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차한 변명들, 하나님 앞에선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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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을 농단하고 파행으로 치닫게 한 파렴치한들의 "모르쇠"와 "변명"으로 일관한 추태는 그들이 실제로 저지른 죄보다 더 큰 죄였다. 조선 시대 한 지식인은 "죄의 무게를 따진다면 구차한 변명이 잘못을 저지르는 것보다 죄악이 배나 더 크다."고 말했는데 참으로 옳은 말이다. 인간사도 그러할진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변명으로 일관하려는 죄인들의 뻔뻔함은 그 죄질이 얼마나 더 크겠는가? 감히 어느 누가 하나님 앞에서 변명하려 하겠는가마는 "성대한 저녁의 비유"(눅 14:16-24)를 드신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그런 무모한 짓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적시하셨다.

이 비유에는 세 가지 변명이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케케묵은 것들이다. ① 첫 번째 변명은 이렇다. 『내가 밭을 샀는데 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니 나를 용서해 주게』(18절). 말하자면 좋은지 나쁜지 직접 확인하지도 않고 땅을 매입했다는 뜻인데, 제정신이라면 땅이든 집이든 보기도 전에 계약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② 두 번째 변명은 바로 다음 구절에서 이어지고 있다. 『내가 소 다섯 겨리를 샀는데 그것들을 시험해 보려고 가니 나를 용서해 주게』(19절). 제대로 밭을 갈 수 있는 역량도 확인하지 않은 채 소들을 구입했단 말인가? 어느 누가 중고차를 구매하면서 시운전도 해 보지 않고 사겠는가! ③ 세 번째 변명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장가를 들었으니 가지 못하겠네』(20절). 신명기 24:5에 따르면, 새 아내를 얻은 사람에게 전쟁도 나가지 말고 어떤 업무도 맡지 말며, 일 년간 집에서 편히 지내며 아내를 즐겁게 해 주라는 명령이 주어진다. 그러나 지금 "성대한 저녁"으로의 초대는 출정하는 문제도 아니고 저녁 식탁을 차린다든지 설거지를 한다든지 무슨 업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이 초청이 아내를 즐겁게 해 주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이는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아내와 외식 한 번 하는 것은 아내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음식값도 지불할 필요가 없으니 생계에 지장을 줄 염려도 없지 않겠는가!

정말이지 시답잖은 변명들인 것이다. 이런 변명들은 구령 현장에서 자주 직면하는 것들이다. 왜 세상 죄인들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들로 일관하려는 것인가? 이유는 단 한 가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거절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성대한 저녁 식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발로 차 버리고 있다. 마태복음 22:2에 의하면 이렇게 초청한 주인이 "왕"으로 소개된다. 즉 그들은 "왕의 초대"를 거부한 것이다. 왕의 초대는 단순한 초청이 아니며 "순종"을 요구하는 초청이다. 응당 초대에 응해야 하는 것이다. 초청을 거절하는 것은 왕을 모독하는 것이며 결국 화를 자초하게 된다. 한번은 미국의 에티켓 강사인 에밀리 포스트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백악관에서의 저녁 정찬에 초대되었는데, "예의바르게" 그 초청을 거절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국가의 수장이 초대한 것은 다른 모든 선약들보다 우선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변했다. 왕의 초대를 받았는데 변변찮은 변명들을 댄다면 아무리 그 변명이 정당하다고 한들 그것은 왕을 모독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 그것은 결국 마귀처럼 살다가 지옥에나 들어가겠다고 하는 어리석음에 대한 자기변명이자 허세일 뿐이다.



변명은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감추고 정당화하기 위한 속임수로서 거짓말의 한 형태이며 거짓말의 아비인 마귀가 좋아하는 일이다. 변명하는 것만 봐도 그가 어떤 영의 인도를 받고 있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변명 이면에는 어떤 문제에 대해 책임지기 싫어하는 비겁함이 숨어 있다. 책임을 지는 것보다 변명하는 일이 더 쉽기에 사람들은 변명이나 핑곗거리를 먼저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그런 구차한 변명보다는 차라리 그런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고 통제하는 편이 더 낫다. 이는 바꿀 의지가 전혀 없는 일에 대해 빠져나갈 구멍부터 찾는 일, 곧 변명은 헛된 노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인인 인간은 변명하기를 좋아한다. "아내만 잘 처신했어도 이혼하지 않았을 텐데." "남편이 이해만 잘해 주었다면 그렇게까지 바가지를 긁진 않았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만 해 주셨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이런 변명은 첫 인류에게 죄가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누군가 말했듯이 "죄는 항상 변명을 대며 가면을 쓰고 향수를 뿌리고 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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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3월  (통권 300 호)   page :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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