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 이유
입력시각 : 2016-01-28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그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과 생각, 그분의 의도와 계획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향한 그분의 뜻을 갖고 계신다.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일반적인 뜻이 있으시고 성도 개개인을 향한 특별한 계획도 갖고 계신다. 그래서 거듭난 성도들이 그들을 부르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기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를 택하여 그분의 뜻을 알게 하시고』(행 22:14).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은 언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 항상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렸던 사람이다. 그래서 2차 선교여행 때에도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성령께서 금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자신의 인간적인 뜻을 고집하지 않고 유럽으로 사역의 방향을 바꾸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놀랍고 위대한 계획들을 갖고 계신다. 각 성도들에게 걸맞은 “인생 설계도”를 갖고 계신 것이다. 이 설계도는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우주 만물을 설계하시고 창조하신 분의 계획이기 때문에 매우 완벽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설계도에 따라 삶을 계획하고 실행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실패하지 않는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네게 지시하고 가르치리니 내가 너를 내 눈으로 인도하리라』(시 32:8). 여러분은 하나님의 지시와 가르침을 받고 있는가? 그분의 인도를 받고 있는가? 그분만이 우리의 앞날을 아시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방향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진로와 직업을 정해 주실 수 있다. 비록 우리는 내일 일어날 일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의 앞날을 붙들고 계신 분이 누구인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당면과제이다. 수많은 성도들이 50, 60, 70세가 되어서야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삶을 살지 않고 자기들이 원했던 대로 살다가 낭비한 인생에 대해 막심한 후회를 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때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라고 아쉬움을 토로해 보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린 것이다. 이런 후회가 그리스도의 심판석까지 이어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들이 있다.



첫째,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기 때문이다(요일 2:17).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요 6:40). 그러나 이 뜻을 거절한 자들은 사라져 버리는 세상과 함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된다.



둘째, 하나님의 뜻에 합당히 행할 때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선한 일마다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골 1:9,10).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어떻게 행해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가”를 알고 이것을 넘치게 행하라고 권면했다(살전 4:1).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또한 주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남은 생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았던 날들은 지난날의 생활로 충분하다(벧전 4:3).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뜻을 고집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열매는 고사하고 죄만을 짓게 된다. A. W. 토저(Tozer)는 “죄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앞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셋째, 온전한 영적 분별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고 또 행하려고 하면, 진리와 거짓, 선과 악,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넷째,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일서 5:14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때 주님께서 들으신다.”고 말씀한다. 무조건 기도한다고 해서 들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행할 때,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의 목전에 기쁨이 되는 일들을 행함이라』(요일 3:22).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얼마나 정확히 행하고 있는지 주의하라. 미련한 사람같이 행하지 말고 현명한 사람같이 행하여 시간을 사서 얻으라. 이는 그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니라. 이로 인하여 너희는 어리석게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엡 5:15-17). 주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면 자기가 얼마나 정확히 행하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결국 어리석은 자가 되어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그분의 뜻을 보여 주시지 않는다. 성도라고 해서 다 하나님의 뜻을 알며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에게 뜻을 보여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먼저 구원받아야 하는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을 알려면 자신의 영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영이 죽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도 없다. 당연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무덤 옆에서 죽은 시체를 앞에 두고 “이보게, 자네를 위한 좋은 계획이 있는데 이 계획대로 살아보지 않겠나?”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말하자면 주께서는 영이 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뜻을 보여 주실 수 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구원받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기본 단계에는 들어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헌신하지도 않고 성별하지도 않은 성도들에게는 그분의 뜻을 보여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서 12:1,2에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마땅히 성도로서 해야 할 입증의 책무를 다하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 몸을 드려야 한다. 또한 이 세상과 일치하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야 한다. 헌신하지도 않고 진리의 말씀으로 마음을 변화 받지도 않으며 오직 세상의 쾌락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겠는가?



반대 방향으로 점점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이야기를 한다 해도 그들은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세상을 향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사람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아무리 소리친다 해도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없다. 이때 그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취하실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은 “몽둥이”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성도는 하늘나라로 가면서도 만신창이가 되어 목덜미가 붙잡힌 채로 질질 끌려가는 것이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중국 땅을 밟아 평생을 선교사로 헌신했던 허드슨 테일러는 사람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종종 받았다. “당신은 어떻게 일생을 선교사로 보낼 수 있었습니까? 그러면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의 헌신과 행복의 비결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연주자는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에 악기를 조율합니다. 음악회가 끝난 뒤 조율한다면 어리석은 일이죠?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의 뜻에 나의 생각을 맞추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러한 기도와 말씀에 대한 묵상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자신의 악기를 조율하듯이, 그리스도인은 아침에 눈을 뜨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자기의 뜻을 주님의 뜻에 맞게 조율하는 것을 최우선의 임무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모든 길들을 지도하시고 인도하실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네 모든 길들에서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길들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2016년 01월 28일
박승용 / 킹제임스성경신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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