>&nbsp; * 그의 스페인 신분증<br/>&nbsp; * 마드리드의 대주교 알칼라(Alcala)가 발급한 인증서<br/>&nbsp; * 교구 학교에서 사제복을 입고 찍은 사진들<br/>&nbsp; 위 같은 증거들로 인하여 로마카톨릭은 그것들 모두를 간단히 없애 버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리베라 박사가 결코 그들 조직에 속해 있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위 증거들은 진실을 알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아주 유익한 자료가 될 것이다.<br/>&nbsp; 전 메리놀 선교회 선교사 로버트 V. 줄리엔, 전 수녀원 원장 도나 유뱅크스, 그리고 전 사제 클라크 버터필드와 같은 전 로마주의자들 모두가 그들 자신들이 로마카톨릭 안에서 광범위하게 체험한 것들과 리베라 박사의 주장들이 하나같이 일치한다고 말하고 있음을 주목한다면 이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br/>&nbsp;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수많은 전 로마카톨릭 신자들은 리베라 박사의 주장들에 대하여 동의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로마카톨릭 조직이 무엇인지를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안다.<br/>&nbsp; 로마카톨릭이 리베라 박사에 대하여 퍼뜨리고 있는 거짓말들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그녀(로마카톨릭)의 간음의 포도주에 취해서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nbsp;  <br/>&nbsp; 물론 로마카톨릭은 그녀의 사악한 조직에 대한 리베라 박사의 폭로를 부인한다. 로마카톨릭은 &lt;로마카톨릭에서의 50년&gt;의 저자 치니키(Chiniquy)가 로마카톨릭에 대하여 폭로했을 때 그의 거짓에 대하여 엄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 않았던가? &lt;로마카톨릭에서의 50년&gt;이란 책을 읽어 보면 진실이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 것이다.<br/>&nbsp; 여러분은 지난 한 세기가 바뀌기 전, 프랑스를 분열시켰던 그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Dreyfus Affair)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한 죄없는 장교를 투옥시키기 위하여 그를 비난하는 거짓된 자료들이 유포되었던 것이다. 에드몽 파리의 저서 &lt;예수회의 비밀역사&gt; 8장에 의하면, 모든 골치 아픈 사건의 배후에는 로마카톨릭 기관들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어두움의 세력에 종노릇하는 자들의 반작용도 일어나게 될 것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대의 거짓된 종교조직을 폭로했을 때, 그분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셨던 것처럼 말이다.<br/>&nbsp; &#034;거룩한 어머니 교회&#034;의 주장들은 결코 바뀐 적이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로마카톨릭이 거짓과 기만의 행보를 계속하는 한, 우리는 결코 그들에게 동의할 수 없다. 로마카톨릭은 거짓의 행보를 결코 바꾼 적이 없다.<br/>&nbsp; 우리가 개신교도들의 건전한 책들을 읽다 보면, 로마카톨릭은 그들의 적들에 대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해를 해왔고, 그 방법이 실패할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그들을 파괴시키기 위해 암살이라는 극악한 방법들을 사용하여 왔다는 것이 로마카톨릭의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된다.<br/><br/>개신교도들도 카톨릭처럼 하고 있는가?<br/>&nbsp;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해진 참된 개신교도들은 과거 시대나 혹은 오늘날에도 카톨릭 교회가 저지른 것과 같은 가증한 죄들을 범했는가, 아니면 그것이 은폐되었는가? 개신교도들의 역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br/><br/>&nbsp; 1. 개신교회의 위대한 개혁자들은 과거 무고한 수만 명의 사람들에 대한 고문과 살인에 대하여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는가?<br/><br/>&nbsp; 2. 후스, 루터, 칼빈, 낙스, 크랜머, 리드레이, 래티머, 그리고 웨슬리나 휫필드 같은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신뢰에 살인과 고문이라는 기록도 함께 갖고 있는가? 이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교회가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고 선언한 적이 있는가?<br/>&nbsp; 3. 여러분은 개신교회의 믿음의 조항에서 다른 종파의 사람들을 모조리 처형해야 된다는 규정을 찾을 수 있는가?<br/><br/>&nbsp; 한편, 우리가 혼돈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한 예로 우리는 화약 음모 사건(1605년 11월 5일 영국 국회의 폭파를 음모한 카톨릭 교도의 음모)에 가담한 로마주의자들에 대한 처형을 제임스왕이 집행한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또한 로마 기관이 소위 이단들을 몰살시키려 했던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로마주의자들은 합법적인 정부를 대적하는 범죄행위 때문에 처형되었던 것이고, 개신교도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믿음 때문에 처형되었던 것이다. 이 둘은 아주 다른 상황인 것이다. <br/>&nbsp;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은...<br/>&nbsp; * 개혁주의자들은 로마카톨릭의 사악한 조직에 대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br/>&nbsp; * 최근 로마카톨릭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알베르토가 말하는 것들에 대하여 동의하고 있다.<br/><br/>&nbsp;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씻기워진 개신교도들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은 수천 명의 사람들은 이같이 적그리스도의 종교조직을 폭로하는 리베라 박사와 잭 칙의 곁에서 그들의 노력과 함께 믿음으로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<br/>&nbsp; 로마카톨릭은 자신들만이 유일하고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로마카톨릭은 카톨릭 교회가 모든 것의 머리이자 교황인 베드로를 자신의 후계자로 위임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졌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또한 카톨릭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가장 오만하고 마귀적인 이단 교리이다.<br/>&nbsp; 그런데, 혹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카톨릭의 거짓 가르침을 폭로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한 사람에게 대적해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있는 이 적그리스도 조직의 편에 서 있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br/><br/>---------------------------------------------------------------------------------<br/><br/>알베르토 박사에 대한 증언들<br/>&nbsp; * 나의 이웃 카톨릭 친구들은 그들이 다니는 도서관에서 &lt;알베르토&gt;와 &lt;이중십자가&gt;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자신들은 더 이상 카톨릭교도들이 아니다라고 우리에게 선포하고 그들의 교회를 떠났다(Albany, GA).<br/>&nbsp; * 나는 나의 형에게 &lt;알베르토&gt;와 &lt;이중십자가&gt;를 보냈다. 그는 잘 인도되어 오다가, 몇 주 안되어서 다른 길로 되돌아가 버렸다. 결국 그는 알베르토 시리즈대로 되돌아와 자신의 죄 문제를 인지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간청했다. 나처럼 그도 한때는 로마카톨릭교도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Robbinsville, NC).<br/>&nbsp; * 나에게는 &lt;알베르토&gt;를 읽은 두 친구가 있었다. 그것을 읽고, 그들 중 한 친구는 아주 분노했다. 지금은 그들 두 사람 모두가 구원받아 성경대로 믿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그들 두 사람 모두 전에는 로마카톨릭교도였다(Rock Hill, SC).<br/>&nbsp; * 나의 형은 담대하게도 엄격한 카톨릭 신자인 어머니에게 &lt;알베르토&gt;의 만화책을 전해 주었다. 나는 그것이 어머니를 격노케 해서 소원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도리어 그녀를 갈보리로 인도해 주었다! 이제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4주도 채 안되어서 바른 성경인 &lt;킹제임스성경&gt;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의 모든 친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 있다(Laredo, TX).&nbsp; BB<br/>]]></description>
<dc:creator>지식뱅크 관리자</dc:creator>
<dc:date>Mon, 02 May 2016 17:12:4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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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14/%EB%88%84%EA%B0%80-%EA%B1%B0%EC%A7%93%EB%A7%90%EC%9D%84-%ED%95%98%EA%B3%A0-%EC%9E%88%EB%8A%94%EA%B0%80/</link>
<description><![CDATA[주장 12<br/>예수회가 1) 동맹국들 안에서 제5군을 편제했고, 2) 미국에서는 비밀 특공대를 조직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br/><br/><br/>답변<br/>아브로 맨하탄의 책 &lt;바티칸, 모스크바, 워싱턴의 동맹&gt;은 265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br/>&nbsp; 『카톨릭의 제5군 편제에 관하여 논한다는 것은 특이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한 세대 전에는 카톨릭의 소수파 집단들이 유럽의 민주주의를 파괴시키는 데 크게 일조를 했는데, 이것은 그들이 히틀러에게 협력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br/>&nbsp; 같은 책 266쪽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br/>&nbsp;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누가 벨기에와 프랑스의 정치적, 그리고 군사적 동맹구조까지 와해시키기 위해 히틀러를 도와 트로이 목마 안으로 잠입해 들어갈 수 있었겠는가? 뿐만 아니라 우리는 카톨릭 지도자들 개인이나 단체들이 고위 성직자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따라서 바티칸과 교황 피오 12세까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안다... 프랑스에서 우리는 교황의 기사 피에르 라발(Pierre Laval)과 예수회에서 훈련받은 웨이건드(Weygand) 장군, 그리고 또 카톨릭의 유명한 페텡(Petain) 장군을 만나게 된다... 카톨릭의 소수파 행동대들이 유럽 민주주의의 붕괴에 기여했다면, 마찬가지로 그들은 미국에서도 똑같은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br/>&nbsp; 위와 같은 사실은, &lt;바티칸의 유럽 통제&gt;(p.140-141)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미국에서의 예수회의 &#034;비밀 특공대&#034;의 활동에 대하여 확인하고자 한다면, &lt;예수회의 비밀 역사&gt; 139쪽을 찾아보라.<br/>&nbsp; 다시 말하지만 리베라 박사와 잭 칙의 주장들이 사실이라는 것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br/>&nbsp; 이같이 자유와 그리스도인의 의에 대한 막강한 대적자 로마카톨릭에 대하여 진리를 깨닫게 해준 그들의 담대한 용기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br/><br/>계략들<br/>&nbsp;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에 대한 대부분의 비난들은 그가 로마카톨릭의 예수회 회원으로서 자신이 체험한 것들은 하나도 거짓이 없다는 그의 증언들에 대한 정직성과 확실성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는데, 이것은 &#034;암살&#034;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그 사실을 정직하게 반박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극단적인 방법이다. <br/>&nbsp; 리베라 박사를 비난하기 위해서 이러한 방법을 택하는 사람들은 보통 &#034;상세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와 같이 보여 주고 있다.&#034;처럼 상투적인 거짓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경우에 따라서, 그들은 로마카톨릭을 공격하지 않는 우호적인 에큐메니칼 &#034;기독교&#034; 출판물들을 인용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주장들이 정확하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br/>&nbsp; 로마카톨릭이 계속하여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에 대하여 악독하고 무자비한 방법으로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의 암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로마카톨릭의 돈에 관련된 부분에서 그의 증언이 옳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주장들이 거짓이라면, 카톨릭은 벌써 수년 전에 그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했을 것이며, 따라서 그는 지는 해와 같이 확실하게 사라졌을 것이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로마 교회의 바로 그런 행동이 그들 스스로 리베라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br/>&nbsp; 예수 그리스도 당대의 종교집단들도 그분께서 그들의 죄를 폭로했기 때문에 그분을 미워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종교 집단들도 그들의 죄악된 길들 위에 여러분이 빛을 비추기 시작하면 여러분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가 바로 산 증인인 것이다. 다음의 성경 구절을 숙고해 보기 바란다. 『악을 행하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혹 자기의 행위가 책망받을까 함이라』(요 3:20).<br/>&nbsp; 리베라 박사를 비판하는 그러한 악랄한 선전 활동이 지속되어 왔다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누가 이 사람보다 더 로마카톨릭의 사악하고 어두운 면을 밝게 비춰 줄 수 있었겠는가?<br/><br/>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br/>&nbsp; 로마카톨릭이 리베라 박사가 거짓말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왜냐하면 노골적으로 거짓말할 때의 로마카톨릭은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을 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리베라 박사에 대한 로마카톨릭의 비판과 반감에 대하여 신뢰할 수 있겠는가?<br/><br/>&nbsp; 1979년 카톨릭 연구소의 마로우브라(Maroubra) N.S.W.에 의해 발간된 책 &lt;카톨릭 종교, The Catholic Religion&gt;의 제17과 &#034;사랑과 사람의 섬김&#034;에서 발췌한 다음과 같은 견해로 볼 때, 특별히 신뢰할 것은 없지만, 그것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br/>&nbsp; 『가끔 진실을 감추거나 혹은 진실의 일부를 속인다 해도 그것은 합법적이다. 진실 모두를 말하게 되면 그것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비밀을 지켜야 할 때나 혹은 정당치 못한 사람으로부터 어떤 정보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이에 대한 분명치 않은 답변을 했다고 해서, 혹은 어떤 문제들에 대해 본인의 심중을 유보했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br/>&nbsp; 로마카톨릭은 그들의 목적에 부합할 때 자신들이 거짓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허용적이면서도 리베라 박사는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태도는 위선적일 뿐 아니라 성경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br/>&nbsp;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br/>&nbsp; 『거짓말하는 입술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진실하게 행하는 자들은 그의 기쁨이니라』(잠 12:22).<br/>&nbsp; 『이 여섯 가지를 주께서 싫어하시며, 정녕, 그에게 가증한 것이 일곱이니, 교만한 눈과, 거짓말하는 혀와, 무죄한 피를 흘리는 손과』(잠 6:16,17).<br/>&nbsp; 거짓말에 대한 로마카톨릭의 언급에 비추어 볼 때, 다시 질문하건대 우리가 어떻게 리베라 박사에 대한 그들의 비난들에 대하여 신뢰할 수 있겠는가? 답변은 매우 간단하다. 신뢰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br/>&nbsp; 우리는 로마카톨릭이 실제로 실행하고 있는 증거로서 &#034;진실을 속이는 것&#034;이 허용되고 있음을 그들의 수많은 거짓되고 비성경적인 교리들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br/>&nbsp; 1. 성모 마리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라는 것은 거짓말이다(딤전 2:5).<br/>&nbsp; 2.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가 죄 없이 태어났다는 것은 거짓말이다(롬 3:23).<br/>&nbsp; 3. 사제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요일 1:9).<br/>&nbsp; 4. 사도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라는 것은 거짓말이다(행 10:25,26).<br/>&nbsp; 5. 교황은 절대 오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롬 3:23).<br/>&nbsp; 6. 금고 안에 넣어 둔 돈은 그가 죽은 후에 그의 혼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히 9:27).<br/>&nbsp; 7. 마리아 안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요 14:6).<br/>&nbsp; 8. 사제들이 성병(聖餠)을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히 10:10,12).<br/>&nbsp; 9. 우상 숭배(십자가 수난상, 로사리오 기도, 조각상들, 성인들)가 정당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출 20:4-5).<br/>&nbsp; 10. 성수(holy water)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1986년 1월 State Affair).<br/>&nbsp; 11. 로마카톨릭이 가난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아브로 맨하탄 저 &lt;바티칸의 억만장자&gt;).<br/>&nbsp; 12. 나치가 점령하고 있는 동안 로마카톨릭이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구출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lt;바티칸 신문&gt; 29쪽의 진실을 읽어 보라).<br/>&nbsp; 이제 로마카톨릭이 고취하고 있는 이들 거짓말들에 대하여 고찰해 볼 때, 건전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면, 이 사악한 조직이 알베르토 리베라와 같은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것들에 대해 눈곱만큼도 신뢰를 줄 수 있는 것이 있겠는가? 물론 그렇지 못하다!<br/>&nbsp; 실제로 로마카톨릭이 리베라 박사가 말한 모든 것들에 동의했다면, 오히려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하여 크게 회의적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에 대한 로마카톨릭의 공공연한 비난들은 오직 그가 말하는 바의 진실성을 더욱 확립시켜 줄 뿐이다.&nbsp; BB<br/>]]></description>
<dc:creator>지식뱅크 관리자</dc:creator>
<dc:date>Sat, 23 Apr 2016 08:37:5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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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교회들 안에 잠입해 온 로마카톨릭 예수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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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알베르토의 증언은 사실인가?”라는 질문은 칙 출판사(Chick Publications)가 출간한 알베르토 리베라(Alberto Rivera) 박사에 관한 여러 가지 책들과 기사를 읽은 사람들로부터 자주 받아 온 질문이며, 논쟁이 되고 있다.<br/>&nbsp; 알베르토 리베라는 예수 그리스도께 회심한 전 로마카톨릭 예수회 신부이다. 그는 구원받은 후부터 로마카톨릭이 막후에서 비밀리에 수행한 비행들에 대하여 실제적으로 체험한 것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br/>&nbsp; 미국의 칙 출판사는 “알베르토 시리즈”인 &lt;알베르토&gt;, &lt;이중십자가&gt;, &lt;대부&gt;, &lt;어둠의 세력&gt;, &lt;네 명의 말 탄 자&gt;, &lt;거짓 선지자&gt; 등 연재 만화책을 출간하였다. 이 연재 만화책은 알베르토의 인생 역정과 이와 관련된 여타 생생한 정보들을 담고 있다.<br/>&nbsp; 이 연재 만화는 그것들을 읽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시리즈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극도의 적대감을 표출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눈을 뜨는 계기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로 회심하였다.<br/>&nbsp; 알베르토의 증언은 대부분 에큐메니칼을 신봉하고 있거나 로마카톨릭의 고위직에 있는 자들에게는 큰 도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알베르토의 충격적인 폭로로 인해 로마카톨릭은 극도로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 일부는 그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써 알베르토 개인을 비방하거나 또 그가 폭로한 정보는 터무니없고 날조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 교회의 실상들을 잘 알고 있는 일부 카톨릭 교도들은 알베르토가 카톨릭에 대하여 말한 사실들에 대하여 별로 반박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충격과 혼란에 빠진 그들의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에 대한 일차적인 공격은 무자비한 암살의 형태로 나타났다.<br/>&nbsp; 우리는 리베라 박사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답변을 준비중에 있었는데, 퍼스 프리 장로교회(Perth Free Presbyterian)의 담임목사 프레드 뷰익(Fred J. Buick)과 헬무트 실바흐(Helmut Silbach) 씨는 우리로 하여금 이 책의 질문들에서 답변할 수 있는 아주 상세한 기록들을 수집하여 방대한 양의 연구 자료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br/>&nbsp; 필자의 역할은 리베라 박사를 비방하는 수많은 질문들에 답변하기 위하여 이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집하여 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음의 두 가지 일들을 성취시키시기 위하여 우리의 노력들을 사용하실 것이라고 확신하며 기도하고 있다.<br/>&nbsp; 1. 여러분은 알베르토 리베라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이며, 그는 누구였는지 사실에 입각하여 확신을 가져야 한다.<br/>&nbsp; 2. 여러분은 리베라 박사의 증언의 확실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사실에 입각하여 확실하게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br/>&nbsp; 많은 사람들이 지난 10년에 걸쳐 시도해 왔지만, 아무도 리베라 박사의 로마카톨릭에 대한 비판들에 대하여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br/>&nbsp; 이 책의 목적은 위에 언급된 책들의 내용이나 리베라 박사의 개인에 대하여 자주 등장하는 비방과 주장들에 대하여 이를 반박하고자 한다.<br/><br/>&nbsp; 칙 출판사 대표, 잭 칙(Jack T. Chick)의 증언 <br/>&nbsp; 우리 칙 출판사는 로마카톨릭에 대한 우리의 입장 때문에 저명한 “그리스도인” 지도자들로부터 우리를 공격하는 보고서를 자주 받는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알베르토 리베라에 대한 신뢰를 흠집내기 위해, 사실은 전적으로 무시하면서 그에 대하여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며 진부하게 그들 카톨릭의 지위만을 내세우고 있다.<br/>&nbsp; 수년 전, 처음으로 리베라 박사가 나에게 자신에 대한 아주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을 때, 그는 엄청난 양의 문서들과, 편지들, 신분증들, 그리고 그가 신부로 있을 때 미사제의를 입은 사진들을 보여 주었다. 이 모든 정보들은 그가 실제로 예수회 신부였다는 명확한 증거들로서 나를 확신시켜 주었다.<br/>&nbsp; 리베라 박사는 내가 감히 그의 이야기에 대해서 출판한다면 로마 세력은 나를 무자비하게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해 주었다. 그들은 거짓된 정보로 나라를 온통 소란스럽게 하듯이 우리를 파멸시키는 데 모든 역량을 다 동원할 것이라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하여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야기를 출판하도록 인도해 주셨다. 리베라 박사의 메시지는 우리 출판물의 구독자인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물론, 이 거짓된 종교조직에 의해 속아온 구원받지 못한 수억 명의 로마카톨릭 신자들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br/>&nbsp; 나는 전적으로 주님께 복종하기 위해 죽음에 이를 각오로 요한계시록의 창녀의 정체를 벗기고자 한다. 자신들이 복음의 대적자들에 대하여 스스로 전문가라고 자처하면서도 아직까지 영적 창녀왕국인 로마카톨릭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충격을 받았다. 나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행위나, 고해성사, 종교적인 성사로서가 아닌) 교리의 위대한 서신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의 경고를 되뇌이지 않을 수 없다.<br/>&nbsp;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열을 일으키고 공박하는 자들을 주의하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그러한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배를 섬기는 것이니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985173;(롬 16:17,18).<br/>&nbsp; 개인적으로 리베라 박사를 알고부터 지난 10년 동안 더욱더 그에게 다가가 가까이서 그의 일상생활과 활력있는 구령사역을 지켜보면서 나는 전적으로 그가 하나님의 진정한 종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그와 그의 아내에 대한 물리적인 공격들을 목격했다. 또 나는 그들 집에 난 총구멍의 흔적들도 보았다. 나는 카톨릭이 관장하는 소위 ‘크리스찬’ 잡지에서 그를 가차없이 중상모략하는 글들도 많이 보았다. 나는 그가 비방당하면 당할수록 더욱더 그의 메시지가 진실이며,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그가 스스로 기꺼운 마음으로 로마카톨릭을 폭로함으로써, 수많은 귀중한 로마카톨릭 신자들이 구원받고 지금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 개인의 구세주가 되었다는 사실에 무척 고무되어 있다. 그들은 창녀들의 어머니 곁을 떠나 지금은 하나님의 복된 말씀에 따라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 <br/>&nbsp; 나는 언젠가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며 지옥 불로부터 벗어난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리베라 박사의 증언을 통하여 복된 진리의 말씀을 배웠기 때문에 하늘의 뿌듯한 행복감으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나는 돌이켜 로마카톨릭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치렀던 값비싼 대가를 회상하게 되겠지만, 그러나 당시에 받았던 모든 비방들과 박해들은 그것들 그대로 가치가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오직 내가 생각하고 내가 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겨온 소중한 혼들을 위해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이다.<br/>&nbsp; 의문의 여지없이, 리베라 박사의 증언은 사실이다.<br/>&nbsp; * 아무도 예수회 신부로서의 그의 신원에 잘못이 있음을 증명해 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의 증언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br/>&nbsp; * 그가 로마카톨릭을 폭로하기 시작한 후부터 그가 겪은 모든 박해는 그의 증언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br/>&nbsp; * 그의 사역을 통해서 구원받은 수천 명의 혼들은 그의 증언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br/>&nbsp; * 역사와 다른 많은 사람들의 저작물들은 그의 증언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br/>&nbsp; 위 모든 사실들은 한 가지 것을 입증하고 있다. 알베르토 리베라의 증언은 사실이라는 그것이다. 그리고 또 그가 말하는 메시지는 바로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카톨릭 성직자 계급이 습관적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증오의 메시지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 부패한 종교조직의 거짓된 가르침들에 세뇌되어 있는 사람들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기꺼이 비방과 박해를 감내하는 궁극적인 사랑의 메시지인 것이다.<br/>&nbsp; 이 조그마한 책 안에 포함되어 있는 정보를 통하여 수많은 귀중한 로마카톨릭 신자들의 눈이 열리기를 기대하고, 그들의 혼들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 제목이요, 우리의 목표이다.<br/><br/>&nbsp; 제1장 알베르토를 비방하는 대표적인 12가지 주장들에 대한 답변<br/><br/>&nbsp; 우리는 이번 장에서 위 제목과 같이 알베르토를 비방하는 주장들 중에 대표적인 12가지 주장들에 대하여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우리의 답변들은 리베라 박사나 칙 출판사로부터 나온 어떠한 자료나 문서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에 유의해 주기 바란다.<br/><br/>&nbsp; 주장 1<br/>&nbsp; 카톨릭 예수회가 개신교와 여타 교회들에 잠입해 왔다는 주장은 너무 극단적이다.<br/><br/>&nbsp; 답변<br/>&nbsp; 로마카톨릭의 예수회가 개신 교회 안에 잠입해 왔다는 주장이 왜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가?<br/>&nbsp; 『또 내가 이것을 아노니,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서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985173;(행 20:29)라는 말씀과 같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 안으로 몰래 들어온 잠입자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경고하고 있지 않는가?<br/>&nbsp; 『이는 어떤 사람들이 몰래 들어왔기 때문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정죄를 받기로 미리 정해진 자들이며 경건치 않은 자들이라. 그들은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어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nbsp;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니라&#985173;(유 4).<br/>&nbsp; 니노 로 벨로(Nino Lo Bello)는 1982년 New English Library가 출간한 &lt;바티칸 페이퍼, The Vatican Papers&gt;라는 그의 책 “제19장 바티칸의 스파이 조직망”(The Vatican’s Spy Network)에서 바티칸은 이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광범위한 스파이 조직망을 구축했다는 사실을 매우 분명히 하였다. <br/>&nbsp; 그는 이 책에서 그 조직망이 심지어 러시아의 KGB를 능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스파이 조직원들의 단체는 교황들에 의해 “Pianum 신도회”로 불리고 있는데, 이 조직은 이 지구상의 모든 신부와 수녀 그리고 수도자를 다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또 이 조직망은 각 교구의 주교들, 일반 신부들, 카톨릭 신학교 학생들, 평신도들, 수녀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16억 5백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조직에는 고도로 훈련된 조직원들이 많다고 한다.<br/>&nbsp; 자, 그러면 그 조직원들은 어떻게 교회뿐 아니라 여러 기구들에 잠입하며, 또한 무슨 일을 하는가?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들은 예외라고 한다면 과연 이 스파이들은 어떤 기구들에 잠입하고 있단 말인가?<br/>&nbsp; 나는 와이리(J.A. Wylie) 목사가 쓴 프로테스탄트의 고전인 &lt;프로테스탄트주의의 역사&gt;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한다.<br/>&nbsp; 『그들(예수회 비밀 조직원들)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그들이 못 가는 곳이 없다. 그들은 방음이 잘되어 있는 군주의 밀실이나 내각의 국무회의실도 들어갈 수 있다. 또 집회나 UN 총회에도 들어가 보이지 않게 앉아 있을 수 있으며, 각종 토론장이나 연구발표회에도 의심받지 않게 잘 어울리고 있다.』<br/>&nbsp; 그들은 목적을 위해 어떤 말도 할 수 있고 어떤 신념도 고백할 수 있다. 또 어떤 제도화된 교회에서도 등록 교인으로서 잘 융화할 수 있으며, 심지어 루터교도와 함께 교황을 맹렬히 비난할 수도 있고, 어느 누구와도 종교적 동맹을 맺을 수 있다. <br/>&nbsp; 로마카톨릭의 스파이들이 교회들에 잠입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단 알베르토뿐만이 아니다. 아주 정확하게 기록된 역사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br/>&nbsp;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딘가에서 수억 명의 혼들을 지옥으로 인도하고 있는 이 사탄적인 종교조직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br/>&nbsp; 사탄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는 끊임없이 그의 적들에게 침투하여 그들을 파멸로 이끌려고 시도하고 있다.&nbsp; BB]]></description>
<dc:creator>지식뱅크 관리자</dc:creator>
<dc:date>Sun, 31 Jan 2016 16:50:1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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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예수회와 공산주의의 관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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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주장 7<br/>&nbsp;예수회가 동방정교회를 파괴시키기 위하여 러시아 혁명을 준비했고, 또 막스와 엥겔스, 트로츠키, 레닌, 스탈린을 도와 공산주의를 가져왔다는 리베라 박사의 주장은 거짓이다.<br/><br/>답변<br/>&nbsp; 우리는 러시아 혁명이 외부의 이해 당사자들에 의해 계획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어떠한 국민 저항운동도 외부의 도움 없이 자의로 현대화된 군대를 대항해서 성공할 수는 없다. 소수의 반란 세력들이 훈련받은 정규 군대를 혼란시킬 수 있었던 로빈 후드 시대는 지나갔다. <br/>&nbsp; 오늘날은 어떠한 반란 세력이 성공하려면 현대 무기들을 다량 보유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그것들을 보유하느냐가 관건이다. 반란 세력들은 그들 스스로 무기들을 제조할 수 없으며, 또 적으로부터 충분한 양의 무기들을 빼앗아 오는 것도 불가능하다. <br/>&nbsp; 현대의 이러한 사례들은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볼 수 있다. 베트남의 공산주의자들만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의 대대적인 군수물자가 베트남 북부 항구에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반공산주의 세력은 한정된 외부의 도움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br/>&nbsp; 그래서 1917년 외부의 도움 없는 공산주의 혁명은 빠르게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정확한 자료들을 잘 갖추고 있는 책 안토니 서튼(Anthony Sutton)의 &lt;월 스트리트와 볼셰비키 혁명&gt;은 얼마나 많은 돈이 볼셰비키 혁명에 사용할 수 있도록 스웨덴 은행들을 통하여 독일과 미국 은행들로부터 러시아로 흘러들어 갔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br/>&nbsp; 지금, 우리는 공산주의자의 활동에서 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막대한 자금과 다량의 무기들을 보낼 수 있는 만큼의 이해관계를 갖는 세력들은 과연 누군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br/>&nbsp; 안토니 서튼이 쓴 책 &lt;국가적 자살행위, National Suicide&gt; 76쪽을 보라! 일반적인 설명으로는 독일 정부가 볼셰비키 혁명가들이 권력을 잡도록 도와 전쟁을 종식시키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br/>&nbsp; 이 점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이 있지만, 시간관계상 생략하고, 다른 무엇들보다도 신빙성을 더해 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볼셰비키의 활동 배후에 있는 비밀 군대에 관한 리베라의 주장들이 아브로 맨하탄의 저서 &lt;바티칸의 억만장자&gt;에서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124-125쪽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br/>&nbsp; 『그러므로 짜아르 조직의 붕괴는 불가피하게 동방정교회의 붕괴를 가져왔다. 11세기 이래 동방정교회에 대항하여 값비싼 전쟁을 치렀던 바티칸에게 천 년간의 경쟁자의 몰락은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러시아 정교회를 파괴시킨 그러한 방법으로 사악한 볼셰비키 정책이 수용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러시아의 정교회를 단호하게 제거하는 과업을 끝낼 수 있는 재량권을 카톨릭에게 주어야 한다는 한 가지 전제 조건하에 수용될 수 있었다. 바티칸이 볼셰비키 정책에 반대해서 비난을 퍼붓는 동안 크렘린의 볼셰비키와 로마의 바티칸 외교관들이 비밀 협상을 시작했었는데, 거래가 성사됨으로써 그것은 과거지사가 되었다.<br/>&nbsp; 레닌은 교황에게 동의했고, 기구와 조직들이 설치 운영되기 시작했다. 로마 교황의 주문 사항들은, 그 일부는 미국의 고위성직자들이 주도하고 있지만, 굶주림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위장하여 러시아 볼셰비키에 신속하게 발송되었다.<br/>&nbsp; 로마와 다른 곳들의 카톨릭 사제들은 러시아 정교회의 교리와 의식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직접 명령들을 하달받았다. 카톨릭의 부와 땅에 대한 권리를 포함하여 동방정교회를 모조리 붕괴시킬 수 있는 웅대한 계획안들이 청사진들로 제시되었는데, 이것들은 로마카톨릭이 인계받을 때를 대비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조치들인 것이다.』<br/><br/>&nbsp; 그 거래가 실패로 끝난 까닭은 레닌의 영리함에 있는데, 마침내 그는 바티칸의 진짜 동기를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여러분이 위에 언급된 책들과 &lt;월스트리트와 볼셰비키 혁명&gt;을 주의깊게 읽어 보면, 여러분은 리베라가 주장한 것들에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길잡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회가 러시아 혁명을 계획했다는 사실이다.<br/><br/><br/>주장 8<br/>&nbsp;예수회가 히틀러를 위해서 독일을 전복시킬 마스터 플랜의 일부로써 히틀러의 &lt;Mein Kampf, 나의 투쟁&gt;을 기록했다는 것은 거짓이다.<br/><br/>답변<br/>&nbsp; 그것은 확실히 리베라 혼자만의 믿음이 아니다.<br/>&nbsp; 앤드류 신클래어는 그의 저서 &lt;침묵 속의 음모&gt;의 9쪽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br/>&nbsp; 『누가 &lt;나의 투쟁&gt;을 기록했을까? 나치 성경인 &lt;나의 투쟁&gt;은 히틀러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오토 슈트라서(Otto Strasser)는 &lt;나의 투쟁&gt;은 로마카톨릭 사제인 베른하르트 슈템플(Bernhardt Stemple) 신부가 히틀러가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기록했다고 &lt;히틀러와 나&gt;라는 책에서 말하고 있다.<br/>&nbsp; 로마카톨릭 신자인 오토 슈트라서는 나치당의 설립자 중의 한 명이며, 슈템플은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자로서 성 제롬의 로마카톨릭 고위 계급 서열에 속한 회원이었다.』<br/><br/>&nbsp; 우리는 에드몽 파리의 저서 &lt;예수회의 비밀 역사&gt;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138쪽의 내용을 읽어 보기로 하자.<br/>&nbsp; 『총통은 카톨릭 정당(Zentrum)의 지지에 감사하며 권자에 올랐다.<br/>&nbsp; 그러나 &#034;나의 투쟁&#034;에서 냉소적으로 드러났듯이 대부분의 목적들은 이미 실현되었던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에 무례하게 도전한 이 책은 예수회 신부 슈템플에 의해 기록되었고 히틀러에 의해 추천되었다.<br/>&nbsp;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무시하게 할 목적으로 예수회가 그 유명한 범게르만 민족주의 프로그램을 완성시켜서 이 책에 자세하게 기술토록 하여 총통이 그것을 보증해 주었던 것이다.』<br/><br/>&nbsp; 우리는 여기에 두 가지 믿을 만한 외부 정보 자료들을 작가로부터 입수했는데, 이 자료들은 리베라 박사가 제기한 것과 똑같은 주장을 담고 있다.<br/>&nbsp;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한 사람의 헛된 주장이 아니며, 그것은 공부하고 탐구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유용한 공통의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nbsp; BB<br/>]]></description>
<dc:creator>지식뱅크 관리자</dc:creator>
<dc:date>Fri, 22 Jan 2016 17:02:5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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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로마카톨릭의 유대인 학살과 전쟁 계획</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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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주장 5<br/>로마카톨릭 조직이 유대인들을 전멸시키려 했다는 리베라의 주장은 틀렸다.<br/><br/><br/>답변<br/>이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A.D. 1215년 로마카톨릭 공회가 개최되고 있는 동안에 &#034;유대인들과 개신교도들&#034;이 이른바 이단들로 처형되었다. 이 공회에서 결의된 법령은, 내가 알고 있는 한, 결코 폐기된 적이 없다. 칙 출판사에서 출간한 찰스 치니키의 &lt;로마 교회에서의 50년&gt;이란 제목의 책 제13장의 56쪽에서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인용문을 읽을 수 있다. <br/>&nbsp; 『로마카톨릭이 이단들을 처형하는 데 있어서 정의란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겐 정의를 구현시킬 아무런 의무도 없다.』<br/>&nbsp; 『우리는 거룩하고 전통적인 카톨릭의 믿음을 대적해서 이를 훼손시키거나 부추기는 자들은 그들의 얼굴이 서로 다를지라도 그들의 꼬리들은 함께 묶여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을 불문하고 고소해서 추방하고 파문한다. 그런고로 그들은 현존하는 비종교적인 권력에 이양되어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br/>&nbsp; 그것은 유대인이 수세기 동안에 걸쳐 교황체제 하에서 박해를 받아왔다는 하나의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리베라 박사가 그러한 주장을 제기한 것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다.<br/>&nbsp; 독일의 오토 마크만(Otto Markmann)은 자신의 저서 &lt;Irrtumer Der Katholischen Kirche, 카톨릭 교회의 잘못&gt;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잔학한 십자군전쟁 동안에 교황들이 사주한 십자군들, 즉 용병들에 의해 저질러진 잔악한 행위들을 기억한다. 1063년 교황 알렉산더 2세에 의해 명명된 첫 번째 십자군전쟁 동안에는 스페인 북부 도시 발베스트로(Barbestro)가 함락되었고, 5만 명의 모슬렘 교도들이 고문당하고 살육되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장 잔혹하고 끔찍한 유대인 학살 프로그램이 자행되었는데, 이때 유대인들은 유대인 회당들에서 산 채로 불태워졌다. 1147년의 제2차 십자군전쟁은 맨 먼저 포르투갈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하고 모슬렘 교도들을 살육함으로써 촉발되었다.』<br/>&nbsp; 1377년에는 유대인들이 바바리안 데겐도르프(Deggendorf) 마을에서 살육되었다. 세빌레(Seville)의 대주교 보좌관이었던 페랍트 마르티네즈(Ferrabd Martinez)는 &#034;세례를 받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034;고 외치면서 세빌레에서 세례전쟁을 선포하였다. 그는 3만 명의 유대인 공동체를 멸망시켰다. 4천 명이 살해되었고, 나머지는 노예들로 팔려 나갔다. 혹독하게 박해받은 1만 명의 유대인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들의 강력한 회유책(개종 강요)에 굴복하였다. 그들은 &#034;마라넨&#034;(Marannen)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br/>&nbsp; 오토 마크만의 저서 역시 알베르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공포가 아라곤, 카스틸리엔,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그리고 말로카를 걸쳐 전 지역을 휩쓸었다. 성 비센테는 이 거룩한 전쟁을 거룩한 증오라고 이름 붙였다. 그 이름은 지금의 20세기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위대한 종교 재판관 토마스 토르께마다(Thomas Torquemada)의 지시로 심문받는 동안 톨레도(Toledo)에서 3일 동안에 2,400명의 마라넨(Marannen)들이 불태워졌다.』<br/>『1506년에는 리사본(Lissabon)의 수도사들이 &#034;피의 결혼식&#034;을 경축하였는데, 이틀간의 이스터 축제 기간 동안에 무려 2천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불태워졌다. 이 선택받은 민족에 대한 로마카톨릭 교회의 만행은 극악무도했다.』<br/>&nbsp; 아브로 맨하탄은 위대한 저서 &lt;바티칸, 모스코바, 워싱턴의 동맹&gt;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pp. 219-220).<br/>&nbsp; 『공산주의자/시온주의자/카톨릭의 정치 구조상으로 볼 때 종교적 본질을 인식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중요하다. 공개적인 성명에서는 침묵하고 있지만, 시온주의자의 기치 뒤에는 시온의 모든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전 세계적인 신정국가의 도래를 갈망하는 고대 유대인들의 메시야에 대한 소망이 담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 되는 신정국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br/>&nbsp; 그러한 신정국가 창설의 망령은 카톨릭 교회의 밀실에서 자주 출몰되어 왔으며 여전히 그것은 막강한 두려움이다... <br/>&nbsp; 그러므로 바티칸의 입장에서는 전 세계적인 히브리인의 신정국가인 천년왕국에 대한 동경은 카톨릭 교회의 종말론적 가르침들에는 심대한 타격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견해를 정치적 용어로 확고하게 표현한다면, 상호 경쟁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화해할 수 없는 적개심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br/>&nbsp; 이제, 우리는 리베라의 주장에 대하여 한층 더 신뢰감을 주고 있는 최근 신문기사로 시각을 돌려보기로 하자.<br/>&nbsp; 반카톨릭 경향으로 비난받은 적이 없는 신문인 &lt;웨스트 오스트랄리안, West Australian&gt; 1985년 12월 4일자 75면에 &#034;고위 성직자 : 용서를 구하기엔 시기상조&#034;(Prelate: Too Soon To Ask Forgiveness)라는 제목의 기사가 났다. 그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세기 동안의 박해에 대하여 유대인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카톨릭 교회에 있어서는 시기상조라고 어제 바티칸 추기경은 말했다. 이태리의 한 단체는 최근에 유대인의 용서를 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 위하여 주교 회의에 청원할 탄원서에 서명하였다.』<br/>&nbsp; 이 신문은 소위 &#034;거룩한 어머니 교회&#034;의 지도자들에 의해 유대인들이 집단수용소에서 끝까지 고문받고 학살된 후 4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그들의 극악무도한 범죄 행위들에 대하여 용서를 기대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하고 있다.<br/>&nbsp; 나는 지금 앤드류 싱클레어의 책 &lt;위대한 침묵 속에 숨어 있는 음모, The Great Silence Conspiracy&gt;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그는 8쪽에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1판 제2권 37쪽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물론, 로마카톨릭 교회는 항상 반셈족주의의 근원이다. 반셈족주의는 1772-1795년의 폴란드가 분할된 이후까지 짜르의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의 반셈족주의는 폴란드의 로마카톨릭으로부터 동화되었다. 스페인의 &#034;거룩한 심문&#034;은 스페인의 유대인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창안된 것이다.』<br/>&nbsp; 리베라와 칙이 오늘날 말하고 있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거 시대의 저자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확증되고 있는 자료들을 더 많이 인용할 필요가 있다.<br/><br/><br/>주장 2<br/>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키는 데 예수회가 연루되었다는 리베라 박사의 주장은 거짓이다.<br/><br/><br/>답변<br/>다음에 언급된 내용은 폴 피터슨 신부의 책 &lt;최근에 발견된 베드로의 무덤&gt;의 63쪽에 기술되어 있다.<br/>&nbsp; 『수세기에 걸쳐 내려온 유럽의 모든 전쟁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교황들이&nbsp; 전쟁을 일으키거나 이를 사주해 왔다.』<br/>&nbsp; 우리는 또 에드몽 파리가 저술한 책 &lt;바티칸의 유럽 통제&gt;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을 수 있다. <br/>&nbsp; 『동방정교회를 증오하고 있는 교황 피오 10세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프란시스 조세프 황제로 하여금 세르비아인들을 징벌하도록 지속적으로 부추겨 왔다. 사라예보 사건(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암살사건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역사적 사건) 이후, 1914년 7월 26일 교황청(Holy See)의 바바리안 대표 바론 리터는 그의 정부에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 교황께서는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에 대한 강압적인 조치를 용인하시며, 독일을 대항하는 전쟁에서도 러시아와 프랑스의 군대들과 큰 견해차가 없으시다. 교황청의 추기경 비서는 오스트리아와 지금과 같은 관계가 지속된다면 전쟁을 일으킨다 해도 관심을 갖지 않겠다고...』<br/>&nbsp; 『진정한 권위를 갖고 계신 분은, 겸손하시고 평화의 사도이시며,&nbsp; 전쟁의 발발 소식을 듣고 죽기까지 슬퍼하시며, 모든 경건한 권위자들을 대표하시는 거룩하신 교황성하님이시다.』<br/>&nbsp; 계속해서 47쪽에서는,&nbsp; <br/>&nbsp; 『그러므로, 그들이 지존의 카톨릭 황제로 하여금 전쟁을 일으키도록 부추기고 있었을 때, 피오 10세와 그의 교황청 비서는 그들이 행동에 옮겼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결과들로써 프랑스와 러시아에 대항하는 중부 유럽 제국들의 세력재편 가운데 일어날 수 있는 일반 분쟁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냉철하고 면밀하게 분석하고 계획하였음이 입증되고 있다... <br/>&nbsp; 그들은 개입할 가능성이 있는 상이한 세력들의 힘을 정확하게 평가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거룩한 교황과 그의 추종자들이 예견하지 못했던 것은 영국 전쟁에서의 참전 세력이었는데, 결국 전 앵글로-색슨계 세력의 참전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계획들은 좌절되었고, 이 참전세력이 프랑스에 우호적으로 기울게 됨으로써 동방정교회 소속 주민들은 비엔나의 멍에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범죄에 대한 책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이는 4년 이상에 걸친 극악한 범죄행위는 완전히 사전에 계획된 천인공노할 짓으로 수백만 이상의 꽃다운 유럽의 젊은 그리스도인 시체들을 납골당에 처넣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1914년 참혹한 일련의 전쟁들은 로마카톨릭이 촉발시켰다고 아주 특별히 언급한 바가 있다. 로마카톨릭이 항상 사람들로부터 착취해온 피의 조공은 당시에 실제적으로 아주 급격하게 증가되기 시작했다.』<br/><br/>&nbsp; 위의 책은 물론, 다른 책들도 알베르토 리베라가 언급한 주장들의 신빙성을 입증하는 증거들로 가득 차 있다.<br/>&nbsp; 최근에 출간된 에드몽 파리의 저서 &lt;예수회의 비밀역사&gt;도 역시 유사한 사실들을 언급하고 있다.<br/>&nbsp; 우리는 칙 출판사에서 출간한 찰스 치니키의 &lt;로마 교회에서의 50년&gt;이란 제목의 책에서도 유사한 사실들을 읽을 수 있는데, 296쪽에서는 아브라함 링컨도 알베르토 리베라에게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br/>&nbsp; 아브라함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br/>&nbsp; 『이 전쟁(미국의 남북전쟁)은 예수회의 사악한 영향력 없이는 결코 가능한 전쟁이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땅이 이 땅의 귀한 아들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그대로 천주교에 되갚아 주어야 한다. 노예 문제에 있어서는 남과 북 사이에 큰 견해차가 있었을지라도, 돈과 로마카톨릭의 무기와 그리고 프랑스의 무기까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도록 한 예수회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면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제이프 데이비스나 연방정부의 지도자들 중의 어떤 사람도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감히 북을 공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br/><br/>&nbsp; 역사는 스스로 로마카톨릭이 그녀의 사악한 손으로부터 수많은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렸다는 사실의 증언에 대하여 책임져야 한다.<br/>&nbsp; 리베라는 옳다. 알베르토가 주장하는 바 대로, 예수회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배후에 있었던 것이다.&nbsp; BB<br/>]]></description>
<dc:creator>지식뱅크 관리자</dc:creator>
<dc:date>Wed, 20 Jan 2016 12:24:4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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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교황의 권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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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로마 카톨릭은 교회인 동시에, 세계적이고도 정치적인 권력을 지닌 이중적 체제로 이해된다. ‘상호 파멸’ 능력을 가진 세계 강대국들까지 포함하더라도 바티칸은 지구상에서 가장 막대한 정치적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br/><br/>&nbsp; “육군, 해군, 수소 폭탄 없이도 바티칸은 최고의 병력을 보유한 나라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 교황의 통치는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정부와 동일한 중요성을 띠며, 오히려 영토나 영적 영향력 면에서 이들 강대국보다 훨씬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하고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이 세 나라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A. Manhattan : Vatican Imperialism in the 20th Century : 1965 Zondervan)<br/><br/>&nbsp; 다른 많은 다국적 기구들과 마찬가지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장기적인 전략까지 세워 놓고 있다. 교황은 지구상의 어떤 기구나 국가도 따라갈 수 없는 지속성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나 거대 기업들은 경제적 상황이나 정치 변화 등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지만, 바티칸은 그러한 것들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계획을 세울 수가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5년 내지 10년을 내다보며 계획을 세울 뿐인 반면 바티칸은 수십 년을 망라하는 전략을 세울 수 있으며 또 그것을 이행하기 위해 권한을 행사한다.<br/>&nbsp; 역사가 보여 주는 바는 로마 스스로가 도를 지나친 행동을 취하든지 아니면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여기기 전까지는, 그 권력과 영향력을 수세기 동안 계속해서 그대로 축적해 나간다는 것이다.<br/>&nbsp; 그 예로, 19세기 말 피오 9세 재임시에 로마는 도를 지나친 정책으로 많은 카톨릭 국가를 잃었을 뿐 아니라 권력도 일시적으로 잃었었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서서 요한 23세 및 바오로 6세 재임시인 60년대에는 완전히 방향을 바꾸었다. 로마는 자신들이 더이상 승자쪽을 후원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파시스트 독재자들을 후원하다가 나중에는 ‘냉전’(이로써 철저한 반공 의식이 확산되었는데, 조 맥카디 상원의원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을 통해 수행되었던 피오 12세의 반공 정책에서 이제 돌아선 것이다. 바티칸은 그들이 승산이 없는 쪽을 지지하고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이제 완전히 새로운 양면 정책, 즉 정치적인 동시에 종교적이고, 세속적이면서도 영적인 정책이 채택되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와의 공존, 여기에 프로테스탄티즘을 수용하고 다른 이단 종교들(그들의 표현을 빌면 ‘분리된 형제들’)까지 포용함으로써 로마는 세계 지배를 향해 나아갈 길을 얻게 된다는 계산이었다.<br/>&nbsp; 후루시초프가 스탈린주의에서 전환할 무렵인 1950년대 후반에 바티칸의 전략은 피오 12세의 정책으로부터 돌이키고 있었다. 제 2의 바티칸 건설을 위한 최종 계획이 세워짐과 동시에 양자간의 친선관계가 수립되어 가고 있었다. 30여 년 동안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 가며 막시즘에 반대해 오던 정책이 실패하자 바티칸은 공산 진영과 손을 잡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관찰해 온 대로 공산 진영은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br/>&nbsp; 교황 요한 23세의 정책으로 입증되는 회유적이고 더욱 인간적인 로마의 새 얼굴은 제 2의 바티칸과 새로 등장하는 에큐메니즘, 그리고 곧 이어 등장하는 해방신학과 새로운 정책의 얼굴이 될 것이었다. 이 얼굴 뒤에는 ‘세계를 복음화’시키려는 전략과 계획이 숨어 있었으며, 소련을 성모 교회로 회심시키는 것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바티칸의 전략은 뒤에 나오는 ‘평화와 복음화의 2000 운동’에서 더욱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br/><br/>&nbsp; 경제적 권력<br/><br/>&nbsp; 로마 교회의 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지만, 최근 조심스런 이미지 관리를 통해 로마 교회는 이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심지어 가난을 호소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신문에 바티칸이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실음으로써 그런 이미지를 더욱 굳히려 한다. 바티칸 체제 밖에 있는 사람들은 바티칸이 교회를 위한 기금을 모을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에드몬드 파리스(Edmond Paris)는 1957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날 바티칸이 누리고 있는 경제적 권력은 막대한 것이다. 예를 들면 스페인 영토의 3분의 1이 바티칸의 소유이나,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남미에도 광대한 부지를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 걸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4억의 독실한 카톨릭 신자들에게서 거둬들이는 헌금과 그들이 남기는 유산 및 미사(연옥에서 고통당하는 가족들을 도와 준다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를 통해 들어오는 돈은 교황에게 천문학적 숫자에 달하는 확실한 수입원을 보장해 준다...이 시점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가 가장 많은 부를 얻은 때는 제 2차 세계대전임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대전 후의 유럽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폐허가 되었으며 나찌에 의해 완전히 약탈당한 상태였으나 바티칸은 그러한 상황과는 정반대로 엄청나게 축적된 부로 넘쳐나고 있었다.”<br/>&nbsp;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이나(딤전 6:10), 돈에 대한 사랑은 로마라는 이름의 기독교의 썩은 뿌리이다. 초, 성수, 유물, 면죄부,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미사, 마리아와 성인들의 중보 기도, 이 모든 것이 바티칸의 거대한 재정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연옥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로마 교회로 들어오는 수입이란 그저 엄청날 뿐이다.<br/>&nbsp; 연옥의 교리는 6세기 교황 그레고리 재임 시에 최초로 만들어졌으며, 현대에 와서는 ‘경미한 죄들’을 지은 상태에서 죽은 자들이나 자신들이 ‘용서받은 죄들’에 대한 벌을 완전히 다 받지 않은 자들을 위해 마련된 고통의 장소로 &lt;카톨릭 교리문답서&gt;에 정의되었다. 그러나 연옥이라는 장소는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구주와 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은 그분에 의해서, 오직 그분에 의해서 모든 죄로부터 완전히 깨끗하게 씻음받았다는 완전한 확신을 성경으로부터 얻는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7)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케 하시고”(히 1:3)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히 10:12). 예수께서는 숨을 거두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분께서 모든 것을 완성하셨으며 이제 정결케 되지 않은 어떤 죄도 더이상 남아 있지 않음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br/>&nbsp; 따라서 연옥의 개념은 전적으로 비성경적인 것이다. 그러나 연옥은 그 어떤 교리보다도 유용하게 사용되어 왔다. 연옥의 교리는 1439년 플로렌스 공회 때 로마 교회의 공식 교리가 되었으며, 그 이후로 사람들과 그들의 헌금에 대한 성모 교회의 권력을 확장시켜 왔다. 역사상 하나의 교리가 그렇게 많은 돈을 모은 예는 없었다.<br/>&nbsp; 로마 교회의 부를 측정하려는 또 다른 시도가 1983년 미국의 아브로 맨하탄(Avro Manhattan)에 의해 이루어졌다.<br/><br/>&nbsp; “UN의 세계 연감(World Magazine)은 바티칸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금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 중 상당량이 미국 연방정부 은행에 보관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영국 및 스위스 은행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바티칸이 누리고 있는 부의 극히 적은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바티칸이 미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자산만 해도 영국의 5대기업의 자산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 거기에 부동산 및 토지, 증권, 해외 주식을 합하면 카톨릭 교회의 부란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양에 달한다.”(Vatican Billions: Avro Manhattan)<br/>&nbsp; 바티칸은 그와 같은 엄청난 부와 완벽한 조직 구조를 통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앞으로도 예수회, 오푸스 데이, 콜럼버스 기사단, 말타 기사단, 예루살렘의 성 요한 기사단, 템플라 기사단, 그리스도의 군단, 시온 Prieure, 청색 군단 등 카톨릭에 속한 여러 조직들을 통해 암암리에 다양한 방법으로 그렇게 해 나갈 것이다. 사실상 카톨릭의 군대인 이 조직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며, 교황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은 다른 어떤 대상에 대한 충성심보다 우위를 차지한다. 프리메이슨을 포함해서 이 조직들이 갖는 공통점은 대중이 이들에 대해 갖는 긍정적 이미지와 회원들의 비밀 서약, 또 조직 내에서도 하위 계급의 사람들에게 상위 계급의 사람들이 비밀에 부쳐진다는 것 등이다. 상위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장미십자회나 일루미내티 등의 다른 비밀 조직에도 연루되어 있다.<br/>&nbsp; 청색군단은 약 2천만의 독실한 카톨릭 신자들로 구성된 세계적인 카톨릭 조직으로서, 이들은 파티마의 성녀의 명령에 복종하며 갈색 스카풀라리오를 걸치고 묵주의 기도를 계속해서 외우는 사람들이다. 콜럼버스 기사단은 1200만의 회원과 5400개의 부속 기구 및 로마 카톨릭의 지령에 따르는 “파괴적 행동 처단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 콜럼버스 기사단 제 4단에 속한 이들이 하는 맹세에는, 그들이 내용을 바꾸지 않았다면, 다음의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나의 능력이 다할 때까지 나는 이 교리(그리스도의 권한의 대리자로서의 교황의 교리)를 수호할 것이며, 이를 무너뜨리려는 모든 이단들과 모든 개신교 세력, 특히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의 루터 교회, 영국의 성공회, 스코틀랜드의 거짓된 권위, 그리고 아일랜드, 미대륙 등지로 뻗어 나간 그 가지들에 대항하여 교황 성하의 권리와 전통을 수호할 것이다....나는 이제 개신교나 자유주의로 이름붙여진 모든 이단적인 왕이나 통치자,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또 그 법률의 준수나 법관 및 관원들에 대한 복종을 포기하고 버린다. 나는 또한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교황 성하의 요원들을 돕고 보좌하고 자문하며, 이단적인 개신교와 자유주의 교리들을 근절시키고 그들의 모든 거짓된 권세를 합법적으로 또는 다른 방법으로 파괴시키기 위해 나의 능력을 다할 것이다.”(1913년 미국 의회 문서에 기록된 내용) BB]]></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Mar 2010 22:57:1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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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바티칸의 이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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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세계 곳곳에서 정치적 협상, 에큐메니칼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바티칸이 장악하고 있는 실제적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빙산의 일각만을 보고 있을 뿐인데, 때로 물밑의 상황은 표면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br/>&nbsp; 1988년 12월호 〈이코노미스트〉지는 “카톨릭 교회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독재 정치를 전복시키기 위한 투쟁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고 전했다. (The Economist: 24th December, 1988)<br/>&nbsp; 〈이브닝 스탠더드〉지는 1986년 아시시에서 열린 에큐메니칼 집회에 대해 보도하면서 “...적어도 10개국에서 활동중인 게릴라 집단과 민병대는 교황이 제안한 ‘평화의 24시간’을 지키기로 결의했다.”는 내용을 실었다. (The Evening Standard: 27th October, 1986) 이와 같은 교황의 막강한 권력은 파티마에서 나타났던 마리아의 예언의 성취를 예고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이 예언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핵심적 비전이 되고 있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가 다시 한 번 나타나 교황의 영적 리더십을 입증함과 동시에, 그가 평화의 시대를 열 인물임을 확증하기 위해 놀라운 표적과 기적들을 보여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이 단지 성경에 예언된 그대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br/><br/>오푸스 데이<br/><br/>&nbsp; 교황의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비교적 최근에 창립된 우익 단체인 ‘오푸스 데이’와 관련되어서도 드러나는데, 이 단체는 로베르토 칼비(Roberto Calvi)와도 연관되어 있다. “이탈리아 정치인들이 ‘종교적 마피아 조직’이라고 일컫는 이 비밀 기구는 호전적 경향을 띤 종교 단체로서 일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기구를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둔 것으로 보이며, 1982년에는 교황 개인에게 예속된 기구로 만들었다. 이 기구는 교황의 직속 사제인 알카로 델 포르틸로(Alcaro del Portillo)를 통해 바티칸으로 직접 보고한다.” (Daily Telegraph, 8th May, 1986) <br/>&nbsp; ‘오푸스 데이’를 교황 개인의 기구로 만든 것은 이 폴란드 출신 교황에게 전례 없는 일이었으며, 이로써 그는 교회의 주교 구조 밖에 있으며 교회의 위계 질서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기구를 개인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증가 일로에 있는 예수회 조직의 막강한 권력을 견지하려는 교황의 시도인지도 모른다. <br/>&nbsp; 교황은 1990년 12월에 델 포르틸로를 ‘종신 주교’로 임명했으며, 이로써 그는 75세에 직위에서 물러나도록 되어 있는 교회법에서 면제되었다. 한편 같은 해 같은 달에 이탈리아는 이 기구를 ‘공익 도덕 단체’로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법령을 공포했다. 이 공포의 시기가 델 포르틸로의 임명과 맞아떨어진 사실에 대해 이탈리아 국민들은 모두 ‘우연의 일치’라고 말했는데, 이는 이탈리아 의회가 ‘오푸스 데이’를 조사하기 시작한 후 5년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br/>&nbsp; ‘오푸스 데이’는 1928년에 설립된, 예수회 조직 예속 단체로서, 국가 영역을 초월해 전세계를 그 영역으로 하는 하나의 준교구로서 인식되어 왔다. 이 기구는 80개국의 75,000명의 회원과 1,400명의 사제를 자랑한다. (The Universe, 16th December, 1990) 한편 이 기구에 가입한 아들을 둔 부모들의 우려가 가끔씩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는데, 그들은 가족과도 관계를 거의 끊다시피 하는가 하면 성격적으로도 완전히 딴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이 단체에 관한 비밀성은 대단히 심상치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강력한 이 기구에 관한 한 기사의 발췌문을 통해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 가입한 회원들은 정절과 복종 등의 맹세를 해야만 할 뿐 아니라...일 주일 동안 아홉 가닥 채찍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하며 하루에 두 시간 동안 ‘실리스’, 즉 가죽끈이 감긴 금속 사슬을 몸에 감고 있어야 하는데, 이 사슬은 허벅지 윗부분에 감도록 되어 있어 사슬과 그로 인한 상처가 눈에 띠지 않게 한다. 이 기구에 가입할 수 있는 최연소 연령은 만 14살 반이다. 오푸스 데이의 창시자 에스크리바(Escriva)는 이 모든 것이 환상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에스크리바의 사제 훈련 계획은 교황으로부터의 이상하리만큼 열렬한 후원과 함께 진전되었다. 이 스페인인이 1992년 5월에 받은 시복식은 현대에 들어 가장 빨리 받은 것으로서 로마 카톨릭 교회 내에서 상당한 우려와 반발을 가져오기도 했다.<br/><br/>고위 관직에 있는 카톨릭 신도들<br/><br/>&nbsp; 고위 관직에 있거나 막대한 권력을 쥐고 있는 로마 카톨릭 신도들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을 우려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은 이러한 경향을 주목하고 지켜보아야 할 또 다른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상당히 우리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문제로서, 우리의 끊임없는 주의가 요구되는 바이다.<br/>&nbsp; 징병 담당 카톨릭 신부의 집계에 따르면 1988년 현재 미군 사관생도의 50% 이상이 카톨릭 신도들이다. 미 하원의원 내의 카톨릭 신도들의 수는 1950년의 82명에서 1986년에는 142명으로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카톨릭 신도들은 행정부, 법원, 국무성, UN 사절단, CIA, FBI, 이민국 등에서 요직을 점령하고 있는 실정이다.<br/>&nbsp; 미국의 이민 정책은 로마 카톨릭 인구를 교묘하게 늘려가고 있는데, 이는 정치적으로 라틴 아메리카계의 투표권의 중요성이 급속도로 부각됨을 의미한다. 이것으로 카톨릭 국가에서 교황이 산아제한을 계속적으로 금지시키고 있는 사실이 설명될 수 있다. 남미의 인구가 지난 한 세대 동안 배나 증가한 사실이 그 단적인 예이다. 바티칸의 세계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바티칸이 낙태와 산아제한, 동성애에 반대하는 것은 인간 삶의 성화나 성경의 명령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같은 정책의 배후에 있는 진짜 이유는 새로 태어난 생명들이 ‘바티칸의 군대’를 증강시켜 줄 것이며 교회 헌금을 늘려 줄 것이기 때문이다. 앞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프로테스탄트 국가 내에서의 카톨릭 신도들의 산아제한 반대는 카톨릭 교회의 입장을 드러내는 상징적 의미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br/>&nbsp; 캐나다에서 이민국 및 그 밖의 정부 기관에 고용되기 위해서는 영어와 불어 두 언어에 능통해야 되는데, 이러한 요구조건에 의해 상당수에 달하는 정부 고용인들이 퀘벡 등지 출신의 로마 카톨릭 신도들이다. 피에르 엘리옷 트루도(Pierre Eliot Trudeau)에 의해 채택된 정부의 이같은 정책으로 두 언어에 능통한 사람이 요구되는 공무원직 중 대부분은 보통 퀘벡 출신의 로마 카톨릭 신도들이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카톨릭 출신 수상 브라이언 멀로니(Brian Mulroney)는 이 일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br/>&nbsp; 퀘벡 시는 캐나다가 새 헌법 제정에 있어 자신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면 독립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이같은 헌법과 관련된 위기 상황에 책임이 있는 인물은 로마 카톨릭 출신이며 전수상이자 외무부 장관인 조 클라크(Joe Clark)였다. 한편 캐나다 국민들은 1992년 10월 국민투표를 통해 퀘벡 시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br/>&nbsp; 독실한 카톨릭 신도들이 수상직에 있는 나라는 캐나다만이 아니다. 뉴질랜드 수상 제임스 볼거(James Bolger)도 독실한 카톨릭 신앙의 소유자이며 추측컨대 교황에 대한 그의 충성심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의 수상 폴 키팅(Paul Kitting) 또한 로마 카톨릭 신도이다.<br/><br/>첩보 행각과 전쟁 범죄자들의 비호<br/><br/>&nbsp; 1982년 출간된 &lt;바티칸 문서, Vatical Papers&gt;라는 책에서 니노 로 벨로(Nino Lo Bello)는 “바티칸은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이고도 광범위하게 조직된 스파이 조직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러시아의 KGB마저도 능가할 정도”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이 스파이 조직을 교황은 ‘소달라티엄 피아넘’, 즉 ‘하나님의 지하조직’이라고 일컫고 있으며, 지구상의 모든 사제와 수녀, 수도승들이 이 조직에 속해 있다고 적고 있다. 그는 2천5백만이 넘는 요원들을 보유하고 있는 이 신실한 군대 중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전격적으로 훈련된 스파이들이라고 전한다.<br/><br/>&nbsp; “요원들이 수행하는 일은 다른 조직체에 침투하는 것이며, 카톨릭 스파이들이 침투하는 조직체는 교회,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들이다.”<br/><br/>&nbsp; 1990년 11월에 사망한 카톨릭 연구가 아브로 맨하탄(Avro Manhattan)도 로 벨로의 진술을 지지했다. “바티칸 시국의 사무국이 모든 헌신적 카톨릭 신도들을 뉴스의 잠재적 소식통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모든 지식인 사제들을 훈련된 정보원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마을이나 교구에서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는 무엇이든지 지역 조직을 통해 주교에게로 전달되며 주교는 다시 바티칸으로 그 정보를 보낸다. 여기에 기독교 및 비기독교 국가에서 활동중인 수많은 준종교 단체를 통해 수집된 여러 가지 정보가 더해진다. 이 정보는 사회 및 정치 단체 내로 잠입한 카톨릭 평신도들을 통해 수집되는데, 그들은 종종 사제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그들의 지시하에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바티칸 시국의 사무국은 정상적인 외교 소식통을 통해 들어온 정보 외의 다른 정보들을 얻게 되며, 결과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소장하게 되는 것이다.” (The Dollar and the Vatican: A. Manhattan, 1988) <br/>&nbsp; 바티칸 연구가들은 또 CIA, KGB, M15를 비롯해서 세계 도처의 수많은 스파이 조직 내에 깊숙이 숨어들어가 있는 ‘두더지들’에 우리의 주의를 요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로마 카톨릭 교회를 위해 비밀리에 충성을 맹세한 자들이다. 가장 효과적인 조직으로 널리 정평이 나 있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만이 바티칸의 이러한 침투를 가장 적게 받은 기관이다.<br/>&nbsp; 카톨릭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OSS가 CIA로 대체된 이래 CIA와 강력한 유대 관계를 맺어 왔다. 그 예로 교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말타의 기사들’(일명 SMOM)은 그들의 가장 명예로운 상을 리차드 겔렌(Richard Gehlen)에게 수여했는데, 그는 아돌프 히틀러의 반소련 스파이 조직의 우두머리였다. 전쟁 이후 겔렌은 다른 나찌 전범들과 함께 CIA에 의해 고용되었다. 미국 내 ‘말타의 기사들’의 전 우두머리이자 생산업자인 피터 그레이스(J. Peter Grace)는 나찌를 유럽에서 미국으로 망명시키는 일에 연루되었으며 그들의 형량을 줄이는 것을 도와줄 뿐 아니라 그들을 거대한 가족 기관에 고용하기도 했다.<br/>&nbsp; CIA의 고위 요원들 중 두 명, 즉 존 케이시(John Casey)와 윌리엄 케이시(William Casey)가 ‘말타의 기사들’의 회원이었으며, 보안부 차장 조지 로카(George Rocca)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둠의 사회를 계획하는 말타의 기사들〉의 저자 캐더린 헤이스(Katheleen Hayes)는 이렇게 말한다. “극우 단체 SMOM과 바티칸과 CIA가 이란-콘트라 사건과 연계되어 있다는 충분한 정보가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미국의 반공산주의적 노력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의 음모였던 것이다. 증언에 따르면 미국 정부 내에 존재하는 ‘암흑의 정부’가 작용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정부가 이루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Knights of Malta Comprise a Shadowy Society. NFI Trumpet, Kathleen R. Hayes, 1987) 이란-콘트라 사건 심의 때 올리버 노스(Oliver North)의 변호사였던 브렌든 설리반(Brendon Sullivan)도 말타의 기사 중 한 명이며, 그가 속한 회사의 유명한 소유주 베넷 윌리암스(Bennet Williams) 또한 마찬가지이다. 바티칸과 예수회가 니카라과의 정치에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의 뒷부분에서 언급할 것이다.<br/>&nbsp; 1987년 〈타임〉지는 폴 투비에르(Paul Touvier)는 프랑스 내 독일 점령 지역에서 주로 전 게쉬타포 우두머리였던 클라우스 바비(Klaus Barbie)와 함께 일했는데, 투비에르는 카톨릭 교회와 리옹의 카톨릭 사제들에 의해 비호를 받았으며, 바티칸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유대인의 집과 자산을 모두 민병대 지원 비용으로 넘겨준 사실을 보도했다(The Times, 18th May, 1987). &lt;데일리 메일&gt;지에 따르면 투비에르는 전쟁 범죄로 인해 두 번이나 사형을 선고받았었다. 첫번째는 1945년이었는데 그는 카톨릭 교회의 비호하에 잠적해 버렸고, 다음은 1947년이었다. 프랑스의 출소기한법에 의해 1967년에 그의 사형 선고 유효 기간은 만기되었으며, 카톨릭의 끈질긴 로비 활동으로 퐁피두 대통령은 그를 사면했다. 〈데일리 메일〉지의 칼럼니스트 지오프리 레비(Geoffrey Levy)는 리옹 주민들은 “아주 단순하게, 투비에르가 지난 수 년 간 비호와 도움을 받은 것은 그가 카톨릭 교회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Daily Mail, 14th July, 1989)<br/>&nbsp; &lt;바티칸 문서&gt;는 나찌가 이용했던 ‘수도원의 비밀 탈출 통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 크로아티아 사제를 통해, 예수회 신부로 가장했던 마틴 보르만(Martin Bormann)과 바티칸 여권을 가지고 아르헨티나로 도피한 아돌프 아이크만(Adolph Eichmann)을 포함한 다른 많은 나찌당원들은 안전하게 도피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또한 바티칸과 ODESSA, 즉 나찌당원들의 비밀 기구와의 긴밀한 관계를 면밀히 파헤치고 있다.<br/>&nbsp; 1988년 1월 6일자 &lt;인디펜던트&gt;지는 이스라엘 신문 ‘예디엇 아로나드’(Yediot Ahronath)를 인용하여 전 비엔나 대주교인 프란쯔 코닉(Franz Konig) 추기경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br/><br/>&nbsp; 전쟁이 끝난 후에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은 나찌 전범자들이 도피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두 명을 알고 있는데...한 명은 오스트리아인이고 다른 한 명은 독일인이며,...이들은 오늘까지도 바티칸에서 높은 지위에 있다.’<br/><br/>&nbsp; 코닉 추기경은 또한 오스트리아의 카톨릭 교회가 나찌의 유대인 학살에 대해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<br/>다. 예루살렘에 소재한 대학살 박물관 전시관은 오스트리아의 로마 카톨릭 주교들이 오스트리아 합병 당시 히틀러의 군대를 해방가들로서 환영하며 나찌당원을 축복하는 사진과 설명을 맨 처음에 전시하고 있다. <br/><br/>&nbsp; ‘수도원의 비밀 탈출 통로’는 ‘쥐 통로’로도 알려져 있다. 1990년 12월 5일자 &lt;예루살렘 포스트&gt;지에 실린 알렉산더 즈비엘리(Alexander Zvielli)의 기사는 미국 비밀 요원 빈센트 라 비스타(Vincent La Vista)가 1947년 봄 바티칸과 국제 적십자회가 나찌당원들을 독일로부터 이탈리아를 경유하여 라틴 아메리카로 불법 입국시킨 주요 세력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고 전했다. 라 비스타는 이같이 보도했다.<br/><br/>&nbsp; “카톨릭 교회의 세력이 지배적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내에서, 바티칸은 압력을 가함으로써 전 나찌당원들이나 파시스트들, 그밖의 정치 집단들이 공산주의에 반대하기만 하면 그들 나라로 입국하는 것을 수락하게끔 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사를 통해 드러나 있다...물론 바티칸은 이러한 불법 입국에 관여된 가장 큰 단일 가구로서, 그들은 여권, 잠복장소, 재정적 지원까지 제공했다. 그러나 바티칸을 포함해서 그러한 기구들을 도와준 다른 단체가 있다. 그들은 여러 차례, 그리고 어떤 조건 하에서, 바로 국제 적십자회의 도움을 이용해야만 했던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Mar 2010 22:56:3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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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포위당한 개신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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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런던에 본부를 둔 ‘개신교연합협회’의 한 회원은 이렇게 말한다. “아일랜드가 교황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은 개신교 세력이다. 카톨릭에 대한 개신교의 저항은 급속도로 저하되어가고 있으나 개신교는 아직도 기도의 능력으로 다른 많은 곳에서 로마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막고 있다.” <br/>&nbsp; 필자는 ‘개신교’라는 말이 북아일랜드 내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행동들을 연상케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귀에 거슬리는 단어임을 알고 있다. 북아일랜드에는 인구에 비례해서 세계 어느 곳보다 더 많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명성을 위해서라면 어떤 라벨도 서슴지 않고 도용한다. 레바논에서와 마찬가지로 ‘크리스챤’이라는 단어는 정당이나 당파, 심지어 군사 집단에 의해서 사용되는 실정이다. 복수를 맹세한 테러리스트는 ‘개신교’라는 단어의 의미를 완전히 땅에 떨어뜨렸으며, 그들은 그리스도나 그 분의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들이다. ‘복음주의적’이라는 말도 한때 가졌던 의미를 상실한 지금은 자신들의 주관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건전한 교리만을 실행한다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되어 버렸다.<br/><br/>대중매체를 통제하다<br/><br/>&nbsp; 로마의 ‘태양’은 떠오르고 개신교의 빛은 꺼져간다. 그럼에도 성공회와 비국교회 신앙의 개신교적 성격은 알게 모르게 대중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아 왔다. 개신교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단어가 되었다. 특히 북아일랜드 정치가들의 폭력 및 발언에 의해 더욱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은 정보와 ‘비정보’를 다루는 오랜 동안 쌓아온 능숙한 기술로 대중매체를 장악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대중의 올바른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br/>&nbsp; 무대나 영화, TV, 라디오에 등장하는 기독교 주인공은 대부분 카톨릭 사제나 수녀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중매체에 수녀가 등장하는 것은 무척이나 보기 드문 일이었다. 오히려 그들이 사람들의 눈에 뜨이기를 꺼려했다. 그런데 지금은 수녀들이 이런저런 사건에 끼어들어 기업가적 기술까지 발휘하며 자기들의 입지를 분명히 밝히고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대중매체에 수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br/>&nbsp; 이와 맥을 같이하여 중요한 사건이나 국가적 재난의 시기에 대중매체에서 부각시키는 것은 로마 카톨릭 미사이다. 영향력있는 신문사의 특집 기사, 일요일에 TV로 방영되는 예배, BBC 라디오에서 방영되는 종교 프로그램이나 방송극, 이 모두는 하나같이 ‘에큐메니칼’이라고 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br/>&nbsp;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예수회에서 교육받은 스테픈 위틀(Stephen Whittle)이 BBC TV의 종교부 부장에 임명되면서 더욱 급속도로 추진될 것이다. 로마 카톨릭 신문인 〈The Universe〉紙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카톨릭 교회가 더욱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며, 흄 추기경이 시무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장엄한 ‘찬미의 노래’에 대해 말했다. 그는 또한 예수회 신부인 게리 휴즈(Gerry Hughes)가 출연한 기도에 관한 프로그램에 대해 말하면서, 그에게 있어서 “성체성사는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The Universe 23rd April, 1989)(註 1)<br/>&nbsp; 예수회에서 교육받았으며 ‘영국과 웨일즈를 위한 은사주의 부흥운동 협회’의 부회장인 찰스 와이트헤드(Charles Whitehead)를 비롯한 카톨릭 은사주의자들은 은사주의 운동이 정착되면서 TV나 그밖의 대중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The Sunday Telegraph〉紙의 한 기사는 조지 커레이가 켄터베리 대주교에 임명된다면 이미 급부상하고 있는 은사주의 부흥운동이 얼마 안있어 영국 성공회 내의 버젓한 한 교파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쓰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TV나 라디오의 종교 프로그램에 찰스 화이트헤드나 데이빗 앨튼 같은 에큐메니칼 운동 지도자들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br/>&nbsp; 1990년 크리스마스 때는 TV 방송이 개신교의 예배보다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미사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12월 24-26일에 방영된 기독교 관련 프로그램 7개 중 4개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촬영되었거나 로마 카톨릭 사제의 생애를 담은 것이었다.<br/>&nbsp; 1988년 12월 24일자 크리스마스 특집 〈Sunday Times〉紙에는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의 특집 기사가 실렸는데, 표지 그림에는 하늘의 여왕으로서 보석으로 치장하고 담황색 머리에 3중관을 쓰고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동정녀 마리아의 그림이 실렸다. 안쪽에는 인기 소설가이자 카톨릭 신도이며 〈오렌지 시계, A Clockwork Orange〉의 저자인 안토니 버기스(Anthony Burgess)가 ‘기독교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라는 제목으로 영국에서 로마 카톨릭이 소수가 아닌 다수의 신앙인 것처럼 쓰고 있다.<br/>&nbsp; ‘세계자연기금’이 프란시스코회 수도승들을 기독교 대표위원으로 선임했듯이 TV 방송사에서도 1990년 말 걸프전 때 기독교측 대변인으로 로마 카톨릭 신도를 택한 바 있다. 그들이 택한 인물은 독실한 카톨릭 신도인 브리가디어 해머백(Brigadier Hammerbeck)이었는데, 〈Daily Telegraph〉紙는 다음과 같이 그의 말을 인용했다. “출전하는 군대를 향해 그는 성경구절를 인용하는 대신 영화 ‘스타 워즈’에 나오는 한 대사를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능력(the force, ‘군대’)이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 원합니다. 우리는 그 일을 해낼 것입니다’”(Daily Telegraph: 4th February 1991)<br/>&nbsp; 시인 제랄르 맨리 홉킨스(Gerald Manley Hopkins)는 주요 사건 때마다 대중매체에 등장한 인물로서, 그는 늘 시로써가 아니라 예수회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의 ‘영적 훈련’(spiritual exercises)은 이 시인의 카톨릭 신앙생활에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되어왔으며 그가 방송에 출연했을 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br/>&nbsp; 매력적이면서도 교묘하게 미사나 묵주,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성인들과 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 우상 등 로마 교회의 관행들은 더욱더 많이 대중화되고 또 사용되고 있으며, 독자들이나 TV 시청자들, 라디오 청취자들의 마음 속에 기독교적인 것으로서 점차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러한 관행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편협하고 독단적인 사람들로 몰리는 것이다.<br/>&nbsp; 개신교, 즉 성경대로 믿는 기독교는 대중 매체를 통해 그렇게 좋게 보도되지 않는다. 스코틀랜드 자유교회협회 전(前) 의장 앵거스 스미드(Angus Smith)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편협한 교회[카톨릭 교회를 말함-역자주]가 편협성에 반대한다는 표어를 내걸고 개신교를 질식시키고 있다.”<br/>&nbsp; 개신교측의 문서들은 대중 매체를 통해 언급되지 않는다. 대중적으로 커다란 마찰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우려나 경고가 보도되는 경우가 전혀 없다.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 사건이 있은 후에 종교비방금지법이 제정되면 에큐메니즘, 교단 통합, 종교 통합을 경고하는 책이나 테입, 전도책자 등의 배포가 금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한 법은 종교개혁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자유의 물줄기에 역류하는 것이며, 권리장전이나 관용령(비국교도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조례, 1689)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에서 떠나 카톨릭 해방 법령(Catholic Emanciration Act)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br/>&nbsp; 스코트 개혁주의 협회 사무총장 싱클레어 호온(Sinclair Horne)은 1981년에 “우리나라 신문사의 가장 뛰어는 편집인들과 가장 뛰어난 TV 프로듀서들은 로마 카톨릭 신도들이었다.”고 말했다. <br/>&nbsp;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도 편집인, 신문사 소유주, 종교부 기자, 신문 칼럼니스트 중 많은 사람들이 로마 카톨릭 신도들이다. 영국 하원 출판국에서 주최하는 “88정신 캠페인”은 영어 성경이 모든 교회에 비치된 것과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친 것, ‘명예 혁명’ 등 영국의 역사적인 기독교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1988년에 기획된 행사로서, 영국의 유력한 신문사의 저널리스트들과 교계의 유명 인사들이 이 행사에 참석했다. 그런데 신문에는 이 행사에 관해 한 마디도 보도하지 않았다. 한 신문사의 젊은 기자는 자신이 준비한 기사를 신문에 싣지 않겠다고 한 편집장의 결정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br/>&nbsp; 교회 연합 운동의 위기에 관해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기사에서 기독교계 최고 인사들의 모임과 회의에 관해 말할 때 바티칸의 입김이 가장 센 것처럼 보도된다. 신문사들은 ‘바티칸측의 비공식적 소식통’이 제공한 정보에 따른다고 말함으로써 정보가 새어나간 것처럼 말하지만, 바티칸을 주시하는 사람들은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예를 들면 1989년 부활절에 〈The Nail on Sinday〉紙에는 ‘교황, 런시 대주교를 비난 - 교회 연합 협상을 위해 대주교는 바티칸으로 출국’이라는 제목의 머릿기사가 실렸다. 그같은 언론의 보도는 의심할 여지없이 종교 협상에 있어서 로마의 위치를 고양시키는 것이며, 현재의 분위기 속에서 로마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br/>&nbsp; 평화의 중재자로서 교황의 역할은 언론에서 더할 나위 없이 호의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교황은 연합국측이 사담 후세인에 대해 전쟁을 결정했을 때 이를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는데, 그가 이렇듯 서방측에 반대되는 정치적 입장을 취할 때는 그러한 문제는 표면에 부각되지 않기 때문에 불명예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br/>&nbsp; 미들섹스의 햇치엔드에는 로마 카톨릭이 세운 ‘트레이닝 스쿨’이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장비를 갖춘 TV 스튜디오들이 있는 이 곳에서 프로듀서, 감독, 뉴스 캐스터, 사제, 수녀들이 TV 방송을 위해 훈련받고 있다. 개신교 신문인 〈The Orange Standard〉紙에 따르면 “로마 카톨릭 교회는 사실상 언론계의 인물을 창출해내기 위해 ‘언론의 길드’를 운영하고 있다.” (Orange Standard, March 1991) 팻치엔드의 라디오 및 TV 방송국 국장은 제임스 맥도넬 막사인데, 그는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커뮤니케이션과 문화 연구 센터’의 책임자를 역임하기도 했다(Daily Telegraph: February 6th 1990). BB<br/><br/>註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br/><br/>1) 수도승 게리 휴즈는 1991년 4월에 카톨릭 신부로서는 최초로 침례회 정기총회 때 연설함으로써 에큐메니칼 역사의 한 장을 열었다. 본마우스 인터내셔널 센터에서 천여 명의 침례교도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총회에서 그는 ‘영적 자유’라는 제목의 연설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The Universe: 5th May 1991)]]></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Mar 2010 22:56:0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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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연합을 향하여</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14/%EC%97%B0%ED%95%A9%EC%9D%84-%ED%96%A5%ED%95%98%EC%97%AC-1/</link>
<description><![CDATA[교황은 연합이라는 주제를 그 어떤 정치적인 포럼에도 제시할 수 있었다. 1988년 10월 11일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북아일랜드 프로테스탄트 지도자 이안 페이슬리(Ian Paisely)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소위 영적인 지도자라고 하는 교황이 어째서 유럽 의회에서 정치적인 연합에 관해 연설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br/>&nbsp; 교황의 연설 주제는 동에서부터 서까지, 우랄 산맥에서 대서양까지 통일된 유럽이었다. 그로부터 1년도 채 되기 전에 그의 예언은 기가막히게 성취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카톨릭 신자들을 비롯해 더욱더 교황의 영향력 하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그가 예언적으로 말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 한편, 바티칸의 활동을 예의주시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로마 카톨릭이 그러한 사건을 있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br/>&nbsp; 동시에, 폴란드 출신 교황 하에서 동유럽의 카톨릭은 매우 강성해졌으며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에서는 더욱 그렇다. <br/>&nbsp; 폴란드 태생이면서 동독인인 베를린 주교 마이스너(Meisner) 추기경은 1988년 비밀리에 퀼론의 대주교 및 서독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교황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자리에 마이스너를 앉히려 했다. 지금은 이 일이 독일의 통일을 향해 내딛는 중요한 걸음이 되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br/><br/>&nbsp;  바티칸과 크레믈린<br/>&nbsp; 로마는 ’60년대와 ’70년대에, 각각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 재직 시에 크레믈린과 동맹을 맺었다. 이 새로운 동맹관계는 1978년 동유럽 출신이 최초로 교황직에 임명되면서 더욱 굳건히 다져졌다. <br/>&nbsp; 요한과 바오로가 시작해 놓은 과업은 요한 바오로로 이어졌다. ‘그라스노스트’(소련사회의 여러 가지 결점, 문제들에 관련된 개방정책 - 역자주)의 새 시대는 모스크바와 바티칸을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영향력 있는 추기경들로 구성된 사절단과 바티칸 고위 간부들은 1988년 러시아에서 열린 ‘정교회 밀레니움’(Orthodox Millenium) 행사에 참석했으며, 요한 바오로 2세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회담이 1989년 12월과 1990년 11월에 바티칸에서 열렸다.<br/>&nbsp; 대해 특별한 부담을 갖고 있으며 이것은 로마카톨릭의 새로운 전통에 따른 것이다. ‘파티마의 성녀는 그 분의 거룩한 마음에 바칠 것을 명령’함과 동시에 ‘내 명령에 순종하면 러시아는 회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한다.(註 1) <br/>&nbsp; 마리아의 마음에 바치는 것은 ‘세계 평화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게 그들의 말이다. 예수회 출신으로 바티칸의 성경교육원 교수였으며 여러 해 동안 베아 추기경과 친밀한 유대관계를 맺어온 말라키 마틴(Malachi Martin)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파티마의 기적에 관한 문서와 증언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그리고 “하늘에서 직접 개인적으로 들려준 음성”을 통해 파티마 사건은 “곧 시행될 지리적-정치적 계획”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 <br/>“천년왕국의 마지막 시합은 시작되었으며 이 위대한 계획을 수행할 종은 요한 바오로이다.” (말라키 마틴 저 &lt;이 피의 열쇠들&gt; 시몬 앤드 슈스터 사, 뉴욕, 1990)<br/><br/>&nbsp;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마틴은 빠른 속도로 소멸되어가는 이 지구를 장악하기 위해 싸우는 세 가지 세력이 있는데, 요한 바오로 2세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방 자본주의 세력이 그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교황이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br/>&nbsp; 세계의 영적, 도덕적 지도자로서 교황은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세계 정부를 이끌어가며 인간의 생존과 번영에 관한 모든 근본적 이슈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마리아의 은총과 권세를 통해 그 같은 승리를 쟁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br/><br/>&nbsp; 이슬람과 로마<br/>&nbsp; 구소련이나 세계 평화를 위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란 등과 같은 나라에서 물라(회교국의 율법학자 - 역자주)의 정치적 권력은 대단히 크며, 바티칸은 이러한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 회교도들과 카톨릭 신도들 모두에게 어필하는 파티마와 마리아 및 로마 교회에 의해 확장되어가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해서 말이다.<br/>바티칸의 비기독교국가를 위한 비서국장은 1988년 회교도의 금식 절기인 라마단이 끝나는 날이었던 5월 17일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<br/>“라마단 절기 동안 여러분은 신에 대한 믿음과 신의 거룩한 뜻에 대한 복종을 보여주었습니다. 살아계시고 참되신 유일하신 신에 대한 이 믿음은 곧 모든 신도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모든 영적 자녀들의 유산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형제와 자매로서 연합시켜 줄 것이며, 모든 민족 가운데서 우리로 하여금 결속과 정의, 평화를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Cardinal Arinze, Vatican Secretariat, May 1988)<br/><br/>&nbsp; 기독교계 외의 영역에서 활발히 진행 중인 로마카톨릭의 에큐메니즘에 대한 한 예를 1989년 5월 교황의 말라위 방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석유가 풍부한 걸프 주변 국가들이 지원하는 아랍 선교사들은 당시 중앙 아프리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포교활동 결과 ‘어머니 교회’(카톨릭을 일컫는 말 - 역자주)에 미친 영향과 문제들에 대해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 <br/>“상호간에 필요한 것은 상호 존중과 함께 서로가 공유하는 부분에 대한 서로간의 인정이다.” <br/><br/>&nbsp; 뿐만 아니라 회교 지도자를 포함해 15명의 각 종교 대표가 모인 기도 모임에서 교황은 “교회는 모든 종교와 ‘믿음과 지성의 대화’를 나누기를 원하며, 말라위의 발전을 위해 함께 일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로마 교회는 종교를 초월한 에큐메니즘마저도 열심히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br/>&nbsp; 한편 바티칸 소속 방송사 ‘성 바오로 오디오비주얼’은 아랍권 TV 방영을 위해 총 26부짜리 만화 코란을 제작 중에 있다. 1500만 파운드를 투자해 3년 만에 완성될 이 만화판 코란 제작은 ‘국제회교협의회’와 공동으로 추진되고 있다.<br/>&nbsp; 성 바오로 성당의 사제 엘리지오 에르메티(Eligio Ermeti)는 이 일이 많은 문제를 야기 시켰음을 시인하면서 “우리는 에큐메니즘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코란은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다고 믿는 자들을 믿음 없는 자들로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Catholic Herald: 7 July 1989)<br/><br/>&nbsp; 로마제국의 부활<br/>&nbsp; 호전적인 이슬람 세력의 재등장을 제외하고, 사회주의와 카톨릭의 동맹은 ’50년대 말부터 ’80년대 말까지 30년 동안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둘의 연합은 종교를 사회혁명과 연결시켰으며 사회주의 진영의 경제가 호전됨에 따라 로마카톨릭의 세력이 확장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지막 때의 마지막”이 점점 가까워오는 것을 믿는 많은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은 동유럽에서 일어난 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와 카톨릭의 연합은 계시록 16:13과 19:20에 나온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불경건한 연합이라고 확신한다.<br/><br/>&nbsp; 지난 수년 간 일어난 일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실마리가 1988년 12월 &lt;이코노미스트&gt;紙에 다음의 기사로 제시되었다 :<br/>“유럽 정신에 입각한 공동시장 : 두 종류의 아이디어가 1988년에 전 유럽을 향해 제시되었다. 하나는 EEC의 단일유럽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유럽 가족공동체’라는 다소 모호한 개념이다. 바티칸 시티의 특파원은 세번째 유로-아이디어, 즉 교황이 제시하는 아이디어에 주목하기 바란다고 말한다.”<br/><br/>&nbsp; &lt;뉴스위크&gt;紙는 1989년 9월 기사에서 유로-아이디어를 설명했다 : <br/>“세계를 향한 교황의 유토피아적 비전은 대서양에서부터 우랄 산맥에 걸친 전유럽을 통합하고 기독교화 하는 것이다.” <br/><br/>&nbsp; 교황은 1991년에 전 유럽 주교회의를 소집해 기독교화 된 유럽이 이룩할 일종의 황금시대를 향한 자신의 비전을 이룰 구체적 전략을 세우도록 지시했으며 &lt;유럽피안&gt;紙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 <br/>“바티칸의 외교적 발전이 동유럽에서 일어나는 정치 혁명에 교회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는 사실이 더욱더 확실시되고 있다.”<br/><br/>&nbsp; 워터게이트 사건을 담당했으며, 폴란드에서의 바티칸의 역할과 사회주의를 수호하는 데 있어 바티칸이 과거보다 더욱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사실을 취재한 칼 번스타인(Carl Berns- tein) 기자는 1992년 2월자 &lt;타임&gt;紙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다. “로마카톨릭은 정치적 의견을 제안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추진시키고 있다.”<br/>&nbsp;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신성로마제국이 부활되면 유럽이 최후의 세계 제국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lt;유럽피안&gt;紙는 1990년 11월에 이렇게 보도했다 : <br/>“벨기에, 독일, 그리스,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의 기독 민주 지도자들은 국가 주권 양도와 연방 정부 수립을 비롯해 화폐, 외교, 국방 정책을 단일 통제 하에 둘 것 등 유럽정치 전반에 대한 상당히 구체적인 계획을 지지했다.” <br/><br/>&nbsp; 유럽 정부 수뇌부의 이 같은 발표가 있은 지 1주일 후에 연방주의의 진전에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해오던 마가렛 대처 수상은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br/><br/>&nbsp; 근자에 갑자기 일어난 모든 정치적 변화, 즉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에 싹튼 민주주의, 걸프전에서 이슬람 국가를 대적하기 위한 서방 세계와 이슬람계와의 연맹이라고 하는 전례없는 유엔 연합군 등, 이 모두는 정치적, 영적 세계 통합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시사해준다. 성경은 마지막에 있을 이같은 연맹을 분명히 예견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br/><br/>&nbsp; 유럽 연맹<br/>&nbsp; 로마 카톨릭의 목적은 신성로마제국을 부활시키는 것 이상일지도 모른다. 말라키 마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 <br/><br/>“로마 카톨릭이야말로 앞으로 등장할지도 모르는 세계 정부를 운영할 최적격자이다.” “만일 내일 당장 기적적으로 단일세계정부가 수립된다면 로마 교회는 홀로 우뚝 서 있게 될 것이다...현 세계에서 최초로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완전하게 기능하는 독립적인 지리적 정치적 기관으로서 말이다. 그리고 교황은 단연코 지정학적으로 세계 지도자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춘 최초의 인물로 부각될 것이다.”<br/><br/>&nbsp; 창세기 11장은 바벨탑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때 인류는 정치적, 언어적으로 연합되어 있었는데 사람들은 하늘까지 닿기 위한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연합과 반역을 뒤엎으시기 위해 인간을 흩으시고 그들의 언어를 분리시키셨다. 타락한 세상에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연합이란 있을 수 없다. 있을 수 있는 연합이란 “믿지 않는 자들의 눈을 어둡게 하는 이 세상 신”(고후4:4), 즉 사탄에 의한 연합이다. <br/>&nbsp; 바벨은 바빌론이 되었으며 성경 전체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름이다. 바빌론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로잡아갔으며, ‘신비의 바빌론’은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과거에는 거짓된 정치-종교적 체제로, 그리고 현재는 경제적 체제로서의 짐승의 체제에 경배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 체제가 멸망할 때까지 경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br/><br/>『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뜻을 이루시려고 그들의 왕국을 그 짐승에게 허락하여 주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니라.』(계17:17)<br/><br/>&nbsp; 시대의 표적<br/>&nbsp; 바벨탑 아래서 유럽의회는 “다른 언어, 한 목소리”의 유럽을 선전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유럽 공동체가 빠른 속도로 하나의 연방국가가 되어가는 모습을 주시하면서 그것이 신성로마제국의 부활인 동시에 성경 예언의 성취임을 인지하고 있다.<br/>&nbsp; 영국 체신부는 1989년 유럽 선거를 기념하기 위한 우표를 발행했는데, 황소처럼 생긴 짐승 위에 느슨한 옷을 입은 여자가 앉아 있는 이 우표의 그림은 계시록의 창녀를 연상케 한다. 유럽旗는 12개의 별이 있는 파란색의 기로서 카톨릭이 그리는 마리아 그림과 그 상징과 색상이 매우 유사하다. 한편 유럽 정책 연방에 관한 1991년 12월자 &lt;타임&gt;紙 기사는 그와 비슷한 그림을 제공한다. &lt;타임&gt;紙는 피닉스의 딸인 유로파가 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서 황소의 모습을 한 제우스의 등에 타고 있는 모습의 그림이 호머의 &lt;일리아드&gt;에 근거한 것이라고 전했다. <br/>&nbsp; 지브랄터의 20펜스짜리 동전은 영국에서 통용되는 동전과 유사한 모습인데 “유럽의 여신”이라는 문구와 함께 마리아와 어린아이의 형상이 들어있다.<br/>&nbsp; &gt;紙는 이를 “에큐메니칼 화폐”라 칭했다. 벨기에에서 주조된 네 개의 동전 중 세 개에는 신성로마제국처럼 유럽을 통일했던 역사적 인물들, 즉 샤를마뉴, 찰스 5세, 18세기 합스부르그家의 여황제 마리아 테레사의 얼굴이 들어있다. 그리고 25 에쿠 피스 동전에는 로마 제국의 황제 데오클레티안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그는 4세기 초반에 그리스도인들을 극심하게 박해함으로써 옛 이방 종교를 부활시키려 했던 인물이다.<br/>&nbsp; 한편 오스트리아에서는 합스부르그家를 정계로 재등장시키려는, 일반 대중을 기반으로 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마지막 황태자 오토(Otto)는 바바리아의 극우 기독 사회주의 연맹의 유럽 하원의원직을 역임하고 있는데, 그는 유럽을 제패한 “독일 제국” 시대가 열릴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소위 ‘합스부르그 법령’(제국의 부활을 금지하는 법령)을 무효화하려는 캠페인이 일고 있는데 이 캠페인은 영향력 있는 신문사와 많은 보수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오토와 그의 아들 칼(Karl)은 현대적인 정치 분위기를 띠고 있긴 하나 여전히 가문의 이상 - 국가통합의 이상 - 을 위해 일하고 있다. (Sunday Telegraph, 22nd November, 1992.)<br/><br/>&nbsp; 프로테스탄트 진영은 이렇게 말한다 : <br/>“왜 유럽기의 별들이 새로운 ‘신성로마제국’을 상징하며 ‘유럽의 여왕’은 마리아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경고하지 않는가. 유럽 위원회가 로마로 향한 순례를 계속하고 있으며, 브뤼셀의 다른 대표단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유럽의 희년’을 기념하기 위해 몰려가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반드시 대중에 알려져야 한다.”(The Reformer, January/February, 1993) BB<br/><br/>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br/><br/>(註 1) 피오 12세는 나찌의 군대가 모스크바로 진격해가던 1941년 10월에 포르투갈의 카톨릭 신도들에게 파티마의 성녀가 준 약속의 신속한 성취를 위해 기도할 것을 부탁했다. 1942년 러시아가 완전히 패배했다는 히틀러의 연설이 있은 후에 피오 12세는 라디오 기념 메시지에서 ‘온 세상을 마리아의 거룩한 마음에 바친다’고 했다. (Vatican Imperial- ism in the Twentieth Century: Avro Manh- attan)]]></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Mar 2010 22:54:2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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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로마카톨릭의 "두 얼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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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개신교 국가에서는 온순한 양, 카톨릭 국가에서는 잔인한 늑대<br/><br/>&nbsp; 복음주의자들이 교리적 타협을 시도하게 된 것은 WCC의 창립 멤버인 그리스 정교회가 로마의 많은 전통을 지키고 있는 사실에 기인한다. 교황의 최고권위에 대해 과거에 있었던 불일치를 제외한다면, 그리스를 비롯한 다른 정교회들과 로마 사이에는 두드러진 차이가 별로 없다. <br/>&nbsp; 성찬 예배 때 사용되는 용어들이 카톨릭 미사에 쓰이는 용어와 거의 같게 되어 있는 ASB(Alternative Service Book)가 소개되어 널리 쓰이게 된 이후, 성공회 내의 카톨릭적 교리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반대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성공회 카톨릭파 세력은 전국적 차원에서 규모 있게 조직화되어 있으며, “위기에 처한 교회” 등과 같은 조직을 통해 에큐메니칼 운동의 진전에 상당히 많은 기여를 했다. 각료이자 한때 성공회 내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던 존 설윈 거머(John Selwyn Gummer)는 성공회 카톨릭파 다수를 대표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종교, 우리의 문명은 서방 기독교계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우리의 로마 카톨릭 형제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기 위한 교황의 영도 하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고 있다.”<br/>&nbsp;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성공회 지도자들 내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점차적으로 우세를 차지하는 상황과 그들이 벌이는 종교통합 운동을 염려하느라 정작 그것보다 더욱 커다란 위협, 즉 주님께서 마태복음 24:23,24에서 경고하신 “거짓 종교”에 대해서는 충분한 경각심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때에 만일 누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여 주어 할 수만 있다면 그 택함받은 자들도 미혹하리라.』<br/>&nbsp; ARCIC의 에큐메니스트들은 교리적 차이점들을 무마시키려고 노력해왔으나 교황의 무오류성에 대한 교리는 예외인 것 같다. 교황의 최고권을 인정하는 것은 그럴듯한 타협으로 비쳐져왔으며 이미 성공회 지도자들은 그 입장을 받아들인 상황이다. 에큐메니칼 한 분위기 속에서 교회는 개신교의 입장에서 거의 떨어져 나온 상황이며 이미 어려움에 처해있는 교회를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 이교적 전통은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부활한 것인가? 성공회의 39개 신조 작성을 도왔으며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위해 죽어간 크랜머와 라티머 그리고 리들리는 그것을 알기 원했다. 그 모든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마지막 때와 관련된 성경의 예언들은 그 일이 일어날 것이고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하는 일이 다시 한 번 일어날 것임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br/>&nbsp; 에큐메니즘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로마를 최고 위치에 두는 교회 통합 운동이 얼마 안있어 종교차별과 탄압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견한다. 그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카톨릭이 실제로 갖고 있는 정치적 권력을 심하게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교회와 국가가 또다시 연합될 때 그 권력은 저항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라고 말한다.<br/><br/>&nbsp; 박해받고 있는 20세기의 개신교도들<br/><br/>&nbsp; 브리튼이나 미국 등과 같은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 로마카톨릭은 상당히 온건한 모습을 띠지만 페루나 칠레, 우간다, 잠비아 등과 같이 민주주의의 전통은 약하나 로마 카톨릭이 강세인 나라에서는 개신교도들에 대해 배타적이고도 잔인한 그들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br/>&nbsp; 그런 나라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인해 박해받고 있으며 때로는 고문당하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상황은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알려진다 해도 극단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해방신학자들의 폭동에 의한 사고로 보도되고, 서방 언론에는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<br/>&nbsp; 그 한 예가 바로 1950년대에 멕시코 각처에서 광신자들이 복음전도자들을 살상한 일인데 이 사건은 16세기에 프랑스 위그노 개신교도들이 대량 학살당했던 성 바돌로매 대학살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멕시코인들의 잔인성은 당시 멕시코시티에서 널리 배포되던 비종교 뉴스 매거진 띠엠포紙에 보도되었고 카톨릭 신문인 익셀시오르紙와 조칼로紙도 이 사건을 보도했다. 멕시코시티의 일간지인 익셀시오르紙는 1989년 1월 15일에 35세의 설교자가 한 청년과 함께 전도지를 돌리다가 “100명이 넘는 광분한 카톨릭 신도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다고 보도했다. 정부에 의하면 그들의 신원은 대부분 밝혀졌지만 그들 중 아무도 구속되지 않았다. (Christianity Today 3rd March 1989)<br/>&nbsp; 1991년 2월 24일 일요일 대낮에 멕시코 남부의 &#51824;탈 인디언 부족 마을에서 곤봉과 도끼와 성냥을 든 폭도들이 장로교인들의 집 17채를 파괴했다고 장로교 목사 페드로 아리아스는 진술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은 아마테낭고 델 발리였는데, 이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한 로마 카톨릭 단체는 그 사건으로 마을에서 장로교인들을 쫓아내려 했다며 “개신교도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반젤리컬 타임즈紙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수백 명의 복음주의자들이 그들의 믿음을 전파하고 실행하는 문제로 인해 살던 땅에서 추방당했다. (Evangelical Times : May 1991)<br/>&nbsp; 콜롬비아에서 1948년에 로마 카톨릭의 도움으로 극우 정부가 재집권하자 이 정부는 개신교도들에게 심한 제약을 두는 조약을 바티칸과 체결했다. 그 결과로 1948년부터 1959년 사이에 116명의 개신교도들이 살해되었고 66개의 개신교회가 불타거나 폭격 당했으며 200개가 넘는 학교가 폐쇄되었다. (콜롬비아 복음주의 협회의 보도, Bulletin No. 50, June 26, 1959) 바티칸은 이 상황을 승인하는 듯이 보였다. 왜냐하면 1960년에 교황 요한 23세가 보고타의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승격시켰기 때문이다. (로레인 뵈트너 저 &#65378;로마카톨릭&#65379;, 진리의깃발사 간, 1962)<br/><br/>&nbsp; 아프리카<br/><br/>&nbsp; ‘그리스도의 제자회’는 1990년 8월에 그들의 표현을 빌면 “카톨릭의 요새”인 나라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 복음전도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알려왔다.<br/>&nbsp;  “우리는 여러 오순절 교회에서 모인 제자들로서 제자훈련을 위해 매일 모이고 있습니다....이 나라의 1700만 인구 중 50%는 카톨릭 신도입니다....우리가 이곳에서 지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경고할 수 있는 유일한 때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이미 성도들이 언론에 호소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들이 가진 막대한 영향력으로 정부에 압력을 넣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World-wide Gospel Outreach, 2442 Cerrilos Road, Santa Fe, New Mexico)<br/><br/>&nbsp; 잠비아에 있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복음전도자는 뉴멕시코 산타페의 세계 선교紙에 동일한 내용의 글을 보내왔다.<br/><br/>&nbsp; “우리나라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들이 끊임없이 강습을 당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카톨릭이 이 땅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정치(사회적, 영적 측면의)는 바티칸에 팔려버렸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려는 모든 시도가 방해를 받습니다. 카톨릭은 의회 내 측근을 이용해서 카톨릭 외의 다른 어떤 그리스도인의 사역도 금지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종교의 자유는 서서히 사라져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교황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br/><br/>&nbsp; 이 모든 일은 로마 카톨릭이 유익을 얻는 쪽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1990년에 교황이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를 순회할 때 로이터 통신은 아프리카의 로마카톨릭 신도가 1980년의 5500만 명에서 1990년에는 7900만 명으로 증가했으며 20세기 말에는 1억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br/><br/>&nbsp; 스페인<br/><br/>&nbsp; 지금으로부터 불과 30년 전인 1964년에 스페인에서 영국 및 해외 성경공회가 펴낸 성경을 취급하는 도매상점이 정부의 허락 하에 불탄 일이 있었다. 당시 개신교도들은 어떤 공공기관도 얻을 수 없었으며 의료, 간호, 법률, 교육, 금융 등에 관계된 대부분의 직업이 그들에게는 금지되었다. 개신교에서 세운 학교 또한 폐쇄되었고 많은 곳에서 개신교의 결혼예식과 장례예식을 치르지 못하게 했다. 어떤 개신교 문서도 허가 없이는 출판이나 배포될 수 없었다.<br/>&nbsp; 당시 스페인의 상황에 대해 미국의 사회학자 폴 블랜셔드(Paul Blanshard)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교황(요한 23세)은 비카톨릭 국가인 미국의 주교들에게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하도록 하는 반면,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의 주교들에게는 정확히 그 반대를 추구하도록 주지시키고 있다. 미국의 카톨릭 지도자들이 개신교와 유대교를 향해서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유나 권리를 바티칸과 프랑코 정부는 공동으로 부인하고 있다.” (Paul Blanshard : pamphlet, Ecclesiastical Justice in Spain)<br/>&nbsp; 프랑코의 파시스트 정권 이후에 민주주의가 싹트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나아지긴 했다. 그러나 스페인 곳곳에서 여전히 종교차별이 일어나고 있으며 종종 심각한 상황까지 가곤 한다. 개신교도들이 “거룩한 땅”인 공동묘지에 묻힐 수 있게 된 것은 몇 년 되지 않는다. 보통 로마카톨릭이 묘지를 소유하고 있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 전에 개신교인들은 고인을 무신론자나 범죄자들, 빈민들을 위한 땅에 묻어야 했다. <br/>&nbsp; 이탈리아나 프랑스, 독일 남부 등과 같이 카톨릭이 우세이나 민주주의의 전통이 뿌리 깊은 나라에서 개신교 소수 단체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에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들의 반대가 비록 거센 물결을 거슬러 헤엄쳐가는 격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렵게 얻은 자유로 오늘날 박해는 피했지만, 세계대전 이전과 전쟁 중에 목도한 대로 파시스트 정부의 수립은 즉시로 종교 탄압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br/>&nbsp;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복음주의 교회의 한 목사가 1990년 후반기에 창간된 ‘십자가와 길’이라는 기독교 잡지에 보내온 글은 로마카톨릭이 우세인 나라에 서의 개신교의 처지를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br/><br/>&nbsp;  “...우리는 이 움직임(바티칸과의 연합을 향한)에 찬성하는 많은 사람들이 로마 카톨릭의 진짜 성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의 경험이란 아마도 로마 카톨릭이 세계 각처로 보낸 공식 사절과의 접촉으로 제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카톨릭이 주요 종교인 나라에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br/>&nbsp; ...바티칸이 이탈리아 사회에 미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영향력에 관해 말할 때 다음의 예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공공연히 연합 정부의 다수 정당을 지지하며 그들이 원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지시한다. 선거 때면 신부들은 강단에서 신도들에게 특정 당(기독 민주당)을 위해 투표할 것을 종용하며 그 당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가장 인기 있는 TV나 라디오 채널을 국가적 차원에서 통제한다. 이렇게 해서 수백만 이탈리아 국민에게 편파적 뉴스를 주입시키는 것이다. 그 예가 바로 북아일랜드의 비극적 상황에 대한 편파적 보도이다.<br/>&nbsp; ...종교개혁이 사회에 미친 영향이 오늘까지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탈리아처럼 교황의 지배 하에 남아있는 나라들은 일반적으로 한 가지 공통점을 갖는데, 그것은 자기들과 종교적 믿음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복음적인 성도들은 언론에 호소할 기회가 거의 없으며 그리스도를 증거 할 자유마저도 종종 제한받고 있는 반면, 로마카톨릭은 완전한 자유뿐만 아니라 정부로부터 방대한 재정적 혜택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br/><br/>&nbsp; 카톨릭 국가에서 정부를 지배하는 카톨릭 세력이 개신교의 극소 단체들을 핍박하는 것은 서방 개신교 국가가 카톨릭 신도들을 대하는 태도와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스페인은 종교재판이 가장 극악한 모습을 띠었던 곳이다. 그러나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이 종교재판은 국민과 나라를 통제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되어왔다. 종교재판소는 아직도 폐지되지 않았으며, 로마 교회는 영적인 목적을 위해 물리적 힘을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종교재판에 대한 어떤 참회나 사과도 없었다. ‘무오류성’이 존속하는 한 진짜 참회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br/>&nbsp; 참된 교회는 항상 핍박 가운데서 번성해왔으며, 특권을 박탈당한 소수 집단일 때 융성했다. 권력을 장악하려는 로마카톨릭과 교황의 야망에 대해 가장 무서운 위협은 아마도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스페인, 그리고 미국 내의 덜 발달된 카톨릭 중심 사회 내에서 급속도로 복음이 퍼지고 있는 일일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Mar 2010 22:52:3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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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성경”보다 위에 있는 카톨릭의 “전통”</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14/%EC%84%B1%EA%B2%BD%EB%B3%B4%EB%8B%A4-%EC%9C%84%EC%97%90-%EC%9E%88%EB%8A%94-%EC%B9%B4%ED%86%A8%EB%A6%AD%EC%9D%98-%EC%A0%84%ED%86%B5-1/</link>
<description><![CDATA[‘거룩한 전통’이라는 주제를 논의함에 있어, 독자들은 먼저 로마 카톨릭이 성경이라는 최종권위 외에 자기들이 덧붙인 모든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들이 만든 ‘신앙고백’에 철저히 의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래 내용은 그 중 일부이다.<br/><br/>&nbsp; “나는 사도적 정통성을 따른 교회의 전통 및 교회의 모든 헌법과 법규를 확고히 인정하고 따른다....뿐만 아니라 나는 거룩한 정경과 공회를 통해 명시되고 선포되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 온 모든 것을 주저함 없이 받아들이며 믿음을 고백하되 특히 거룩한 트렌트공회와 바티칸공회, 그리고 로마 교황의 최고권과 무오성을 통한 특별한 방법으로 된 것을 그리한다....이 카톨릭 신앙 밖에서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나는 그 신앙을 자유로이 고백하고 진정으로 고수하는 바이며, 나의 죽는 날까지 간직하고 고백할 것을 서약하며 맹세한다.” (게이어만, 『로마 카톨릭 교리문답』, pp 101-103.)<br/><br/>&nbsp; 카톨릭 교리문답서에 나오는 이 신앙고백문은 성경이 엄격히 금한 것을 <br/><br/>신자들이 하도록 만들고 있다. 우선 교리문답에 따라 맹세하는 것은 성경이 금하는 것이다.<br/><br/>&nbsp;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그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거기에서 빼지도 말고...』(신4:2).<br/>&nbsp; 『나의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라. 하늘로도 말고 땅으로도 말며 어떤 다른 맹세로도 말지니라. 다만 너희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라’ 할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약5:12).<br/><br/>&nbsp; 트렌트 공회는 교회의 전통에 성경 자체와 동일한 권위를 부여했으며, 하나님의 말씀 외에 많은 것을 첨가했다. 제2차 바티칸공회를 통해 카톨릭은 ‘교회가 믿는 모든 진리들이 성경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제2차 바티칸공회,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법규-제9단락). 미국의 유명한 에큐메니칼 잡지인 &lt;새언약&gt;은 1987년 1월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었다. “제2차 바티칸공회는 성경과 전통을 동일한 헌신과 경외의 마음으로 수용하고 존귀히 여겨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주었다.”<br/>&nbsp; 그러면 성경은 인간의 전통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바울은 골로새인들에게 경고했다. 『아무도 너희를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노략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하라. 그것들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니라』(골2:8).<br/>&nbsp; 관심있는 많은 복음주의자들 및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카톨릭 내에서 일고있는 부흥운동을 지켜보면서, 그 부흥운동의 결과로 카톨릭 내에 만연한 성경 이외의 관행들, 심지어 여러 공회로 인해 성경보다 우위에 있는 전통들이 어떤 모양으로든지 문제시되는지를 예리하게 주시했으나 지금까지 발견한 변화는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외양상으로 카톨리시즘은 요지부동이다. 카톨릭의 제도도, 그 교리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카톨릭 교리문답에 따르면 로마 교회만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유일하고 참된 교회이고, 그 교회는 권위를 가지며 오류나 흠이 없다(『발티모어 교리문답』, 카톨릭 출판사, 1969, 뉴욕).<br/><br/>&nbsp;  ‘셈페르 이뎀’ <br/><br/>&nbsp; ‘셈페르 이뎀’, 이는 로마 카톨릭을 표현하는 두 라틴어 단어로서 ‘언제나 동일하다’는 뜻이다. 로마는 결코 그 교리를 바꾼 적이 없다. 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분명해도 본질을 바꾼 적은 없다. 이 교회의 얼굴은 바뀐다. 많은 나라에서 각각 다른 모습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br/>&nbsp; 영국에서 카톨릭은 상당히 높은 도덕적 수준을 표방했으며 언론은 영국의 카톨릭을 기독교의 다른 어떤 교파보다 더 기반이 확고한 단체로 평가했다. 흄 추기경은 오늘날 중요한 도덕적 이슈들에 대해 권위 있고 또 명료하게 말함으로써 영국인들의 삶의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핵심적인 인물로 부각되었다. <br/>&nbsp; 비테’ 등과 같은 교리를 지켜왔으며, 헌신적인 카톨릭 신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낙태 허용 법안에 대항해 싸울 것을 종용했다. 뿐만 아니라 카톨릭 지도자들은 “영국 정치에 기독교 가치를 도입시키기 위한, 모든 정당을 포함하며 비분파적인” “기독-민주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운동을 일으켰다. <br/>&nbsp; 로마 카톨릭이 장악한 나라들의 영적 수준은 그다지 높이 올라가지 않는다. 우간다, 아이티, 필리핀, 이 세 나라만 예로 들더라도 로마 카톨릭은 그 나라의 이방 종교와 완전히 통합되어 복음은 완전히 희미하게 되어버렸다. 필리핀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영국에서는 볼 수 없는 카톨릭의 이면들을 정기적으로 보고 있다. 그 예로 부활절 때에 젊은 필리피노들은 직접 십자가에 못박힌 채로 여러 시간 동안 매달려 있음으로써 ‘심각한’ 죄들을 용서받기 위한 고행을 한다. 1987년 &lt;타임&gt; 紙에 실린 한 기사는 이 끔찍한 전통을 묘사하면서 고행자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사제를 통해 신에게 용서를 받았다고 믿는 것으로 보도했다(1987년 4월 18일자 타임 紙).<br/><br/>&nbsp;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와 아이티에서 사제가 그 지역 내에서 갖는 권력은 마술사나 부두교 ‘신’이 갖는 권력과 맞먹는다. 원시적이고 미신적인 문명 내에서 교회는 생활의 모든 국면을 장악하게 되는데, 이는 중세 때 봉건제도가 그러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미국의 저술가 데이브 헌트는 아이티의 85%는 카톨릭이고 110%는 부두교라고 말한 바 있다. 모든 부두교 의식은 카톨릭 기도로 시작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산테리아라고 하는 접신 단체는 아프리카 마술과 카톨리시즘을 혼합한 것으로, 아프리카 신들의 이름 대신 카톨릭 ‘성인들’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데이브 헌트, 『CIB 회보』).<br/>&nbsp; 로마 카톨릭의 관행들이 이방 종교에 뿌리를 박고 있음을 알렉산더 히슬롭은 &lt;두 개의 바빌론&gt;에서 밝힌바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내용을 인정하고 있고 심지어 카톨릭 지도자들도 그 내용을 기꺼이 알고자 한다. 영국인으로서 카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존 헨리 뉴먼도 마찬가지였다.<br/><br/>&nbsp; “사원을 세우고 그것을 특정 성인에게 헌납하며, 행사 때는 나뭇가지와 향, 등불, 촛불 등으로 장식하는 것, 병이 낫기를 원해서 맹세로 드리는 예물, 성수(聖水), 성당을 도피처로 제공하는 것, 거룩한 날들과 계절들, 역법을 사용하는 것, 행렬, 땅을 측복하는 것, 성직자들의 의복, 체발, 결혼반지, 동쪽으로 향하는 것, 형상들, 그리고 단조로운 교회음악(ecclesiastical chant)과 긍휼을 바라는 찬송가 키리에(Kyrie) 등까지도 모두 이방 종교에서 기원한 것이며, 교회는 그것들을 기독교 내로 도입함으로써 이방 종교의 전통들을 ‘거룩하게’ 만들었다.” (추기경 J. H. 뉴먼, 『기독교 교리의 형성에 관한 논문』, p.373.)<br/><br/>&nbsp; 얼굴을 동쪽으로 향하는 의식은 카톨릭뿐만 아니라 프리메이슨의 의식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3급의 매스터 메이슨은 ‘거룩한 법’에 대한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할 때 얼굴을 동쪽으로 향한다. 카톨릭과 고위 계급의 프리메이슨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교황과 정치적 권력을 다룬 장에서 자세히 논할 것이다.<br/>&nbsp; 일부 프로테스탄트들은 로마 카톨릭을 묘사할 때 보다 현대적인 단어를 써서 그것을 ‘이단’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지적하는 것이 로마 카톨릭이라는 종교 체제이지 그 안에 있는 개개인의 영적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애써 밝히고 있다. <br/>&nbsp; 뉴먼 추기경이 열거한 이교도적 관행들 외에도 히슬롭, 우드로우 등의 연구에 따르면 사제가 행하는 희생제사, 고행, 면죄와 고해실, 교황의 무오성, ‘거룩한 아버지’라는 칭호, 성인과 유물, 우상, 형상(images), 동상(statues), 상징(symbols) 숭배, 돌 제단, 묵주, 성병(聖餠)과 성체안치기,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종유(終油)의 성사, 연옥과 림보, 대사(大赦), 의식주의, 수도원과 신비주의, 이 외에도 성지순례, 십자가 및 십자가에 달리는 것, 독신주의, 어머니와 아이 숭배,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성, 스카풀라리오, 성인이라 칭하는 것, 추기경, 수녀, 미트라(물고기 신 드라곤이 쓰는), 물고기와 금요일, (신비의) ‘열쇠들,’ 사순절(에스겔 8:14에 나오는 대로, ‘탐무스를 위해 40일간 애곡하는 것), 십자가 표시, 마리아가 가졌다는 ‘거룩한 마음’(聖心), 이스터(동쪽에서 뜨는 태양과 연관되어 봄의 여신 아스타르테로부터 유래한), 물세례에 의한 중생 및 행위에 의해 의로워진다는 교리, 마태복음 16:18의 ‘반석’이 그리스도를 믿는 베드로의 믿음이 아니라 베드로 자신이라고 해석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그리고 그 밖에도 많은 것들이 현대 로마 카톨릭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br/>&nbsp; 이들 전부가 서방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 널리 실행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전통 안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이들 모두는 성경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으며 이들 중 많은 것들은 성경에 명백하게 금지된 것들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Mar 2010 22:51:5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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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에큐메니즘과 동정녀 마리아(2)</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14/%EC%97%90%ED%81%90%EB%A9%94%EB%8B%88%EC%A6%98%EA%B3%BC-%EB%8F%99%EC%A0%95%EB%85%80-%EB%A7%88%EB%A6%AC%EC%95%842-1/</link>
<description><![CDATA[월싱햄(Walsingham)과 마리아<br/><br/>&nbsp; ‘월싱햄의 성녀’ 사당은 성공회 교회들 내에 존재하는 180개의 사당의 모체가 되었다. 1988년 9월 영국BBC방송의 ‘찬양의 노래들’이라는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바로 이 사당이었는데, 8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1988년에는 람베드 집회에 참가한 60명 이상 되는 주교들을 위한 특별 성지순례 및 의회에서 주최한 제 3회 연속 성지순례가 있었다. <br/>&nbsp; 전 켄터베리 대주교 로버트 런시가 남긴 선례를 따라 고위층 주교들은 해마다 그러한 성지순례를 주도하고 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를 위한 에큐메니칼 협회’ 회장이자, “연합을 위해서라면 이전의 그 누구보다도 많은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는” 것으로 타임 紙가 보도한 바 있는 대주교 런시는 “성공회 교회들을 로마가 표방하는 카톨릭주의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월싱햄을 열렬히 숭앙하고” 있다.<br/>&nbsp; 월싱햄 기념의식에는 동정녀 마리아의 동상을 들고 행진하는 것과, 복된 성사에 대한 숭배, ‘성수’로 복주는 것과 ‘진짜 십자가’에 경배하고 입 맞추는 순서가 포함된다.<br/>&nbsp; 카톨릭 내에서 일어나는 부흥운동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은 많은 은사주의자들이 묵주를 사용하며 “지복하신 마리아여”를 반복해서 외울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보다 10배나 더 자주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카톨릭의 부흥운동이 마리아 숭배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명백한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br/>&nbsp; 그와는 반대로 새로운 교리들이 정립되기 위해 검토 중이며, 마리아에 대한 새로운 교리가 곧 선포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마리아 메디라트릭스와 크리뎀프트릭스, 이 두 단어는 이 20세기가 남긴 또 하나의 새로운 전통으로 완전히 정착되었다. “어느 누구도 아들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듯이, 어느 누구도 그의 어머니를 통하지 않고는 아들에게로 갈 수 없다.”(교황 회칙 1897). <br/>&nbsp; 제2차 바티칸 공회는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 선언했다. 또한 교황은 1987년 회칙의 “리뎀프토리스 마테르”라는 장에서 “마리아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는 결코 아니시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만의 역할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마리아님은 인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교회보다 앞장서 걸어가셨으며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동참해오셨다.”(1987년 3월 27일자 유니버스 紙)<br/><br/>&nbsp; 마리아 숭배<br/><br/>&nbsp; 동정녀 마리아 몽소승천(Assum- ption : 죽은 후 부활해서 승천했다는 교리 - 역자주) 및 무염시태(Immaculate Conception - 죄없이 잉태되었다는 교리)라는 두 교리는 비교적 최근에 ‘전통’(막7:8)에 첨가된 것들로(성경에서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으나 카톨릭의 공식 교리로 정착됨을 말함-역자주), 로마카톨릭 안에 빠르게 정착되었다. 그것이 교황의 칙령이 교회에 가지는 비중이며 카톨릭 의 규율인 것이다.<br/>&nbsp; 마리아 숭배라는 교리는 어떤 에큐메니칼 논쟁에서도 이슈가 되지 않았다. 마리아에 대한 카톨릭의 헌신적 숭배는 누구와 협상할 수 있는 성격이 못된다. 1989년 4월 9일 닐 킨녹(Neil Kinnock)의 연설에서 ‘무염오해’(immaculate misconception)와 ‘복되신 마가렛의 억지’(the Assumption of Blessed Margaret)에 관한 의도적인 유머로 거센 반발을 일으킨 사실은 브리튼의 카톨릭 신자들에게 마리아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br/>&nbsp; 동부 앵글리아(Anglia)의 알란 클라(Alan Clark) 주교는 카톨릭 반대 운동의 리더 킨녹에게 “카톨릭 신앙의 핵심 대상 중 한 분의 이름을 완전히 모독적으로 인용한 데 대해 항의”하는 내용의 글을 써 보냈다. 흄 추기경 또한 “강력한 어조의 서신으로” 몽소승천과 무염시태의 교리가 카톨릭 신앙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강조했다(1989년 4월 14일자 카톨릭 헤럴드 紙)<br/>&nbsp; 마리아를 모독한 이 사건에 대한 ‘전 세계 카톨릭 지도자들의 거센 항의의 파도’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라는 신성모독적인 영화의 상영에 대해서는 한 발 뒤로 물러선 정치가 같은 반응을 보였던 것과는 극적인 대조를 보여주었다.<br/><br/>&nbsp; 세계 통합과 마리아<br/><br/>&nbsp; 교황은 회칙 중 ‘리뎀프토리스 마테르’라는 부분에서 “마리아가 그리스도인들을 연합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사실 마리아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를 하나의 우산 밑으로 끌어들일 인물로 보인다.<br/>&nbsp; 로마카톨릭과 이슬람과의 종교 통합적인 대화가 수많은 비개신교 국가들 내에서 현재 진행 중이다. 포르투갈에 있는 파티마(Fatima) 사당은 카톨릭 신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예언적 의미를 갖고 있는 사당인 동시에 이슬람교도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그 사당의 이름이 마호메트의 딸 파티마(Fatimah)와 비슷해서 종종 동일시되거나 혼동되기 때문인데, 이슬람교의 한 예언자는 파티마를 일컬어 “낙원에 있는 모든 여인들 중에서 마리아 다음으로 가장 거룩한 여인”이라고 말했다 (돈 샤키 저 &lt;그 여인이 정복하리라&gt;, 프란시스칸 마리아타운 사, 요밍, 미국).<br/>&nbsp; 뮤리엘 스파크(Muriel Spark)는 1981년 9월 유고슬라비아의 멧쥬고르예에 마리아의 영령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 두 달 후에 이슬람 교도들도 정통 카톨릭 신자들에 합세해 그곳으로 성지순례를 떠났다고 전했다. 열렬한 카톨릭 신자들은 그 사실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성녀께서는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이 세상의 끔찍한 분열을 초래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신자들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br/>&nbsp; 우리 시대에 팽만한 에큐메니칼한 분위기 속에서 마리아가 보내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헌신된 카톨릭 신자들이 그리스 정교회와 이슬람 교도들과의 대화를 거부하곤 하는데, 다른 종교를 믿는 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자는 누구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br/>&nbsp;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메시지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우리의 복되신 성녀’께서는 이슬람 여인 파샤(Pasha)를 택해 그녀를 특별히 칭찬한다. “그녀는 참된 신자이며 거룩한 여인이다. 너희들은 더욱 그녀와 같이 되어야 한다.” <br/>&nbsp; 신유의 기적에 대해 의심을 표명했던 한 사제를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로 꾸짖었다. “그 사제와 또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말하라. 이 세상의 분열을 영속화시키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라고. 나와 내 아들에게 이슬람, 그리스 정교회, 그리고 카톨릭은 모두 하나다. 너희들은 모두 내 자녀들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리아는 ‘성별된(separated) 형제들’에게는 관심이 없으시다는 점이다. 한편 멧쥬고르예에 마리아가 나타난 사실의 진위성에 대해서 카톨릭 교회 내에서도 논란이 많은 이유는 간단하다(뮤리엘 스파크 저, &lt;천국에서 온 스파크&gt; p 85).<br/>&nbsp; “성모 마리아께서 온 세상의 존경을 받으심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 분은 카톨릭 신자들만의 어머니가 아니라 모든 종교를 통합할 능력을 가지신 우리 모두의 여신이시다. 왜냐하면 그 분의 모성이 인간의 영의 가장 깊은 곳에 내재한 열망을 흔들어 깨우기 때문이다. <br/>&nbsp; 파티마에 있는 성녀상 ‘순례자 동정녀’가 아프리카 및 아시아를 순례했을 때 수백만의 사람들이 성상에 경배하고 우리의 성녀께서 가지신 ‘천국으로부터 온 평화의 계획’을 배우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슬람교도들과 불교도들, 힌두교도들, 시크교도들이 특히 더욱 열정적이었다. <br/>&nbsp; 우리의 성녀를 어느 정도 숭앙하고 있으며 그 분의 동정녀 탄생과 무염시태를 인정하는 이슬람교도들은 마리아께서 파티마에 나타나셨다는 사실에 더욱 흥미를 가졌다. 왜냐하면 파티마는 마호메트가 가장 아끼는 딸로서 이슬람의 선지자가 마리아 다음으로 천국에서 가장 높은 여인이라 말한 인물이기 때문이다...모잠빅의 이스마엘리(Ismaeli) 族의 이슬람교 대표는 성상의 목에 금 목걸이를 걸며 이렇게 말했다. ‘파티마의 성녀여, 당신께서 아프리카에서 이루어 가시는 사랑의 사역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알라와 함께 당신 또한 찬양합니다.’”(National Research Institute - Trumpet, November / December 1990 : 3140K S. Aurora, Colorado 80014)<br/><br/>&nbsp; 마리아 연구가 존 하퍼트(John Haffert)의 조사에 따르면 10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1917년 10월 13일 파티마의 ‘기적’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보고에 따르면 목격자들은 약 70,000명에 가깝다고 한다. 이것은 이제까지 보고된 ‘파티마의 성녀’의 여섯 번째 출현으로서, 그녀는 5월 13일에 세 명의 포르투갈 어린이, 즉 8살 루시아, 6살 자신타, 또 8살 프란시스코에게 나타난 이래 그 여름에 매달 13일에 계속해서 나타났으며, 10월에는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있도록’ 기적을 일으킬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br/>&nbsp; 그 날 일어난 일을 목격한 사람은 자기들이 본 것에 대단히 충격을 받았으며 후에 그것을 설명하기를 주저했고 또 두려워했다. 그들의 진술에 따르면 처음에는 태양이 하나의 ‘은쟁반’처럼 변했다가 갑자기 여러 색의 빛이 사방에서 뿜어나오더니 태양이 그 축 위에서 마치 ‘거대한 불꽃 바퀴’같이 미친듯이 회전하면서 붉은색과 노란색, 파란색, 초록색 빛을 바위와 나무와 순례자들의 놀란 얼굴 위에 내뿜었다고 한다. <br/>&nbsp; 그 ‘광란의 춤’은 세 번 정도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됐다. 그것을 지켜본 군중들이 정신없이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는데, 갑자기 태양이 창공에서 떨어져 내려왔다.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태양은 계속 떨어졌고, 갈짓자로 어지럽게 하늘을 가로질러 내려왔다. 이에 혼비백산한 군중은 ‘세상의 종말이다!’라는 절규와 함께 ‘복되신 성녀여, 우리를 구하소서!’라고 외쳤다. 그러자 갑자기 태양이 회전을 멈추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br/>&nbsp; 두려워 떠는 군중은 그제서야 제정신을 차렸는데 그때 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그들은 빗속에 서 있었는데, 쏟아지는 비로 인해 흠뻑 젖고 흙투성이가 된 그들의 옷이 기적처럼 말라 있었던 것이다!<br/>&nbsp; 하늘에서 장관이 일어나는 동안 ‘마리아’가 나타났다고 하는데, 묵주와 스카풀라리오(어깨에서 2개의 끈으로 가슴과 등에 달아매는 2개의 천. 성모 마리아의 축복을 받은 것을 뜻한다고 한다 - 역자주)를 들고 있었고 자신이 ‘묵주의 성녀’(Our Lady of Rosary)라고 했으며 날마다 묵주의 기도를 드리라고 했다고 한다. <br/>&nbsp; 6월에 그녀는 ‘온 세상이 자신에게 헌신할 것과, 러시아를 자기의 죄없는 마음에게 바치도록’ 교회를 향해 지령을 내렸다. 그녀는 또한 ‘많고 많은 영혼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 아무도 그들을 위해 희생제를 드리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C. Borden Lindstedt : NRI Trumpet, November/December 1990)<br/><br/>&nbsp; 전 예수회 멤버로 알려진 말라키 마틴 교수의 1990년도 저서 &lt;이 피의 열쇠들, The Keys of This Blood&gt;은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파티마의 성녀가 직접 자신에게 특별한 운명을 정해준 것으로 믿고 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그는 자기가 1990년대에 세계 정부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지도자가 되도록 부름 받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는 또한 파티마의 성녀가 1981년 5월 13일에 있었던 자신의 암살 기도 때 자신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 날은 마리아가 파티마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고 그때 그는 한 어린 소녀가 목에 걸고 있는 ‘파티마의 성녀’ 목걸이를 보기 위해 몸을 구부렸는데 바로 그 순간 그의 머리를 겨냥한 두 발의 총탄이 그의 머리 위로 지나갔기 때문이다. 파티마의 성녀를 기념하는 공식 축제일 때 있었던 암살 기도로 부상당한 그는 요양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br/>&nbsp; 파티마의 성녀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그가 기도 중에 본 그 환상은 1917년 10월 13일 파티마에서 일어난 일의 정확한 재현이었는데, 그 동정녀 어머니는 그에게 파티마의 기적이 다시 한 번 일어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녀는 1990년대에 또 한번 태양의 기적을 일으켜 기적과 표적을 보이며 나타날 것이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 짧은 기간 동안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게 될 요한 바오로 2세의 세계 지배의 정당성을 입증해 줄 것이라는 내용이다 (말라키 마틴 저 &lt;이 피의 열쇠들&gt;, 시몬 앤드 슈스터 사, 뉴욕, 1990년).<br/>&nbsp; 1982년에는 파티마의 지령에 복종하고 또 ‘전 세계 주교들의 전반적인 합의’에 따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러시아와 온 세계를 ‘마리아의 죄 없는 마음’에 다시 한 번 바쳤다.<br/>&nbsp; 1991년 5월 요한 바오로는 파티마에 세 번째로 방문해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데 대해 감사했고, 세계를 향해 ‘하나님의 어머니’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이며 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어떠한 ‘부흥’도 마리아를 중심으로 해야만 일어날 수 있음을 피력했다(1991년 5월 19일 일요일자 유니버스 紙). BB]]></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Mar 2010 22:51:2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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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에큐메니즘과 동정녀 마리아(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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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수에넨스(Suenens) 추기경은 그의 저서 &lt;새 오순절, A New Pentecost)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에큐메니시즘은 마리아의 역할을 경시하려고 해왔으나 부흥운동은 그녀가 ´최초의 은사주의자´였음을 밝히고 있다.˝<br/>&nbsp; 사실 부흥운동을 주도하는 ´에큐메니칼´ 교회들은 마리아라는 존재를 경시해 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중 상당수는 그녀가 ´최초의 은사주의자´였다고 말하며, ´오순절 사건에 있어서 특별한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녀에게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음을 들어 그녀의 겸손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널리 퍼져있는 강한 에큐메니칼한 분위기 속에서 성경이 부여한 것 이상의 위치를 마리아에게 부여하는 것, 즉 마리아라는 여인을 매우 중요한 인물로서 재정립하는 것은 분명하고도 굳건한 프로테스탄트의 근본 신앙을 고수하려는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것이다. <br/>&nbsp; 마리아에 대해 수에넨스 추기경과 동일한 확신을 갖는 ´복음주의적 교회는 아직 얼마 되지 않는데, 그는 후에 &lt;새 오순절, A New Pentecost)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1973년에 열린 국제 은사주의 대회 때 마리아의 역할을 강조하는 간결한 연설은 20,000명이 넘은 참가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때 나는 우리가 집안에서 어머니 주위에 모인 하나의 가족이라고 느꼈다.˝<br/>&nbsp;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2년 영국을 방문해 웸블리(Wembley) 스타디움에서 영국을 일컬어 ˝마리아의 재산˝이라 했을 때도 그와 유사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러한 교황의 소견은 존 왕 치리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국에 대해 갖는 교황의 종주권에 관한 바티칸의 변함없는 입장을 보여준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영국에 도착했을 때 땅에 입 맞춘 것은 이 나라가 마리아와 성모 교회에 속한다고 하는 이제까지의 거듭된 주장의 한 표시였던 것이다. 전직 예수회 신부였으며 바티칸에서 현 교황과 밀접하게 일했던 말라키 마틴(Ma- lachi Martin) 교수는, 교황이 방문하는 나라마다 그 땅에 입 맞추는 관행은 교황이 그 나라를 자기가 섬기는 마리아에게 바친다는 뜻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br/><br/>&nbsp;  하늘의 여왕<br/><br/>&nbsp; 오늘날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교황 피오 12세는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이라고 했다. 그는 1950년 11월 1일에 교황의 절대무오성이라는 교리와 함께 ˝마리아는 죽은 직후에 무덤에서부터 살아났으며 하늘로 올려져 하늘의 여왕으로 책봉된 사실˝을 선포했다. <br/>&nbsp; 1988년 부활절에 있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메시지에는 ˝세계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하늘의 여왕께 드리는˝ 기도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늘의 여왕´은 마리아가 아니라 카나안인들이 섬기던 이방 여신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그 여신을 위해 향을 태우고 과자를 만들었으며 술붓는 제사를 바쳤으니, 그것이 주의 눈에 역겹고 악했다고 예레미야 7:18, 44:17-25은 기록하고 있다.<br/>&nbsp; 알렉산더 히슬롭은 그의 저서 &lt;두 개의 바빌론&gt;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의 여왕 숭배가 님롯의 어머니였으며 바빌론인들의 숭배 대상이었던 세미라미스 숭배와 동일함을 밝혔을 뿐 아니라 앗시리아의 여신 아스타르테, 에베소의 다이아나, 로마 제국의 동정녀 비너스, 그밖에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동정녀 어머니 여신 숭배와도 동일시했다. <br/>&nbsp; 성경에서 탐무스(겔 8:14)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세미라미스의 아들은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로마의 바카스와 같은 인물로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해 그 어머니가 애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어머니와 아이는 인기 종교였던 바빌론 종교의 숭배 대상이었는데,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이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br/>&nbsp; 바벨탑 사건 이후에도 세계 도처의 수많은 나라와 부족들에게서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이집트에는 이시스와 오시리스가 있고, 인도에는 오늘날까지 이시와 이스와라가 있으며, 로마 제국에는 비너스 혹은 포르투나와 쥬피터가 있다. 심지어 예수회 선교사들이 티벳이나 중국, 일본에 갔을 때도 자기들이 열렬하게 숭앙하는 마리아와 그녀의 아이와 똑같은 대상을 그들도 숭배하는 것을 발견하고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다. 중국의 거룩한 어머니 ´싱무´(聖母)가 품에 아이를 안은 채 영광으로 둘러싸인 모습은 마치 카톨릭의 조각가들이 그 형상을 만든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알렉산더 히슬롭 저 &lt;두 개의 바빌론&gt;, Loizeaux Bros., Neptune, New Jersey).<br/>&nbsp; 교황 피오 9세가 카톨릭을 위해 남긴 공헌은 그에 대한 현 교황의 칭송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피오 9세는 ˝하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는 온 세상의 모든 이단들을 멸절시키셨으며 모든 이의 간구를 들어 주시고, 또 모든 이에게 가장 자비로우신 분이시며, 많은 장식으로 덮인 황금 옷을 입고서 그녀의 독생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어 지극히 풍성한 애정으로 우리들을 돌봐주신다.˝라고 말했다(회칙서, 1864년 12월).<br/>&nbsp; 그러나 교황의 이 같은 발언을 언급하고 있는 성경 구절은 분명 신약보다는 예레미야의 예언 쪽이다.<br/>&nbsp; 현 교황이 동정녀 마리아의 동상이나 그림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수많은 사진들을 지면에서 볼 수 있다. 그러한 사진 중 하나는 ´데일리 텔레그래프´(Daily Telegraph)에 실린 것으로 ˝교황이 이태리 북서부에 위치한 체티프(Chetif) 산 정상에 있는 동정녀 마리아 상 앞에서 기도하고 산을 내려오는 사진˝이었다. (1986년 9월 데일리 텔레그래프 紙)<br/>&nbsp; 전 하원의원인 지오프리 쿠퍼(Geoffrey Cooper)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으로 그 오류를 지적했다. 『너희가 이 산에서나 예루살렘에서도 아버지께 경배하지 않을 그 때가 오리라...그러나 참된 경배자들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릴 때가 오나니 바로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경배 드리는 그런 자들을 찾으심이니라』(요4:21, 23). 산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니고, 루어드(Lourdes, 마리아 출현의 기적이 있었다고 하는 프랑스 서남부의 도시 - 역자주)에서도 아니고, 월싱햄(Walsingham)에서도 아니다. 거룩한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사당(shrines)이 필요한 것도 아니며, 성수도, 성스런 유물도, 성체성사를 통한 주님의 ´실제적 임재´(real presence)도 필요 없다.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시며 모든 성도 안에 성령을 통해서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br/>&nbsp; 그러나 전적으로 성경적인 쿠퍼의 응답과, 점점 커가고 있는 성지 순례 및 마리아 숭배에 대한 우려는 아직까지 이 자유로운 나라에서 제 목소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br/>&nbsp;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의 독생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또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도 아니다. 더욱이 그녀는 ˝창조주의 어머니˝도, ˝동정녀들의 여왕˝도, ˝거룩함의 극치˝도, ˝지식의 보좌˝, ˝우리의 기쁨의 원천˝, ˝평화의 여왕˝, ˝하늘의 장미˝, ˝천국으로 가는 문˝, ˝빛나는 성막˝, ˝다윗의 반석˝, ˝황금˝, ˝새벽별˝, ˝죄인들의 천국˝, ˝고통당하는 자들의 위안˝, ˝천사들의 여왕˝, ˝사도들의 여왕˝, ˝순교자들의 여왕˝, ˝낙원의 여왕˝도, 그리고 문자적 의미의 ˝하늘의 여왕˝도 아닌 것이다(Ricordi Religiosi, Turin 1968).<br/>&nbsp; 물론 마리아는 영광스럽고 뛰어난 지위를 가졌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모든 세대가 그녀를 복되다 칭하리라.˝ 그러나 그녀가 그리스도의 위치를 점유하기까지 높여질 수는 절대로 없는 노릇이다. 그녀는 겸손했고 하나님께 순종했으며 모든 인류와 마찬가지로 구주가 필요했던 하나의 인간에 불과했다(눅1:47). 주님께서는 명백한 답을 제시하고 계신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그 사람이 나의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12:50). 마리아는 그 분의 뜻을 행했던 여인이었다.<br/><br/>&nbsp; 요한 바오로 2세와 마리아<br/><br/>&nbsp; 요한 바오로 2세는 ˝토투스 투우스˝(완전히 당신의 것입니다)라는 개인적인 모토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께 하는 말이 아니라 마리아에게 하는 말이다. 그는 즉위식 때 실제적으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니이다, 나의 여왕이요 나의 어머니여.˝라고 외쳤다. 타임 紙는 ˝그것은 하나님을 쏜 것과 다름 없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1981년에 있었던 교황 저격 사건을 다루면서,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그는 폴란드어로 ´마돈나여, 마돈나여´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고 보도했다(1981년 5월 25일자 타임 紙). 암살 음모가 있은 지 1년 후에 교황은 포르투갈에 있는 마리아 사당인 파티마에 가서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데 대해 마리아에게 감사를 드렸다. 교황은 파티마의 성녀(마리아를 말함 - 역자주)가 그의 생명을 구하는 데 더욱 구체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었으며, 이 장의 뒷부분에서 우리는 그녀가 그의 생애 속에서 계속해서 그러할 것임을 살펴볼 것이다.<br/>&nbsp; 1987년 4월에 교황은 전 세계의 150억 인구가 지켜보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마리아의 해˝를 선포했다. 그리고 2개월 후 폴란드의 로즈(Lorz)에서 있었던 수만 명이 모인 미사에서 그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온 세계의 종교적 자유를 위해 기도했다. 1988년 5월에는 리마에 있는 한 성당에서 다가올 ´복음화를 위한 10년´을 내다보면서 ´복음의 성녀´께 페루를 바쳤다. 1988년 8월 로마에서 열린, 마리아의 해를 마감하는 의식에서 교황은 이렇게 선언했다. ˝이것은 서기 2000년을 향해 나아가는 마리아의 발걸음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다. 우리는 마리아와 함께 나아가야 한다.˝ (Famiglia Cristiana Magazine : Piedmont, Italy) ˝복음화를 위한 10년˝을 추진하기 위해 바티칸에서 톰 포레스트가 발행한 국제적인 잡지 &lt;새 복음화 2000년&gt;은 1991년 11월 특집호 ˝복음화를 위한 10년이 시작되다˝의 표지 사진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실었다. 1988년 10월 23일 ´선교 주일´에 교황이 드렸던 삼종절의 기도 내용은 이렇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삶 속에서 헌신적으로 선교하기 위해 마리아님을 모범으로 삼게 하소서. 마리아님께서 아들과 함께, 교회가 새 오순절을 맞이하도록, 즉 기쁨의 해 2000년을 향한 새로운 선교적 진보와 기독교 신앙의 세 번째 천년기간의 시작을 맞이하게 해 주소서.˝<br/>&nbsp; 미국에서는 교황의 방문과 그로 인해 고조된 엄청난 대중적 관심 때문에 마리아가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에 대한 주장, 다시 말하면 그녀가 인류의 중보자라는 것과, 아들과 동일하게 신성을 가졌다는 주장이 한층 큰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 우리는 유럽에서도 그와 유사한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언론의 대대적인 광고와 TV 방영을 통해 루어드(Lourdes), 파티마(Fatima), 노크(Knock), 멧쥬고르예(Medjugorje), 월싱햄(Walshing- ham) 등의 마리아와 관련된 유적지들로 수백만 명의 숭배자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었다.<br/>&nbsp; 검은 성녀(Black Madonna)가 나타났던 것으로 유명한 ´체스토호바(Czestochowa)의 성녀´ 사당은 지난 몇 년 간 인터내셔널 紙가 보도한 폴란드에서 일어난 대형 사건들 중에서도 매우 큰 인상을 남겼다. 레크 웰리사(Lech Walesa)가 찍은 사진의 영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배포되었으며 교황은 거주지인 크라코우(Cracow)에서 200km 이상 떨어진 그 사당을 두 번이나 방문했다. BB]]></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Mar 2010 22:50:4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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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에큐메니즘의 형성 배경(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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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진리의 영<br/><br/>『진리의 영이신 그 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에로 인도하시리라』(요6:13).<br/><br/>&nbsp; 영국 국교회(‘성공회’로 알려져 있음) 부흥운동을 주도하는 마이클 하퍼(Michael Harper)는 1980년 출간된 그의 책자 &#65378;은사주의의 위기&#65379;(Charismatic Crisis)에서 이렇게 말했다. “은사주의 부흥운동은 진리에 관한 한 특별히 뛰어난 기록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필자는 여기서 기독교의 진리를 언급하고 있다. 이 운동은, 적어도 이제까지는, ‘간증’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성경의 진리에 관해서는 아주 약한 입장을 취해왔으며 심지어는 진리를 무시하기까지 하는데, 이는 진리를 강조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연합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될까 하는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다. 과거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단어 하나에 대한 의견대립과 서로 다른 교리로 인한 분파 싸움에 휘말렸었기 때문에, 서로간의 적개심을 해소하고,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나누는 원인이 되었던 커다란 이슈들을 접어두며, 개인적인 성령의 체험이라고 하는 새로운 화합점을 찾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화합은 ‘증거 신학’(testimony theology)을 그 기반으로 삼는 것이 가능한 동안만 지속될 것이며,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br/>많은 사람들이 부흥운동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은 성령 충만한 카톨릭 신자들이 이제 성경을 알게 되어 카톨릭 교회 내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믿었다. 성경의 진리들을 깨닫고, 미신과 우상이 사라지며, 전통은 무시되고, 로마카톨릭 체제 자체 내부로부터 극적인 개혁이 일어날 줄로만 알았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다. 부흥운동으로 새롭게 된 카톨릭 신자들이 그들 교회의 교리를 거부한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데도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많은 에큐메니칼 카톨릭 신자들이 그들이 고수하는 교리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도 그들과 함께 교리에 대해 토론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톨릭에 개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견해는 최근 한 기독교 잡지에 보낸 젊은 카톨릭 신자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로마카톨릭 내의 전적으로 비기독교적인 제도에는 반대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카톨릭 교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서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는 거대한 개혁의 물결이 내부에서부터 일고 있습니다.” <br/>&nbsp;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실상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케빈 래너건(Kevin Ranaghan) 박사는 1977년 캔사스 시티에서 열렸던, 주목할 만한 최초의 에큐메니칼 대회 및 뉴 올리언즈 1987 부흥집회의 의장을 맡았는데, 후자에서는 모든 강사들(케네스 코프랜드, 제임스 로빈슨, 존 윔버 등)이 대회에서 결정된 사항들에 서명했다. 그는 대회에서 “카톨릭 교회는 카톨릭 교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성령의 부으심이 카톨릭 교회 내에서 카톨릭 신자들에게 최근 일어났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흥운동 지도자인 로마카톨릭 신자 버트 게지(Bert Ghezzi)는 미국의 유명한 ‘프로테스탄트’ 은사주의 잡지 『카리스마』 紙의 편집인인데, 그는 감격에 차서 자신의 아내와 자신의 체험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카톨릭의 전통적인 헌신, 예를 들면 마리아를 위한 헌신 등과 같은 것들이 이제 우리에게도 의미있는 것이 되었다. 성도들의 성별된 삶, 특히 우리 부부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 하는 고행은 더욱 의미있는 것이 되었다.”(케빈 래너건, 『카톨릭 은사주의』 1969) <br/>&nbsp; 카톨릭의 복음주의와 부흥운동을 위해 조직된 단체인 ‘Fire’는 “신실한 카톨릭 신자들로 하여금 성사와 마리아, 교황, 주교 등을 위해 더욱 헌신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믿음과 도덕에 관한 문제를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령 및 세계 복음화운동을 위한 1987년 뉴 올리언즈 대회 때 ‘Fire’(믿음 Faith, 중보 Intercession, 회개 Repentance, 복음화운동 Evangelism의 약자)라는 제목으로 배포되었던 팜플렛의 메시지였다. <br/>&nbsp; 톰 포레스트(Tom Forrest)는 로마카톨릭의 ‘복음주의 10년’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는 인물로서 카톨릭 은사주의 부흥운동을 위한 전체 조직의 핵심 인물인데, 그는 명백하게 로마 교회에 속하는 교리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로마카톨릭 신자들을 위한 훈련 과정인 “인디아나폴리스 ’90”에서 그는 자신이 경험한 신앙의 부흥에 대해 열정과 확신에 차 이야기한 바 있다. 1990년대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그의 말을 인용해 본다.<br/><br/>&nbsp; “복음화운동에 있어서의 나의 임무, 나의 역할, 아니 우리의 역할은 단순히 그리스도인들을 만드는 데에만 있지 않다. 우리의 임무는 사람들을 카톨릭 안으로 데려옴으로써 그들을 풍성하고 또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결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카톨릭 신자가 되라고 말해야 한다. 사람들을 여러분의 교구 교회로 데려와 새로운 회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왜 그렇게도 중요한 것인가? 여러분에게 그 이유를 몇 가지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br/>&nbsp; “우선, 성사(聖事)에는 모두 일곱 개가 있는데 카톨릭 교회는 이 일곱 모두를 지킨다. 그리스도께서 일곱 가지 성사를 제정하셨다면, 그것 모두를 지켜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카톨릭 신자인 우리에게는 입교의 성사인 세례뿐 아니라 견진성사가 있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함에 이르게 해 주며, 맥키니(McKinney) 주교가 미사 때 말한 것처럼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임명하고 우리에게 능력을 준다.<br/>&nbsp; “우리는 성체성사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으로서만 행하지 않는다. 제단 위에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피를 마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제단 위에 제물로서, 또한 사랑의 향연으로서 살아계시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에서 나온 하나의 혼인 행위이다. 우리는 실제적인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 <br/>&nbsp; “푸에르토리코의 한 교구 교회에서 병자에게 기름 바르는 성사를 수많은 교구 신자들에게 행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 찼었다. 그 성사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병이 치유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다시 하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그 후 수개월 동안 사람들이 고해실과 사무실로 찾아와 자기들이 그 성사를 통해 온전하게 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들은 병만 나은 게 아니었다. 그 성사로 인해 낙원의 문이 그들에게 열렸으며, 죄로 인해 겪는 내적 형벌까지도 치유되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복된 성사인가! 이 얼마나 복된 교회인가!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아름답게 역사하시는가!<br/>&nbsp; “여기에 우리는 2000년의 전통을 통해 지켜져왔고 완전케 된 믿음의 유산을 덧붙일 수 있다. 우리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마리아가 있다. 우리의 어머니 마리아, 낙원의 여왕은 영광중에 우리와 만날 때까지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고 계시다.<br/>&nbsp; “우리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베드로로부터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는 교황들의 역사가 있다. 우리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의 기초가 되는 반석이 있다.... 우리의 역사는 2000년에서 10년 모자란다. 이제 우리의 임무는 남은 10년을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카톨릭 안으로,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카톨릭 역사의 세 번째 천년기간 안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br/><br/>&nbsp; 부흥운동의 초기에는 사람들을 로마카톨릭 안으로 끌어들일 것을 노골적으로 주장하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위와 같은 내용은 CCR 지도자들이 공개적으로 선언되지 않았었다. 은사주의 집회의 부흥사들은 믿음과 실행에 관한 그 어떤 불일치도 일단은 뒷전으로 미루었다. 60년대 및 70년대의 영향력 있는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은 이 부흥운동이 개혁과 화합을 위한 길이라고 확신했다. <br/><br/>복음주의 진영의 분열<br/><br/>&nbsp; 1977년 노팅햄에서 열린 ‘전국 복음주의 성공회 공회’(NEAC)에서 데이빗 왓슨(David Watson)은 종교개혁을 “교회 역사상 일어났던 가장 비극적인 일 중 하나”라고 말했으며, 또 더블린에서 열린 ‘카톨릭/프로테스탄트 은사주의 집회’에서 “자신의 몸이 분열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슬픔을 느끼셨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Evangelicals Tomorrow: John Capon, Collins, Glasgow).<br/>&nbsp; 마이클 하퍼(Michael Harper)는 에큐메니스트로서의 자신의 신앙 노정을 “현대 교회에 일어난 세 가지 중요한 영적 흐름”과 연관지어 표현했다. 그의 저서 &#65378;바로 오늘&#65379;(This is the day)에서 작중 인물 캐논 하퍼(Canon Harper)는 세 명의 자매에 대해 말하는데, 그들의 이름은 이반젤라인(Evangeline), 카리스마(Charisma), 로마(Roma)로서 각각 복음주의 및 은사주의 운동과 로마카톨릭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들이 “한때는 그에게 저주받을 이단이었으나, 이제 그는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심오하고도 사랑에서 우러나온 헌신이 더욱 깊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br/>&nbsp; 성 프란시스 성공회 협회의 라몬(Ramon) 형제는 그의 책자에서 영적 대립의 해소에 대해 이렇게 썼다.<br/><br/>&nbsp; “마이클이 한때 가졌던 편견이 사라지자... 그는 이전에 거부했던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며 그들을 통해 성령을 배우게 되었다. 카톨릭 신앙생활의 영적 보물창고가 그에게 활짝 열린 것이다. 성경적 교리는 뒷전으로 하고 그는 말한다. ‘성모 마리아가 생생하게 다가왔으며 이제 나는 복음주의를 통해 성 바울을 안 것과 똑같이 그녀를 알고 있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의 창조, 창조의 역사가 제공한 은사, 자연과 자연의 예술, 이 모든 것이 그에게 생명을 갖게 되었으며, 하나 된 교회는 종교개혁 이전에 교회 안에 존재했던 모든 풍요함과 함께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성사는 더 이상 생명없는 기계적인 의식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곳에서 효과적으로 역사하는 표적이 되었다. 로마를 만나면서부터 거룩한 교제(holy communion)는 타는 듯한 사막의 오아시스가 되었다.”(Brother Ramon SSF: Deeper Into God, PP. 81,83, Marshall Pickering, 1987)<br/><br/>&nbsp; WCC의 고문이자 유명한 복음주의자인 존 스코트(John Scott)는 노팅햄 NEAC 집회에서 “우리의 목표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시적인 연합이 되어야 한다... 또 복음주의자들은 로마카톨릭과 완전한 교제를 이루기 위해 영국 교회 내의 각 집단과 연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같은 해인 1977년에 존 스코트는 베니스로 가서 ‘선교에 관한 복음주의-로마카톨릭 대회’에 참석했다. 존경받는 복음주의 학자 패커(J.I.Packer)는 에큐메니칼 부흥운동을 지지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다. “로마카톨릭 안에서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가? 프로테스탄트로서 본인은 로마카톨릭의 공식적인 주요 요소들이 왜곡된 기독교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나, 어찌됐든 부흥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부흥운동이 지속되고 또 집중적으로 일어날 때 카톨릭은 기독교계의 나머지 부분들 및 우리 시대의 무지한 비기독교 세계를 위해 가장 많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New Covenant magazine, February 1988)<br/>&nbsp; 그러나 미국의 복음주의자 데이빗 클라우드(David W.Cloud)는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다. “로마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목표, 즉 카톨릭을 굳건하게 다지고 카톨릭 지배를 재건하는 데 겉다르고 속다른 은사주의 운동보다 더 효과적인 도구가 없는 것이다. 이 운동은 카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로마의 사악한 비진리에 대해, 또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 배도한 집단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함에 대해 경고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게임은 로마의 승리로 돌아갔다.”<br/>&nbsp; 영국 성공회의 ‘교회 협의회’와 ‘개신교 연합’ 등은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하는 프로테스탄트 단체들로서, 은사주의 부흥운동과 ‘신복음주의’를 용납하는 것은 너무나 큰 대가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교회 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데이빗 사무엘(David Samuel) 박사는 1990년 그의 글에서 “우리는 교황의 권세에 초점을 맞추는 고대 종교체제의 부활을 목도하고 있다. 이것은 교황의 권세가 일시적으로 약화되었고 바티칸의 운명이 쇠퇴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던 1870년에는 짐작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우리는 이 종교체제의 놀랄만한 부활을 보았으며, 이것은 에큐메니칼 운동을 통한 교회 제국(ecclesiastical empire)의 건설로 이어질 것이다.”(The End of the Ecumenical Movement: The Harrison Trust, 1990)<br/>&nbsp;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은 에큐메니칼 운동이 이제 압도적이지는 않더라도 상당한 세력을 확보했다고 보고 있다. 믿음에 있어서 결정적인 차이점들은 무시되었으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실제적으로 뒤바뀌어졌다. 개신교 연합의 서기 조지 애쉬다운(George Ashdown)은 그리스도인들이 다음의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고 믿는다.<br/><br/>&nbsp; “종교개혁을 이루었던 사람들(Reformers)은 카톨릭 체제를 반 기독교적이라고 보았다. 루터와 칼빈은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하기까지 했고, 위클리프, 틴데일, 매튜 헨리, 스펄전, 로이드존스,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로마카톨릭 체제를 계시록 17장에 생생하게 묘사된 신비의 바빌론,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로 보았다.” BB]]></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Mar 2010 22:50:0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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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14/%EB%AA%A8%EB%93%A0-%EA%B8%B8%EC%9D%80-%EB%A1%9C%EB%A7%88%EB%A1%9C-%ED%86%B5%ED%95%9C%EB%8B%A4-1/</link>
<description><![CDATA[오늘날 수많은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로마 카톨릭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여러 교단 중 하나라는 말을 듣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연합을 위해 믿음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도 화합해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지난 시대의 성도들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수호했던 성경의 진리들은 오늘날 연합이라는 미명 하에 타협되며 또 완전히 배제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향해, 또 왜 일어나는 것입니까?<br/>&nbsp; 이 책은 다른 모든 것보다 연합을 중요시하며 추구하는 현상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것이며, 독자들로 하여금 믿음을 수호할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구원받는 참된 성경적 교리를 견고히 붙잡도록 촉구할 것입니다. “주여, 영국왕의 눈을 뜨게 하옵소서.”라고 외쳤던 틴데일의 최후의 기도처럼, 오늘날 교회는 눈을 뜨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br/><br/><br/>서문<br/><br/>&nbsp; 1953년 여름, 유난히도 화창했던 어느 날 오후 역사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교실에 앉아 있던 남자아이들 대부분은 수영이나 크리켓 경기 같은 딴생각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날 역사 수업의 주제는 영국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이었다. 나는 전혀 흥미로울 것 같지 않은 이 수업을 들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수업이 후에 나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그 날 들은 내용은 나의 상상을 사로잡았으며, 내 마음을 움직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때 스쳐가는 섬광 같았던 그 무엇을 나는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한 시간의 수업을 통해 나는 기독교가 무엇이며 무엇이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지를 아주 실제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희생과 자기 부인, 그리고 진리에 대한 타협하지 않는 사랑이었다. 그때 나는 아직 내 삶을 완전히 뒤바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지만, 바로 그 날 이미 씨는 뿌려졌고 그 씨는 뿌리를 내려 수 년 후에 나는 그리스도께로 회심하게 되었다.<br/>&nbsp; 그 여름 날 오후 역사 선생님은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순교자들과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그들의 굳은 의지를 매우 감동적으로 이야기해 주셨다. 또 그들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그들 믿음의 최종 권위로 끝까지 고수했다는 점을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윌리엄 틴데일의 생애와 영국의 종교개혁의 기초를 마련해 준 그의 성경 번역과 그로 인해 1536년에 있었던 그의 화형사건에 대해 말씀하셨다. 진리를 비추는 빛이 타올랐으니, 그것은 루터가 성경에서 재발견한 교리,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으며, 행위로 구원받지 않는다는 것과 사도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썼듯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라는 것이었다. 헨리 8세가 1538년에 국민에게 배포했던 성경은 틴데일과 그밖의 사람들의 노력으로 얻어진 결과의 절정이었으며, 빌보르드 화형대의 이슬로 사라져간 틴데일의 최후의 기도, ‘주여, 영국왕의 눈을 뜨게 하옵소서’에 대한 놀라운 응답이었다.<br/>&nbsp; 종교 개혁가들은 일단 고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으면 그것에 대해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화형당한 많은 순교자들이 성경의 단 두 단어 때문에 죽음을 택했다. 만일 그들이 그 단어들을 옆으로 재껴 놓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말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좀더 ‘폭넓게’ 해석했더라면 그들은 목숨을 건졌을 뿐 아니라 번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생명이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사망은 그 쏘는 것이 없었고, 음부에게도 승리가 없었다(고전15:55).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쓴 첫번째 편지에서 주의 만찬과 관련된 두 개의 단어는 ‘나를 기념하여’였다. 이 단어들을 강조하면서 그들은 성체성사 때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태로 ‘실재’(實在)하신다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를 부인했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 신조의 핵심인 화체설을 부인했는데, 이는 그 교리가 그리스도께서 이미 완성하신 일, 즉 갈보리에서 단번에 치러진 희생 제사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br/>&nbsp;  존 로저스(John Rogers)는 헨리 8세 통치 기간에 틴데일의 성경 번역에 동참했으며 열 아이를 둔 가장이었는데, 메리여왕의 통치 하에서 화형당한 첫 번째 순교자였다. 1555년 2월 스미드필드의 화형장으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한 프랑스 대사는 ‘결혼식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고 묘사했다. 순교사를 집대성한 존 팍스는 그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밝은 용모로... 시편 51편을 암송하면서 사형장으로 향했다. 그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침착한 태도에 기뻐하며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렸다. 불 속에서 재로 변해가면서 그는 불꽃에 손을 씻었다.’<br/>&nbsp; 사람들은 로저스의 마음을 바꾸려고 온갖 시도를 다했다. 화형대의 장작더미에 불이 붙기 직전까지도 그의 신념을 철회하기만 하면 사형을 면할 수가 있었다. 성체성사에 대한 사악한 견해를 철회하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을 때, 다른 수많은 순교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나는 내가 전파한 것을 내 피로 인치겠다’고 말했다.<br/>&nbsp; 열아홉 살의 윌리엄 헌터(William Hunter)는 미사에 참석하고 성체성사를 받으라는 칙령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그 같은 우상숭배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죄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프로테스탄트의 마음과 정신을 가졌으며, 양심을 거슬러 미사에 감히 참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내 아들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아들을 주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헌터는 1555년 5월 에섹스의 브렌트우드의 화형장에서 순교했다.<br/>&nbsp; 1555년 발리올 대학 밖에서 화형대의 이슬로 사라져간 휴 라티머(Hugh Latimer) 주교와 니콜라스 리들리(Nicholas Ridley) 주교의 이야기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다. 특히 라티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수 세기가 지났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평안하십시오, 리들리 선생, 남자답게 죽음을 맞이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꺼지지 않는 촛불을 영국에 밝힐 것입니다.’<br/>&nbsp; 우리는 전몰장병기념일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 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전사들의 희생을 기념하며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리라’고 말한다. 수 세기 동안 교회와 국가는 모두 종교개혁 때 자신들의 믿음과 신앙의 자유를 위해 살다가 죽어간 사람들을 기념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필자는 딸의 병 때문에 성 바돌로메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병원은 런던의 스미드필드광장, 즉 16세기에 수많은 순교자들이 고통당했던 바로 그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병원과 스미드필드광장 사이에는 중세에 세워진 담장이 서 있는데, 그 담장 위에는 그곳에서 죽어간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기념패가 있다. 기념패에는 아래와 같이 짤막한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br/>&nbsp; ‘이 지점으로부터 몇 피트 떨어진 곳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화형당한 존 로저스, 존 브랫포드, 존 필롯 등 하나님의 종들을 기념하며. 숭고한 순교자들이여, 그대들을 칭송하노라.’<br/>&nbsp; 순교자들이 죽어갔던 그 지점을 점유하고 있는 두 개의 영국 성공회 교회, 성 바돌로메 대성전과 성 바돌로메 소성전은 그들이 서 있는 땅의 역사를 그다지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 그 두 교회에서 판매되는 책은 화형대에서 사람들이 죽어갔던 1550년대에 수도원에서 살았던 도미니칸 수도승들에 관해 말하고 있을 뿐, 존 로저스나 스미드필드에서 순교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방문객들을 관리하는 한 관리는 순교자들과 자기들의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밖에서 화형 당했죠. 몇몇 아일랜드인들이 해마다 와서 그 곳에서 기념 의례를 치릅니다.’ 그 같은 견해는 그 두 교회에서 치러지는 종교 관습에도 반영된다. 다시 제정된 미사의 희생제사에서 말이다. 아침에는 주님을 ‘기념하는’ 성체성사가 있고, 오후에는 주님의 ‘실제적 존재’가 이루어지는 의식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영국 성공회의 두 교회의 제단 사이에 위치한 지점에서 불타 죽어간 사람들은 오늘날 잊혀진 것이다.<br/>&nbsp; 필자가 밀 힐 학교의 역사수업을 들었을 당시에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어느 학교에서나 당연하게 가르쳐졌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에큐메니칼한 분위기 속에서 물의를 빚을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자 종교개혁에 관한 부분은 점차적으로 삭제되었다. 문교부는 최근 새로 편성되는 교과과정에서 종교개혁에 관한 부분을 완전히 삭제시킬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마가렛 대처 집권시에는 관계 부처 장관에 의해 그 같은 견해는 묵살되었었다.<br/>&nbsp; 이 책의 일차적인 목적은 복음을 수호하다 죽어간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왜 그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해야 했는지를 잊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br/>&nbsp; 메리여왕의 박해 때 거짓 교리에 반대하다가 죽어간 자들 중에서는 아무도 성인으로 선언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성인들’이 아니며, 더욱이 어떤 영적인 덕목을 갖추어 후대 사람들이 ‘거룩한’ 자들로 분류하고 그들에게 기도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오히려 복음을 수호하다 순교한 이들은 죄 된 인간을 그렇게 숭앙하는 것을 단호하게 반대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거룩하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단지 성도들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었으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종들로서, 그들의 행동과 그들이 보여준 모범은 우리 역사를 빛내주고 있다. 그들의 용기와, 그리스도와 그 분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순종은 종교와 제도화된 교회가 장악했던 영향력을 깨뜨리며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는 것이다. 그들은 회개와 용서라는 신약의 단순한 메시지, 즉 예수님과 그 분께서 십자가에서 치르신 죄를 위한 단번의 희생제사를 믿는 개인적인 믿음만이 구원에 요구되는 전부라는 것을 전파했다. 그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값없는 선물이며, 그것을 받을 자격이 우리에게는 전적으로 없다는 것을 성경으로부터 알았다. 『온전하게 되심으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고』(히브리서 5:9). 그들은 성경 전체를 믿음으로써, 그것에 의해, 또 그것을 위해 살고 죽음으로써 주님께 순종했다.<br/>&nbsp; 그러한 믿음이 오늘날에는 드문 것 같다. 도처에서 보이는 것은 타협뿐이다. 서구문명을 비추던 빛이었던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격하되면서 사라져버렸다. 국가 교회 지도자들은 다른 종교들이 ‘하나님께로 이르는 또 다른 많은 길들’이며 또 ‘동일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다양한 분야들’이라고 말했다. 여왕이 참석하는 영연방 경축일 예배는 더이상 기독교의 예배로 인정할 수 없으며, 걸프 전쟁 시에 사우디아라비아의 방어를 위해 파견된 연합군 군목들은 자기들이 ‘복지 장교’들이라고 속였다.<br/>&nbsp; 오늘날 영국에는 ‘사랑 복음’이 퍼지고 있는데, 이는 복음의 소위 ‘긍정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와 구주로 선포되셨기 때문에 그 분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이며, 교리상의 차이들이 하나가 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고, 진리를 주장할 수는 있어도 오류를 지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순교자들은 그들 시대에 그와 같은 입장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논쟁을 피하고, 자기들을 박해하는 자들과 많은 ‘긍정적인 부분들’에서 동의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에게 건전한 교리를 가르치고 확증할 것과 우상 숭배를 피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들은 카톨릭의 오류와 우상숭배를 보았고, 책임 있는 지도자로서, 양무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야 하는 목자로서 그것을 폭로하고 계속해서 항거했던 것이다. 그들은 쉬운 길을 택하여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기독교 신앙의 다른 많은 진리들에만 집중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인간을 기쁘게 하기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br/>&nbsp; 그러나 그들이 만일 그렇게 했더라면 영국의 교회는 미신과 우상숭배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적 제도로만 남아있었을 것이다. 윈스턴 처칠의 말을 빌자면, 종교적, 영적 갈등의 영역에서만큼,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그토록 많이 빚지고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위험은 타협을 통하여, 인간이 이룩한 화합을 추구한다는 구실 하에,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과 순교자들의 피로 인친 성경의 진리들을 배격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분리되어 나온 지점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Mar 2010 22:48:5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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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그녀”에게서 나오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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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지난호의 “비성경적인 성직자 체제”를 끝으로 『두 개의 바빌론』은 연재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저자의 맺는말을 결론으로 다루고자 한다. <br/>하나님께서는 계시록 18:4에서 세상을 미혹하던 음녀에게서 나오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글을 통해서 카톨릭의 적나라한 실상을 깨닫고 카톨릭과 섞여 있는 자리에서 분리되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lt; 편집자 주 &gt;<br/><br/><br/><br/>&nbsp;  이제 필자는 스스로에게 제안했던 과업을 끝마쳤다. 아직도 미처 제시되지 않은 증거들이 있지만, 이제까지 제시해 온 증거들에 근거해서 필자는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러한 증거들을 충분히 고려한 독자들 중에 아직도 로마 카톨릭이 계시록의 바빌론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것이 그 기초부터 꼭대기까지 본질적으로 이교적인 체제라는 사실을 감히 부인할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 모든 사실들에 대한 결론은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br/>&nbsp; 이제부터 영원토록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카톨릭을 기독교의 테두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교회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대신 불법의 신비로서, 사탄의 회당으로서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의 본질에 대한 놀랍고도 분명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옹호하는 입장에 서고, 또 개신교 직분의 적법성이나 개신교 내 교회 의식의 정당성, 교회에서 떨어져나간 상태에서 구원이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들로 카톨릭 사제들과 화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에 대한 배신이 될 것이다. <br/>&nbsp; 로마 카톨릭이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포함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면 이제까지 존재했던, 또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이교 중에 같은 주장이 가능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어떠한 기준으로 오늘날 비시누 신의 숭배자들은 카톨릭의 테두리에서 제외되는 것인가? 고대 바빌론인들과 힌두교도들도 기본적으로 삼위일체의 교리나 성육신, 구속에 관한 교리를 믿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계시하신 계시의 가장 중요한 항목들을 명목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가장 부패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교의 오명에서 외시켜 주지는 않는다. <br/>&nbsp; 로마 카톨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피상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하는 용어나 이름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체제 안에 있던 기독교적 요소들은 그 체제를 구성하는 이교적 요소들로 모두 중화되고 변질되었다. 로마 카톨릭이 그 신도들에게 제시하는 빵이 최초에는 최상의 밀에서 만들어졌음은 인정하더라도, 그 빵의 부분 부분에 독약이 들어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그 빵에서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이 거기에 함유된 맹독성 물질을 이길 수 있겠는가? 카톨릭에서 제공하는 독이 든 빵을 계속적으로 받아먹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영적 죽음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문제는 바로 여기 있으며, 우리는 그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br/><br/>&nbsp; 성모 마리아가 “우리의 최상의 소망이요, 우리 소망의 유일한 근원”이라는 고백을 근본적인 원리로서 선포하는 집단에 과연 구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제 그리스도의 이름을 남용하며 기만하는 ‘이교 사제들’에게 속아 멸망해가는 볼쌍한 혼들을 위해 로마 카톨릭에 관한 진실이 분명하고도 공개적으로 숨김없이 밝혀져야 할 때가 왔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영원한 보좌에서 큰 창녀 바빌론(계17:1)에게 미혹된 사람들에게 부드러운 사람의 음성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br/>&nbsp; “나의 백성들아, 그녀에게서 나오라. 그리하여 그녀의 죄들에 동참자가 되지 말고 그녀의 재앙들도 받지 말라.”(계18:4) BB]]></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Mar 2010 22:48:1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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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교황의 손에 든 홀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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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로마의 점쟁이들이 점칠 때 쓰던 막대기 - 리투우스<br/><br/>&nbsp;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교황의 권세의 또 하나의 상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교황의 홀장(笏杖)이다. 교황의 홀장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첫번째 대답은, 교황이 그것을 고대 로마의 점쟁이들로부터 훔쳐왔다는 사실이다. 로마의 고전을 읽은 사람이라면 로마의 점쟁이들이 천체나 하늘의 변화를 통해 징조를 살필 때, 그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구가 있었음을 알 것이다. 그들이 관찰할 천체의 부분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는 한쪽 끝이 구부러졌으며 ‘리투우스’(lituus)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로마의 점쟁이들이 사용하던 이 리투우스가 교황이 드는 홀장과 동일한 것은, 위장이 불필요하던 ‘암흑 시대’의 카톨릭 저술가들이 홀장의 동의어로서 주저 없이 ‘리투우스’라는 말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카톨릭의 한 저술가는 교황이 ‘미트라 리투오크 데코루스’, 즉 미트라와 홀장으로 장식하였다고 묘사한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교황은 ‘미트라와 홀장으로 장식된’ 것이다. <br/>&nbsp;  그러나 로마 점쟁이의 이 리투우스, 즉 ‘점치는 막대기’(divining rod)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에트루스카인들로부터 가져온 것이며, 그들은 또 그것을 그들의 종교와 함께 앗시리아인들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로마의 점쟁이가 그 구부러진 막대기로 구별 되었듯이 갈대아의 점쟁이들과 사제들도 마술적인 의식을 거행할 때에 일반적으로 홀장과 같은 모양의 구부러진 막대기를 지녔다. <br/><br/>&nbsp;  바빌론에서 유래한 님롯의 막대기<br/><br/>&nbsp;  이 마술 지팡이의 기원은 바빌론의 첫째 왕 님롯에게로 곧장 거슬러 올라가는데, 베로수스(Berosus)는 목자-왕이라는 명칭으로 불린 최초의 인물이 바로 님롯이라고 진술하였다. 히브리어나 혹은 아브라함 당시의 갈대아어로 ‘목자 님롯’은 ‘님롯 히-로에’이다. ‘주 앞의 힘센 사냥꾼’이란 칭호도 여기서 유래하였음이 틀림없으며, 영웅(Hero)이란 단어뿐 아니라 온 세계에 퍼져 있는 영웅 숭배(Hero worship) 또한 마찬가지다. 님롯 이후 그의 계승자들은 보통 구부러진 막대기를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현존하는 바빌론과 니느웨의 유물들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다음 그림(삽화 51)은 바빌론의 것으로서 교황의 홀장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막대기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레야드의 저서에서 그것은 더욱 장식적인 모양을 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교황의 홀장의 모양과 거의 흡사하다. <br/><br/>&nbsp;  양들을 지켜 주는 ‘위대한 목자’의 막대기<br/><br/>&nbsp;  이집트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빌론 신비 종교의 세력이 이곳에서 형성된 후에는 홀장을 들고 있는 오시리스 신상이 증명하듯이 오시리스 자신이 꼭대기에 눈이 달린 홀장으로 상징되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니그로들에게서도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페티체(Fetiche)라 불리는 그들의 신 역시 홀장으로 상징되었고, 이는 허드(Hurd)의 다음과 같은 말이 증명해 준다. “그들은 페티체들을 자기들의 문 앞에 두는데, 이들은 구부러진 막대기의 모양, 즉 우리가 과일 나무를 흔들기 위해 사용하는 막대기와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진다.” 이것은 현재 티벳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수회 회원 후크(Huc)가 진술하는 바에 의하면 라마승들은 자기들의 직책의 표시로서 홀장을 든다. 멀리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의 영적인 수도(spiritual capital) 미야코 신전의 우상들을 묘사한 글에서 우리는 이러한 진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머리는 영광의 광채로 둘려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목자들이 드는 끝이 구부러진 막대기를 손에 들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모든 악한 영들의 음모를 대적하는 인류의 ‘보호자’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황이 양들의 위대한 ‘목자’임을 상징하는 그의 홀장은 결국 점쟁이의 구부러진 막대기, 즉 님롯의 사제들의 막대기와 같다는 결론이다.<br/><br/>&nbsp;  이 모든 사실에 대해 사도들의 전통을 계승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하는가? ‘로마의 베드로’로부터 내려온, 그들이 자랑하는 성직자 체제에 대해 그들은 지금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들은 분명히 그것들을 자랑할 수 있는 많은 근거들을 댈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묻고 싶은 것은, 이교의 신들을 숭배하기 보다는 대항하여 싸우는 쪽을 택했던 순교자들이 “그들의 생명을 죽기까지 사랑하지 아니하였을” 그때에 이교 사제들이 로마카톨릭의 현 상태를 보았을 때 무엇을 말하겠는가? 만일 벨사살왕이 시간을 거꾸로 타고 와서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가 모든 영광과 화려함으로 차려입은 교황의 의복을 보았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분명히 그는 자기가 섬기는 신의 신당에 들어온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경악의 눈으로 “메네 메네 테켈 우파르신”이라고 벽에 쓴 글씨를 보았던 그 잊지 못할 밤에 바빌론에 있던 모든 것이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Mar 2010 22:47:0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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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비성경적인 성직자 체제1 : 로마교황</title>
<link>https://www.biblemaster.co.kr/bb14/%EB%B9%84%EC%84%B1%EA%B2%BD%EC%A0%81%EC%9D%B8-%EC%84%B1%EC%A7%81%EC%9E%90-%EC%B2%B4%EC%A0%9C1-%EB%A1%9C%EB%A7%88%EA%B5%90%ED%99%A9/</link>
<description><![CDATA[이번 호부터는 로마 카톨릭의 비성경적인 성직자 체제를 차례로 살펴볼 것입니다.&lt;역자주&gt;<br/><br/><br/>&nbsp;  사역의 은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내려주신 가장 위대한 은사 중 하나이다. 시편 기자도 이와 관련해서 그리스도의 승천을 예언하면서, 승천하신 후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 갔고 사람들에게는 은사를 주셨다.”(엡4:8-11) 로마 교회는 그 처음 시작에 있어서는 성경적으로 사역하고 사람들을 양육하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때 그들의 믿음은 온 세상에 알려진 바 되었으며, 그들에게는 의로운 행위가 풍성하게 있었다. <br/>&nbsp;  그러나 악한 때에 바빌론 신비종교의 요소들이 그 사역 안으로 들어왔으며, 그 때부터 축복이었던 은사는 하나의 저주로 바뀌었다. 그 때부터 로마 교회는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타락시키고,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었을 때보다 “두 배나 더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br/>&nbsp;  소위 “사도직을 계승”했다는 로마 카톨릭 안에 어떤 밀교적이고 신비적인 요소가 있다면, 교황과 주교 및 그밖의 성직자 계급이 바로 그것이다. 교황 이하 모든 성직자 계급은 철저하게 바빌론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교황을 수장으로 하고 있는 추기경 대학은 “폰티펙스 맥시무스” 즉 “최고 성직자”를 수장으로 한 이교도의 성직자 대학을 본딴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초기에 로마에 존재했는데, 바빌론의 최고 사제 회의를 모델로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br/>&nbsp;  현재 교황은 우리 주님께서 독점적으로 천국의 열쇠를 주셨다고 주장하는 베드로의 계승자로서, 자신이 마치 교회 안에서 최고의 위치를 갖는 양 행세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황에게 천 년 동안 “야누스와 키빌레의 열쇠”의 권세를 주어온 그러한 명칭이 교황에게 부여되기 전에는, 베드로가 받았다는 열쇠들을 그가 계승했다는 기반 위에서 어떠한 우월성도 그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br/>&nbsp;  로마의 주교들은 사실상 초기부터 자만과 야망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처음 3세기 동안 그들이 최고 권위를 주장했던 것은 단순히 그들의 주교좌가 황제의 도시, 즉 로마 제국의 수도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제국의 수도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지고 콘스탄티노플이 로마를 제압할 상황에 놓이자, 로마 주교는 권위를 유지할 새로운 입지가 필요하게 되었다. <br/>&nbsp;  그 새로운 입지가 약 378년 경, 교황이 이교도 로마에서 가장 잘 알려진 두 신의 상징물(열쇠)을 물려받으면서 마련되었다. 그 신들이란 바로 야누스와 키빌레인데, 그들은 둘 다 열쇠를 가졌다. 그리고 이 두 열쇠는 교황이 그의 영적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그의 팔에 장식한 것이다. 교황이 어떻게 이 열쇠의 권세를 휘두르는 것으로 여겨졌는지는 뒤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 시기에 그런 권세를 가진 것으로 대중에게 인정되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br/>&nbsp;  교황은 이교도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야누스와 키빌레의 대리자의 자리를 차지하여 그들의 열쇠를 소유한 자로 인식되었고,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베드로만이 유일하게 그 열쇠의 권세를 가졌다는 사실과 교황이 그의 계승자라는 사실을 믿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 열쇠를 보여주기만 하는 것으로도 (이교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동시에 대상으로 하는) 이 “기만”을 지속시킬 수 있게 되고, 그럼으로써 도시로서 로마가 갖는 일시적인 권위는 사라질지언정 “로마 주교”로서의 교황 자신의 권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굳건하게 세워질 것이었다. <br/>&nbsp;  이러한 계획 하에 그는 움직였던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불법의 신비의 역사는 진행되어, 교황은 최초로 자기의 “최고 권위”를 공개적으로 주장하였다. 그것은 바로 베드로에게 주어진 열쇠를 그가 가졌다는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약 378년 경 그는, 이교도들의 관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열쇠의 권세를 가진 자의 위치까지 부상하였고, 431년에 그는 드디어 베드로의 열쇠를 소유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것이다. <br/>&nbsp;  교황이 이교 신들의 열쇠와 베드로의 열쇠를 동시에 소유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충격적인 일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근거없는 주장을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성경은 바로 이 주제에 대해 대단히 단호하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고 있다. “모든 불의한 속임수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미혹의 역사를 보내시어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살후 2:10,11). <br/>&nbsp;  이보다 더 심한 거짓말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거짓말은 사람들에게 널리 믿어졌다. 그리고 쥬피터 상(像)이 로마에서 버젓이 베드로 상으로 숭배되고 있듯이,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야누스와 키빌레의 열쇠 또한 베드로의 열쇠로 아무 의심 없이 믿어온 것이다. <br/>&nbsp;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독점적으로 열쇠의 권세를 주셨고 교황이 그것을 계승하며, 열쇠가 그 상징물이라는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이 쉽사리 믿게 한 로마 카톨릭의 방법은 신의 징벌에 대해 매우 강조하는 것이었다. 한편 이교도들은 어째서 교황이 그의 권세의 기반을 “베드로의 열쇠”에 두고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기꺼이 교황 주위에 몰려들 수 있었는가? <br/>&nbsp;  교황이 지니고 있는 열쇠는 바로 “베드로”의 열쇠였는데, 이는 갈대아 신비종교를 믿는 이교도들에게는 잘 알려진 이름이었다. 사도 베드로가 로마의 주교였다는 사실은 순전히 꾸며낸 이야기임이 계속해서 입증되고 있다. 그가 도대체 로마에 발을 들여놓기라도 했는지는 상당히 의심스러운 일이다. 그가 로마에 들렀다는 증거는 겨우 2세기 말 또는 3세기 초의 저술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바로 인데, 이 책의 저자는 베드로가 로마에 들렀을 때 그 곳에서 시몬 마구스를 만났다고 한다. 베드로가 이 마술사에게 그의 마술의 능력을 시험해 보이라고 도전하자 그가 공중을 날았는데, 그가 날아오르자마자 베드로가 그를 당장 아래로 끌어내려 그만 그의 다리가 부러졌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쓰고 있다. 하지만 권위있는 역사가들은 이 사건에 관한 당대의 증거가 전혀 없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가 마술사를 만났다는 이 이야기를 단번에 부인해 왔다. 베드로의 로마 방문은 바로 이 이야기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방문의 사실 여부는 이 이야기의 사실 여부에 달려있다. 따라서 그의 로마 방문은 상당히 의심스러운 것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다. <br/>&nbsp;  “사도”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해 두고, 여기 “또 다른” 베드로에 관한 의심할 여지 없는 이야기가 있다. 기독교가 시작되기 이전 로마에 한 베드로가 있었는데, 그는 이교도 성직자 체제에서 최고 위치를 차지했다. 신비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던 그 사제는 종종 헬라 말로 “신비 종교의 해설자”(The Hierophant)라 불렸다. 그런데 고대 갈대아 말, 즉 신비 종교 본래의 말로 그 직분의 이름은 “베드로” 즉 “해설자”(the interpreter)였던 것이다. 숨겨진 것을 밝혀주는 자라는 의미이다. 또한 신비 종교의 심원한 교리들을 풀어 주는 그는 자연히 두 신의 숨겨진 신비를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다. <br/>&nbsp;  이렇게 해서 우리는 어떻게 야누스와 키빌레의 열쇠가 “해설자” 베드로의 열쇠로 알려지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한편 지리적으로 떨어진, 특히 로마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나라들에서, 신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 열쇠를 단순히 “베드로의 열쇠”가 아니라 “로마의 베드로의 열쇠”와 동일한 것으로 알았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그리스의 옛 도시 엘류시스의 신비 종교에서는 입교 지원자가 교리를 배울 때 읽혀지는 책이 있다. 이 교리 해설서를 일반 저자들은 “페트로마書”(Book Petroma)라 불렀는데, 이것은 “돌로 만들어진 책”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교주의가 늘 그러듯이 속인들을 만족시키려는 단순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과 신비 종교의 역사가 동시에 보여주는 사실은, 이 책이 바로 “페트-로마書”(Book Pet-Roma) 즉 “위대한 해설자의 책”이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헤르메스 트리스메지스투스의 책”, 즉 “신들의 해설자”의 책이다. <br/>&nbsp;  그리스인들의 종교는 이집트를 그 기원으로 하는데, 이집트에서 “헤르메스”는 신비 종교의 모든 참 지식이 솟아나는 신성한 분수로 여겨졌고, 위대한 계시자, 즉 “페테르-로마”(Peter-Roma)로 여겨졌다. 따라서 헤르메스는 아테네에서도 동일한 지위를 차지했으며, 신성한 언어로 동일한 명칭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헤르메스의 이름으로 신비 종교를 설명하는 사제는 베드로의 열쇠들뿐 아니라 “페테르-로마”의 열쇠들도 가지게 된 것이다. <br/>그렇다면 여기서 그 유명한 “돌의 책”(Book of Stone)은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되기 시작할 뿐 아니라, 새로운 역사 또한 보여 준다. 진지하게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4세기부터 그 이후로 베드로라는 이름이 로마와 연결되었는지, 또 어떻게 “할례의 사도”였던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과하신 과업을 저버리고 “이방인”의 교회의 감독이 되었는지, 또 그가 로마에 살았다는 만족할 만한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로마의 영적인 지도자였음을 어떻게 세계 각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는지 참으로 기괴한 일이 되어 왔다. <br/>&nbsp;  그러나 “페테르-로마”書는 다른 것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그 문제에 명쾌한 해답을 준다. 그러한 제목의 책을 로마 카톨릭은 절대로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카톨릭의 통상적인 전략에 따라 그들은 그것을 교세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바꿔서 이용하였다. 카톨릭은 이방 종교와 기독교의 혼합을 추구할 뿐 아니라, 이교도의 “페테르-로마”와 그 열쇠가 마치 “로마의 베드로”를 의미하는 것처럼, 또 그 “로마의 베드로”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의 열쇠들을 주신” 바로 그 사도인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br/>&nbsp;  이처럼 단순한 말의 동음(同音)으로 인해 본질적으로 상이한 것들과 상이한 인물들이 하나로 합쳐지고, 또 이방 종교와 기독교가 혼합되어 사악한 카톨릭 성직자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야망이 충족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배교를 좇아가는 눈 먼 신도들에게는 교황이 사도 베드로의 계승자로 나타나는 한편, 이교도들에게는 신비 종교의 교리를 설명해 주는 베드로의 계승자로 보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교황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가 되었던 것이다. <br/>&nbsp;  이제 독자들은 카톨릭 교회 정부에서 교황을 보좌하는 “최고 국가 의회”가 어떻게 해서 “추기경 대학”(College of Cardinals)이라 불리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겠다. 추기경(Car- dinal)이라는 단어는 카르도, 즉 돌쩌귀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교황이 가졌다는 열쇠의 주인공인 야누스는 문과 돌쩌귀의 신이었고, 파툴키우스, 그리고 클루시우스, 즉 “여는 자, 또 닫는 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인 것은 로마에서 그가 “위대한 중재자”로 숭배되었기 때문이다. 신도는 어떠한 중대한 문제가 있든지, 어떠한 신에게 간청하든지 간에 먼저 야누스에게 간청을 올려야만 했다. <br/>&nbsp;  “신 중의 신”으로 여겨졌던 야누스의 신비스러운 신성 안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본질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그에게 먼저 기원을 올리지 않고는 어떠한 기원도 응답될 수 없으며, “하늘의 문”은 열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야누스는 우리 주님께서 그의 종 요한을 통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예언의 메시지들을 보내셨을 때 그 지역에서 가장 널리 숭배되었던 신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Mar 2010 22:45:4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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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로마카톨릭의 비성경적인 교리 (6) 성당에서 촛불을 밝혀두는 이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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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바빌론의 태양신을 상징하는 밀랍 양초<br/><br/>로마 카톨릭의 의식에서 나타나는 특성 중 하나는 램프와 양초의 사용이다. 카톨릭 교회는 마돈나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상 앞에 반드시 촛불을 켜 둔다. “대 행렬”(grand procession)이 있을 때에도 반드시 촛불이 있어야만 그 신성한 의식이 전해진다고 생각한다. 이같이 램프와 양초를 사용하는 것 역시 로마 카톨릭의 다른 모든 미신적 요소들과 동일한 기원을 갖는다.<br/><br/>태앙신숭배에 사용되는 촛불<br/><br/>&nbsp; 육화한 아들을 숭배하는 의식에 램프와 촛불을 사용하는 것은 그 아들을 상징하는 “심장”을 불타는 심장으로 묘사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조로아스터교에서도 태양신이 바로 그러한 방법으로 숭배되었다. 이집트에서도 어느 정해진 날 밤에 각자 집 앞에 등불을 켜 둠으로써 육화한 태양신을 숭배하였다. <br/>&nbsp;  바빌론에서 이러한 관행은 특히 성행하였으며, 이것은 외경인 바룩서(The Book of Bar- uch)에서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그들(바빌론 사람들)은 자기들을 위해 켜 두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등불을 그들의 신들에게 켜 두는구나. 그러나 그 신들은 등불 하나도 보지 못하며 신전의 기둥과 같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br/>&nbsp;  로마 카톨릭의 의식에서 환한 대낮에 램프와 양초를 켜는 전통은 완전히 이교에서 유래한 것이었기 때문에 4세기 락탄티우스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관행의 불합리성을 폭로하고, 카톨릭 교도들이 “하나님께서 어둠 속에서 존재하시기라도 하는 듯 그 분께 촛불을 밝혀드리는 것”을 비웃었다. 4세기 초에는 교회 내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관행이 점차 유입되기 시작하여, 이제는 자칭 “모든 교회의 어머니요 주인”이라고 하는 카톨릭 교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br/><br/>밀랍으로 만든 양초<br/><br/>&nbsp;  로마 카톨릭은 의식 때마다 램프와 밀초를 사용하지만, 그들은 사실상 그 어떤 빛보다 후자의 빛을 더욱 우월하게 여기고 있다. 트렌트 종교회의 때까지 로마 카톨릭에서는 부활절 전야에 부활절 양초의 축복을 바라며 이렇게 기도했었다. “이 거룩한 부활절 전야에 우리는 존귀하신 주께 겸손히 이 불을 제물로 바치나니, 이 불은 육신의 기름으로나 불경건한 기름으로나 속된 불로 더럽혀지지 않았나이다. 우리의 순종과 온전한 헌신의 뜻으로 밀랍과 심지로 이루어진 이 초에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타고 있는 이 불을 드리나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신비(my- stery)와 거룩한 부활절 전야의 신성한 불은 마땅히 숭앙되고 찬양받아야 할지라.” <br/>&nbsp;  지리적으로 전혀 근접해 있지 않은 나라들 사이에서도 신성한 의식을 거행할 때 하나같이 밀초가 사용된다는 사실은, 필자가 주장하는 대로, 우상 숭배의 근원이 되었던 제도 안에서 “밀초”를 태우는 데는 어떤 마술적인 “신비”가 있었으며, 바로 여기서 카톨릭이 그 의식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뒷받침해 준다.<br/>&nbsp;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부근에 사는 퉁구스 족은 그 나라의 신인 부르칸들(Burchans)의 우상 앞에 밀초들을 세워 둔다. 몰루카 군도에서도 섬 주민들의 신인 악마 니토를 숭배하는 의식에 밀초가 사용된다.<br/><br/>&nbsp; 허드(Hurd)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삼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신성한 작은 북을 치면서 니토를 부르면 그들 중 두 세 사람이 밀초를 켜고 악마를 불러내는 것으로 믿어지는 몇 마디 주문을 외운다.” 이처럼 널리 성행된 관행은 고대의 어떤 것에서 유래했음이 틀림없고, 최초에는 어떤 신비적인 이유를 가졌음이 분명하다. <br/><br/>밀초는 “위대한 중재자”로서의 태양신을 상징<br/><br/>&nbsp;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밀초는 사실상 바빌론 신의 핵심적 성격 중 하나인 “위대한 중재자”를 나타내기 위한 상형문자에 지나지 않는다. 고전 독자들은 고대 원시종교의 신 우라노스(Ouranos), 즉 “계시자”(The Enlighter)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니므롯은 그가 신격화되었을 때 바로 그러한 성격의 인물로서 숭배되었다. 태양신으로서 그는 세상을 밝혀주는 이 뿐만 아니라 인간의 혼에 빛을 주는 자로 인식되었다. 이것은 그가 “선과 진리”를 밝혀 주는 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br/>&nbsp; 신약 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계시해 주시는 분으로서의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께만 해당되는 이름이다. 그런데 태양신을 하나님의 계시자로서의 위치에 놓기 위해 미트라(Mithra)라는 이름 아래 그는 입에 벌을 한 마리 물고 있는 사자로 묘사되었다(삽화1). 태양신이 물고 있는 벌은 그가 “말씀”(The Word)이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갈대아어로 “벌”을 뜻하는 다바르(Dabar)는 동시에 “말씀”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벌을 “입”에 위치하게 함으로써 전달하려 했던 개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우라노스, 즉 “계시자”라는 호칭을 가진 미트라(플루타크에 의하면 메시테, 즉 “중재자”로 숭앙됐던)가 사도 요한이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 그 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한 그 영광스러운 분이라고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br/><br/>&nbsp;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이름<br/><br/>&nbsp;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을 계시하신 분이며 또 그렇게 알려지셔야 한다. 이는 요한이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독생자뿐이라. 그가 하나님을 분명히 밝히셨느니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구세주께서 오시기 전에 고대의 유대인들은 메시아, 즉 하나님의 아들을 이야기할 때 통상적으로 그를 다바르, 즉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br/>&nbsp; 이와 같은 사실은 사무엘상 3장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절을 보면 『이미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주를 섬기더니, 그 당시에는 주의 말씀이 희귀하여 환상이 드러나지 않았더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엘리의 죄로 인해 주께서 오랜 기간 동안 전에 선지자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스스로를 그에게 계시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주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을 때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환상”(vision)이 회복되었다. 이것은 21절에 『주께서 실로에서 다시 타나나셨으니, 이는 주께서 실로에서 사무엘에게 주의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음이더라』고 나와있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지만 이것은 단순한 말씀 이상의 것을 암시한다. 『주께서 나타나셨으니』. 즉 사무엘의 눈에 “보였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주께서 자신을 계시하셨을 때, 다시 말하면 사무엘의 눈 앞에 나타나셨을 때, 성경은 『주의 말씀(다바르)으로』라고 기록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주의 말씀”은 인격적인 “하나님의 말씀”,즉 예수 그리스도이다. 고대에 그 분은 분명히 이 이름으로 알려지셨다. 따라서 플라톤이 만들어낸 ‘삼위일체’(Trinity) 중 제 2위를 “로고스”라는 이름으로 언급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로고스는 “다바르” 즉 “말씀”의 번역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게 배교자들은 “참 빛”으로부터 돌이켜서 그림자로 그 분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br/><br/>&nbsp; 인간에게 빛을 주는 “말씀”인 새턴을 상징하는 “벌”<br/><br/>&nbsp;  이것이 명확한 사실임은 새턴(Saturn)에 관한 크랩(Cra- bb)의 다음과 같은 말로 알 수 있다. “새턴”(Saturn)의 제단 위에는 밀초들이 놓여 있는데, 그것은 새턴(Saturn)으로 인해 인간들이 오류의 암흑에서 벗어나서 진리의 빛을 얻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그리스에서 이 바빌론의 신은 분명히 빛을 주는 “말씀”으로 여겨졌는데, 그곳에서 “벌”이 위대한 계시자의 상징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설명해 준다.<br/>&nbsp;  뮬러(Muler)는 에베소의 다이아나 여신 숭배와 관련된 상징들에 관해 “여신의 주 상징물은 벌이었는데, 이 벌은 상징물 외에 다른 이유로는 그녀와 연관되어 사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대사제 자신도 에센(Essen) 즉 왕벌이라 불렸다.”고 한다. 대사제의 성격은 그가 섬기는 신의 성격을 설명해 준다. 다이아나는 바빌론 여신과 동일한 존재이며, 그와 같은 사제의 호칭은 그녀의 메달에 새겨진 “벌”이 “여인의 씨”인 그녀의 아이를 인간의 혼에 빛을 비춰 준 “말씀” 다바르로 거짓되이 나타내기 위한 또 하나의 상징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br/>&nbsp;  이것이 로마 카톨릭의 제단 위에서 타고 있는 밀초의 이면에 숨겨진 “신비”이며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우리는 그들의 전례서로부터 얻어낼 수 있다. 이는 그들이 밀초의 신비를 언급하는 동시에 밀랍을 생산해 내는 벌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밀초가 처음에 어떻게 사용되기 시작했는가를 대단히 궁금하게 여기는 우리는 벌들의 역사를 격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들은 자기들의 발로 꽃들을 모으지만 꽃들은 결코 벌들로 인해 해를 입지 않는 것이다. 그것들은 ‘입’으로 새끼를 낳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버지의 ‘입’에서 생겨나신 것과 같다.”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언급되신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으며, “다바르”가 “벌”과 “말씀”을 동시에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었다면 위의 인용에서 벌과 그리스도를 동일시하는 것과 같은 발상은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br/><br/>&nbsp; “말씀”과 “벌”을 동일시하는 것은 바빌론에서 유래한 것<br/><br/>&nbsp; 카톨릭 저서인 “판카르피움 마리아눔”에서 필자는 주 예수께서 분명하게 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보았다. 마리아를 “환희의 낙원”이라 칭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낙원에서 천상의 벌, 즉 성육신하신 지혜가 꿀을 얻었다. 이 벌은 그곳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벌집을 찾아내었고, 이것이 타락한 세상의 모든 쓰디쓴 것들을 감미로운 것으로 바꾸어 준 것이다.” 이것은 주 예수께서 세상을 축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부여받으셨다는 신성 모독적인 발언이다.<br/>&nbsp;  이것이 성경에서 나온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저자가 “성육신한 지혜”를 벌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도록 배운 바로 그 출처에서 나온 것이다. 주 예수께 붙여진 이름(다바르)의 이중적 의미(말씀과 벌)는 바빌론의 언어에서만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앞에서 언급한 저서의 저자가 그의 신학을 어디서 형성했는지를 말해주며, 또 밀초의 축복에 관한 기도문이 바빌론의 기도 책에서 그대로 나온 것임을 보여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로마 카톨릭에 대해 하나씩 살펴볼 때마다 성령님께서 일곱 산 위의 여자에게 붙이신 이름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계17:5). BB]]></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Mar 2010 22:45:0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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